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돌돌 얼마 전 트위터에서 떠내려오는 이미지들 사이로 성당 앞에 걸린 “모든 돌은 천국에 갑니다”라는 문장을 보았다. 모든 돌이 천국에 간다니 천국이 있기는 한 지 내가 천국에서 기다릴 수 있을지 돌에게도 영혼이 있는지 죽음도 있는지 모든 돌이 착한지 신은 이름 없는 돌을 무엇이라 부를지 천국에도 중력이 여전해서 돌이 언제나처럼 가장 아래에 자리 잡을 것인지 신중히 따져봐야 할 문제들이 산적하지만 여기는 건축신문이니 세부적인 논의는 잠시 미뤄 놓겠다. 나는 이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모든 돌,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것들에 나름의 생기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것들이 주고받는 생기 사이로 공명하고 싶다는 소망, 이 모두의 영원한 안녕을 바라는 불가능한 사랑의 마음, 그리고 세상에서 비인간적인 건 인간밖에 없다는 인간화 된 자연에의 각성 말이다.
일상건축사사무소는건축이 어렵지 않기를 바랍니다.건축의 어려운 담론을 떠나 개개인의 일상을 공유하고 그 일상을 건축에 담아내고자 합니다.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이라는 신조어가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지금, 많은 젊은 건축가가 웹사이트 제작보다 인스타그램 계정 운영을 우선한다. 다른 소셜미디어에 비해 특히 인스타그램은 이미지로 소통하며 정체성을 구축해 가는 곳으로, 좋은(예쁜) 공간과 장면, 특별한 순간을 끊임없이 소비하는 장이다. 인스타그램의 소통 방식과 특성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지와 상관없이, 공간을 소비하고 누리는 데에 관심이 많은 젊은 세대에게 자신의 작업을 어필하기 원하는 건축가라면 적극 활용해야 할 소셜미디어가 되었다.
사무소의 지속 가능성 사무소효자동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특별히 따로 생각해보진 않았다. 다만 지금(2022년 3월)부터 3년 9개월 후에는 은퇴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때면 만 56세다. 선배 세대 중 건실하게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곳은 서너 곳 정도다. 지금 시대는 그들의 시대보다 더 빠르게 변하고 있으니 얼마 전 내가 사무소 조직을 개편했던 시점으로부터 5년 후 정도에는 내게 타임 리미트가 한 번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규모와 매출이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선을 넘어선다면 그 고비를 넘기고 ‘회사’가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미련없이 탁탁 접어서 상자 속에 넣으려고 한다. 나는 조만간 우리 모두 그런 사회적인 요구를 마주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건축가의 일이란 보통 작업 결과인 건축물을 지칭한다. 건축가에게 “당신은 어떤 건축가입니까?”라는 질문을 건넬 때에는 그가 어떤 작업을 했는지, 건축가로서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건축계 이슈에 어떠한 입장인지에 먼저 관심을 두게 된다. 건축가의 일은 이러한 개별성을 지니는 것인 한편, 업무 자체만 떼어놓고 봤을 때는 절차에 의해 수행해야 하는 과제가 명확하고, 전문적인 분업이 필수이며, 실현 과정에서는 더 확장된 영역의 사람들과 협업하는 일이다.
팀 결성 전필준 이윤정 소장과 나는 영국 유학 중에 만났다. 내가 바틀렛 건축대학에서 유학하던 시기에 이윤정 소장도 RCA에서 순수미술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이 소장이 초기에 도시 풍경과 관련된 작업을 많이 했다. 예를 들면 공업 생산품을 이루는 내부 형태로부터 도시 속의 건축을 떠올리거나, 진열대 위에 상품이 가지런히 배열된 모습이 하나의 시티스케이프와 유사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주제로 삼아 작업하고 있었고, 서로 의견을 많이 주고받았다.
실무 경험: 기획부터 조직 운영까지 이주한 석사 과정을 마치고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에 입사해 현상설계 전담부서에만 3년 반 정도 있었다. 한 달에 마감을 서너 개 할 때도 있어서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디자인이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다 보니 ‘정예부대’라는 자부심이 있었고, 한 프로젝트의 시작점이자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미 누군가가 모든 규정을 만들어 놨고, 난 정해진 틀안에서 주어진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내는 손일 뿐인가?’ 하는 고민이 시작됐다. ‘기획’에 대한 갈증이었던 것 같다. 현상설계가 기획 영역에 가장 가까이에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대지는 누군가가 정해 놨고, 왜 거기에 해야 하는지 모른 채로 설계하고, 프로그램과 설계 방향도 다 정해져 있고, 나는 그 틀안에서 끼워 맞추기 식으로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대형설계사무소라서 더 그런 느낌이 심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형태나 이미지에 치중할 때가 많았다. ‘그렇다면 공공 프로젝트든 민간 프로젝트든 기획 단계의 일은 도대체 언제 누가 어디서 하는 걸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기획이 건축의 시작이라고 배웠던 것 같은데…’하는 갈급이 점점 심해졌다. 3~4년 차쯤 되었을 때니 그런 생각을 할 시기가 오기도 했었다.
일의 양보다는 종류가 많아졌다. 공공건축의 프로젝트가 늘고 개인 건축주들이 소규모 개발의 주체가 되었다. 건축가의 업역은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주어진 과제를 잘 푸는 건축가보다 스스로 과제를 만들고 자기 일을 찾아가는 건축가가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초대 건축가들과의 인터뷰 가운데 ‘체감하는 시장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한 건축가 여섯 팀의 이야기를 한데 모았다.
초대 건축가들과의 인터뷰 가운데 ‘건축 교육’에 대해 이야기 한 세 팀의 말을 한데 모았다. 이들은 실무 교육이 갖는 한계와 설계가 아닌 다른 방식의 건축이 가능함을 알려줘야 한다고 진단한다. 건축가에게 다양한 역할이 요구되는 시대에, 여러 경험과 고민을 할 수 있는 건축 교육이 되길 바라는 건축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공사 현장의 포크레인을 좋아했다. 길을 걷다가도 공사 현장이 나타나면 발걸음을 멈추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포크레인의 모습을 몇 시간이고 서서 구경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내가 나고 자란 인천의 동네에서는 목재공장들도 쉽게 볼 수 있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공장 앞에 쌓인 자투리 나무 조각들을 주워와 이것저것 만들곤 했다. 건축가가 되지 않았다면 목수가 되었을 것이다.
인식(awareness) 건축의 인생은 어느 한때의 문제보다 크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업을 지속하면서 ‘무엇을’ 고민할지보다 ‘어떻게’ 고민할지가 중요해지고, 고민도 조금 선명해진다. 일상은 느리고, 일반적으로 잘 인식되지 않는다. 인간은 기억(과거)과 상상 혹은 기대(미래)로 현재를 산다. 지금, 이곳을 인식할 수 있는 공간적 장치가 필요하다.
영어를 처음 접했던 중학교 때 어느 컨트리음악 가사에 나오던 ‘dreamer’를 사전에서 찾아봤었다. ‘몽상가’, 생소한 뜻풀이에 갸우뚱거리며 부모님께 물어보니, 근면 성실한 시대를 사셨던 아버지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놀고먹으며 헛된 꿈만 꾸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참고로, 아버지는 은행원이었고, 그때 그 노래는 케니 로저스의 「Don’t fall in love with a dreamer」였다. 그래서였나, 그 단어는 노래 가사처럼 여자의 맘을 찢고 떠나가는 나쁜 남자와 같은 잔상으로 아직도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런데 내가 하는 일의 모양을 되돌아보니, 이 먼지 낀 박제와 같은 단어를 언급하지 않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건축가의 일이란 게 제 의지로 시작되기보다는 주어지는 일이 대부분이고, 또 의지와 상관없이 엉뚱한 곳으로 방향을 틀거나 강제 종료 당하기도 한다. 게다가 용감히 첫발을 내딛는 이들에게는 그 시작의 기회마저 야박하다. 그러다 보니 실천하는 행동가이기보다는 혼자 즐거움을 만끽하는 소심한 몽상가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나보다.
“그들은 건축이 아니라 미술관이나 갤러리 같은 예술 세계의 전시나 공간 구성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 신세대 건축가들을 저 혼자 ‘파빌리온 계열’이라고 부릅니다.”1
건축사사무소 몰드프로젝트1는 보수적이고 경직된 기존 설계사무소의 운영방식과 다르게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실험 중이다. 우리는 외피를 통한 추상적인 표현보다는 장소에서 유래되고 오래도록 감응을 주는 건축물을 추구한다. 도시의 역사, 문화, 예술에 관심을 갖고 고민함으로써 건축적 해법과 장치를 찾으려 한다. 우리는 대지에 조심스럽게 개입하여 겸손한 자세로 일상적인 건축을 추구하며, 섬세한 과정을 통해 건축물의 특성과 분위기를 만드는 것에 큰 관심이 있다.
AEA(아에아건축)는 프랑스어 Atelier Espa:ce Architectes (아틀리에 에스빠스 아키텍트)의 머리글자 조합이다. ‘Espace’는 공간 또는 장소라는 뜻이며 이것을 탐구하는 건축가 그룹이라는 뜻으로 지었다. 우리 두 사람은 배병길도시건축연구소에서 함께 실무 경험을 쌓았고, 파리 라빌레트 건축학교에서 석사 졸업 후 파리에서 실무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첫 프로젝트였던 경남 사천시 상가주택 H1115-7을 계기로 귀국, 2016년 경남 진주라는 지방도시에 정식으로 사무소를 열었다.
코어건축사사무소는 유종수, 김빈 등 젊은 건축가가 주축이 되어 서울에 설립되었다. 우리는 개인의 개성이 존중되는 다양한 건축가들이 모여 지식을 공유하며 건축을 고민하는 집단을 목표로 한다. 마스터 아키텍트에 의해 운영되는 기존 사무소가 갖는 한계에서 탈피하고, 현대 사회의 다양성을 존중하여 집단지성의 힘을 토대로 더 나은 환경을 만들고, 지속 가능한 건축 집단이 되기 위한 아틀리에의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함께 걷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는 대학 시절부터 걷는 것을 좋아했다. 아마도 도시와 관련된 역사와 인문학 수업으로 서울 동네 답사를 다닐 때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부터 볕이 좋은 날, 틈이 생기는 날이면 함께 산책하며 도시 구석구석을 관찰하곤 했다. 가려지고 덧대어진 것을 발견하고, 무심코 지나치던 많은 것을 다시 보는 것을 좋아한다. 재밌고 신선한 것들은 사진으로 기록해두는데, 나중에 들춰보며 도무지 무엇을 남기고 싶었는지 모르는 것들과 그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에 즐거워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가 경험하는 풍경들 속에 우리 흔적을 어떤 식으로든 남겨보자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