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은 아주 오래전부터 건축계 내에서 자주 회자되는 단어임에도 누구도 그 질문에 대해 답을 하기 어렵고, 피하고 싶지만 항상 우리에게 질문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지금 현재로서는 ‘이건 한국성이야’라고 규정할 수 있는 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구든 한국성을 말하는 것은 가능하다. 다만, 다양한 관점의 한국성을 모았을 때 ‘대략 이런 것들이 한국성으로 읽힌다’고 정의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왜냐하면 다양한 생각과 문화가 합쳐져서 한국성을 이루는 것이지, 순수한 결정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것을 같이 논의할 수 있는 그룹이 적고, 결과도 미약하다고 생각한다. 몇몇 사람이 말하는 한국성은 그 사람의 생각일 뿐, 그것이 대표성을 띨 수는 없다. 이런 문제의식이 어쩌면 한국에서 건축을 하는 출발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국성도 결국 아이덴티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DNA는 타자인 유럽이나 미국, 인도네시아 건축가와 다르다. 그 차이를 찾다 보면 자연히 한국성에 대한 부분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물의 수명 이미 여러 나라에서 인구가 줄기 시작했고, 감소 속도가 빨라졌다. 이는 지금 지어지는 건물을 쓸 사람이 사라진다는 의미다. 일본도 1970~80년대에 소방서, 경찰서와 같은 관공서를 많이 지었는데 다수가 통폐합되었고, 빈 건물은 흉물로 남아 슬럼화 됐다. 그래서 바바 마사타카(도쿄R부동산) 같은 사람이 등장해 공간이 필요한 사람에게 빈 관공서 건물을 렌탈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사회 인식에 대한 자각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에도 여러 갈래가 있다. 일본의 경우 1980년대 버블 경제 당시를 돌이켜보면 일반인들에게 건축가는 ‘이상한 건물을 디자인하는 사람’이었다. 평범한 건물을 설계하면 주목받지 못하니 어떻게든 튀는 건물을 지어야 했다. 그런 사회적 상황 속에서는 건축가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건축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난민을 위한 셸터 디자인을 이야기하며 공적 역할을 해냈다. 그러면서 시민들이 건축가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어려움을 함께 겪고 나서 일본 사회에서 ‘이웃, 연대, 관계’가 강해졌다. 국내에서는 세월호 사고 당시 ‘우리 사회에 속한 전문가로서 이러한 대형 사고를 외면하는 게 맞는가’라는 사회적 물음에 조성룡 선생이 나서서 배 모형을 제작함으로써 사회 문제를 공론장으로 이끌어냈던 예를 떠올릴 수 있다.
공고한 아파트 방벽 현재는 모든 유형의 집합주택에서 거주자 간의 관계가 이미 다 끊어져 있고, 그것이 익숙한 상태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사는 방식이 과연 좋은지, 불편한 것은 없는지, 사회적인 문제가 생길 여지는 없는지, 그런 문제를 대비해서 건축가는 어떤 부분들을 준비하거나 제안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또 한편으로는 과연 ‘세대 또는 사람과의 관계’처럼 저층형 집합주택에서 이야기하는 이슈를 아파트로 대표되는 고층형 집합주택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인가도 생각해봐야 한다.
두 번의 데뷔: SKMS 연구소, 무진도원 사이건축에서 일을 시작하던 때 내가 무엇에 관심을 두었는지 되돌아보았다. 그때는 경험도 없었고, 내가 처한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학원 때 관심을 가졌던 단어와 내용, 논문 주제를 떠올렸었다. 그게 ‘역설(paradox)’이었다. 그것을 공간적으로 해석했던 것이 ‘반고정 공간’인데, 내부도 아니고 외부도 아니고, 위도 아니고 아래도 아닌, 내가 쓰는 공간도 아니고 네가 쓰는 공간도 아닌, 애매한 공간이었다. 이게 내 안에 DNA처럼 있었던 것 같고, 최근 작업에도 드러난다.
관계 설계 건축가가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설계 뿐만 아니라 포괄적인 관심을 바탕으로 기획부터 관리까지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가장 요구되는 것은 기획력이다. 건축가는 물리적 공간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 구체적으로 1층 근생에 입주할 업종을 고민하고, 적절한 입주자를 섭외하는 영역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네를 구성하는 차원에서 이 건물에 무엇이 필요한지, 그것을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무엇을 취해야 하는지를 건축가가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단지 사업성 분석 결과나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상가나 상점을 입주시키는 게 아니라, 동네를 다시 만들고 이웃 관계를 재조직하기 위한 중요한 거점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일종의 큐레이션을 하는 것이다. 건물 프로그램에 따라서 건물 디자인은 물론이고 구성, 유형, 쓰임, 모두가 달라진다. 그래서 우리 관심의 범주는 개인의 관심사보다는 훨씬 더 넓고, 사회적 관점이 강하게 들어간다. 통칭하기는 어렵지만, ‘사회적 건축’, ‘관계 조직에 일조하는 건축’이 우리가 취하는 태도이자 방향, 관심이다.
공예와 조형 시간이 축적됨에 따라 내 성향이나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변화해왔다. 사이건축에서 SKMS 연구소를 할 때만 하더라도 대학원에서 배운 피상적인 개념을 앞세워 설계했었다. 그 다음에는 가구, 조명, 손잡이, 디테일처럼 손으로 만들거나, 다양한 재료에 대한 쓰임을 말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조형대학 학부 시절, 큰 기계 톱으로 나무와 쇠를 자르고, 돌을 깎고, 흙으로 도자기 빚는 작업을 4년 내내 하다보니 그런 것이 내게 친숙했고 점차 건축과 접점을 살리게 된 것이다. 빛을 쓰는 방식과 조형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이런 접근법을 통해 시각적으로 독특한 아이덴티티가 드러나기도 하고, 쓰임으로 직접 연결되는 것이 자극적이어서인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었다. 최근 지인들이 나의 예전 작업에서 두드러졌던 공예적인 부분을 짚으며 ‘그런 접근법을 좋게 봤었는데 왜 더 이상 하지 않는 거야?’라며 아쉬워하곤 한다. 분명한 것은 그 관심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새로운 관심사와 중첩되거나 조연처럼 뒤에서 받치고 있을 뿐이다. 매 프로젝트마다 조형에 대한 관심이나 표현, 제스처가 분명히 있고, 가능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다만 이제는 조형에만 집중하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에이라운드의 건축 하면 건축의 형상이나 스타일보다 어떤 친밀감이 먼저 떠오른다. 그것이 건축물이 풍기는 분위기인지 그것을 만든 사람이 주는 인상인지는 약간 혼란스럽지만, 왠지 모를 호감의 기운이 에이라운드의 건축 주위를 두르고 있다. 건축의 느낌이 친밀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새로 들어선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위화감이 없고, 위압적이지 않고, 왠지 아는 곳 같고, 언젠가부터 쭉 거기 있었던 것 같고, 편안히 머무를 만하고, 자꾸 말을 건네는 것 같고, 좀 더 지나면 팔짱을 낀 마냥 거리감이 사라지는, 그런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