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면서 학생들에게 명시적으로나 암시적으로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모든 형태, 모든 아이디어가 반드시 건축적으로 의미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신기한 것은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학생들 중 몇몇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게, 자신에게 익숙한 어떤 대상(가령 꽃과 같은)을 그대로 건축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다. 시간을 초월해 이러한 모습이 반복되는 것은 아마도 인간 본성에 내재한 일반 조형의 의지와 건축적 표현 사이의 구분을 배우지 못 했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건축을 배우는 학생에게 그 차이를 인식시키고 건축의 기초와 방향을 짚어주는 것이 선생의 역할이다. 그렇다면 일반 조형과 건축을 가르는 차이는 무엇일까. 이 쉽지만 어려운 질문은 건축가로서 나 자신에게도 항상 던지는 질문이다. 무엇이 건축을 건축으로 만드는가. 무엇이 건축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인가.
구보건축 2.0 구보건축은 2015년 12월 주택 설계를 의뢰받으면서 업무를 시작했다. 2003년에 우리 두 사람이 각각 이로재와 서울건축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13년 만에 자신의 아틀리에를 열었다. 어떤 조직의 회사를 만들어갈 것인지, 어떤 비전으로 운영할 것인지, 어떤 디자인의 집을 지어나갈 것인지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고민했지만, 뚜렷한 답을 찾지 못한 채 많은 질문을 안고 출발했다.
살아 있는 것 건축은 이런저런 이유로 자유롭지 못하다. 건축주의 목적, 땅의 여건, 각종 법규와 제약, 무엇보다 비용과 자본의 논리, 건축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항상 이러한 조건들에 종속적이어서 각각의 상황에 적당히 대처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도시를 빼곡히 메운 건물들이 용적률 게임을 하며 그 틈 안에서 저마다의 해법을 찾아내 비집고 서 있는 모습이 우리 시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같다. 그러나 우리는 건축이 비바람을 막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거기서 더 나아갈 때 더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안다.
한국 건축에서 ‘지역성’ 논의는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시대에 따라 의미가 다르게 사용되기도 했고, 입장에 따라 그 해석도 달랐다. 이 시점에서 다시 지역성을 이야기한다면, 개인이 중심이 된 열린 개념일 것이다. 10월 8일 이화여대에서 김광수, 황두진, 배형민, 김일현, 임근준 씨가 모여 “건축의 지역성을 다시 생각한다”란 주제로 열띠고 사방으로 튄 토론회를 가졌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