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는 문화의 산물이다. 한 사회 안에서 논의와 합의를 거쳐 하나 하나 세워지는 것이 제도다. 십계명처럼 하늘에서 누군가의 손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제도가 세워지기까지 사회적 합의 과정은 본래 길고 복잡하기 마련이고, 그것이 마땅하다. 많은 난관을 뚫고 살아남은 공동의 합의가 비로소 하나의 제도가 된다. 어떤 것은 관습이 쌓여 느리게 만들어지고, 또 어떤 것은 법을 통해 빠르게 만들어진다. 길든 짧든 주어진 시간 동안 제도는 그곳의 문화를 흡수하고 저장한다. 우리는 스스로, 함께 정한 제도를 바탕으로 공동의 삶을 꾸려나간다. 그렇게 제도는 다시 문화를 토대가 되고, 문화는 다시 제도를 낳는다.
김명규 마실와이드 대표정평진 스코어러 공동대표엄운진 건축공간연구원 부 연구위원김상호 정림건축문화재단 실장
스코어러의 아카이브 설계경기 기록원이라는 이름은 야구의 경기기록원이라는 직업에서 착안했다. 미래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야구 경기 과정을 기록하고, 이를 바탕으로 코치를 한다고 하더라. 오래전부터 작성된 기록지를 보면 기록 항목들이 조금씩 달라진다. 어떤 걸 기록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기록을 어떻게 활용해서 경기력을 향상시킬 건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왔다는 거다. 그런 작업이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야구를 잘 모르지만, 여기서 이름을 따왔다.
설계공모 사업의 시작: 2020, 2022 우리가 어떻게 설계공모를 운영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이번 기회에 이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우리는 설계공모를 ‘공정하게’ 운영한다기보다도 ‘설계공모 운영지침에 맞게’ 공모 관리 용역을 하고 있다. 그 지침이 과연 공정한가는 논외로 두고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자.
김하나 서울소셜스탠다드 공동대표김상호 정림건축문화재단 실장김용국 건축공간연구원(AURI)남성우 건축공간연구원(AURI)사회자 김영현 건축공간연구원(AURI)
포럼의 배경 개인적으로는 이번 <당선작들 안녕하십니까> 시리즈는 시간대에 따라 설계공모로 진행됐던 사업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설계공모 이후의 일들을 생각해보면, 설계 후 시공 관련 문제도 있을 것 같고, 지은지 40년 정도 된 건물들의 경우에는 철거 혹은 리모델링, 증축 등의 이슈가 있을 수도 있고. 그동안에서는 설계공모라는 아주 짧은 시간대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았던 것 같아서 이번에는 다른 관점에서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특히, 설계공모 이전의 기획 단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사례 위주로 살펴봤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건설보증제도와 시공 품질 건축공사를 계약할 때 발주자(건축주)는 시공업체에 공사에 대한 보증을 요구하는 것이 보통이다.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건축공사는 보증보험 가입이 의무이고 민간 건축물 공사에서도 건축주가 시공업체에 보증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시공업체는 보증(보험)회사에 보증 비용을 납부하고 보증회사는 건축주에게 공사에 대해 보증한다.
감리는 건축물 시공 단계에서 용역으로 수행되는 업무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에서는 공공이 계약에 의해 조달하는 대상을 물품, 공사, 용역 세 가지로 구분한다. 감리는 ‘공사’ 계약으로 진행되는 시공 단계에서 별도의 ‘용역’ 계약으로 공사와 함께 진행되는 용역 업무다. 이처럼 시공 단계에서 별도의 용역 계약으로 진행되는 다른 업무로 ‘건설사업관리’와 ‘설계의도구현’을 꼽을 수 있다. (현행 건설기술진흥법에서는 건설사업관리와 감리를 통합하여 건설사업관리라고 통칭하고 있지만, 이 글에서는 서술의 필요상 ‘건설사업관리’를 감리 이외의 업무로 한정하여 사용한다.) 감리, 건설사업관리, 설계의도구현 모두 시공 단계에서 진행되는 업무이므로 각각의 역할과 업무 간 관계에 대해 분명한 이해와 구분이 필요하다.
부실시공 대책으로 감리 용역을 계속 강화해 온 정부 정책 속에서 감리 용역비 또한 크게 늘어왔다. 그런데 과연 얼마나 늘었을까? 세간에는 설계비보다 감리비가 커진 것은 이미 오래고 2배 이상인 경우도 드물지 않다는 것이 정설처럼 통용되고 있다. 그런데 건축법 공사감리비의 경우 대가기준으로 보면 설계비의 4분의 1 수준이다. 그렇다면 “설계비보다 감리비가 크다”는 얘기는 건축법 공사감리가 아니라 건설기술진흥법 책임감리나 주택법 주택감리를 두고 하는 얘기일 것이다.
감리 대가기준과 산출방식 감리제도 강화에 따라 감리용역 대가기준도 계속 강화되며 변화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감리업무에 대한 규정이 건축법(공사감리), 건설기술진흥법(책임감리), 주택법(주택감리)으로 나뉘어 있고 저마다 대가기준을 갖고 있어 이들 각각의 변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기 쉽지 않다. 건축법 공사감리 대가기준은 1966년 ‘건축사업무 및 보수기준’(건설부 건축시지령)으로 제정되어 현재는 ‘공공발주사업에 대한 건축사의 업무범위와 대가기준’(국토교통부 고시)으로 규정하고 있고, 건설기술진흥법의 건설사업관리(책임감리) 대가기준은 1984년 ‘엔지니어링사업대가의 기준’(과학기술부 공고)으로 시작하여 현재 ‘건설엔지니어링 대가 등에 관한 기준’(국토교통부 고시)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편, 애초 건축법 공사감리 기준을 적용하던 민간 공동주택은 1993년 주택건설촉진법 개정으로 주택감리가 도입되면서 1994년 별도 기준인 ‘주택건설공사 감리비 지급기준’(건설교통부 고시)이 제정되었다. 2001년부터는 정부 기준을 폐지하고 관련 민간단체들의 협의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감리용역 시장, 누가 얼마나 점유하고 있나 1970년 건축법 개정으로 공사감리를 의무화한 당시, 감리용역의 근거 법령은 건축법상 공사감리뿐이었다. 그러다가 건설공사 시공감리 규정(1984) 및 건설기술관리법(1987) 제정으로 일정 규모 이상 공공건축물에 대한 감리용역 시장이 분리되었다. 건축법 공사감리 용역 시장 한 귀퉁이에 건설기술관리법 시공감리 및 책임감리 시장이 자리잡은 형국이었다. 그러나 이후 책임감리 전면화 조치(1993) 등 공공 공사에 대한 감리가 강화되면서 건축공사 감리용역 시장은 본격적으로 분화되기 시작한다.
독일 2차대전 이후 11개 주로 조직되었던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이 1990년 통일로 16개 주 체제로 바뀌었다. 연방정부가 관할하는 연방건축법과 주정부가 독자적으로 제정-시행하는 주건축법을 양대 축으로 하는 건축 관련 제도 역시 <연방건축법 – 16개 주건축법> 체제로 확대됐다. 연방정부는 연방건축법을 통해 공간 및 도시계획을 관장하며, 16개 주는 각각 건축기준을 규정하는 자체 주건축법을 제정하고 집행한다. 따라서 건축공사의 기술 및 안전 규정 준수 여부를 확인하는 검사에 대한 주요 책임은 주정부, 그중에서도 직접적인 대민 건축행정 업무를 수행하는 구 또는 시 수준의 지방정부 건축 당국에 있다. 건축 프로젝트는 연방건축법 규정과 프로젝트가 위치한 주의 건축법 규정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공공 안전과 건축기술적 요구사항에 대한 기준선 공유를 위해 16개 주 공동으로 모델건축법을 제정하여 참조하고 있지만 실제 법령 내용은 주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감리, 감독, 검사 앞글에서 우리나라 건축물 공사 과정에서 시공의 품질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검사-확인 업무가 전적으로 민간 감리용역에 맡겨지고 있는 사정을 보았다.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질문이다. 건축공사 과정에서 검사(inspection) 업무를 중심으로 몇몇 나라의 사례를 살펴보자. 결론부터 말한다면, 살펴본 다섯 나라(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모두 검사-확인 업무를 지방정부나 공적 인증을 받은 전담 기구가 수행하고 있다. 한국처럼 감리나 건설사업관리 등 민간 용역 업무에 검사-확인 업무를 포함하여 맡기는 경우는 없다.
부실시공의 진짜 원인 건축공사 부실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광주 학동 재개발 철거공사 중 붕괴(2021.6), 광주 화정 아이파크 아파트 신축공사 중 붕괴(2022.1), 인천 검단신도시 LH 아파트 신축공사 중 지하주차장 붕괴(2023.4)…. 사고가 날 때마다 원인 조사팀이 구성되고 사고 원인에 대한 진단이 분분하다. 공사 불법 재하도급, 이 때문에 더욱 낮아지는 실제 공사비, 숙련 노동자 부족 및 외국인 노동자 증가, 감리 용역 입찰 담합과 부실 감리, 구조설계 하도급과 부실 설계 등등. 하나하나 수긍할 만한 내용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매번 진단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원인이 비슷하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그 원인을 해결 못 하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재발 방지 대책도 매번 비슷하다. 감리 강화, 불법 하도급 근절 … 이걸로 될까? 예전에 통하지 않았던 대책이 이제는 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