건축가라는 직업 전숙희 중간점검 자리를 준비하면서 ‘건축가’라는 말을 곱씹어봤다. 건축학과에 왔다면 모름지기 건축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절에 학교를 다녔다. 그 시절 제일 좋아했던 건축가가 루이스 칸이다. 루이스 칸과 정서적 공감대가 이루어졌던 계기가 있었다. 대학 1학년 때 학과지를 만들면서 편집장이었던 친구의 집에 3일 동안 감금되다시피해서 루이스 칸 평전을 독파한 내용을 글로 실었다. 그러면서 그의 건축과 철학에 매료되었고, 지금까지도 그는 내게 영감을 준다. 일하다가 길을 잃어버릴 때면 그의 말을 떠올리곤 했다. 『침묵과 빛』이나 『루이스 칸 – 학생과의 대화』에서 그가 하는 말을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나고 보니 시적으로 압축적인 표현으로 자기 생각을 말했다는 것을 알았다. “What do you want to be, brick?”이라는 유명한 말도 그 책에 나온다.
5%의 건축과 95%의 건축 전숙희 요즘 ‘5%의 건축과 95%의 건축’ 사이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건물을 잘 만들려면 5%의 건축 방식이 필요하고, 건물이 잘 쓰이려면 95%의 건축의 태도가 필요하다. 내가 요즘 힘든 이유는 정말 멋진 5%의 건축, 많은 사람이 누리는 95%의 건축, 두 가지를 다 하고 싶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열려 있으면서도 다녀간 사람의 마음속에 각인되는 곳을 만들고 싶은데, 지금의 보편적이고 표준화된 방법으로는 그런 건물을 만들 수가 없다. 건물을 잘 만들려는 사람들은 건물을 사적으로만 쓰려고 하고, 공공이 향유하는 건물을 짓는 사람들(주로 공공기관)은 건물을 잘 만들 수 있는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다 하는 중이다. 건축 업계 전체가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양의 일을 할뿐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의 자기 계발이나 일에 대한 애정 같은 것은 사라졌다. 너무 답답했다.
시행착오 장영철 가라지가게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시작한 일이다. 와이즈건축 사무실을 확장할 때 필요한 가구를 직접 만들었었는데, 그걸 제품화해보면 어떨까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막연히 이 정도면 한 7만 원에 팔면 괜찮겠다 싶었는데 착각이었다. 계산해보니 초기 제품 가격이 20만 원 넘게 나왔다. 와이즈건축 살림을 내가 운영했던 것이 아니어서 비즈니스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가라지가게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smallness 전숙희 사무소를 개소할 때 당시 경제 버블이 한순간에 꺼지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건축 시장에 긍정적일까 부정적일까를 고민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smallness’로부터 시작하기로 했고, 스스로를 툰드라의 초식 생물로 생각했다. 육식 동물처럼 먹이를 많이 먹거나 독식하려고 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의 먹이를 천천히 찾아다니는 식으로 생존하기로 했다. 처음에 집중했던 것은 그게 무엇이든 간에 우리가 직접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첫 작업이 이상의 집 모바일 갤러리였다. ‘smallness’의 대원칙은 재료의 물성에 답하는 것이었다. ‘What do you want to be, brick?’이라는 루이스 칸의 말처럼, 재료의 특성이 구법으로 이어져서 그것이 건축의 본질이 되는 것을 연구하고 실천했다. 이런 마인드는 2013년 제주 애뉴알레 프로젝트까지 이어졌다.
94학번의 타임라인 전숙희 나는 94학번으로 수능 첫 세대다. 고2까지는 학력고사를 준비하다가 고3 때 갑자기 수능을 본 불안한 세대다. 그때부터 계속해서 사회가 시스템을 테스트하던 시기에 성실하게 몸과 마음을 바쳤다. 97년이 졸업 학기였고 98년 2월에 대학을 졸업했다. 우리나라가 IMF 구제금융을 신청했을 때다. 700~800원 하던 원달러 환율이 2,000원으로 세 배 가까이 치솟았고 주가지수가 300 밑으로 떨어졌다. 자고 일어날 때마다 기업이 하나씩 부도났다. 뉴스를 보고 있으면 국가가 망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로재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내가 마주한 세상의 모습이었다. 3년 동안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일을 했다.
와이즈 건축의 에센스는 ‘실천’이다. ‘행함’에 악센트가 있는 실천은 순전히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다는 뜻에서 출발해 사회를 바꾸고 윤리를 담아내는 데까지 확장되는데, 건축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표현이다. 보통 건축의 말들 속에는 ‘실현’이나 ‘구현’이라는 말을 주로 쓴다. 실현이 가리키는 대상은 ‘마인드’가 아니라 ‘아이디어’고, 실현 ‘했다’고 하기보다 ‘됐다’고 쓴다. 건축가라는 주체와 건축물이라는 대상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럼으로써 건축물도 건축가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로 분립한다. 그런데 와이즈의 건축은 그렇지가 않다. 와이즈의 초기 작업들은 ‘실천’의 정수가 날것의 상태로 담겼고, 지금도 와이즈의 코어에 자리잡고 있다. 박스 모바일 갤러리, 최초의 이상의 집, 포이동 모바일 원두막,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서 그것이 발아하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중간점검’은 2010년 전후 무렵 젊은 건축가로 호명되어 지금까지 꾸준히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중진 건축가의 심층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건축가로서의 깊이와 여유가 묻어나는 한편 여전히 치열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그때와 지금, 다가올 미래를 묻습니다. 그리고 건축가 개인의 관심사를 확장하여 건축계에 산재한 이슈를 함께 이야기합니다.
미끄러지는 공공성 공공건축과 공공성은 비슷하지만, 별개의 문제다. 공공건축 시스템 내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면 공공의 돈으로 공공을 위한 프로젝트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누구의 돈인지 모를 돈으로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를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느낀다. 또한, 지금 상황에서는 건축가가 너무 많은 희생을 하면서 일을 해야 한다. 일단 건축가와 발주처가 생각하는 좋은 공공공간이 너무 다르다. 건축가들은 공공에 개방된 공간을 설계하는데, 관에서는 안전 때문에 그렇게 하지 말자고 했다는 이야기는 너무 많다. 다음으로는 공공건축 작업에 책임 없이 한마디씩 얹는 플레이어들이 너무 많다. 심의를 말하는 게 아니다. 다양한 유관 부서의 요청이 잘 관리되어 전달되지 않고 산발적으로 내려오는데, 공모전을 통해 당선된 건축가가 그것을 다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이유로 굳이 공공 작업을 안 해도 된다면 그 고생을 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더 힘이 생겨서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전까지는 관심 없다.
건축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면목이 없는 상태다.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은 자의 반 타의 반이겠지만, 여러 상황상 부수고 짓는 것보다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다시 쓰는 것이 조금씩 일반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가가 올라 공사비가 너무 비싸졌기 때문에 더 유리해지기도 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정부 정책도 환경을 더 생각하는 방향으로 만들어 갈 것이니 앞으로 시장도 점점 그렇게 될 것이다. 개인 건축주들에게서도 예전보다 그런 경향 변화가 명백히 눈에 띈다. 긍정적인 변화라고 본다.
2010 vs 2020 제프리 킵니스(Jeffery Kipnis)1가 감독한 《A Constructive Madness》라는 다큐멘터리에서 피터 루이스(Peter Lewis)라는 거부가 프랭크 게리에게 주택을 의뢰한다. 게리가 10년 동안 설계를 했으나 너무 비싸서 결국 짓지 않는다. 그런데 그때 이것저것 시도해본 경험과 개발한 기술을 전부 몇 년 후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에 쏟아붓게 되었다. 구겐하임 빌바오는 우리가 알다시피 프랭크 게리의 커리어뿐 아니라 세계 건축의 테크놀로지 측면에서 굉장한 전환점이 된다.
데뷔작: 리빙 라이트 리빙 라이트(Living Light) / 자료 제공: 삶것 상암동 월드컵 공원에 10여 년간 유지되다가 2년 전 철거되었다. 강의 외에 다른 작업이 없던 시절이라 뉴욕과 서울을 비행기로 오가며 3년간 여기에만 몰두했다. 발주처는 서울시였고, 예산은 디자인, 제작, 설치, 운영을 포함해 약 1억 원 규모의 작업이었다. 파트너와 단둘이서 모든 과정을 직접 진행했다. 재미있었고, 지금까지도 관심 있는 분야와 맞닿아 있는 작업이다.
약간 건축가 건축가로서 만들고 싶은 궁극의 건축, 그런 것은 없다. 다만 도전은 항상 좋아한다. 궁극적으로 생각해보면, 이 일을 하는 변하지 않는 이유 단 하나가 남들이 안 해본 것, 아직 세상이 보지 못한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다. 조각이건, 굉장히 독특한 디테일이건, 희한한 형태이건, 벽돌 붙이는 방법이건 간에 역사상 없었던 것을 만드는 게 언제나 좋다.
적당히 괜찮은 플랫폼 요즘에는 괜찮은 사무소가 점점 많아지는 것 같지만, 사실, 건축가들이 가장 못 하는 것이 적당히 행복하고 지속 가능한 ‘회사’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안정적인 사무실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싶다. 그것이 더 큰 도전이다. 설계 잘 된 건물을 몇 개 짓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고, 이 업계에 더 필요한 일인 것 같다.
기술(art)과 이야기(story), 삶것에는 두 개의 스레드가 상시 작동한다. 삶것의 기술은 건축술(technology)이 아니라, 건축술을 구현하는 기술을 고안해내는 기술이다. 건축을 구상하는 방식으로서의 기술에 대한 원리적인 접근은 자연스럽게 프로젝트의 과정과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일반화시켜 말하면 ‘다이어그램적 사고’라고 할 수 있다. 프로젝트에서 어떤 결과(결론)를 만들어내는 다이어그램(기계)을 고안해 프로젝트(를 생각하는 머리) 안에 집어넣고 가동시키는 것이다. 직관과 통찰에서 나오는 이 다이어그램은 분석적인 기계가 아니라 생성적인 기계다. 일단 스위치가 켜지면 기계는 자율적(기계적)으로 돌아가고, 그것의 고안자는 기계가 움직이며 그려내는 경로를 추적, 관찰한다. 최종적으로 도달한 결과물이 마음에 들면 취하고, 그렇지 않으면 기계를 업그레이드하거나 다른 것으로 교체한다.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 기술은 삶것의 특기로 잘 알려진 컴퓨테이션이나 알고리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더 손에 잡히는) 조작 가능한 레고 블록식 모형, (더 통념적인) 그래픽 다이어그램, (더 직설적인) 프로젝트의 조건이 투사된 윤곽선, (더 개인적인) 영감을 받은 일상 속 이미지나 장면 등등 어디에든 들어 있다. 나열한 예시들이 뒤로 갈수록 기술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느낌이겠지만, 그것은 생각을 밖으로 꺼내 설명하기 위해 시각적으로 볼 수 있고, 떠올릴 수 있는 연상물로 표현하고, 대체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는 저마다 보이지 않는 기계가 돌아가고 있다.
‘중간점검’은 2010년 전후 무렵 젊은 건축가로 호명되어 지금까지 꾸준히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중진 건축가의 심층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건축가로서의 깊이와 여유가 묻어나는 한편 여전히 치열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그때와 지금, 다가올 미래를 묻습니다. 그리고 건축가 개인의 관심사를 확장하여 건축계에 산재한 이슈를 함께 이야기합니다.
사회성의 공감대 지금은 건축가들 모두 각자의 미학이나 태도만 이야기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주제의식이 강하지 않다. 사회성과 공공성은 좀 다르다. 내가 이해하는 사회성은 ‘프라이빗’에서 ‘퍼블릭’으로 이어지는 선상에 있지만, 서로 중의적으로 겹쳐진다.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을 이야기할 때는 ‘공공성’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의 이야기일 것이다. 공공성은 사회성의 하위 영역으로 볼 수 있다. 내가 사회적 역할을 말할 때는 내가 하는 건축 자체가 주변과 어울린다거나 하는 작은 부분이다. 그걸 공공성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작업과 밀접하게 맞닿는 부분에서의 아주 작은 사회성이다. 그 정도 이야기는 의식적으로 하려고 한다.
아이코닉한 스테레오타입의 한국 건축은 없다고 생각한다. 일본 건축이 성립된 것은 건축이 학문적 바탕 위에 있기 때문이다. 서양 건축들도 마찬가지다. ‘스위스 박스’라는 특유성이 있고, 프랑스와 이탈리아 건축은 서로 구분되며, 독일은 또 다르다. 모두 구분할 수 있다. 그것을 ‘○○성’이라고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독일 건축가들은 다 독일 건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건축가가 일본 건축가처럼 건축을 하진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일본 건축가처럼 하기도 하고, 미국 건축가처럼 하기도 한다. ‘한국 건축가처럼 건축을 한다’는 개념은 없다. 그것이 바로 한국성에 대한 공감대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건축이라는 학문 일본에서 건축은 학문이다. 건축 일의 시기와 단계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학교에서 배운다. 건축가들 사이에서든 학생들 사이에서든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모르면 무시를 당하기도 하고, 그렇기에 알아야만 하는 것들을 찾아서 익힌다. 한국에서는 주로 ‘디자인’을 가르치는데, 가르치는 사람의 ‘취향’을 배우는 느낌이다. 그래서 건축을 배운다는 개념이 별로 없고, 학문으로 성립이 잘 안 되고, 그러다 보니 비평도 안 되고, 업계에서도 판단 기준이 없다. 신인들이 우후죽순 나왔다가 사라진다. 그저 유명해지는 것이 건축을 잘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데뷔작: R아틀리에, grsg바 일본 유학 시절 나는 개곡선이라는 개념에 관심이 있었다. 선 하나로 일필휘지하고 분절을 통해 하나의 평면을 완성하는 것, 그것이 당시 나의 핵심 키워드였다. 일본 건축도 다른 동양 건축들과 마찬가지로 조적조의 전통이 없고, 가구식 구조를 중심으로 한다. 가구식 구조에서는 구조체를 제외하면 전부 문이고, 벽은 없다. 그래서 일본에서 열린 건축 이야기가 많기도 했다.
리노베이션 사무소효자동은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많이 하는 편이다. 기업 프로젝트였던 LCDC, 띠어리, 현대카드 프로젝트도 다 리노베이션이었다. 리모델링을 하는 이유는 거의 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지 건물을 보존하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로서는 회사 운영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그래도 리노베이션 작업을 좋아한다. 새 건물을 짓는 것보다 훨씬 재밌고, 중요하게 생각하고, 웬만하면 거절 안 하고 다 한다.
사무소의 지속 가능성 사무소효자동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특별히 따로 생각해보진 않았다. 다만 지금(2022년 3월)부터 3년 9개월 후에는 은퇴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때면 만 56세다. 선배 세대 중 건실하게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곳은 서너 곳 정도다. 지금 시대는 그들의 시대보다 더 빠르게 변하고 있으니 얼마 전 내가 사무소 조직을 개편했던 시점으로부터 5년 후 정도에는 내게 타임 리미트가 한 번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규모와 매출이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선을 넘어선다면 그 고비를 넘기고 ‘회사’가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미련없이 탁탁 접어서 상자 속에 넣으려고 한다. 나는 조만간 우리 모두 그런 사회적인 요구를 마주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평면 구성과 어프로치 디자인 4년 전 『공간』 특집 기사에 내가 평소에 많이 고민해온 작업 주제들을 글과 작업으로 엮어서 실었다. ‘땅’, ‘입면’, ‘적층’ 등 모두 미학적 태도를 견지하는 이야기들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건축을 그 속에서 설명했는데, 중요했던 포인트는 서양 건축과 동양 건축의 차이다. 서양 건축은 단면적이다. 전통적으로 조적식 구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입면을 만들어낸다. 동양 건축은 가구식 구조라서 사실상 입면이라는 게 없다. 보와 기둥만 있으면 되고, 나머지는 모두 문과 창이다. 일본 건축에서도 입면을 중시하지 않는다. 유럽과 달리 창을 예쁘게 뚫는 데는 아무 관심이 없다. 나도 그렇다. 그래서 나는 내 건축을 ‘평면을 적층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각기 다른 형식의 평면을 적층할 뿐 (입면의) 디자인이나 비례는 만들지 않는다. 그것이 내겐 중요한 ‘방향’이다.
사무소효자동의 건축을 이야기할 때면 십중팔구 일본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유독 내 주변에서만, 하필 내가 갔던 건물에서만 그럴 수도 있다.) 오늘은 이야기를 좀더 진척시켜 보려고 하는데, 먼저 몇 개 작업을 소개한다. 읽고 찾아보면서 어디가, 무엇이 일본 건축을 떠올리게 하는지 독자 스스로 생각해보길 바란다. 일본적인 것도 있고, 전혀 그렇지 않은 것도 있고, 혼란스러운 것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반추해보면 어떨까 싶다.
‘중간점검’은 2010년 전후 무렵 젊은 건축가로 호명되어 지금까지 꾸준히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중진 건축가의 심층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건축가로서의 깊이와 여유가 묻어나는 한편 여전히 치열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그때와 지금, 다가올 미래를 묻습니다. 그리고 건축가 개인의 관심사를 확장하여 건축계에 산재한 이슈를 함께 이야기합니다.
한국성은 아주 오래전부터 건축계 내에서 자주 회자되는 단어임에도 누구도 그 질문에 대해 답을 하기 어렵고, 피하고 싶지만 항상 우리에게 질문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지금 현재로서는 ‘이건 한국성이야’라고 규정할 수 있는 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구든 한국성을 말하는 것은 가능하다. 다만, 다양한 관점의 한국성을 모았을 때 ‘대략 이런 것들이 한국성으로 읽힌다’고 정의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왜냐하면 다양한 생각과 문화가 합쳐져서 한국성을 이루는 것이지, 순수한 결정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것을 같이 논의할 수 있는 그룹이 적고, 결과도 미약하다고 생각한다. 몇몇 사람이 말하는 한국성은 그 사람의 생각일 뿐, 그것이 대표성을 띨 수는 없다. 이런 문제의식이 어쩌면 한국에서 건축을 하는 출발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국성도 결국 아이덴티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DNA는 타자인 유럽이나 미국, 인도네시아 건축가와 다르다. 그 차이를 찾다 보면 자연히 한국성에 대한 부분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물의 수명 이미 여러 나라에서 인구가 줄기 시작했고, 감소 속도가 빨라졌다. 이는 지금 지어지는 건물을 쓸 사람이 사라진다는 의미다. 일본도 1970~80년대에 소방서, 경찰서와 같은 관공서를 많이 지었는데 다수가 통폐합되었고, 빈 건물은 흉물로 남아 슬럼화 됐다. 그래서 바바 마사타카(도쿄R부동산) 같은 사람이 등장해 공간이 필요한 사람에게 빈 관공서 건물을 렌탈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사회 인식에 대한 자각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에도 여러 갈래가 있다. 일본의 경우 1980년대 버블 경제 당시를 돌이켜보면 일반인들에게 건축가는 ‘이상한 건물을 디자인하는 사람’이었다. 평범한 건물을 설계하면 주목받지 못하니 어떻게든 튀는 건물을 지어야 했다. 그런 사회적 상황 속에서는 건축가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건축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난민을 위한 셸터 디자인을 이야기하며 공적 역할을 해냈다. 그러면서 시민들이 건축가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어려움을 함께 겪고 나서 일본 사회에서 ‘이웃, 연대, 관계’가 강해졌다. 국내에서는 세월호 사고 당시 ‘우리 사회에 속한 전문가로서 이러한 대형 사고를 외면하는 게 맞는가’라는 사회적 물음에 조성룡 선생이 나서서 배 모형을 제작함으로써 사회 문제를 공론장으로 이끌어냈던 예를 떠올릴 수 있다.
공고한 아파트 방벽 현재는 모든 유형의 집합주택에서 거주자 간의 관계가 이미 다 끊어져 있고, 그것이 익숙한 상태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사는 방식이 과연 좋은지, 불편한 것은 없는지, 사회적인 문제가 생길 여지는 없는지, 그런 문제를 대비해서 건축가는 어떤 부분들을 준비하거나 제안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또 한편으로는 과연 ‘세대 또는 사람과의 관계’처럼 저층형 집합주택에서 이야기하는 이슈를 아파트로 대표되는 고층형 집합주택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인가도 생각해봐야 한다.
두 번의 데뷔: SKMS 연구소, 무진도원 사이건축에서 일을 시작하던 때 내가 무엇에 관심을 두었는지 되돌아보았다. 그때는 경험도 없었고, 내가 처한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학원 때 관심을 가졌던 단어와 내용, 논문 주제를 떠올렸었다. 그게 ‘역설(paradox)’이었다. 그것을 공간적으로 해석했던 것이 ‘반고정 공간’인데, 내부도 아니고 외부도 아니고, 위도 아니고 아래도 아닌, 내가 쓰는 공간도 아니고 네가 쓰는 공간도 아닌, 애매한 공간이었다. 이게 내 안에 DNA처럼 있었던 것 같고, 최근 작업에도 드러난다.
관계 설계 건축가가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설계 뿐만 아니라 포괄적인 관심을 바탕으로 기획부터 관리까지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가장 요구되는 것은 기획력이다. 건축가는 물리적 공간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 구체적으로 1층 근생에 입주할 업종을 고민하고, 적절한 입주자를 섭외하는 영역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네를 구성하는 차원에서 이 건물에 무엇이 필요한지, 그것을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무엇을 취해야 하는지를 건축가가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단지 사업성 분석 결과나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상가나 상점을 입주시키는 게 아니라, 동네를 다시 만들고 이웃 관계를 재조직하기 위한 중요한 거점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일종의 큐레이션을 하는 것이다. 건물 프로그램에 따라서 건물 디자인은 물론이고 구성, 유형, 쓰임, 모두가 달라진다. 그래서 우리 관심의 범주는 개인의 관심사보다는 훨씬 더 넓고, 사회적 관점이 강하게 들어간다. 통칭하기는 어렵지만, ‘사회적 건축’, ‘관계 조직에 일조하는 건축’이 우리가 취하는 태도이자 방향, 관심이다.
공예와 조형 시간이 축적됨에 따라 내 성향이나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변화해왔다. 사이건축에서 SKMS 연구소를 할 때만 하더라도 대학원에서 배운 피상적인 개념을 앞세워 설계했었다. 그 다음에는 가구, 조명, 손잡이, 디테일처럼 손으로 만들거나, 다양한 재료에 대한 쓰임을 말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조형대학 학부 시절, 큰 기계 톱으로 나무와 쇠를 자르고, 돌을 깎고, 흙으로 도자기 빚는 작업을 4년 내내 하다보니 그런 것이 내게 친숙했고 점차 건축과 접점을 살리게 된 것이다. 빛을 쓰는 방식과 조형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이런 접근법을 통해 시각적으로 독특한 아이덴티티가 드러나기도 하고, 쓰임으로 직접 연결되는 것이 자극적이어서인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었다. 최근 지인들이 나의 예전 작업에서 두드러졌던 공예적인 부분을 짚으며 ‘그런 접근법을 좋게 봤었는데 왜 더 이상 하지 않는 거야?’라며 아쉬워하곤 한다. 분명한 것은 그 관심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새로운 관심사와 중첩되거나 조연처럼 뒤에서 받치고 있을 뿐이다. 매 프로젝트마다 조형에 대한 관심이나 표현, 제스처가 분명히 있고, 가능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다만 이제는 조형에만 집중하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에이라운드의 건축 하면 건축의 형상이나 스타일보다 어떤 친밀감이 먼저 떠오른다. 그것이 건축물이 풍기는 분위기인지 그것을 만든 사람이 주는 인상인지는 약간 혼란스럽지만, 왠지 모를 호감의 기운이 에이라운드의 건축 주위를 두르고 있다. 건축의 느낌이 친밀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새로 들어선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위화감이 없고, 위압적이지 않고, 왠지 아는 곳 같고, 언젠가부터 쭉 거기 있었던 것 같고, 편안히 머무를 만하고, 자꾸 말을 건네는 것 같고, 좀 더 지나면 팔짱을 낀 마냥 거리감이 사라지는, 그런 것 아닐까.
‘중간점검’은 2010년 전후 무렵 젊은 건축가로 호명되어 지금까지 꾸준히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중진 건축가의 심층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건축가로서의 깊이와 여유가 묻어나는 한편 여전히 치열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그때와 지금, 다가올 미래를 묻습니다. 그리고 건축가 개인의 관심사를 확장하여 건축계에 산재한 이슈를 함께 이야기합니다.
분열된 사회 정체성 공공건축가 시스템이 만들어진 뒤 많은 건축가가 공공건축 설계에 참여하고 좋은 건물을 만들어갈 기회가 마련된 것은 분명하다. 특히 지방에 이 제도가 도입되며 공공건축물을 짓는 과정이 많이 개선됐다. 그러나 여전히 공공건축의 열악한 조건으로 인해 건축 자체의 퀄리티는 하향평준화 되어가는 느낌이 든다. 또 건축가가 전문가로서 사회에 이바지한다는 마음으로 이런 일에 참여하기는 하지만, 작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희생을 강요당하는 면도 있다.
방기된 질문 우리가 서구 문화를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 나라 별로 고유한 것을 완벽히 구별하기 어려운 것처럼 동아시아의 건축도 한 범주로 묶인다. 특히 전통 건축에서 보면 목구조 결구법이라든지 풍수지리 사상과 같은 큰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누가 먼저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현대적으로 해석했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일본과 중국의 건축가들이 동아시아 건축의 정체성을 선점했다. 우리가 모더니즘을 해석하는 눈이 없었고, 체계가 없었기 때문에 빼앗겼다고 말할 수 있지만, 문화는 힘의 상대성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퇴보한 설계 대가 10년쯤 지나면 건축주들도 혁신적으로 많이 바뀌리라 생각했고, 좋은 공간, 진정성 있는 공간, 건축가의 제안이 살아있는 공간에 대한 가치를 시장에서도 많이 인정해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국내 설계 시장, 비용 등이 확연히 나아졌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어떤 부분에서는 더 열악해졌다. 값싼 설계와 시공을 너무 선호하는 건축주들이 더 많아진 것 같다.
스킨에서 볼륨으로 처음 조호를 시작했을 때, 경험 없는 신인으로서 모든 걸 한 번에 다 가질 수는 없었다. 그래서 볼륨이 아닌 스킨을 선택했다. 일종의 전략이었다. 예산이 너무 빠듯해 구조는 손댈 수 없을 정도로 극한 상황에서 일을 시작했고, 그런 조건 속에서 내가 최소한의 선택권을 확보한 것이 스킨이다. 용접하는 방법, 벽돌 쌓는 방법, 금속 다루는 방법, 그것들의 단가, 생산 시스템, 국내기술의 레벨 등을 많이 테스트해볼 수 있었고, 초창기 조호의 방식으로 특화할 수 있었다. 스킨에 집중함으로써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작업도 맡을 수 있었고, 그런 규모의 프로젝트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도 경험할 수 있었다.
튜토리얼 현상설계 직원이 계속 바뀌는 상황에서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공유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일하는 방식을 예습하고 복습하는 것이 중요하다. 새 직원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공모전을 시킨다. 이것이 예습에 해당한다. 새 직원을 가르치고 성장시켜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시스템이 중요하다. 현상설계 프로젝트를 해보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준비 단계에서 당선 가능성과 관계없이 우리 사무소가 추구하는 방향과 목표를 함께 생각해보고, 스스로 고민한 것을 두고 소장과 직접 호흡하며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신입 친구도 인내심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압축적인 경험을 통해 ‘우리 사무소는 이렇게 일한다’고 깨닫게 된다.
자기 통제 건축가의 일에 있어서 각자의 성취를 판단하는 기준은 서로 다를 것이다. 하나의 프로젝트로 내가 원하는 목표치를 단숨에 얻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프로젝트를 지속함으로써 미완의 가능성을 채워나가는 것이다. 단계적으로 나아가기 위해 힘을 빼는 방법, 자기를 내려놓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현실과 타협한 것은 아니다. 한 프로젝트에 주어진 조건 내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한계점을 냉정하게 보고, 목표를 설정해 그것을 성취하는 전략을 택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앞으로 달리고 있지만, 나름대로 일에 집중하는 시간의 총량을 제어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조호의 건축은 쉽게 읽힌다. 어느 건물이든 건축가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그것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또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렸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여러 작업을 펼쳐놓고 볼 때는 이 건물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혹은 같은 DNA에서 생성되었을 것이 분명해 보이는 작업 묶음을 몇 다발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건물 하나하나의 디자인이 매우 직설적이고 다이어그램적이며, 그런 일련의 작업이 조호라는 계통수를 그려 나간다.
‘중간점검’은 2010년 전후 무렵 젊은 건축가로 호명되어 지금까지 꾸준히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중진 건축가의 심층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건축가로서의 깊이와 여유가 묻어나는 한편 여전히 치열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그때와 지금, 다가올 미래를 묻습니다. 그리고 건축가의 관심사를 확장하여 건축계에 산재한 이슈들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한국적인? 내 작업이 어딘지 모르게 한국적인 구석이 있다는 평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스스로는 ‘너무 각 잡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약간 풀어지는 지점을 이야기하는 것인가?’라고 생각했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치밀해지는 순간 탁 내려놓는 것이다. 일본 건축에서 별거 아닌데도 끝까지 쪼개어 가면서 작업하는 걸 볼 때 약간 답답한 느낌을 받는다. 중국 건축에서는 한 수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의아할 때가 있다. 그럴 땐 내게서 양면성을 느낀다. 그게 바로 ‘한국적인’ 지점인가 생각했었다.
공공이라는 구호 공공성, 공공(이 발주하는) 건축, 공공건축가제도, 이 세 가지를 분리해볼 필요가 있다. 많은 경우에 공공건축이라고 하면 공공이 발주하는 건물이다. 그런데 겪어보니까 공공이 발주하더라도 발주처의 관리 편이를 중요시하거나, 시장님의 치적 쌓기로 수렴되는 경우도 많으므로 반드시 공공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민간 건축물 같은 경우에도 건축가는 항상 공공성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런 부분은 분명히 공공의 본질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공공이 발주하는 건축과 공공성을 갖는 건축은 구분되어야 할 것 같다.
기술의 한계 건축설계가 전문직인 이유는 오랜 훈련을 통해 불편하거나 낭비하는 공간 없이 합리적인 평면을 계획하고, 그것을 구축하는 데 있어서 안전하고 효율적인 기술을 선택해 건물이 무너지지 않고 잘 쓰이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적정한 공사비 내에서 건물을 만들 수 있는 기술, 노하우는 건축가로서 꼭 가져야 하는 실무적 능력이다. 의사를 예로 들어보자. 전문가로서 의사의 역할은, 굉장히 축소해서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병을 잘 치료하는 것이다. 그리고 병을 잘 고친다는 것에는 ‘기술’이 깔려있다. 여기에서 기술은 선도 기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 사람이 할 수 없는, 테크니션으로서 지식과 기술이 있고, 그로써 사회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건축가도 마찬가지다. 아주 간단한 레벨로 예를 들자면, 천정을 노출한 건물을 지을 때 보를 합리적으로 정리하는 것은 구조, 미학, 쓰임이 다 맞물린 문제다. 또, 석재를 얇게, 가늘게, 길게 쓸 때 어떻게 붙일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공중 부양하는, 매달린 건물을 설계하고 싶다면 어떤 방식으로, 어떤 구조를 써야 안전하고도 가뿐하게 처리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굉장한 장 스팬 건물인데 부재를 얇게, 디테일을 잘 구현했다면, 그것에 대해서 논하고 가치를 부여해야 할 것이다. 이런 기술적 해결 방법은 건축가가 고민해야 하는 문제고 잘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부분은 일단 소통에 장벽이 있어 이야기를 진전시키는 데에 한계가 있다. 언어로 말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것에 가치 부여가 되지 않지만, 이제는 그런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또 이런 논의를 바탕으로 과다한 공사비를 들이지 않으면서, 건축적인 표현을 하기 위한 트레이닝을 해야한다. 기술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뉘앙스를 만들어내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고, 책무라고 생각한다.
디아는 사무소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우리를 직접 찾아온 민간 프로젝트가 주를 이룬다. 리노베이션에서 주택이 되고, 주택이 소규모 근린생활시설이 되고, 그러다가 간혹 독수리학교 같은 규모 있는 작업도 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작업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지금도 여전히 주택과 근생 프로젝트를 계속 하고 있다.
모든 것의 균형 “건축 철학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내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사로 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을 규정하는 순간 건축물의 결과를 예단하게 된다. 세상에는 수많은 단어가 있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 하고 있는 것을 한 단어로 이야기하는 것은 비평가에게도 쉽지 않은 과제고 건축가 스스로는 더더욱 하기 어려운 일이다. “어떤 건물을 지향하냐”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그걸 스스로 담론화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찾아가는 일을 하기 때문에 결과를 먼저 내밀기보다 태도를 계속 이야기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형용사, ‘how’로 대답하고 싶다. 즉 “어떤 것을 하고 싶은가요?” “어떤 성격의 것을 하고 싶은가요?”로 질문을 바꾸어 건축 설계하는 방법이나 태도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말하고 싶다.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생각할 때 아직 기성은 아닌데 그렇다고 해서 젊다고 하기엔 미안한 나이가 됐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젊은 건축가’이고 싶다. ‘젊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의미한다. 어설프지만 신선하고, 새롭고, 기성 세대가 생각하지 못하는 뭔가를 해줄 것 같은 기대감을 갖게 한다. 그래서 이 단어에 기대고 싶고, 건축가로서 그런 태도를 유지하고 싶다.
디아의 건축을 한마디로 설명할 수는 없다. 디아의 건축은 미묘하게 ‘복합적’이다. 혼합적이거나 혼성적인 것은 아니고, 다채로운 것과는 또 다르다. 디아가 내는 색의 범위가 있기 때문이다. 범위 밖의 작업도 간혹 있지만 그것은 그것대로다. 아직 발산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 거기서 멈춘 것일 수도 있다. 정현아라는 건축가가 내뿜는 어떤 ‘서늘함’도 디아에 색을 입힌다. 그것이 작업의 바깥 표면을 코팅하는지, 속에서 스며 나오는지는 모르겠다. 디아의 색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작업 하나하나를 다시 면밀히 살펴야겠지만, 짧은 인트로이니 수습할 수 없는 자료와 정보를 꺼내는 대신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 있는 기억과 경험의 조각들을 모아본다.
‘중간점검’은 2010년 전후 무렵 젊은 건축가로 호명되어 지금까지 꾸준히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중진 건축가의 심층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건축가로서의 깊이와 여유가 묻어나는 한편 여전히 치열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그때와 지금, 다가올 미래를 묻습니다. 그리고 건축가 개인의 관심사를 확장하여 건축계에 산재한 이슈를 함께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