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행복, 평화와 안전, 헌법과 질서, 민주주의. 2024년 12월 우리 몸과 마음에 매일매일 새겨넣은 한마디 한마디다. 국회의사당, 국민의힘 당사, 헌법재판소를 에워싸고 밤낮 울려 퍼진 시민들의 맹렬한 외침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했던 것들이 어쩌면 그렇게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그저 공기처럼 주어진 것이 아니라 힘겹게 쟁취해낸 것이었다는 각성과 깨달음이 우리로 하여금 뉴스창을 수시로 새로고침하게 하고 종일의 피곤을 짊어지고 광장으로 나가게 만들었다.
출발은 장애인이었다. 장애를 더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돌보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확산되고 있는데, 건축은 갑갑할 만큼 그 변화를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있다. 배리어 프리가 제도화된 덕분에 건축설계 시 거쳐야 할 온갖 인증이 하나 더 늘었고, 유니버셜 디자인 개념이 느닷없이 다시 소환되어 떠돌고 있는 정도다. 건축가의 시각에서는 이 둘은 장애인 공간을 본질적으로 개선하지 못하는, 기계적 방편과 문자적 구호로 여겨질 뿐이다. 사회의 요구와 질문은 쌓여만 가고, 건축의 호응이나 대답은 요원해보인다. 더 늦기 전에 양쪽을 테이블에 앉히고 진짜 논의를 시작해보기로 했다. 장애를 설계 요건 이상의 진지한 관심사로 둔 건축가조차 건축계에서는 귀한 존재였다. 고민 끝에 조재원과 김정임 두 건축가에게 도움을 청했다. 조재원은 장애인을 위한 공간을 리모델링하며 그 과정을 상세한 기록으로 남긴 바 있어서였고, 김정임은 최근 들어 장애와 돌봄의 공간에 관심이 생겨 공부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어서였다.
와이즈 건축의 에센스는 ‘실천’이다. ‘행함’에 악센트가 있는 실천은 순전히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다는 뜻에서 출발해 사회를 바꾸고 윤리를 담아내는 데까지 확장되는데, 건축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표현이다. 보통 건축의 말들 속에는 ‘실현’이나 ‘구현’이라는 말을 주로 쓴다. 실현이 가리키는 대상은 ‘마인드’가 아니라 ‘아이디어’고, 실현 ‘했다’고 하기보다 ‘됐다’고 쓴다. 건축가라는 주체와 건축물이라는 대상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럼으로써 건축물도 건축가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로 분립한다. 그런데 와이즈의 건축은 그렇지가 않다. 와이즈의 초기 작업들은 ‘실천’의 정수가 날것의 상태로 담겼고, 지금도 와이즈의 코어에 자리잡고 있다. 박스 모바일 갤러리, 최초의 이상의 집, 포이동 모바일 원두막,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서 그것이 발아하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때는 바야흐로 코로나 팬데믹 시절 2년 차의 한중간, 우리는 모두 ‘여행’에 목말라 있었다. 2019년에서 2020년으로 넘어가던 겨울에 시작된 코로나19는 언제나 당연히 열려 있던 세계의 문을 모두 닫게 만들었고, 우리는 집안에 갇혀 배달 음식들로 연명하며 2년을 보냈다. 2023년 5월말 공식적인 엔데믹을 맞았다. 그런데 세계는 2022년 여름부터 사실상 엔데믹이었고, ‘취향거처: 다름의 여행’도 그때 이미 공모전 세팅을 마쳤다. 그만큼 지긋지긋한 방구석을 떠나고 싶은 기운이 주위를 꽉 채우고 있었다. 참다못한 사람들은 그해 겨울부터 이미 앞다퉈 여행을 떠났다. 비행기표 값이 여전히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고, 모처럼 맛보는 이국의 풍경과 공기에 한껏 취해 돌아왔다. 그러기를 몇 개월, 해외여행의 열기는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금세 잦아들었다. 복합적으로 엮인 직접적인 요인들과는 별개로, 코로나 시절 반사적으로 급증했던 국내 여행의 경험이 기존 여행의 어떤 부분을 바꿔놓은 것 같다. 그 변화의 배경도 당연히 복합적일 것이다.
공공 프로젝트의 존재 이유는 사회 불균형을 해소하고 사회가 지향하는 공동의 가치를 한발 앞서 선취하는 데 있다. 공익과 공공성을 담보로 추진되고, 필수불가결하지만 이윤을 내기 어려운 취약 지대를 커버하고, 당장의 필요뿐 아니라 미래의 필요까지 수용하는 중요한 사회적 수단이자 문화적 생성물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이런 추상적인 개념은 현실에서 스스로 작동하지 않는다. 세금과 예산, 절차와 행정, 운영과 관리 같은 기획 레벨을 거쳐, 설계, 납품, 견적, 회의, 공사, 입주 같은 실행 레벨에 이를 때쯤, 사회적 불균형이니 공동의 가치니 미래의 필요 같은 말은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실리콘 코킹과 시멘트 코킹 사이의 선택 따위만 눈앞에 덩그렇게 놓여 있게 된다. 개념과 실제,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세상 모든 곳에 흔히 있기 마련이나, 공공 프로젝트에서 결정적 한 방은 개념과 실제의 간극을 좁히며 총체적 난국을 풀어나가는 주체(주인)가 없다는 점이다. 주인은 없는데 어떻게 애초에 프로젝트가 생성된단 말인가? 생각하는 주인은 없으나 프로젝트를 생성하는 요인은 있기 때문이다. 섬뜩하기까지 한 이 말은 어떤 기시감을 주기도 한다. 여기에 공공 프로젝트의 모든 어려움이 수렴한다.
사무소효자동의 건축을 이야기할 때면 십중팔구 일본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유독 내 주변에서만, 하필 내가 갔던 건물에서만 그럴 수도 있다.) 오늘은 이야기를 좀더 진척시켜 보려고 하는데, 먼저 몇 개 작업을 소개한다. 읽고 찾아보면서 어디가, 무엇이 일본 건축을 떠올리게 하는지 독자 스스로 생각해보길 바란다. 일본적인 것도 있고, 전혀 그렇지 않은 것도 있고, 혼란스러운 것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반추해보면 어떨까 싶다.
에이라운드의 건축 하면 건축의 형상이나 스타일보다 어떤 친밀감이 먼저 떠오른다. 그것이 건축물이 풍기는 분위기인지 그것을 만든 사람이 주는 인상인지는 약간 혼란스럽지만, 왠지 모를 호감의 기운이 에이라운드의 건축 주위를 두르고 있다. 건축의 느낌이 친밀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새로 들어선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위화감이 없고, 위압적이지 않고, 왠지 아는 곳 같고, 언젠가부터 쭉 거기 있었던 것 같고, 편안히 머무를 만하고, 자꾸 말을 건네는 것 같고, 좀 더 지나면 팔짱을 낀 마냥 거리감이 사라지는, 그런 것 아닐까.
구민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최호승 홍익대학교 건축학과김상호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한국성’의 출현은 이렇다. 2021년 봄 다음 공모전 구상을 시작하면서 수년째 공모전 운영 매니저를 맡아온 김보현 씨에게 혹시 탐구해보고 싶은 주제가 있는지 물었다. 그는 문화기획자이자 큐레이터이기도 한데 스스로 건축에는 문외한으로 여겨 답을 저어하다가 며칠 뒤, 건축의 ‘한국성’이 궁금하며 사실 자신의 오랜 관심사라고 했다. 뜬금없다고 생각하면서 ‘건축상 주제 후보’라는 제목의 메모장에 ‘한국성’을 타이핑해 넣었다. 거기엔 이미 뜨문뜨문 메모해둔 그럴듯해 보이는 대여섯 개의 후보가 적혀 있었다. 그 후 메모를 종종 펼쳐보던 어느 날, ‘안 될 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묵고 철 지난, 유통기한이 지나도 한참 지난 것 같은 그 단어가 그렇게 다시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었고, 어느새 나도 궁금해졌다.
조호의 건축은 쉽게 읽힌다. 어느 건물이든 건축가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그것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또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렸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여러 작업을 펼쳐놓고 볼 때는 이 건물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혹은 같은 DNA에서 생성되었을 것이 분명해 보이는 작업 묶음을 몇 다발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건물 하나하나의 디자인이 매우 직설적이고 다이어그램적이며, 그런 일련의 작업이 조호라는 계통수를 그려 나간다.
디아의 건축을 한마디로 설명할 수는 없다. 디아의 건축은 미묘하게 ‘복합적’이다. 혼합적이거나 혼성적인 것은 아니고, 다채로운 것과는 또 다르다. 디아가 내는 색의 범위가 있기 때문이다. 범위 밖의 작업도 간혹 있지만 그것은 그것대로다. 아직 발산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 거기서 멈춘 것일 수도 있다. 정현아라는 건축가가 내뿜는 어떤 ‘서늘함’도 디아에 색을 입힌다. 그것이 작업의 바깥 표면을 코팅하는지, 속에서 스며 나오는지는 모르겠다. 디아의 색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작업 하나하나를 다시 면밀히 살펴야겠지만, 짧은 인트로이니 수습할 수 없는 자료와 정보를 꺼내는 대신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 있는 기억과 경험의 조각들을 모아본다.
소수건축에서 유연성은 중요한 개념이다. 소수건축의 사무실은 고정된 벽체로 구획되지 않는다. 이러한 사무실의 공간 개념은 소수건축의 수평적 소통을 위함이다. 우리는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내외부로 생각을 확장하고, 공유와 공감의 장을 넓히려고 한다.
얼마 전부터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면서 학생들에게 명시적으로나 암시적으로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모든 형태, 모든 아이디어가 반드시 건축적으로 의미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신기한 것은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학생들 중 몇몇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게, 자신에게 익숙한 어떤 대상(가령 꽃과 같은)을 그대로 건축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다. 시간을 초월해 이러한 모습이 반복되는 것은 아마도 인간 본성에 내재한 일반 조형의 의지와 건축적 표현 사이의 구분을 배우지 못 했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건축을 배우는 학생에게 그 차이를 인식시키고 건축의 기초와 방향을 짚어주는 것이 선생의 역할이다. 그렇다면 일반 조형과 건축을 가르는 차이는 무엇일까. 이 쉽지만 어려운 질문은 건축가로서 나 자신에게도 항상 던지는 질문이다. 무엇이 건축을 건축으로 만드는가. 무엇이 건축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인가.
나는 어려서부터 공사 현장의 포크레인을 좋아했다. 길을 걷다가도 공사 현장이 나타나면 발걸음을 멈추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포크레인의 모습을 몇 시간이고 서서 구경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내가 나고 자란 인천의 동네에서는 목재공장들도 쉽게 볼 수 있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공장 앞에 쌓인 자투리 나무 조각들을 주워와 이것저것 만들곤 했다. 건축가가 되지 않았다면 목수가 되었을 것이다.
사무소는 10여 년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학교 선후배로 같은 시기에 공부했고, 부부가 되어 함께 건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일상이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 다른 사무소에서 실무를 경험했기에 피할 수 없는 의견 차이는 있고, 아직은 특별히 정해진 것 없는 유연한 상태로 건축가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신은 어떤 건축가입니까?’라는 질문이 매우 어색하고, 우리도 우리가 어떤 건축가가 될지 무척 궁금하다.
사무소에 ‘서가’라는 이름을 단지 8년째다. 인테리어와 전시, 작은 공공시설물 디자인이 주된 일이던 3년의 시간을 보냈고, 집을 짓는 서가건축이 된 지는 6년 차의 사무소다. 8년이라는 시간을 지나며 구성원의 변화가 있었고, 현재는 박혜선, 오승현이 서가를 이끌고 있다. 신입사원으로 들어와 7년 차가 된 김유빈, 다른 사무실에서 실무경력을 쌓고 입사한 정상호, 오수진, 작년에 새내기로 입사한 박나영, 이민범, 한수지와 함께 작업 중이다.
기반은 같되 다른 결을 가진 우리의 건축 공부가 보여주듯, 최소의 건축공간에서부터 공동체의 플랫폼인 도시공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관심사를 서로 상보적으로 공유하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건축에 기초하지만 건축설계에 함몰되지 않는, 실무와 연구, 교육과 사회봉사 전반에 기여할 수 있는 폭넓은 건축 직능을 갖추고자 노력 중이다. 작은 협소주택에서부터 갤러리, 근린생활시설, 물류창고, 공동주택, 업무시설, 리모델링 등 용도와 규모에 구애받지 않고, 건축설계 작업과 도시재생 뉴딜사업, 마스터플랜까지 다양한 연구와 건축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인식(awareness) 건축의 인생은 어느 한때의 문제보다 크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업을 지속하면서 ‘무엇을’ 고민할지보다 ‘어떻게’ 고민할지가 중요해지고, 고민도 조금 선명해진다. 일상은 느리고, 일반적으로 잘 인식되지 않는다. 인간은 기억(과거)과 상상 혹은 기대(미래)로 현재를 산다. 지금, 이곳을 인식할 수 있는 공간적 장치가 필요하다.
영어를 처음 접했던 중학교 때 어느 컨트리음악 가사에 나오던 ‘dreamer’를 사전에서 찾아봤었다. ‘몽상가’, 생소한 뜻풀이에 갸우뚱거리며 부모님께 물어보니, 근면 성실한 시대를 사셨던 아버지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놀고먹으며 헛된 꿈만 꾸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참고로, 아버지는 은행원이었고, 그때 그 노래는 케니 로저스의 「Don’t fall in love with a dreamer」였다. 그래서였나, 그 단어는 노래 가사처럼 여자의 맘을 찢고 떠나가는 나쁜 남자와 같은 잔상으로 아직도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런데 내가 하는 일의 모양을 되돌아보니, 이 먼지 낀 박제와 같은 단어를 언급하지 않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건축가의 일이란 게 제 의지로 시작되기보다는 주어지는 일이 대부분이고, 또 의지와 상관없이 엉뚱한 곳으로 방향을 틀거나 강제 종료 당하기도 한다. 게다가 용감히 첫발을 내딛는 이들에게는 그 시작의 기회마저 야박하다. 그러다 보니 실천하는 행동가이기보다는 혼자 즐거움을 만끽하는 소심한 몽상가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나보다.
두 번째 책을 내면서 두번째탐색을 만든 개인사적 배경을 짧게 붙여본다. (함께 책을 만든 두 사람의 이어지는 글도 마침 각자의 소회이니 자연스러울 것 같다.) 2017년 정림건축문화재단(이하 재단)에 합류해 당장의 급한 불들을 끄고 나서 이듬해 시작할 포럼을 어렴풋이 준비하기 시작했다. 재단이 그간 지속해온 건축 포럼 시리즈에 ‘두 번째’라는 라벨을 붙여 시즌의 변화를 알리고, ‘탐색’이라는 제목으로 방향 전환을 꾀했음은 이미 두어 차례 밝힌 바 있다. 두번째탐색에는 두 개의 줄기가 하나로 엮여 있다. 하나는 재단이 초창기부터 이어온 다양한 포럼으로 쌓아 올린 담론의 연속체이고, 다른 하나는 건축 기자 시절부터 내게 맡겨진 새로운 건축가 취재라는 끝나지 않은(을) 미션이다. 공교롭게 잠시 소강상태에 있던 둘이 만나서 기획한 첫 일이 각자에게, 그리고 공통으로 크게 단락지어진 ‘두 번째’ 무엇이 되었다.
‘큐레이팅’ 은 쉽게 번역하기 어려운 말이다. 큐레이팅이 실행되는 메커니즘은 에디팅과 비슷하다. 거칠게 말해서 수집하고, 조사하고, 선별하고, 배열하고, 전시하는 것이 큐레이터의 일이라면 에디터는 마지막에 전시 대신 출판을 할 뿐이다. 사전에서 큐레이터의 동사를 찾으면 큐레이터가 수행하는 일이라는 허무한 설명만 덩그러니 나오는데, 그 자리를 에디팅(편집 )의 정의로 덮어쓰면 별 무리 없이 많은 부분이 설명된다. 실제 국내외 건축과 디자인 분야의 큐레이터들은 에디터 출신이 많다. 건축의 큐레이팅을 논하는 글들 사이에 편집에 관한 이야기가 끼어들 여지가 그래서 생기는 건지도 모른다. 편집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큐레이팅으로 이어진다면, 건축 큐레이팅이 무엇인지도 건축 편집에 비추어 이해할 수 있다.
구보건축 2.0 구보건축은 2015년 12월 주택 설계를 의뢰받으면서 업무를 시작했다. 2003년에 우리 두 사람이 각각 이로재와 서울건축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13년 만에 자신의 아틀리에를 열었다. 어떤 조직의 회사를 만들어갈 것인지, 어떤 비전으로 운영할 것인지, 어떤 디자인의 집을 지어나갈 것인지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고민했지만, 뚜렷한 답을 찾지 못한 채 많은 질문을 안고 출발했다.
‘어느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에서 살고 있나요?’라는 물음에 돌아오는 답은, 모르거나 아파트 건설사 이름이 대부분이다. 문득 이런 현실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 살고, 일하는 공간을 계획한 건축가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현실 말이다. 보편적인건축사사무소는 건축과 공간 전문가로서 사람들에게 친밀하게 다가가기 위해 기억하고 부르기 쉬운 이름으로 2013년 문을 열었다. 현재는 아내인 황은 소장이 합류해 함께 운영하고 있다.
건축사사무소 몰드프로젝트1는 보수적이고 경직된 기존 설계사무소의 운영방식과 다르게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실험 중이다. 우리는 외피를 통한 추상적인 표현보다는 장소에서 유래되고 오래도록 감응을 주는 건축물을 추구한다. 도시의 역사, 문화, 예술에 관심을 갖고 고민함으로써 건축적 해법과 장치를 찾으려 한다. 우리는 대지에 조심스럽게 개입하여 겸손한 자세로 일상적인 건축을 추구하며, 섬세한 과정을 통해 건축물의 특성과 분위기를 만드는 것에 큰 관심이 있다.
AEA(아에아건축)는 프랑스어 Atelier Espa:ce Architectes (아틀리에 에스빠스 아키텍트)의 머리글자 조합이다. ‘Espace’는 공간 또는 장소라는 뜻이며 이것을 탐구하는 건축가 그룹이라는 뜻으로 지었다. 우리 두 사람은 배병길도시건축연구소에서 함께 실무 경험을 쌓았고, 파리 라빌레트 건축학교에서 석사 졸업 후 파리에서 실무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첫 프로젝트였던 경남 사천시 상가주택 H1115-7을 계기로 귀국, 2016년 경남 진주라는 지방도시에 정식으로 사무소를 열었다.
코어건축사사무소는 유종수, 김빈 등 젊은 건축가가 주축이 되어 서울에 설립되었다. 우리는 개인의 개성이 존중되는 다양한 건축가들이 모여 지식을 공유하며 건축을 고민하는 집단을 목표로 한다. 마스터 아키텍트에 의해 운영되는 기존 사무소가 갖는 한계에서 탈피하고, 현대 사회의 다양성을 존중하여 집단지성의 힘을 토대로 더 나은 환경을 만들고, 지속 가능한 건축 집단이 되기 위한 아틀리에의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함께 걷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는 대학 시절부터 걷는 것을 좋아했다. 아마도 도시와 관련된 역사와 인문학 수업으로 서울 동네 답사를 다닐 때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부터 볕이 좋은 날, 틈이 생기는 날이면 함께 산책하며 도시 구석구석을 관찰하곤 했다. 가려지고 덧대어진 것을 발견하고, 무심코 지나치던 많은 것을 다시 보는 것을 좋아한다. 재밌고 신선한 것들은 사진으로 기록해두는데, 나중에 들춰보며 도무지 무엇을 남기고 싶었는지 모르는 것들과 그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에 즐거워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가 경험하는 풍경들 속에 우리 흔적을 어떤 식으로든 남겨보자고 다짐한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처럼 산보를 좋아한다. 걷는 것을 통해서 마을을 느낀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건축을 시작한다. 책상 위에 모형을 두고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도시 전체를 한눈에 바라보는 시점이 아닌, 그 안에서 걸으며 마을을 알아가는 시점에서부터 건축을 생각한다.
2012년. 아름지기에서 주최하는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 공모전에 참여했다. 이도은과 임현진이 함께한 첫 번째 작업이었고, 우리는 ‘겹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제안했다.
경희대학교와 AA스쿨을 졸업하고, 8년간 포스터+파트너스 (런던)에서 어소시에이트로 근무하며 세계 여러 곳의 다양한 프로젝트와 현상설계를 맡았다. 2014년 서울로 돌아와 스키마(skimA)1를 열었다. 사무소 개소와 함께 고려대학교 건축학과에서 구조디자인과 건축설계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구조디자인 수업을 통해서 학생들과 함께 다양한 구조 시스템과 재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구하게 되었다.
건축가라는 직업 앞에 ‘젊은’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은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젊은건축가상의 시작이 10년 전, 『공간』의 젊은 건축가 연재가 8년 전, 젊은건축가포럼코리아의 첫 파티가 7년 전이다. 2010년 전까지만 해도 새로운 건축가를 만나는 것은 뉴페이스를 찾는 일이 중요 임무인 건축잡지조차도 1년에 한두 명을 만나면 다행일 정도로 매우 드문 일이었다. (당시 『공간』이 이듬해 연재를 이어가지 못한 이유도 취재 대상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서였다.) 개인 건축가로 독립하는 시기도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지금보다 긴 실무 경험을 쌓고 나서야 독립을 생각할 수 있었고, 독립 후에도 5년 정도가 흘러서야 매체의 레이더망에 잡혔고, 매체가 기사화하기까지는 몇 개의 관문을 더 거쳐야 했다. 저마다 신중을 기하다 보니 수도 적고 시기도 더뎠다. 신인 건축가의 수가 눈에 띄게 늘기 시작한 때는 대형 설계회사의 경영난으로 인해 건축가 엑소더스가 일어났던 5–6년 전부터였다. (해외에서도 1년 정도 앞서 대형 설계회사들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있었다.) 대형 회사의 경영난이 촉매 작용을 했지만, 전조와 징후는 이미 곳곳에서 간헐적으로 나타나고 있었고, 충분한 조건들이 조용히 쌓이고 있었다.
건축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목소리와 움직임은 곳곳에서 이어져 왔다. ‘전선에서 알리다’라는 제목을 내걸었던 베네치아, 후쿠시마 대지진 후 대응에 나선 일본 건축계, 사회 기여에 무게를 두기 시작한 프리츠커 등 여러 맥락과 방향으로 퍼져 나왔다. 사회문제를 도시와 연결지어 이슈를 제기하는 것은 건축이 현실에 개입하는 하나의 경로이고, 오래된 건축의 과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것은 건축 전시의 탐구 대상으로서 당위성과 정당성을 얻는다.
건축 저널리즘은 생기를 잃을 것이고, 건축 저널리스트는 곧 역사의 뒤편으로 퇴장할 것으로 전망되어 왔다. 이러한 격랑 속에서 『와이드AR』, 『공간』, 『다큐멘텀』 등 국내의 건축 저널은 자신만의 차별성을 유지하며 거센 바람에 맞서고 있다. 해외발 건축 프로젝트 소개 웹사이트의 붐 속에서도 종이 잡지의 생명력을 잃지 않고,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고군분투하는 이들 매체의 편집장을 초대해 현재 건축 저널의 상황과 고민, 그리고 한국 건축을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지난 한해를 돌아봤다.
김일현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인터뷰 김상호 《다큐멘텀》 편집장
김성홍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인터뷰 김상호 《다큐멘텀》 편집장
김광수 이화여자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인터뷰 김상호 《다큐멘텀》 편집장
SsD는 보스톤, 뉴욕, 서울을 베이스로 활동하는 건축가 그룹이다. 최근 ‘2012 BSA DESIGN AWARD’를 수상한 서울 송파구의 마이크로 하우징 프로젝트는 주거의 핵심 요소에 사용자의 자유로운 개입을 제안함으로써 현재 도시가 필요로 하는 주거공간의 융통성을 고민한다. 이러한 고민은 하나의 건물에 머물지 않고 도시 차원으로 확장되어 도시의 공간 수요에 대응하는 전략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