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대와 발굴
강림, 겜돌이, 곰, 냥꾼, 닥터페퍼, 쪠, 채운, 천하장사
분량6,474자 / 13분
발행일2026년 10월 26일
유형대담
잡담회는 첫 번째 읽을거리로 키워드의 ‘프리츠커상’을 골랐다. 이 키워드는 2024년 3월, 야마모토 리켄의 프리츠커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이후 국내 건축계에서 되풀이된 한탄과 자성을 계기로 연관된 글들을 묶어 발행됐다. 그로부터 2년 뒤 엡스타인 파일 논란으로 프리츠커 재단 내부 문제가 불거진 시점에 잡담회는 프리츠커상의 의미, 그것의 변화와 상 제도, 지역성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 일시: 2026년 3월 8일 일요일 오후 1:30 – 4:00
- 장소: 정림건축문화재단 라운지
- 참석: 강림, 겜돌이, 냥꾼, 천하장사, 채운, 쪠, 닥터페퍼, 곰
차례
- 정치 혹은 순수
- 집착과 갈망
- 토대와 발굴
- 지역성 ≠ 한국성 ≠ 전통성 ≠ 지역성
토대 없음?
닥터페퍼: 정설, 메인 스트림, 그러니까 주류가 필요한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면, 저는 오히려 그런 토대가 없기 때문에 얻어낼 수 있는 이점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주류 아래에서는 주류가 아닌 의견들이 묵살되는 경우가 많아요. 지금은 오히려 그런 토대가 없음으로 인하여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생각을 펼치는 것 같아요. 그 이점을 이용할 생각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무조건 주류를 찾기보다, 주류 없음을 인정하고 거기에서 장점을 찾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국적인 상황에 맞는, 한국성을 띤 건축이 나온다고 봐요.
그리고 저도 처음에는 한국에서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나오면 뒤에서 엄청 욕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건축신문』을 읽어보고 잡담회를 준비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유현준이 TV에 나오는 것처럼 욕을 먹든 말든 누군가 한 명은 상을 받아야 할 것 같아요. 건축계 바깥사람들의 관심을 얻기 위한 장치로요.
강림: 저는 반론을 제기하고 싶어요. 한국에 왜 토대가 없다고 생각하는지가 의문이에요. 기성세대에서부터 내려온 관념인 것 같아요. 김중업과 김수근은 한국 건축의 토대가 아닌가요? 토대가 분명히 있어요. 그렇다면 왜 저희는 토대가 없는 듯 생각할까요?
저희가 역할 모델로 보고 자란 세대의 대표 주자가 최욱, 조병수인데, 이분들이 사실 토대가 없는 것처럼 행동했던 분들이에요. 사실 그전까지는 계보가 있었잖아요. 김중업의 제자, 공간 출신, 무애 출신 이런 계보가 있었는데, 그걸 끊어낸 거죠. 저희는 그 이후에 성장한 세대이기 때문에 ‘토대가 없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 같아요. 포스트모던 건축의 영향 이후이기도 하고요. ‘한국적 상황이란 혼돈의 상황이다, 발 디딜 곳은 없다, 토대 없음이 우리의 토대다’ 이런 거예요.
그러나 저는 토대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김인철은 왜 토대가 아닌가요? 김원은 왜 토대가 아닌가요? 너무 단단한 토대예요. 당연히 조병수, 최욱도 저희의 단단한 토대이고요. 이제는 그런 토대로부터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분명히 있는 토대를 세대마다 반복해서 괄호 속에 넣고 ‘토대가 없는데 난 무얼 해야 하지?’에서 출발하는 순간 굴레에 갇힌다고 생각해요. 너무 큰 짐이 될 거예요.
겜돌이: 저는 원래는 닥터페퍼와 같은 생각이었는데, 오히려 요즘에는 생각이 바뀌었어요. ‘토대와 방향이 부재한 한국 건축에 묻다’에 파편화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요. 닥터페퍼가 말한 것처럼 이렇게 다양화되어 있고 파편화되어 있고 다원화되어 있는 이 모습이 한국성의 일종이거나 한국의 속성일 수도 있어요. 저는 충분히 공감해요. 사실 저도 이전에 몇 번 그런 식으로 이야기했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제가 요즘에 하는 생각은, 언제까지 복잡하고 파편화되어 있고 다원화되어 있는 상황을 우리가 ‘인정’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에요. 그리고 그런 상황을 발전의 토대로,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어요. 토대 없이 작업한 최욱이나 조병수의 토대가 지금 또 이어지고 있잖아요? 원오원 출신, 조병수건축연구소 출신인 젊은 건축가들이 많아요. 토대가 이어지고 있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토대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으로 생각해요. 아비투스죠. 살아남으려면 토대 없음을 주창해야 하는 거예요. 토대 없이 새롭게 뿌리내린 씨앗임을 계속 증명해야 하는 것이고요. 그런 분들이 모여서 다시 새로운 어떤 토대를 만들고 있다고도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이것이 일본과 한국의 극적인 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한국은 계속해서 토대를 새로이 하려는 것 같아요. 생존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에요. 이 글에도 나왔죠. 한국 건축계에서는, 생존의 문제가 너무 지대하다고. 그래서 토대와 방향이 부재하다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여전히 생존의 문제가 너무나 커요. 어떤 부분은 더 심각해졌어요. 공모전은 너무 과열되어 있고요. 아틀리에들은 생존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해요. 신생으로 태어나는 회사들은 더 그렇겠죠. 토대를 부정하고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일종의 인정투쟁이에요. 무언가를 피하려는 것으로 생각해요. 그런 분위기가 문화적으로 자리 잡은 것 같아요.
곰: 강림이 말한 토대는 겜돌이가 말하는 토대와는 다른 것 같아요. 계보라는 것도 출신을 뜻한다기보다는 다른 것을 의미하는 것 같고요. 저는 원오원 출신이나 조병수건축연구소 출신이 원오원이나 조병수와 같은 건축 언어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니, 어떻게 보면 건축의 언어만 같이 쓰고 있는 것에 가까워요. 배운 게 그거니까.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고 보이진 않아요.
채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생각에 공감할 수 있는 경험 자체가 적어요.
곰: 그렇죠. 그러니까 저는 우리나라 건축가들을 분류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추구하는 것들이 서로 공유가 잘 안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해요. 저는 계보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계보는 어디에나 있죠. 계보는 이미 제도화가 되어 있어요. 어디선가 실무를 한 사람들이 나와서 일을 하고 있는 거죠. 그렇다고 소장님과 직원이 건축적으로 무언가를 같이 공유하는지 생각해보면, 대부분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그것도 토대의 부재예요. 그런 문화는 한국에 없지 않을까요? 그리고 필요해요. 적어도 같은 사무실에서 일한다면, 최소한 무엇을 추구하는지 정도의 이야기는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정도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거예요.
강림: 하나만 덧붙이면, 꼭 사제 관계를 말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토대를 찾으려는 노력도 포함됩니다. 건축을 할 때에는 뭐든지 다 레퍼런스가 있어요. 선례를 소화해서 구사하는 거죠. 그런데 그 과정에 관한 인지 자체가 부족한 것 같아요. ‘스스로 뭔가 이렇게 저렇게 해보다가 좋은 게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대화가 안 돼요. 서로 공유하고 있는 선례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그걸 어떻게 구사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해야 대화가 되는데, 선례가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거나 정확히 특정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거나 없는 체해요. 그러다 보면 말이 추상적으로 바뀌고, 관념적인 말을 하게 되죠.
곰: 국내에서 나름 일가를 이룬 소장조차도 업계를 떠나게 되었을 때 그 집단이 와해되거나 작품의 색깔이 완전히 바뀌는 경우가 많다고 봐요. 왜 그런 일이 생길까요? 집단 내에서 공유가 안 되는 거예요. 그 소장님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직원들이 그려줬을 뿐인 거예요, 관성을 가지고. 따라서 한국에서는 계보가 의미 없는 것 같아요.
강림: 저는 계보라는 것이 꼭 집단 내에서 생긴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형태적인 어휘일 필요도 없다고 봐요. 예를 들어서, ‘나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사람은 정기용이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선례 자체를 찾으려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있더라도 영향 관계를 밝히는 것 자체를 익숙지 않아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번에 일본에 여행 가서 어떤 건축 잡지를 보았는데, 건축가 소개란에 놀랍게도 ‘마스터’를 넣는 칸이 있어요. “누가 너의 스승이냐?”라고 묻는 거예요.
채운: 꼭 써야 돼요? 한 명만 꼽아서?
강림: 딱 한 명씩 쓰여 있었어요.
채운: 신기하네요!
강림: 저는 이런 종류의 토대를 말하는 거예요. 조병수와 아무 접점이 없더라도, 그의 글과 건축에서 너무나 큰 영향을 받았을 수 있잖아요. 그럼 제 토대는 조병수가 되는 것이죠. 여러 명이 있을 수도 있고요. 그런데 이런 토대 없이 자꾸 개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다 보니 공유하는 것들이 부족해지는 것 같아요. 이렇게 되면 세대는 계속 새로 시작하고, 세대 내에서도 접점이 없는 상황이 생겨요.
겜돌이: 곰이 이전 모임에서 ‘비평이 곧 일본 건축의 힘’이라고 말한 적 있는데, 저도 이 이야기에 공감해요. 다만 비평이 가능하려면 ‘왜 이렇게 되었는가’, 즉 생성 과정을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어요. 그러려면 당연히 토대가 필요하고요. 그 토대는 글일 수도 있고 건축물일 수도 있고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이제는 토대가 기록되어야 해요. 그 노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어요.
『건축신문』이라는 매체가 그런 점에서 도움이 되어요. 포럼, 좌담, 대화의 아카이브들이 분명히 앞으로 큰 뿌리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에서는 상황을 조금 긍정적으로 바라봐도 되지 않을까요? 요즘 건축가들은 글을 많이 남기고 있어요. 비평가가 써주는 글도 있지만, 지금은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기 위한 발화들이 많이 생산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것에 더 주목하면 좋겠어요.
채운: 같은 맥락으로, 저희가 잡담회를 하는 것도 개인적으로 좋다고 느껴요. 『건축신문』의 프리츠커상 키워드를 읽기 전까지 프리츠커상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해 본 적도 없었어요. 읽으면서 원래 가지고 있었던 생각도 많이 바뀌었고요. 프리츠커상 수상자에 대해서 관심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했었는데, 글을 다 읽어 보니 한국 건축가가 받으면 좋겠다는 입장이 되었어요.
이전까지는 프리츠커상이라는 단어 자체가 제게는 가벼웠어요. 왜 유명한지도 모르고, 어떤 사람한테 주는지도 잘 몰랐어요. 우리 회사에서는 “이제 못 받는 거 아니야?” 이런 이야기도 많이 하고요. 그리고 프리츠커상을 못 받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아쉬워해야 하는 것인지도 몰랐어요. 처음에는 단순히 유명세와 권위가 있어 보이는 상이니까 아쉬운 마음이 들어야 하나 했던 것 같아요. 또, 옆 나라인 일본에서 건축가들이 계속 수상하는 것도 한국으로서는 큰 기준이라고 생각해요.
발굴하는 건축상, 지원하는 건축상
채운: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글은 ‘같은 예산으로 두 배로 크고 밝은 공간’이었어요. 처음엔 ‘이 글은 왜 있는 거지?’ 싶었는데, 다 읽고 나서 보니 라카통 앤 바살이 프리츠커상 수상 전에 한 인터뷰인 거예요? 프리츠커상을 받기 전에 한 인터뷰니까 더 순수한 마음가짐을 알 수 있었어요. 그리고 라카통 앤 바살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었기에 프리츠커도 상을 주었을 것 같아요. 이 인터뷰를 읽으면서 ‘이런 사람들한테 주는 상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확고하게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축가들이 나오기 위해서는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겠죠.
겜돌이: 상은 어떤 사람을 발굴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국내에서 주최되는 대다수의 건축상은 건축가가 작업을 직접 제출한다는 점이 다소 의아해요. 건축가는 상을 받을 만한 작품 리스트를 만들어서 제출하거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내죠. 자기가 자기 작품을 스스로 설명하게끔 유도하는 거예요. 때로는 상의 방향성에 맞게 포트폴리오를 바꿔요. 저는 이 부분이 이상하다고 느껴요. 제출하는 작품별로 돈도 꽤 많이 내야 해요. 그러면 그 돈으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운영비를 책정하는 거죠. 운영 자금이 필요하니 어쩔 수 없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이라면 그 상을 주는 주체가 직접 나서서, 혹은 독자적인 비평을 통해서 어떤 건축가를 발굴해내고 그 건축가의 그간의 노력과 행적에 화답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믿어요.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은 게 아쉬워요. 물론 그런 상이 소수 있는 것 같긴 하지만요.
강림: 한국 건축상 중에 건축가가 지원하는 구조가 아니라 심사위원단이 독자적으로 논의해서 수상자를 선정하는 상으로 한국건축역사학회상이 유일하다고 알고 있어요.
겜돌이: 프리츠커상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일단의 의의가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는 건축상의 의미가 다소 퇴색된 것 같아요. 건축가 간의 인정 투쟁이 되어버린 거죠. 상을 받아서 이름을 알리고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한 거예요. 명예를 스스로 창출하기 위한 행동이 되었어요. 그런 상을 받았다고 해서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을까요? 나의 노력에 대한 화답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요?
천하장사: 저는 상이 많은 것은 좋다고 봐요. 여러 가지 판단 기준이 있는 거죠. 이 기준에서는 좋지 않게 보였던 작품이 다른 기준에서는 좋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고요. 그리고 포트폴리오를 다르게 편집해서 제출한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는데 굉장히 재미있어요. 자기 작품을 스스로, 다각도로 검토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의의가 있지 않을까요?
-계속-
잡담회
잡담회는 건축의 이름 아래에서 생산되는 텍스트들을 성의 있게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눈 후,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를 텍스트로 재생산하는 독서모임이다. 아홉 명의 정규 구성원이 함께하고 있으며, 한 달에 한 번 정도, 한 권의 건축책을 읽고 와서 두 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나눈다. (비건축적인 의미로) 늘 매너리즘에 허덕이고 있기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주실 손님을 환대한다. 잡담회 아카이브: 블로그 / 인스타그램
토대와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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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2026년 10월 26일
유형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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