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건축가 김수근의 설계로 완공된 샘터사옥은 한 회사의 사옥임에도 사유지인 건물 1층에 길을 내어 공공 통로를 두고 지하와 저층부에는 대학로 문화와 함께 호흡하는 프로그램들을 유지해왔다는 점에서 건축적·도시적 가치가 크다. 샘터사옥은 올해 새 소유주 공공그라운드를 만났다. 공공그라운드는 건축사적으로, 도시사적으로 의미 있는 오래된 건축물의 상징적 가치를 사회적 자산으로 본다. 한편으로는 지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활용함으로써 미래를 위한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 사용자들의 열린 플랫폼으로 개발하는 일을 꿈꾼다. 공일스튜디오가 건축가로 참여한 샘터사옥 리노베이션은 이런 아젠다를 실행에 옮기는 첫 프로젝트(공공일호)로서 의미가 크다. 그래서 공일스튜디오와 공공그라운드는 함께 샘터사옥의 리노베이션 과정을 기록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이곳에 생겨날 새로운 생태계가 이전의 역사와 전환의 과정을 기억하고 새로운 문화의 바탕으로 삼기를 희망한다.
‘상상의 공동체’라는 베네딕트 앤더슨1의 용어처럼 공동체는 그 실체가 손에 잡히지 않는 대상이다. 전통적인 관계를 빠르게 해체해 온 수많은 현대적 삶의 조건 속에서 공동체는 단순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아주 적극적으로 추구해야만 얻어지는 삶의 목표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매 순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살펴야 마음이 놓이는 SNS 공간처럼 공동체는 때로 가상의 세계에 어렴풋이 존재하는 불안한 연결고리 혹은 사회적 흔적 기관처럼 느껴진다.
개인성의 완성, 공공성의 완성 도시, 건축에서 공공성은 1825년 로버트 오언(Robert Owen, 1771 – 1858)의 뉴하모니 프로젝트1 이래 계속된 논의에도 불구하고, 급변하는 시대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고 지속 가능한 방안이 제시되지 못했다. 이러한 실패는 근대화 이후 제시되어온 방안들이 개인성을 중요시하는 구성원들에게 오직 공공영역의 완성만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욱 소단위화 되어갈 사회 속에서 우리는 다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사회의 변화를 무시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그 흐름 속에서 가능한 방안이어야 지속 가능한 공공성의 완성을 기대할 수 있다. 이에 개인성의 완성을 통한 공공의 열림, 즉 공공성의 완성형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예측은 늘 어렵다. 더구나 지금처럼 변화가 빠른 (게다가 한국) 사회에서 무언가를 대비한 해결책 제시는 어쩌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는 편이 현명할지도 모른다. 이 제안은 특정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나 건축적 성과 혹은 해결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단지 그간의 작업을 통해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시도했거나, 현재 진행 중인 몇 가지 실험의 일부다. 아직은 과정도 탄탄하지 못하고 결과가 보장된 실험도 아닐지 모를, 문제 제기 정도의 단계로 보는 편이 적당하다. 하지만 문제 제기를 통한 사고의 공유가 모든 프로젝트의 출발점임을 상기하면, 그것대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풍년빌라 프로젝트는 이러한 문제 제기와 함께 몇 가지 단서를 제공한다. 그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주택 정책 한국은 새마을운동을 기점으로 경제 발전에 역점을 두고 미국 경제 발전 방식을 모델로 삼았다. 미국은 저금리 모기지론으로 1가구 1주택을 구매하도록 유도했고, 주택을 담보로 평생 이자를 갚아나가는 구조를 만들었다. 노동자들은 주택을 얻게 되지만 주택 구입을 위한 이자를 내기 위해 열심히 노동하게 되고, 이를 동력 삼아 국가 경제가 작동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후 일본도 이와 같은 방식을 도입했고, 1960년대 한국도 비슷한 방식을 도입했다. 그렇게 출발한 한국 주택 정책은 경제 성장의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존재하게 되었다. 이는 ‘어떤 주택을 공급할 것인가’, ‘어떤 주택에서 생활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간과하게 만들었고, 오랫동안 주택을 경제(재화) 수단으로 인식하게 했다. 현재 1가구 1주택을 전제로 한 내 집 마련 정책이 실패했다면, 그 실패는 단순히 경제 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이 파괴되었음을 뜻한다.
소필지 주거지의 원룸화 1970년대 50 – 60평 필지로 구획된 서울 도심의 주거지역에 단층의 전후 보급형 주택들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서구식 주거 방식이 도입되면서 ‘양옥’으로 통칭하던 2층짜리 단독주택이 도심 주거지역을 채우기 시작했다. 1990년 다가구 주택이 법제화되면서 반지하 위에 지상 2층을 얹어 총 세 개 층으로 이루어진 주택 유형이 소필지 주거지역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반지하에 두 세대, 1층에 두 세대, 2층과 옥탑에 주인 세대가 거주하는, 다셋 세대가 모여 사는 옥외 계단형 다가구 주택이 빠르게 확산되었다. 1990년대 말에 이르러 옥외 계단실을 실내로 전용하여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옥외 계단을 건폐율에 산입하도록 건축법이 개정되었다. 이와 함께 공용공간을 실내화한 ‘중앙 계단형 다층 다가구·다세대 주택’이라는 유형이 등장했다.
우리는 지난 50여 년간 고도성장을 구가해왔다. 생산과 소비는 나날이 늘어 대다수 사람의 삶은 꾸준히 나아졌고, 내가 노력만 한다면 잘 먹고 잘살 수 있다는 신념도 견고해졌다. 그 결과 국내총생산(GDP) 4만 불 시대가 눈앞에 와있다. 그런데 과연 경제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우리는 점점 더 풍요로워질까? 역사를 돌아보고, 환경문제와 사회적 제약들을 고려해보면 이제 더는 과거와 같은 경제 성장과 번영은 기대할 수 없다. 그래도 그동안 경제가 성장했기 때문에 사회체제가 유지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경제성장만이 답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우주선 주상복합 서울의 한 대형 주상복합에 사는 한 지인이 자신은 우주선 속에서 살고 있는 듯하다고 얘기한다. 쇼핑부터 카페, 식당을 다니며 건물 안에서 지내다 보면 일주일은 너끈히 땅에 ‘착륙’하지 않고 생활한다는 그의 거주환경이 일반적이지는 않을 듯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가 거리를 걷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고 해서 주상복합 우주선에서 사는 그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그 거리가 삶의 활력과 우연한 만남의 현장이 되지 않는 이상, 우리도 살균된 우주선 속에서 지내는 것과 다름없다. 거리나 외부공간이 마크 오제가 공항 같은 공간을 정의하기 위해 명명한 ‘비장소(non-place)’처럼 이동 통로로만 사용된다면, 역사적인 의미도 상징도 없이 소비되는 공간으로 축소되어 버린다. 이런 공간에는 소위 공공의 경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공공공간은 공항 같은 준공유공간이 가지고 있는 보호막과 청결함이 결여된 더 추한 공간으로 전락하고 만다. 우리는 더 이상 도시의 산책자로서 사는 것이 쉽지 않다.
몸의 지속 이제는 100세 시대. 몸의 질병과 고통을 이겨내고 오랫동안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것, 유구한 인류 문명을 통해 꾸준히 추구해 왔던 이 근원적 목표는 100세 시대를 외치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삶에 대한 동경은 아이러니하게도 대비 없이 오래 살게 되는 삶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그러다 보니 삶과 죽음을 선택의 권리로 보게 되는 생소한 철학적 문제에까지 이른다.
1 서울의 한강 이북에서 태어나, 이내 남으로 도하한 뒤, 줄곧 한 동네에서만 지냈던지라 지방 도시에 대한 나의 인식은 지극히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그나마 간혹 접점이 생긴다면 최근 네이버에서 오픈한 ‘우리 동네’ 서비스를 통해 지역 축제와 맛집을 슬쩍 보는 정도에 불과하다. 내가 사는 도시를 벗어난 경험은 네덜란드 유학 시절에 몇 곱절은 많았다. 당시 네덜란드 신도시에 관한 책을 내겠다며 여기저기 쏘다닌 탓에 그 수만 따지면 서른 개의 도시를 다녔고, 그렇다 보니 남의 나라 형편이 더 친숙한 지경이다. 지방 도시에 대해 생각이 오르락내리락할 때 시소의 반대편에는 이러한 개인적 체험이 비교 대상으로 놓여있다.
서브토피아의 예언가, 이안 네언 서브토피아(subtopia). 경기도에서 이십 년을 넘게 살아온 내가 이곳의 경계를 넘나들 때마다 읊조리는 말이다. 누군가는 서브토피아에 합류하기 위해 꿈꾸고, 누군가는 서브토피아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분투한다. 교외(suburb)와 유토피아(utopia)를 합성한 이 단어는 대도시 주변의 교외 확장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본격화된 인구 분산 정책으로, 영국에서는 50년 전부터 한 건축 평론가에 의해 일찍이 거론된 말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전쟁의 폭격으로부터 도시를 재건하고, 새로운 삶의 환경을 구축하는데 분주했다. 1950년대 중반 영국 전역으로 퍼져나가던 전원도시 건설로부터 무분별한 확장을 감지한 이는 건축 평론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이안 네언(Ian Nairn)이다. 그는 교외에서의 도시 재건이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사람들에게 알린 시대의 이단아였다. 무엇보다도 그가 염려한 것은 전쟁의 폐허 이후 고의로 방치된 교외 지역이다. 밀집된 도시와 텅 빈 시골, 그 사이를 조율하고자 시도된 새로운 전원도시에서 서브토피아의 세계를 본 것이다.
도시와 불평등 19세기 후반 『진보와 빈곤』이라는 책을 발간하여 전 세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 그는 당시 고속 성장으로 세계적 대도시의 반열에 올라선 뉴욕의 한가운데서 끔찍한 가난을 목격하고는 충격을 받는다. 물질적 진보가 일어나면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것이 마땅할 텐데, 어째서 더러운 길거리는 비루한 인생들로 가득하고 지저분한 어린아이들이 노는 소리로 시끄러운가? 19세기 후반 대도시 뉴욕에는 극단적으로 갈라진 두 세상이 공존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무도회, 파티, 극장 관람, 연애질 등으로 매일 매일을 공휴일처럼 보내는 철도왕의 자식들이 무료한 나머지 마차를 끌고 나와 브루클린 거리를 질주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늙은 여인이 아침부터 밤까지 우중충한 분위기의 길가에 앉아서 사과와 사탕을 팔고, 젊은 여성 노동자는 카운터 뒤나 베틀 앞에 서서 온종일 일을 하고, 소녀들은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재봉틀 앞에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1
건축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목소리와 움직임은 곳곳에서 이어져 왔다. ‘전선에서 알리다’라는 제목을 내걸었던 베네치아, 후쿠시마 대지진 후 대응에 나선 일본 건축계, 사회 기여에 무게를 두기 시작한 프리츠커 등 여러 맥락과 방향으로 퍼져 나왔다. 사회문제를 도시와 연결지어 이슈를 제기하는 것은 건축이 현실에 개입하는 하나의 경로이고, 오래된 건축의 과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것은 건축 전시의 탐구 대상으로서 당위성과 정당성을 얻는다.
건축신문 21호『넥스토피아』는 공동체가 와해된 한국 사회의 문제에 대응해온 건축 작업을 소개한 ‘넥스토피아’ 전시와 궤를 같이하는 글들을 엮었습니다. 도시 공동체 및 토지의 문제를 꼬집고, 기존의 건물을 사회 공동의 자산으로 전환하려는 의미 있는 움직임들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