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7일 비공개 포럼 <건축가 김종성과 건축적 유산>에서 김종성과 김종성건축상 수상자인 이성관, 최욱, 황두진, 이정훈이 한자리에 모여 이 상의 의의에 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김종성건축상을 매개로 모인 이들은 ‘건축을 언어로 수사(修辭)하지 않는 건축가’이며, 건축을 유려하게 풀어내기 위한 어휘로서 테크놀로지를 능수능란하게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의 대화 속에서 건축가에게 테크놀로지가 갖는 의미를 생각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지난 11월 17일 비공개 포럼 <건축가 김종성과 건축적 유산>에서 김종성과 김종성건축상 수상자인 이성관, 최욱, 황두진, 이정훈이 한자리에 모였다. 토론 말미에 최근 건축계 이슈가 되고 있는 밀레니엄 힐튼 서울(이하 힐튼호텔) 매각과 철거에 대해 설계자의 입장을 직접 듣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우리는 앞서 공간사옥의 매각(2013)이나 삼일빌딩의 리모델링(2020) 등을 통해 한국 건축사의 중요한 건축물이 생을 이어가는 양상을 지켜봤다. 힐튼호텔 철거는 예견된 미래일지라도 아직은 현재진행형인 사안이다. 그래서 최근 이어지는 논의들이 힐튼호텔을 비롯해 곧 매각과 철거를 맞닥뜨릴 다른 건축물들을 사회에 알리고, 보존 가치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마중물이 될지 모른다.
전숙희 마지막 회차의 토론을 시작하겠다. 지난 시간에 이어 산업자산을 조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산업자산은 건축과 사회의 변화를 가장 잘 드러내는 사이트라고 생각한다. 문화비축기지는 석유라는 자원을 담는 그릇이었고 쓰임을 다한 뒤 새로이 활용하는 제안으로써 탄생했고, 성수연방은 민간이 부동산적 가치를 재해석해 (사용기한이 더 있지만) 리모델링을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먼저 허서구 소장에게 리모델링의 배경, 즉 구조물의 쓰임이 실제로 다했는지를 묻고 싶다.
인식(awareness) 건축의 인생은 어느 한때의 문제보다 크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업을 지속하면서 ‘무엇을’ 고민할지보다 ‘어떻게’ 고민할지가 중요해지고, 고민도 조금 선명해진다. 일상은 느리고, 일반적으로 잘 인식되지 않는다. 인간은 기억(과거)과 상상 혹은 기대(미래)로 현재를 산다. 지금, 이곳을 인식할 수 있는 공간적 장치가 필요하다.
건축 큐레이팅이란 정다영 CAW 1기 프로그램이 오늘 ‘참고문헌 읽기’ 발표와 함께 끝났다. 지금 종합토론 시간은 전체 발표자분들을 모두 모시고 이번 워크숍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각자 ‘건축 큐레이팅’ 을 무엇으로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1기 워크숍이 끝난 지금 다시 한번 나누고 싶은 이슈가 있다면 무엇인지 듣고 싶다.
건축의 큐레이팅은 미술과 다르다. 건축이 온전히 예술로 수행되거나 연구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무엇이 다르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모아본 적이 없다. 건축 큐레이팅에 대해 건축계가 공유할 만한 공동의 연속성, 규율성, 전문성이 쌓이지 못한 채로 소모되고 휘발되기를 반복하고 있다. 건축의 기획(큐레이팅)을 실무로 삼고 씨름하는 사람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 쏟아지는 수요에 휩쓸려 온 것이 아닌가 진단한다. 미술이 아닌 건축에서 ‘큐레이팅’ 은 무엇을 하고자 하는 행위일까. 건축에서 큐레이팅은 단지 전시를 만들고 올리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획’ 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 건축 큐레이팅은 건물을 짓는 일을 넘어선 건축의 다양한 실천적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작업이다. 건축계 내부에서 큐레이팅이라는 활동은 한국에서는 이제 막 진지한 논의를 얻는 시점에 놓여 있다. 이번 건축큐레이팅워크숍(이하 CAW)은 비평의 무대이자 작가와 대중을 매개하는 장소로서 전시, 자료를 발굴하고 그것을 축적하는 행위로서 아카이빙, 건축을 둘러싼 다양한 시각 매체를 읽고 그것을 배치하는 에디토리얼까지 큐레이팅을 둘러싼 내외부의 이야기들을 펼쳐보는 시간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논의들은 2010년 이후 한국 건축의 시간과 현장들을 엮는 키워드가 될 수 있다. 건축 큐레이팅은 앞으로 한국 건축을 둘러싼 여러 난제를 검토하고 도전해 볼 수 있는 영역이 될 것이다.
‘어느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에서 살고 있나요?’라는 물음에 돌아오는 답은, 모르거나 아파트 건설사 이름이 대부분이다. 문득 이런 현실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 살고, 일하는 공간을 계획한 건축가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현실 말이다. 보편적인건축사사무소는 건축과 공간 전문가로서 사람들에게 친밀하게 다가가기 위해 기억하고 부르기 쉬운 이름으로 2013년 문을 열었다. 현재는 아내인 황은 소장이 합류해 함께 운영하고 있다.
경희대학교와 AA스쿨을 졸업하고, 8년간 포스터+파트너스 (런던)에서 어소시에이트로 근무하며 세계 여러 곳의 다양한 프로젝트와 현상설계를 맡았다. 2014년 서울로 돌아와 스키마(skimA)1를 열었다. 사무소 개소와 함께 고려대학교 건축학과에서 구조디자인과 건축설계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구조디자인 수업을 통해서 학생들과 함께 다양한 구조 시스템과 재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구하게 되었다.
살아 있는 것 건축은 이런저런 이유로 자유롭지 못하다. 건축주의 목적, 땅의 여건, 각종 법규와 제약, 무엇보다 비용과 자본의 논리, 건축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항상 이러한 조건들에 종속적이어서 각각의 상황에 적당히 대처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도시를 빼곡히 메운 건물들이 용적률 게임을 하며 그 틈 안에서 저마다의 해법을 찾아내 비집고 서 있는 모습이 우리 시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같다. 그러나 우리는 건축이 비바람을 막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거기서 더 나아갈 때 더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균열된 토대 위에서의 건축 건축전시는 이미 지어진 건축물을 가져올 수도 없고 이를 그대로 재현할 수도 없다. 베니스비엔날레 조직위원장인 파올로 바라타 Paolo Baratta가 2008년에 지적했듯, 오로지 도면과 모형, 그리고 다양한 표현방식으로 건축의 프로세스와 개념을 전달할 뿐이다. 작품을 통해 작가의 세계관을 드러내고 이를 세상에 직접적으로 던져내는 비엔날레 미술전과 달리, 비엔날레 건축전은 언제나 건축에 대한 아이디어, 건물을 짓는 행위, 실제 건물에 대해 간접적인 이야기를 할 뿐이다. 그렇다면 일종의 재현일 뿐인 전시가 우리에게 왜 필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