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과 갈망
강림, 겜돌이, 곰, 냥꾼, 닥터페퍼, 쪠, 채운, 천하장사
분량6,718자 / 13분
발행일2026년 10월 26일
유형대담
잡담회는 첫 번째 읽을거리로 키워드의 ‘프리츠커상’을 골랐다. 이 키워드는 2024년 3월, 야마모토 리켄의 프리츠커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이후 국내 건축계에서 되풀이된 한탄과 자성을 계기로 연관된 글들을 묶어 발행됐다. 그로부터 2년 뒤 엡스타인 파일 논란으로 프리츠커 재단 내부 문제가 불거진 시점에 잡담회는 프리츠커상의 의미, 그것의 변화와 상 제도, 지역성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 일시: 2026년 3월 8일 일요일 오후 1:30 – 4:00
- 장소: 정림건축문화재단 라운지
- 참석: 강림, 겜돌이, 냥꾼, 천하장사, 채운, 쪠, 닥터페퍼, 곰
차례
- 정치 혹은 순수
- 집착과 갈망
- 토대와 발굴
- 지역성 ≠ 한국성 ≠ 전통성 ≠ 지역성
우리가 갈망하는 것
강림: 이야기를 듣다 보니, 건축이라는 것이 건축가 개인의 산물이 아닐뿐더러, 특히나 그 건축물이 얻어낼 수 있는 인정은 더더욱 사회 없이는 있을 수 없다는 지점에서 컨센서스가 모이는 것 같아서 놀라워요. 저희도 잡담회 초반에는 개별 건축물의 퀄리티나 미학적 품질에 관해서 많이 논했어요. 요즘에는 조금 더 넓은 범위에서, 거시적인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것조차도 시대적인 변화에 기반하는 것인가 하는 궁금증도 드네요.
이제부터는 어떤 글이 재미있었는지, 어떤 글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받으셨는지 공유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천하장사는 아틀리에에 대해서 화가 많이 난 것 같은데, 왜 그런지도 궁금해요. 서로 질문해도 좋아요.
천하장사: 저는 쪠가 “한국이 프리츠커에 집착하는 것은 서열 문화 때문”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굉장히 재밌었어요.
강림: 닥터페퍼도 프리츠커상이 올림픽 메달처럼 되었다고 비판했죠.
천하장사: 네. 많이 공감했어요. 왜 이렇게 프리츠커상에 집착하는지 항상 궁금했어요. 어쩌면 우리의 사회에 이미 그런 면모가 있고, 그것이 프리츠커상에 투영되는 것 같아서 흥미로웠어요.
곰: 저는 그 부분에서 물음표가 있었어요. 한국 건축계가 프리츠커상에 집착하는 걸까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오히려 건축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집착하는 것 같고, 실제로 한국에서 건축하는 사람들이, 한국이 프리츠커상을 못 받는 것에 대해 그렇게까지 불쾌해하지 않는 것 같고 이 사람 작품이 별로다, 괜찮다 정도의 수상자들에 대한 짧은 논평 정도에서 끝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실질적으로, 왜 한국이 프리츠커상을 못 받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는 것 같아요. 거기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천하장사: 그것도 맞는데, 제가 느끼는 것은 조금 달라요. 학부 수업때 “한국은 왜 프리츠커상을 못 받을까?”를 주제로 짧은 강의를 들은 기억이 나요. 또, 조민석의 서펜타인 파빌리온이 화제였던 때, 제가 인턴을 하던 사무소 내 동료들 사이에서 ‘매스스터디스에서 한국 첫 프리츠커상을 받게 될까?’라는 이야기도 나왔었어요. 이런 식으로 반복해서 등장하는 화두 자체가 우리의 욕망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곰: 물론 업계 전반에서 프리츠커상에 대한 이야기가 매해 나오는 것은 당연해요. 하지만, 과연 실제로 뛰는 사람들이, 실무자들이 그렇게 신경 쓰고 있지는 않다고 봐요.
강림: 두 분의 말씀을 듣고, 김일현이 ‘속물적 담합과 주제 의식의 부족’에서 했던 말들을 경유해서 이야기해보자면, 프리츠커상을 너무 신경 쓰는 것도 일종의 굴레이지만 반대로 너무 신경을 안 쓰는 것도 굴레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어요. 프리츠커상을 받든 못 받든 매해 반성적인 태도로 우리 건축계를 스스로 성찰해 보는 시간으로 삼을 좋은 기회인데, 저희는 자신을 성찰하기에 자신이 너무 더럽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그 성찰의 시간을 회피하기 위해 신경을 일부러 쓰지 않는 느낌도 있어요.
곰: 저도 그 말씀에 굉장히 공감해요. 프리츠커상을 왜 못 받는지가 문제가 아니에요. 저는 ‘토대와 방향이 부재한 한국 건축에 묻다’가 재미있었어요. 이상헌, 김인철, 이필훈이 함께 “공통의 언어가 없다”는 이야기를 해요. 굉장히 공감해요. 건축계만이 아니라 한국이 처해 있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라고 봐요. 모든 분야에서. 공통의 토대가 없어요. 최소한의 공통 토대가 갖추어진다면 프리츠커상을 타든지 말든지, 탈 수 있든지 없든지 신경도 안 쓸 거예요. 그리고 저희가 공통의 토대를 가지기 위해서는 그 글과 같은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이야기를 이끌어 내기 위한 장치로서 프리츠커상을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강림: 프리츠커상을 이용해서 어떤 담론을 만드는 것이죠.
곰: 맞아요. 그리고 그 글에서, “동질성 없는 개체성”이란 말에 꽂혔어요. 지금 저희의 시대상을 이야기하는 듯했어요. 막연한 생각이긴 한데, 어떻게 해야 저희가 동질성을 가질 수 있을지, 저는 그 방법론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저희 세대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강림: 이 글에 나왔듯,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가 없다는 문제가 결국 지역성, 한국성이라는 각각의 개념어가 품은 문제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 같아요. 각자 생각하는 지역성이 다르니까 지역성에 관한 이야기가 공회전하고, 각자 생각하는 한국성이 다르니까 한국성에 관한 이야기가 불가능해져요. 정설이 있고 거기에 반대하는 이론이 있어야 논의가 고도화되죠. 그렇다면 그 정설을 찾아야 할까, 우리가 그걸 지금 필요로 하는 걸까, 심지어 여기에 대해서도 정설이 없죠. 그게 지금 저희가 처해 있는 상황인 것 같아요.
겜돌이: 저는 동질성 없는 개체성이라는 말이 좋긴 한데, 이조차도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같은 말이라고 봐요. 동질성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글에 나온 것처럼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라는 말 자체가 너무 어렵고, 그 동질성을 한국성이나 지역성을 통해서 역으로 찾아내기도 너무 어려워요. 방금 강림이 이야기한 것처럼, 동질성을 찾아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조차도 다르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해요.
저는 한국 건축계에서 생산되는 많은 글들이 얼마간 논쟁을 피한다고 봐요. 직접 부딪히고, 그때 스파크가 일어나면서 무언가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같은 공간에 있는 서로가 등을 맞대고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한 공간에 있으니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서로 부딪힐 만한 말들은 최대한 피하는 거예요. 저는 그게 조금 아쉬워요.
스스로를 돌이켜보면 자신 있게 이야기하고 부딪혀 보고 싸워 보는 것이 제게도 너무 어렵고 아직은 불가능한 일이에요. 그렇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동질성을 찾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점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로 막 쏟아낸 다음에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몇 가지는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 있었네?’ 하고 깨닫게 될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뭘까?’에서 출발하기보다는 ‘지금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이렇게 출발해서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글처럼 선배들이 나서서 먼저 그런 글들을 많이 써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직 건물을 지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건물에 대해 섣불리 이야기할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모임에 와서 이야기해보니 또 보이는 것들이 있잖아요? 강림이 한번 정리해준 것처럼, 우리가 어떤 글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어떤 점에서 컨센서스를 가지고 있는지, 또 어떤 점에서 서로 다르게 바라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어요. 이런 과정이 더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곰: 맞아요. 저도 말은 이렇게 하면서 정작 해보라고 하면 어려워요. 이 글에서 승효상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논의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승효상이 말하는 지역성은 결국 본인의 건축 문법을 합리화하기 위한 담론이라는 지적이 나왔죠. ‘너무 센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독자인 제가 당황한 거죠. (웃음) 심지어 저한테 이야기한 것도 아닌데 말예요. 저도 그런 논쟁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어요. 만약 누군가가 저에게 그런 말을 했다면 너무 분개했을 것 같아요.
강림: 맞아요. 훈련이 필요한 일 같아요.
곰: 그래서인지 『건축신문』에 좌담 형식의 대화가 많았다는 것이 흥미로웠어요. 혼자만의 생각을 쓴 글이 아니라 대화하는 것이잖아요? 그리고 그런 형식에서는 웹진이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좌담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좋아요. 사실 저는 이번 기회가 아니었다면 『건축신문』에 들어가서 이 글을 보지도 않았을 거예요. 어떻게 해야 이런 글들이 저희 세대에게 더 많이 노출되고, 저희 세대가 이런 글들에 관심을 갖게 될까요? 그런 문화만 만들어지면 그다음부터는 시간 문제라고 생각해요.
강림: 자기가 항상 원해왔던 자리가 본인이 모르는 곳에서 꾸준히 있었다는 것 자체에 약간 놀란 것 같네요.
곰: 맞아요. 아무도 관심을 안 둔다고 쉽게 말하지만, 정작 저도 그렇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노출이 안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고요.
강림: 너무 중요한 말씀인 것 같아요. ‘지역성은 정치적 혹은 문화적 용어이다’라는 다른 좌담을 보면 기본적으로는 모두 자기 할 말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분들은 연배가 꽤 있고, 본인의 어떤 생각 아래에서 작업이 누적된 상황이기 때문에 생각을 바꾸기가 힘들 거예요. 정치적인 입장이나 위상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더더욱 저는 곰의 말처럼 어릴 때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대한 자기를 확장해서 대화에 임해 보고, 또 한계에 부딪히면 생각을 바꾸기도 하고요. 솔직히 이게 저희의 가장 큰 무기잖아요? 1년 뒤에 전혀 다른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곰: 맞아요.
강림: ‘비겁하게 작년의 내 생각을 가져오다니!’
겜돌이: ‘과거로 승부를 겨루지 말고 지금으로 붙자! 그때와 나는 다른 사람이니까!’
곰: 저는 그런 태도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실제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확률이 높아요.
강림: 그렇죠. 저희는 아직 독립을 했거나 자기 이름으로 작업물을 내는 상황이 아니니까, 자신의 철학과 작업물이 부조화되는 상황이 심각하게는 발생하지 않잖아요? 이런 상황을 이용해서, 지금 서로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입장을 엎치락뒤치락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그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입장이 고정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이런 모임을 가지는 것도 좋지만, 전반적으로 건축사보들이, 졸업 이후의 건축학도들이 이런 이야기를 지금보다 훨씬 많이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젊디젊은 건축가’들이.
곰: 대학 교육부터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엄밀히 따지면 대학보다 더 이전으로 가야겠죠. 토론이라는 것 자체가 낯설어요. ‘한국에 크리틱이라는 문화가 과연 있을까’라는 이야기를 저희끼리 여러 번 했었고, 크리틱은 늘 ‘교수님께 받는 것’이라고 배웠어요. 친구끼리 진심으로 크리틱을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물론 그게 가능한 친구들도 극소수 있었지만요. 그런 문화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상대평가로 과제를 평가하는 순간 진정한 의미의 크리틱이 어렵다는 생각도 있고요. 친구를 경쟁자로 인식하게 되니까요. 학생끼리 서로 크리틱 할 수 있게끔 하는 문화를 교수님들이 적극적으로 만들어주면 좋겠어요. 그런 교육만 갖추어져도 문화가 10년 안에 확 바뀔 것 같아요.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결국 관심이 없다는 문제가 남아 있어요.
강림: 관심이 없다…. 무엇에 대한 관심이?
곰: ‘건축을 이야기하는 것’에 다들 크게 관심이 없어요. 건축계에 있는 사람들조차도 그래요. 건축계 밖에 있는 사람들은 더 관심이 없고요. 그런 차원에서 유현준이 한국 건축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고 봐요. 유현준이 이야기하는 것이 틀렸든 맞든, 공감을 얻든 얻지 않든 간에 이 분이 등장하면서부터 건축에 관해 관심 갖고 이야기하는 문화가 조금이라도 생긴 것 같아요. 그런 시도를 다들 더 많이 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런 시도를 깎아내리는 경향이 있어요. 대중으로부터 멀어지는 이유는 우리 안에서만 계속 노는 데에 있어요. 지금은 오히려 외연에 더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건축계 내에서도 건축에 대한 이야기에 더 많은 관심이 생길 것 같아요.
강림: 지금 이야기를 프리츠커상과 연관시켜 보면, 그런 사회 환경에서 자라왔다 보니 프리츠커상을 일종의, 궁극의 A+ 학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고, 프리츠커상을 받은 건축가들에 대한 크리틱을 거의 포기하는 것 같아요.
쪠: 저는 차라리 한국에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없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다른 건축가들이 인정을 안 할 것 같아요. 지금도 어느 한 건축가에 대한 비판을 자기만의 생각으로 정확하게 하지도 않아요. 관심을 충분히 기울이지도 않고 무작정 깎아내리는 식이에요. 그냥 “쟤보다는 내가 나은 것 같은데?” 이런 거죠.
강림: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서로를 인정하는 문화 자체가 적은 것 같아요. 한국에서 아틀리에가 가져가는 경제적 파이 자체가 작고 서로 잘 알고 지내다 보니, 서로를 언젠가 경쟁자가 될 사람으로 여기는 것 같아요. 그리고 곰의 말처럼 학부 교육 자체에 문제가 있어요. 서로에 대해 정확한 말을 하기보다는 느낌으로 안다는 식이에요. 한번 슥 보고 ‘저건 별로야, 이건 좋아’ 이런 식으로 평하는 것에 모두가 너무 익숙해져 있어요. 자기 생각, 자신이 느낀 것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계속-
잡담회
잡담회는 건축의 이름 아래에서 생산되는 텍스트들을 성의 있게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눈 후,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를 텍스트로 재생산하는 독서모임이다. 아홉 명의 정규 구성원이 함께하고 있으며, 한 달에 한 번 정도, 한 권의 건축책을 읽고 와서 두 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나눈다. (비건축적인 의미로) 늘 매너리즘에 허덕이고 있기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주실 손님을 환대한다. 잡담회 아카이브: 블로그 / 인스타그램
집착과 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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