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는 2013년부터 시작한 연작으로, 다양한 인간이 한 공간 안에서 만들어내는 운율에 주목한 작업이다. 고층 아파트의 꼭대기에서 각자의 차림새와 보폭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다가, 나름의 반복적인 패턴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크게는 다양한 군중의 모임과 흩어짐이 있고, 좀 더 세밀하게는 각각의 신체가 내뿜는 집중과 분산의 이미지가 있다. 각 이미지가 드러내는 것은 군중의 삶과 몸체의 방향성이다. 그러나 수분이 모두 증발하면 물기가 사라지면 어딘가로 뿔뿔이 흩어지고 마는 흙처럼, 사람의 움직임도 하나의 분명한 윤곽으로 잡히지 않는다.
비탈진 달동네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 주택 골목을 따라 걷다가 순간 맞닥뜨린 거대한 암벽. 놀랍게도 서울 한복판에 기이한 암릉과 그 아래 작은 절 안양암이 자리 잡고 있었다. 새롭게 이사 온 동네와 친해지기 위한 산책길에서 마주한 안양암의 첫인상이다. 서울시 종로 한복판에 있는 낙산은 한양 옛 도읍의 좌청룡으로 산 대부분이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제법 기운이 강한 골산이었다. 지금은 정상까지 주택들이 빼곡히 들어서 본래의 모습을 알 길이 없지만, 과거 낙산 정상에서 흘러나온 암맥이 남동 방향으로 힘차게 흐르다 평지와 만나는 암릉에 이 초현실적인 안양암이 자리한 듯 하다. 낙산의 동편에 이웃하고 있는 동망봉-숭인 근린공원에 오르면 꼬리뼈처럼 남아 있는 낙산의 안양암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로서 개인이 온전한 책임을 지는 전시를 4회 경험했다. 그 전시장 네 곳 중 세 곳이 사라졌다. 명동, 홍대 앞, 역삼동, 연남동. 전시장이 있던 위치엔 현재 다른 공간이 들어섰다. 서울은 ‘성인이 되어 태어난 집을 찾아갔는데, 변해버린 동네를 마주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서울에서 태어나 꽤 많은 이사를 다녔고, 오래 머문 동네가 없어서 기억은 조각나 있다. 30년을 넘게 살았던 경험은 서울사람이라 말할 수 있는 조건일까? 최근 4년 동안은 서울 이외의 주변을 돌아다녔다. 인천 2년, 고양 1년, 안산 1년. 매년 이사하며 짐을 줄이거나 작품들을 폐기해야만했다. 머문 시간의 증거물은 또 조각내어 담아야 했다. 서울에서 일시적으로 머물 공간을 구했고, 최소한의 짐을 꾸리고 있다. 3팀(명)이 함께 사용할 예정이며, 각각 거주/모임/작업을 위해 임대료의 1/N을 지불한다. 나는 입주 전 비어 있는 5일 동안 개인적인 전시를 하기로 결심했다. 이 전시는 그동안 경험한 개인적인 전시인 <이동을 위한 회화>(2008), <세대독립클럽>(2010), <일시적 기업>(2011), <new home>(2012)을 새롭게 살아가게 될 공간에 재구성하고, 현재의 열망을 단서로 남기는 방식을 택했다. 다시 서울에 머물고 작업하게 된다면 어떤 조각을 남기게 될까? 기억만 하게 될까? 흔적만 갖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