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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소멸 vs 건축: 지방정부 건축 역량 강화부터

박인석

지역 불균형과 지방 소멸

토지 면적으로 국토의 11.8%일 뿐인 수도권에 인구 50.8%(2024년)가 거주한다. 100대 기업 본사의 80%가 수도권에 있고, 신용카드 사용액의 75.6%가 수도권에서 사용된다. 수도권 GRDP(지역내 총생산)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2.8%에 이른다. 수도권 편중, 즉 지역 불균형의 현실이다.

경제성장 시대에 지역 불균형 문제는 성장의 배분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수도권과 지방도시의 경제력 격차가 커지는 상황을 가리켰다. 경제성장 배분이 불균형하긴 하지만 지방도시에도 배분되는 몫이 있었다. 국토가 크지 않은 조건에서 수도권 집중이 국가 경쟁력 확보에 유리하다는 주장이 나오기조차 했다. 그러나 경제성장이 둔화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2025년 5월 한국개발원(KDI)은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2040년대에는 0%로 낮아질 것이라는 예측 보고서를 공표했다.1 경제성장률 0%, 즉 제로성장은 실질 GDP가 늘어나지 않음을 뜻한다. 생산하는 가치 총량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제로성장 시대에 지역 불균형 발전이 계속된다면 어떻게 될까? 즉, 생산하는 가치 총량은 늘어나지 않는데 수도권 편중, 즉 수도권에서 생산하는 가치량과 지방에서 생산하는 가치량 차이는 더욱 커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아래 그래프는 1985~2024 지역총생산(GRDP) 추이를 보인 것이다. 2015년까지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거의 같은 총생산량을 유지하다가 2015년부터 수도권 GRDP 비중이 커지기 시작, 2024년에는 수도권∶비수도권 비율이 53.6%∶46.4%로 차이가 벌어졌다. 2024년 이후는 예측 그래프로서, KDI가 추정하여 발표한 2025~2050년까지의 연도별 잠재성장률을 적용하고, 수도권-비수도권 격차가 지금과 같은 추세로 확대한다고 가정한 것이다. 그래프에 따르면 한국의 GDP는 2045년경부터 정체 내지 감소한다. 수도권의 GRDP는 계속 증가하고, 비수도권의 GRDP는 일찌감치 2035년쯤부터 감소하기 시작한다. 비수도권에 총생산 가치량이 일부나마 배분되기는커녕 이미 보유하고 있던 경제력과 자산조차 줄어드는 것이다. 바야흐로 ‘지방 소멸’ 시나리오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그래프] 수도권-비수도권 GRDP 추이

지방의 ‘인구감소’ 현상은 이미 30여 년 전인 1990년경부터 지방 소멸 시나리오의 전조를 알려왔다. 1990~2010년 기간에 인구 5만 명 이상인 전국 84개 도시 중 31개 도시에서 인구가 감소했는데 이 중 29개가 비수도권 도시다.2 급기야 정부는 2020년 12월 국토균형발전특별법에 ‘인구감소지역’(인구감소로 지역소멸이 우려되는 지역)을 지정하는 기준 및 지원 규정을 신설한다.3 이에 근거하여 2021년 10월 전국 시군구 204개4를 대상으로 인구감소지역 89개와 관심지역 18개를 지정했다. 이어서 2022년 6월에는 ‘인구감소지역지원특별법’을 제정하고 인구감소지역에 대한 지원 대책을 세부화했다.

인구감소지역을 수도권-비수도권으로 나눠 살펴보자. 서울을 제외한 수도권 38개 시군구(인천 10개, 경기도 28개) 중 감소지역은 4개, 관심지역은 3개다. 이에 비해 비수도권은 166개 시군구 중 감소지역 85개, 관심지역 15개로 총 100개 시군구가 지정됐다. 비수도권의 60%가 축소도시 상태라는 얘기다.

한국 총인구는 2020년 51,829,136명을 정점으로 증가를 멈췄다. 통계데이터처 추계에 따르면 2025년부터 감소 추세가 본격화해 40년 후인 2065년에는 총인구가 4천만 명 이하(39,685,210명)로 줄어든다. 2020년 대비 23.4%나 감소한 수치다. 총인구가 이 정도로 줄어든다면 인구감소지역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 뻔한 일이다.

지방소멸-저출산-인구감소는 모두 같은 문제

인구감소지역 발표와는 별개로, 국가데이터연구원에서 매년 발간하는 <한국의 사회동향>에서는 지역별로 소멸위험지수(20~39세 여성인구를 65세 이상 인구로 나눈 값)를 산출하고 있다. 소멸위험지수 0.5 이하 지역을 위험지역, 1.0 이하 지역을 주의지역으로 분류하고 있다. 2022년에는 전국 229개 시군구(서울 자치구 포함 226개 시군구 + 세종시 + 제주도 2개 행정시) 중 위험지역 102개, 주의지역 82개였는데, 불과 2년 후인 2024년에는 위험지역 126개, 주의지역 88개로 늘어났다. 소멸위험지수가 1.0을 넘는 정상지역은 15개에 불과하다.5 서울 및 수도권 지역조차 대부분 주의지역이나 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음이 특기할 만하다.

표에서 보듯이 2015~2024년 기간 전국 인구는 1.44% 증가했는데 수도권 인구는 4.09% 증가했다. 얼핏 수도권 인구집중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64세 이하 인구만 따로 추려 보면 전국적으로 6.23% 감소했고 수도권도 3.25% 감소했다. 서울은 13.12%나 감소했다. 총인구에서는 여전히 수도권 집중이 계속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65세 이상 인구가 증가할 뿐 64세 이하는 수도권에서도 감소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특히 서울은 전체 인구가 감소하는 가운데 64세 이하 인구가 더욱 빠르게 감소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표] 총인구 및 64세 이하 인구 추이

저성장-인구감소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지역 불균형 문제 양상도 질적으로 달라졌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불균형-격차가 더욱 심해진 것은 물론, 여기에 더해 전국 도시들이 ‘소멸위험 도시’가 된 것이다. 수도권 도시들은 ‘소멸위험 도시’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이들 역시 64세 이하 인구가 감소하는 문제가 심해지기는 마찬가지다. 이제 지역 불균형 문제는 성장 불균형 문제를 넘어 축소도시, 혹은 지방 소멸 문제에 이른 것이다.

이 모든 정황은 지역 불균형 문제와 지방 소멸 문제, 그리고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동일한 원인 구조를 갖는 문제임을 말해준다. 지방 청장년층 인구가 수도권으로 이동함에 따라 지방도시 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고령화한다. 이는 지역 내 소비 감소와 산업 쇠퇴를 유발해 지역 경제 활력이 낮아지고 청장년층 이동이 더욱 심해지는 악순환을 낳는다. 한편, 수도권에 유입된 청장년층은 치열한 경쟁과 팍팍한 삶의 조건 속에서 혼인율・출산율이 극도로 낮아진다. 그 결과 지방도시에서의 인구 유입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역시 청장년층 절대인구가 줄어든다.

지방도시의 높은 출산율이 가리키는 것들

결국 모든 문제의 시작은 지방도시의 인구 유출, 특히 청장년층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지방도시 청장년들은 왜 빠져나갈까? 좋은 일자리 부족으로 인한 고용 불안, 대도시와의 교육・문화・의료 인프라 격차, 첨단 상업・오락 활동에 대한 접근성 차이 등이 주된 이유로 지적되곤 한다.

이쯤 해서 주목해야 할 지점이 있다. 전체적으로 출산율이 낮아지는 가운데 지방도시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사실이다. 2023년 합계출산율이 전국 0.721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한 가운데 수도권, 광역시는 모두 0.5~0.8명 수준이었지만 시・군지역은 0.7~1.6명을 기록했다. 지방도시는 수도권에 비해 산업・교육・고용 모든 면에서 열세다. 지방의 청장년층이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계속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지방도시의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지방도시에서의 삶의 조건이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더 많은 소득을 향한 경쟁도, 안정적 주거공간에 필요한 비용 부담도 수도권이나 대도시(광역시)보다 덜 하다. 땅값이 싸다는 것이 여기에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소득이 다소 적더라도 물가가 낮고 주택 가격이 낮으므로 실제 소비생활 여력은 오히려 커지는 것이다.

흔히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주요 요인으로 꼽는 것이 산업과 일자리다.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부차적인 요인일 확률이 높다. 서울의 낮은 출산율을 보라. 일자리로만 본다면 서울의 출산율이 가장 높아야 할 텐데 완전 거꾸로다. 전국에서 서울의 출산율이 가장 낮다. 출산율을 높이는 데에는 일자리보다 안정적 삶의 조건이 더 중요함을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당장 좋은 일자리 때문에 청년들이 지방을 떠나 서울-수도권으로 향하는 현상 역시 중요한 문제임은 분명하다, 결국 이 모든 상황은 ‘좋은 일자리 늘리기’와 ‘안정적 생활여건 만들기’가 지방도시 인구 보전의 동시적 과제임을 말하고 있다,

지역경제 파수꾼, 건축산업

‘좋은 일자리 늘리기’부터 보자. 지방도시에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는 매우 어려운 과제다. 지방 불균형 발전과 수도권 집중이라는 국가적 난제가 바로 지방의 ‘좋은 일자리 부족’에서 비롯되는 일이니 말이다. 이 어려운 과제의 해법 중 하나가 ‘지역 기반 건축산업 육성’이다. 건축산업이 임금 수준에서 ‘좋은 일자리’ 가능성이 충분한 산업임은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 있다. (‘소득 양극화 vs 건축: 좋은 일자리와 건축산업’ 참조)

또한 건축산업은 현장 생산 산업이다. 생산과 고용이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그에 따르는 부가가치 역시 그 지역 그 장소에 축적되는 정도가 크다. 건축산업의 이러한 특성은 건설업체의 지역 소재 비중이 높다는 데에서도 확인된다. 2024년 기준 전국 건설업체(종합건설업・전문건설업 포함) 86,323개 중 비수도권에 소재한 업체가 62.3%인 53,815개다. 제조업의 52.8%(73,570개 사업체 중 비수도권 소재 38,865개)보다 업체 수도 많고 비중도 높다.6

물론 그렇다고 건설업이 수도권 집중 현상에서 예외인 것은 아니다. 대규모 건설업체들과 대규모 건설공사는 수도권에 집중해 있다. 건축공사 기성액으로 보면 비수도권 비중이 45.5%(2024년)로 절반이 안 된다.7 지방도시 건설업체 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지만 대부분 중소규모 업체라는 얘기다.

중소규모 업체가 많다는 것은 건설업 전체가 갖는 특성이기도 하다. 전국 건설업체의 86%가 종사자 50인 미만 중소규모 업체다. 앞글(소득 양극화 vs 건축)에서 살펴봤듯이 건설업 총매출액 중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60.8%로 제조업(32.1%)의 두 배에 이른다. 또한 건축산업은 80% 이상이 민간 건축공사가 차지하는 산업이다. (공공부문 발주량이 70%에 이르는 토목산업과 가장 다른 점이다.) 장소-현장 생산 산업이고, 중소규모 업체가 많고, 일거리 대부분이 민간 부문에서 조달되는 산업! 이러한 건축산업의 특성은 곧장 지역경제의 주역이자 파수꾼이라는 특성으로 이어진다.

골목 동네를 채우고 있는 다세대・다가구주택, 단독주택, 근생건물 들을 건축하는 시공사는 대부분 중소규모 업체다. 골목 건축 현장 노동 인력 역시 대부분 지역에서 조달된다. 그들의 식사비와 간식비, 저녁 술값이 소비되는 곳 역시 골목 동네다. 물론 골목 동네에서 벌어지는 건축공사를 반드시 그 동네에 있는 건축업체가 맡는 것은 아니다. 중소규모 업체 중에도 전국을 영업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러나 건설업은 인적 네트워크와 현장 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특히 중소규모 업체는, 주력으로 삼는 지역 범위가 있기 마련이다. 건설산업의 70%를 차지하는 건축산업, 그 건축산업의 60%를 차지하는 중소규모 건축업체들이 오늘도 골목골목에서 왕성한 생산-소비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의 경제활동이 튼실할수록 골목 경제 역시 건강해진다.

지방도시 경제와 ‘좋은 건축’ 생산

‘좋은 일자리’와 더불어 지방도시 인구 보전에 중요한 또 하나 과제는 ‘안정적 생활 여건 만들기’다. ‘안정적 생활 여건’의 요체는 무엇보다도 낮은 주거비와 ‘좋은 생활환경’이다. 다행스럽게도 지방도시의 상대적으로 낮은 땅값과 낮은 주택 가격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지방도시의 낮은 땅값은 지역 불균형 문제가 초래한 것이긴 하지만, 동시에 지방 소멸 문제 해결을 위한 귀중한 자산임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지방도시에서 정책 노력이 집중될 지점은 ‘좋은 생활환경’ 만들기다. 생활환경에는 자연환경은 물론 교통시설・교육・복지・문화・체육・여가 시설, 그리고 상업시설까지 모든 물리적 환경이 포함된다. 그중 상당 부분이 건축생산의 대상이다. 좋은 생활환경의 열쇠는 지역 건축생산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좋은 생활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과 노력이 필요할까?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이 좋은 생활환경 만들기에는 양적 과제와 질적 과제가 얽혀 있다. 기초생활인프라 확충이라는 양적 과제도 중요하지만 질적 과제, 즉 질 좋은 생활공간 만들기 역시 중요하다. 자연환경에 어울리는 건축물과 공간환경, 사람들의 접촉-소통을 가능케 하는 공공공간, 지역의 역사문화 자산과 연계한 생활공간 등등.

앞서 말했듯이 건설업 역시 수도권 편중에서 예외가 아니다. 건축생산이나 건축산업활동 주체(시공업체, 설계업체)가 수도권에 편중돼 있다. 건설업만이 아니라 모든 산업이 겪고 있는 문제다. 산업의 수도권 편중에 대한 해법은 무엇일까? 수도권 일극 체제에 대응하는 지역연합 거점(예컨대 부울경 메가시티) 육성? 지역경제 규모 보전과 체력 강화? 모두 그럴싸한 얘기다. 그러나 이런 얘기들은 정책 목표이지 전략이라고는 할 수 없다. 정작 중요한 것은 전략이고 방법이다. 거점을 육성하고, 지역경제 규모를 보전하고, 경제 체력을 강화하려면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규모와 양을 키우면 그 안에서 질 높은 인력과 경제활동, 즉 좋은 일자리가 는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규모와 양은 어떻게 해야 커질까? 지역연합만으로 양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부울경 메가시티가 되어도 부울경 인구-경제활동량은 그대로다.) 지역연합으로 새로 가능해지는 경제활동 기회를 발굴하거나 기존 활동의 질적 혁신을 이루어 내는 일이 필수적이다.

‘지역 균형’을 위해 지방도시에 증가시키려는 인구-경제활동량은 결국 수도권으로부터 빼앗아 와야 한다. 수도권 일극으로 집중되는 인력-경제활동을 비수도권 지역에 잡아두거나 거꾸로 수도권으로부터 빼내어 지역으로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수도권과의 경쟁이 불가피하다. 질적 혁신 없이 이것이 가능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질적 혁신이란 무엇인가? 혁신기업 유치? 지역 특화산업 육성? 질적 혁신은 그것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혁신기업이건 지역 특화산업이건 우수한 인력과 기업을 수도권에 빼앗기지 않으려면, 수도권과 경쟁해서 유치해 오려면, 교육・문화 및 생활공간 환경의 질적 수준 혁신이 필수적이다.

지방정부의 건축행정 역량 강화가 우선과제다

교육・문화・생활공간 환경의 질적 수준? 그 핵심에 건축이 있다. 비수도권 지역 건축생산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일, 즉 질적 혁신이야말로 지역 균형 발전에 빠트릴 수 없는 필수적 과제다. 그런데, 우수한 건축생산 활동 주체(건설회사, 설계사무소)들은 수도권에 편중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도시 건축의 질적 혁신은 어떻게 가능할까?

답은 지방정부의 건축생산 관리 역량, 즉 건축행정 역량 강화다. 좋은 건축은 [좋은 기획 – 좋은 설계 – 좋은 시공 – 좋은 사용관리]로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는 결국 [좋은 기획자 – 좋은 설계자 – 좋은 시공자 – 좋은 사용관리자], 즉 ‘좋은 활동 주체들’에 의해 가능해진다. 공공건축사업에서 이 모든 활동 주체들을 선정하고 그 활동 과정을 관리하는 주체가 지방정부다. 기획업무를 위해 실력 있는 건축전문가에게 기획업무를 위탁하는 것도 지방정부고 좋은 설계자를 선정할 수 있도록 설계공모를 운영하는 것도 지방정부다. 좋은 시공자 선정을 위한 공사발주도, 좋은 유지관리자 선정도 모두 지방정부 업무다.

민간 건축물은 어떨까? 민간 건축물의 질적 수준은 건축주가 좌우한다고 하지만, 실은 이 역시 많은 부분이 지방정부에 달려 있다. 건축물 설계를 검토하는 건축허가 절차, 건축공사의 주체와 조건을 살피는 착공신고 접수 및 신고필증 발급, 건축공사의 충실성과 적정성을 따지는 중간검사 및 준공검사까지. 건축물의 질적 수준을 좌우하는 중요한 생산단계에 대한 관리가 모두 지방정부의 업무다. 건축허가 과정에서 검토-협의를 통해 얼마든지 나쁜 설계를 방지하고 좋은 설계를 이끌어낼 수 있다. 착공신고 과정과 중간검사 및 준공검사 권한을 통해 건축공사의 부실을 방지하고 질적 수준을 높일 수 있다. (1995년 폐지된 중간검사 복원을 전제로 한다.)

결국 공공건축물이건 민간 건축물이건 지방정부가 맘먹는다면 좋은 건축을 만드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지역 균형 발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교육・문화・생활공간 환경 질적 혁신의 우선적 과제인 건축의 질적 혁신이, 지방정부가 맘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얘기다.

맘만 먹으면 가능하다고? 당장 “그 훌륭한 일들을 누가 한다는 말이냐”는 질문이 쏟아질 것이다. 건축물의 기획부터 설계・공사 발주, 유지관리업무에 이르기까지 전문적 지식은 물론 실행 능력과 의지가 필요한 이 만만치 않은 일을 누가 한다는 말인가?

2025년 현재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시・군・구)가 226개, 광역자치단체(특별시・특별자치시・광역시・도)가 17개다. 이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이 일을 해낸다는 말인가? 건축직 공무원이라고는 건축민원 처리 업무에도 모자랄 판인 몇 명 안 되는 인력뿐인데? 지방정부에서 공공건축 업무를 누가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는가? 문화시설로 분류되는 공공건축물은 문화관광과, 복지시설은 복지과, 행정자치센터 건축은 자치행정과가 담당하는 것이 지방정부 건축행정 현장이다. 건축행정 업무라고는 해본 일 없고, 그나마 일이 년이 멀다 하고 순환보직으로 교체되는 공무원들이 공공건축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들에게 그 훌륭한 일을 해내란 말인가? 현실을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지방정부 건축행정 최전선 1 – 총괄건축가・공공건축가・공공건축지원센터・공공건축심의위원회

이런 현실에서 지방정부의 건축행정 역량을 높이기 위해 마련한 것이 총괄건축가・공공건축가 제도다. 2007년 제정된 건축기본법 제23조는 “중앙행정기관의 장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건축 관련 민원, 설계공모 업무나 도시개발 사업 등을 시행하는 경우 민간전문가를 위촉하여 해당 업무의 일부를 진행・조정하게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시행령 제21조에 민간전문가의 자격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근거해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건축기본조례를 제정하여 총괄건축가・공공건축가 제도 운영에 관한 세부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지방정부든 중앙정부든 부서별 분업 행정 및 순환보직 체제에서 건축행정 업무의 전문성을 갖는 공무원을 키우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공무원 증원이 하늘의 별 따기인 현실에서 전문인력을 별도로 채용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총괄건축가・공공건축가 제도는 지방정부의 부서별 건축행정 업무를 총괄 조정하고 전문성을 지원・강화할 수 있는 효과적 수단이다.

제도 도입 초기인 2009년 건축도시공간연구소(현 건축공간연구원) 지원 아래 경북 영주시가 최초로 공공건축가 및 총괄건축가 제도를 시작했다. 2012년에는 서울시가 공공건축가 77명을 위촉하고 이어서 2014년에 총괄건축가를 위촉했다. 이후 이를 벤치마킹한 지자체가 이어지면서 2025년 기준으로 14개 광역지자체, 44개 기초 지자체에서 총괄건축가가 활동중이다. 또한 이와 함께 1,200여 명의 공공건축가가 활동하고 있다.

총괄건축가・공공건축가 제도에 더해 지방정부 건축행정 역량 지원・강화를 위한 다른 제도도 도입되어 운영 중이다. 대표적인 것이 공공건축지원센터와 공공건축심의위원회다.

2013년 제정된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에 의거, 2014년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 국가공공건축지원센터가 설치됐다. 지방정부 등 공공 발주청이 시행하는 공공건축 사업계획에 대한 사전 검토・자문이 주된 업무인데, 설립 후 얼마 안 돼 업무량 폭주로 지역별로 업무를 분담할 지역공공건축지원센터 설립이 추진됐다. 2020년 4월 서울시 지역공공건축지원센터 설치를 시작으로 서울시 교육청, 충청남도, 부산시, 경기도 교육청 등이 뒤를 이으면서 현재 11개 지역공공건축지원센터가 운영중이다.

한편, 2018년에는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을 개정하여 공공건축 사업에서 기획업무를 의무화하고 업무 항목을 명시했다. 이와 함께 기획업무에 대한 심의・자문을 위해 모든 공공 발주청에 공공건축심의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했다. 설계비 5천만 원 이상인 공공 건축사업은 기획업무의 적정성에 대해 공공건축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치도록 규정한 것이다.

총괄건축가, 공공건축가, 공공건축지원센터, 공공건축심의위원회. 이 모두가 지방정부의 건축행정 역량을 강화하고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조치들이다. 모두 불과 수년 전에 시작돼 아직 충분히 정착되지 못한 상태지만, 이들 제도를 활용하면 지방정부 건축행정 역량을 늘리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지방정부가 맘만 먹으면” 좋은 건축을 만드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얘기다. 지역 균형 발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교육・문화・생활공간 환경의 질적 혁신이 지방정부가 맘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도록 제도적 여건이 갖추어진 것이다.

지방정부 외에도 주요한 공공건축 발주청이 여럿 있다. 학교 건축은 시도 교육청과 시군구 교육지원청이 지방정부 역할과 업무를 수행한다. 한국토지주택공사와 각 지방정부 산하 주택도시공사, 농어촌공사 들도 각각 관장하는 건축물에 대해 지방정부와 동일한 역할과 업무를 수행한다. 이들 기관 역시 지방정부와 마찬가지다. 총괄건축가・공공건축가・공공건축지원센터・공공건축심의위원회 등 이미 가동 중인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즉 이들 공공기관이 ‘맘만 먹는다면’ 좋은 학교 건축, 좋은 주택 건축, 좋은 농어촌 건축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를 통해 지역 균형 발전을 도모하는 일이 한결 수월해질 수 있을 것이다.

지방정부 건축행정 최전선 2 – 지역건축안전센터

이제껏 한 얘기는 모두 공공건축물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민간 건축물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물량이 공공건축물의 7~8배에 이르고, 건축 규모나 용도도 각양각색 다채롭다. 건축주마다 이해관계가 다르고 설계자나 시공자의 수준도 천차만별이다. 질적 수준을 일률적으로 제어할 수도 없고, 설계자나 시공자 선정에 공공이 개입해서 좌지우지할 수도 없다. 지방정부의 관리는 법적 기준 준수, 즉 ‘최소한의 품질 수준 확보’일 수밖에 없다. 그 이상의 질적 수준은 건축주 자율에 맡겨야 할 문제다. 공공건축물 관리보다 몇 배 어려운 이 지난한 일의 최전선에 지역건축안전센터가 있다.

지역건축안전센터는 계속되는 건설 사고 속에 공공의 검사・확인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늘어나면서, 지자체에 설치하여 건축사・기술사 등 전문인력을 배치하도록 한 조직이다. 2017년 건축법에 자율 설치 근거 법률을 신설하고, 이후 2021년 6월부터는 인구 50만 이상 지자체에 의무적으로 설치토록 했다(2020.12.22. 건축법 개정), 설치가 의무화된 지 얼마 안 되긴 했지만, 설치 및 운영 상황은 매우 부진하다. 의무 설치 대상 140 곳 중 절반 정도만 설치된 상태이며, 설치된 곳도 인력 부족 속에 건축허가 부서에 대한 지원업무 중심으로 운영되는 곳이 태반이다.

부진의 표면적 이유는 ‘전문인력 부족’이다. 건축법에 따라 필수 배치해야 하는 전문인력의 채용 직급은 지방정부가 정하는데, 대부분 일반임기제 공무원 6급 또는 시간선택제임기제 나·다급으로 채용하고 있다. 이 직급과 대우가 안 좋아서 건축사・기술사 등의 지원이 적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담당 기능과 업무가 불분명하다는 것, 그리고 이 때문에 지자체의 적극적 운영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담당해야 할 업무가 불확실하고 이를 제대로 운영할 동기나 의지가 없는데 좋은 직급과 대우를 보장하며 인력을 구할 이유가 없다.

법률에서는 지역건축안전센터의 업무를 ‘착공신고, 사용승인, 현장조사・검사・확인 등 기술적인 사항에 대한 보고・확인・검토・심사 및 점검’, ‘건축허가 또는 신고에 관한 업무’, ‘공사감리에 대한 관리・감독’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 업무를 지역건축안전센터에게 분장하여 수행토록 하고 있는 지자체는 없다. 이들 업무는 대부분 건축과(혹은 도시건축과) 등 기존 부서가 담당하고 있다. 시청・구청 등 지방정부 홈페이지 기관 조직도나 부서별 담당업무표에 지역건축안전센터를 표기하고 있는 곳조차 거의 없는 지경이다.

지역건축안전센터 기능을 정상화하는 일은 지방정부 민간 건축물 관리체계 곳곳에 박힌 고질적인 문제와 불합리를 개혁-정상화하는 중차대한 과업에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이 과업은 건축허가 단계에서부터 준공검사 및 유지관리 업무까지 건축물 생산-관리 전체 주기에 걸쳐 있다.

건축허가 단계에서는 대지 현장조사 및 검사, 건축법규 적합성 검토가, 착공 단계에서는 안전관리계획 및 가설물 설치 계획 확인 등이 진행된다. 이러한 조사・검사・확인은 당연히 허가권자, 즉 지방정부가 해야 할 업무다. 그러나 이 업무는 수십 년 전부터 건축사에게 위탁, 대행토록 하고 있다. 건축사는 설계용역과 공사감리 용역을 수주하는 사업자다. 사업자에게 검사・확인을 맡기는 것은 이해 상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공정한 업무 진행에 대한 신뢰를 얻을 수 없다. 현장조사・검사・확인 업무를 건축사에게 대행토록 하는 법령(건축법 제27조)을 폐지하고, 모든 검사・확인 업무를 지방정부 공무원이 직접 수행하는 업무로 전환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는 당연히 지역건축안전센터가 유력하지 않겠는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아무말 대잔치’가 되기 십상인 건축심의제도 역시 전면 개편해야 한다. 건축허가 단계에서는 건축물 규모・용도・입지 적합성에 대해서만 심의하고, 그 외는 관련 법규 적합성을 공무원이 검토하는 절차만 운영하면 된다. 소위 미관・경관 등 설계의 질은. 지구단위계획 등으로 지정한 특수한 지역이 아니라면, 건축주와 설계 건축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구조설계 등 기술적 검토가 필요한 사안은 건축허가 후 착공 승인 단계에서 별도의 기술검토 및 심의를 거치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건축허가 절차가 완료되기까지는 건축 규모나 용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로 봐야 한다. 이 단계에서 기술적 사안까지 따지는 것은 불합리하다. 허가 소요 기간만 늘릴 뿐이다. 한편, 건축주가 현행 건축법규를 따르지 않고 다른 보완 조치로 갈음하려는 경우 이에 대한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심의 절차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 이 모든 심의 운영과 법규 적합성 검토 업무 역시 지역건축안전센터에서 담당토록 하면 된다.

시공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중간검사를 복원・강화하는 것이다. 과거 중간검사는 건축공사가 시공 기준대로 이루어지는지 확인하는 가장 중요한 절차였다. 그런데 1995년 이를 폐지하고 공사감리자에게 맡긴 채 지방정부는 감리보고서만 확인하는 절차로 바뀌었다. 하지만 공사감리자 역시 용역사업자로서 이해 상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당연히 이런 방식으로는 건축 현장의 안전이나 품질 확보를 기대하기 어렵다. 중간검사를 복원하여 모든 건축공사 주요 공정 단계에서 지방정부 공무원이 직접 시공 상태와 현장 상황을 검사・확인하는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건축사가 ‘특검(특별검사)’ 방식으로 지방정부 업무를 대행하고 있는 준공검사(사용승인검사) 역시 이해 상충에 해당한다. 당연히 지방정부가 직접 수행하는 업무로 전환해야 한다. 이 모든 업무는 법정 조직인 지역건축안전센터에서 수행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중간검사와 준공검사를 공공의 업무로 정상화한다면, 감리제도 역시 정상화될 것이다. 설계자와 시공자의 업무를 감시・확인하는 일은 지방정부(지역건축안전센터) 업무가 됐으니, 감리 업무는 이제 설계자・시공자와 기술적 협력을 통해 건축주의 편익을 높이고 원래 설계 의도를 충실히 구현해 내는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감시인지 협력인지 분명치 않은 ‘감리’ 대신에 협력자로서의 위상을 분명히 하는 건설사업관리(CM) 등으로 업무의 명칭 역시 바뀔 것이다.

또한 민간 용역인 감리를 ‘의무 발주로 강제하는’ 비합리에서도 벗어날 것이다. 이제 감리는(혹은 건설사업관리는) 건축주(발주자)가 지방정부의 각종 검사・확인 절차를 순조롭게 통과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발주하는 기술용역의 하나가 될 것이다. 비로소 우리 건축 현장에서도 건축주-설계자-시공자-CM이 효율적 시공과 품질 향상을 위해 서로 협력하는 업무체계가 이루어질 것이다. 건축물의 안전과 품질에 대한 검사를 공공(지역건축안전센터)이 수행토록 하는 정상화가 가져올 또 다른 소중한 정상화다.

지방 소멸 문제의 대책을 더듬던 글이 어느덧 감리제도 정상화를 논하는 데 이르렀다. 지방도시 건축의 안전과 품질을 확보하는 일은 곧 지방도시 생활공간환경의 질을 높이는 일이다. 그리고 이는 지역 불균형과 지방소멸이라는 위중한 문제에 맞서 지방도시의 인구를 보전하기 위한 유력한 대책이자 과제다. 지역건축안전센터 정상화는 이러한 막중한 과업의 최전선에 있는 중요한 정책 현안이다. 그리고 이 전선은 우리 사회 건축생산을 둘러싼 고질적 관행과 문제를 치유하는 혁신과 전환의 최전선이기도 하다.


박인석

현재 명지대학교 건축학부 명예교수. 도시와 건축 및 주택 정책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대안적인 정책을 제안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국가 건축정책위원회 5기 위원과 6기

지방 소멸 vs 건축: 지방정부 건축 역량 강화부터

분량14,012자 / 28분 / 도판 2개

발행일2026년 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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