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주택의 사회적 현실 공동주택은 서울에서는 이미 80%가 넘는 주택 유형으로 공동주택에서 살지 않는 사람을 주변에서 찾기 어려운 환경이 되었다. 많은 사람이 공동주택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공동주택에 대한 개념이나 이웃에 대한 의미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한 건물에 살고 있지만 함께 사는 공동주택이라는 생각에서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물리적으로는 옆집이지만 전혀 대면이 없거나 관계를 맺지 않는다면 함께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개별 주택에서 원하는 프라이버시는 점점 강화되고, 함께 사는 공동주택에서의 공동체성은 우리 삶에서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공동주택은 도시에서 필연적인 건물이자 필수적인 생활 공간이며, 분야와 계층을 가로질러 모두의 관심과 역할이 한데 쏠리는 사회의 공통 기반입니다. 마치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어서 누군가는 만들고,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사고팔면서, 커다란 환경이 계속 응축,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진지한 논의 테이블에서 점점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만큼 이전의 논의들이 이제는 보편적 수준에 다다랐다는 반증일 수도 있고, 시장과 자본의 논리가 주거의 조건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정림건축문화재단은 우리 공동주택의 현재 상황과 가까운 미래의 모습을 오랜만에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렸습니다. 2023년에 진행한 <공동주택연구> 포럼에서는 ‘공동주택의 흐름과 공동체성에 대하여’라는 주제 아래 공동주택을 크기에 따라 아파트, 공유주택, 다세대다가구로 구분해서 살펴봤습니다. 이 책은 그 논의의 기록입니다.1.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의 60% 이상이 아파트입니다. 전국에 지어진 아파트는 사회적 경제적 관점에서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며 매일매일 이야기되는 주택의 형태입니다. 규모가 점점 더 커지면서 그 폐쇄성에 따른 문제점도 커졌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새로운 제안과 시도에 대해 함께 이야기했습니다.2. 10여 년 전 셰어하우스라는 새로운 주거 형태가 국내에 등장했습니다. 치솟기 시작한 1인 주거와 때마침 시작된 공유경제 등의 새로운 사회적 도구들과 맞물려 붐업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셰어하우스는 무브먼트 차원에서 비즈니스 차원으로 포지션을 옮겼고, 최근에는 코리빙하우스라는 네이밍으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새로운 실험적 유형이 기업화된 사업 모델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무엇이 달려졌는지, 무엇이 그 변화를 가능하게 이끌었는지 이야기했습니다.3. 다세대 다가구 주택은 많은 건축가들이 다양한 건축적 아이디어를 시도해온 공동주택 영역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주택의 ‘공동성’과 공용공간에 대한 세심한 연구와 설계를 볼 수 있는 사례가 아직 많지 않습니다. 소규모 민간 주택이라는 이 영역에서 우리는 어떤 공동의 집을 원하고 있는지, 불특정 거주자 그룹 안에서 공용공간은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했습니다.
한국성은 아주 오래전부터 건축계 내에서 자주 회자되는 단어임에도 누구도 그 질문에 대해 답을 하기 어렵고, 피하고 싶지만 항상 우리에게 질문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지금 현재로서는 ‘이건 한국성이야’라고 규정할 수 있는 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구든 한국성을 말하는 것은 가능하다. 다만, 다양한 관점의 한국성을 모았을 때 ‘대략 이런 것들이 한국성으로 읽힌다’고 정의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왜냐하면 다양한 생각과 문화가 합쳐져서 한국성을 이루는 것이지, 순수한 결정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것을 같이 논의할 수 있는 그룹이 적고, 결과도 미약하다고 생각한다. 몇몇 사람이 말하는 한국성은 그 사람의 생각일 뿐, 그것이 대표성을 띨 수는 없다. 이런 문제의식이 어쩌면 한국에서 건축을 하는 출발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국성도 결국 아이덴티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DNA는 타자인 유럽이나 미국, 인도네시아 건축가와 다르다. 그 차이를 찾다 보면 자연히 한국성에 대한 부분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물의 수명 이미 여러 나라에서 인구가 줄기 시작했고, 감소 속도가 빨라졌다. 이는 지금 지어지는 건물을 쓸 사람이 사라진다는 의미다. 일본도 1970~80년대에 소방서, 경찰서와 같은 관공서를 많이 지었는데 다수가 통폐합되었고, 빈 건물은 흉물로 남아 슬럼화 됐다. 그래서 바바 마사타카(도쿄R부동산) 같은 사람이 등장해 공간이 필요한 사람에게 빈 관공서 건물을 렌탈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사회 인식에 대한 자각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에도 여러 갈래가 있다. 일본의 경우 1980년대 버블 경제 당시를 돌이켜보면 일반인들에게 건축가는 ‘이상한 건물을 디자인하는 사람’이었다. 평범한 건물을 설계하면 주목받지 못하니 어떻게든 튀는 건물을 지어야 했다. 그런 사회적 상황 속에서는 건축가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건축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난민을 위한 셸터 디자인을 이야기하며 공적 역할을 해냈다. 그러면서 시민들이 건축가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어려움을 함께 겪고 나서 일본 사회에서 ‘이웃, 연대, 관계’가 강해졌다. 국내에서는 세월호 사고 당시 ‘우리 사회에 속한 전문가로서 이러한 대형 사고를 외면하는 게 맞는가’라는 사회적 물음에 조성룡 선생이 나서서 배 모형을 제작함으로써 사회 문제를 공론장으로 이끌어냈던 예를 떠올릴 수 있다.
공고한 아파트 방벽 현재는 모든 유형의 집합주택에서 거주자 간의 관계가 이미 다 끊어져 있고, 그것이 익숙한 상태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사는 방식이 과연 좋은지, 불편한 것은 없는지, 사회적인 문제가 생길 여지는 없는지, 그런 문제를 대비해서 건축가는 어떤 부분들을 준비하거나 제안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또 한편으로는 과연 ‘세대 또는 사람과의 관계’처럼 저층형 집합주택에서 이야기하는 이슈를 아파트로 대표되는 고층형 집합주택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인가도 생각해봐야 한다.
두 번의 데뷔: SKMS 연구소, 무진도원 사이건축에서 일을 시작하던 때 내가 무엇에 관심을 두었는지 되돌아보았다. 그때는 경험도 없었고, 내가 처한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학원 때 관심을 가졌던 단어와 내용, 논문 주제를 떠올렸었다. 그게 ‘역설(paradox)’이었다. 그것을 공간적으로 해석했던 것이 ‘반고정 공간’인데, 내부도 아니고 외부도 아니고, 위도 아니고 아래도 아닌, 내가 쓰는 공간도 아니고 네가 쓰는 공간도 아닌, 애매한 공간이었다. 이게 내 안에 DNA처럼 있었던 것 같고, 최근 작업에도 드러난다.
공예와 조형 시간이 축적됨에 따라 내 성향이나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변화해왔다. 사이건축에서 SKMS 연구소를 할 때만 하더라도 대학원에서 배운 피상적인 개념을 앞세워 설계했었다. 그 다음에는 가구, 조명, 손잡이, 디테일처럼 손으로 만들거나, 다양한 재료에 대한 쓰임을 말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조형대학 학부 시절, 큰 기계 톱으로 나무와 쇠를 자르고, 돌을 깎고, 흙으로 도자기 빚는 작업을 4년 내내 하다보니 그런 것이 내게 친숙했고 점차 건축과 접점을 살리게 된 것이다. 빛을 쓰는 방식과 조형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이런 접근법을 통해 시각적으로 독특한 아이덴티티가 드러나기도 하고, 쓰임으로 직접 연결되는 것이 자극적이어서인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었다. 최근 지인들이 나의 예전 작업에서 두드러졌던 공예적인 부분을 짚으며 ‘그런 접근법을 좋게 봤었는데 왜 더 이상 하지 않는 거야?’라며 아쉬워하곤 한다. 분명한 것은 그 관심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새로운 관심사와 중첩되거나 조연처럼 뒤에서 받치고 있을 뿐이다. 매 프로젝트마다 조형에 대한 관심이나 표현, 제스처가 분명히 있고, 가능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다만 이제는 조형에만 집중하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중간점검’은 2010년 전후 무렵 젊은 건축가로 호명되어 지금까지 꾸준히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중진 건축가의 심층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건축가로서의 깊이와 여유가 묻어나는 한편 여전히 치열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그때와 지금, 다가올 미래를 묻습니다. 그리고 건축가 개인의 관심사를 확장하여 건축계에 산재한 이슈를 함께 이야기합니다.
에이라운드의 건축 하면 건축의 형상이나 스타일보다 어떤 친밀감이 먼저 떠오른다. 그것이 건축물이 풍기는 분위기인지 그것을 만든 사람이 주는 인상인지는 약간 혼란스럽지만, 왠지 모를 호감의 기운이 에이라운드의 건축 주위를 두르고 있다. 건축의 느낌이 친밀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새로 들어선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위화감이 없고, 위압적이지 않고, 왠지 아는 곳 같고, 언젠가부터 쭉 거기 있었던 것 같고, 편안히 머무를 만하고, 자꾸 말을 건네는 것 같고, 좀 더 지나면 팔짱을 낀 마냥 거리감이 사라지는, 그런 것 아닐까.
주택 정책 한국은 새마을운동을 기점으로 경제 발전에 역점을 두고 미국 경제 발전 방식을 모델로 삼았다. 미국은 저금리 모기지론으로 1가구 1주택을 구매하도록 유도했고, 주택을 담보로 평생 이자를 갚아나가는 구조를 만들었다. 노동자들은 주택을 얻게 되지만 주택 구입을 위한 이자를 내기 위해 열심히 노동하게 되고, 이를 동력 삼아 국가 경제가 작동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후 일본도 이와 같은 방식을 도입했고, 1960년대 한국도 비슷한 방식을 도입했다. 그렇게 출발한 한국 주택 정책은 경제 성장의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존재하게 되었다. 이는 ‘어떤 주택을 공급할 것인가’, ‘어떤 주택에서 생활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간과하게 만들었고, 오랫동안 주택을 경제(재화) 수단으로 인식하게 했다. 현재 1가구 1주택을 전제로 한 내 집 마련 정책이 실패했다면, 그 실패는 단순히 경제 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이 파괴되었음을 뜻한다.
‘난초(難草), 식물난민’ 전시 정경 / 사진: 오재우 개망초, 바랭이, 방가지똥, 달개비, 무릇, 양지꽃, 쇠뜨기, 애기똥풀, 괭이밥, 질경이, 민들레, 강아지풀, 개구리밥, 마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