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8년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공동감독을 맡은 이본 파렐(Yvonne Farrell)과 셸리 맥나마라(Shelley McNamara)는 관대함과 인류애, 두 가지를 건축의 핵심과제로 규정하면서 ‘Free Space’(자유공간)라는 주제를 발표했다. ‘자유공간’을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기회와 민주화의 장이 되는 불확정적 도시 공간으로 정의한 두 사람은, 공적 공간 – 사적 공간의 교차와 공간의 공유를 통해 집단의 정치적 잠재력을 일깨우며, 사람과 장소 사이에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건축의 역할이라고 밝혔다. 이에 71명의 건축가와 63개의 각 국가관은 ‘자유공간’에 대해 저마다의 해석을 내놓았다.
우리는 지난 50여 년간 고도성장을 구가해왔다. 생산과 소비는 나날이 늘어 대다수 사람의 삶은 꾸준히 나아졌고, 내가 노력만 한다면 잘 먹고 잘살 수 있다는 신념도 견고해졌다. 그 결과 국내총생산(GDP) 4만 불 시대가 눈앞에 와있다. 그런데 과연 경제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우리는 점점 더 풍요로워질까? 역사를 돌아보고, 환경문제와 사회적 제약들을 고려해보면 이제 더는 과거와 같은 경제 성장과 번영은 기대할 수 없다. 그래도 그동안 경제가 성장했기 때문에 사회체제가 유지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경제성장만이 답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건축가이자 정림건축과 정림건축문화재단 설립자인 김정철 선생은 2010년 9월 27일 새벽에 타계했다. 향년 79세. 어느덧 7년이 지났다. 그의 뜻에 따라 다음 해 4월 26일 정림건축문화재단이 설립됐다. 그는 평생 신앙인으로서 ‘청지기의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복음에 빚진 자로서 한빛누리재단에 이어 정림건축문화재단을 만들어 나눔을 실천한 것이다.
도시 패러다임은 전환기를 맞고 있다. 고도 성장기의 중앙집권적 방식으로는 지금 도시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가 어렵다고 한다. 새로운 출구를 찾아야 하나, 주택과 토지 그리고 자본은 점점 소수에게 집중되고 있고, 이에 따른 불평등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여전히 시민 사회의 창의성은 억압되고 지역적 다양성은 간과되며 전통적인 토착적인 지식은 무시되고 있다. 생각만큼 도시의 삶에서 시민 주도, 공정과 평등으로의 변화를 경험하기 어렵다. 서울의 도시정책도 시민 다수를, 특히 힘없고 가난한 시민들을 서울 밖으로, 살던 지역 밖으로 내모는 데 개발 사업과 마찬가지로 도시재생 사업도 일조하고 있다. 세상이 바뀌어도 축출되거나 배제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도시가 서울이다.
공공미술은 공공의 문화 환경과 시민들의 예술 향유권 신장을 위해 도시 곳곳의 공개된 장소에 설치되는 미술작품과 활동이다. 이를 통해 시민들의 일상적 삶의 질이 향상되고, 함께 사는 공동체를 일구는 공동의 영역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지금, 여기의 공공미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 가까이에 서 있다. 서울에 설치되어 있는 대다수의 공공미술 작품이 도시와 사회 변화 사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논의를 공공의 문제로 소환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아름답지 못한 세상에 대한 저항 정신이 별로 없어 보인다. 공공미술 작품을 통해 함께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상상하고 성찰하는 공통의 무엇이기보다는 셀카 사진 수준의 안일하고, 동어 반복적이며, 지루한 상상력의 결과물이 더 많다. 아름답지 못한 세상을 초라한 상상력으로 가리 기에 급급하고, ‘대중적’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오히려 공공성에 해를 끼치고 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공동주택 공공미술 아트플랜 〈함께라는 방법〉의 과정과 결과물을 정리한 단행본입니다. 〈함께라는 방법〉은 독창(獨創)보다 공창(共創)의 의미를 좇는 라운드테이블을 통해 디자인, 미술, 건축, 무용, 사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이 모여 공동주택 커뮤니티 안에서 문화 · 예술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지점을 고민하는 공론장을 마련함으로써 공공미술의 새로운 형식을 제시해보고자 했습니다.
10년 넘게 한강을 건너 출퇴근을 하고 있다. 하늘을 가리고 서 있는 건물들을 지나다가 한강을 만나면 반갑다. 공원 벤치에서 멍하니 숲을 바라보거나, 뒷산에 올라 멀리 있는 도심의 복잡함을 마주할 때의 기분이다. 몇 분도 안 되는 시간일 때도 있지만 가슴에 쌓인 답답함이 풀리는 것 같다. 건물과 간판이 가득한 이 도시에선 잠깐의 쉼마저 궁핍하다.
비자발적 이주는 현재 전 지구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크게 기울어진 세상에서 약자들은 자기 삶의 터전으로부터 쉽게 내몰린다. 그들은 정치적 박해, 전쟁, 가난, 재난 등으로 인해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쉽지 않은 여정 뒤에도 비인간적인 차별과 맞닥뜨려야 하는 열악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 놓이는 사람들의 숫자는 나날이 늘어만 간다. 전 세계적으로 비자발적 이주민은 6,530만 명(2015년 기준, 유엔난민기구) 정도다. 시리아의 상황은 특히 심각해서 전체 인구의 절반이 난민이나 유민(流民)이다. 새로운 정착지를 찾는 기간 또한 장기화되고 있다. 물론 그들 가운데는 독일·프랑스·영국 등 부유한 나라에 정착한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 숫자는 200만 명 정도로 전체의 약 8%에 불과하다. 더구나 독일과 프랑스에서 테러가 발생한 뒤로, 난민을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걷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듯이 걷기 좋은 도시는 기능적인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게 하고,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만나게 한다. 스스로 루트를 짤 수 없는 옆길 없는 길은 그래서 재미없다. 잘 가꾼 길이라고 해도 일직선의 길은 한두 번 걷고 나면 ‘이제 됐다’는 생각에 그 길로 걷기를 멈춘다. 아무리 유명 건축가와 조경가 그리고 예술가가 참여했다고 해도, 엄청난 재원이 투입되었다고 해도, 그 길에선 조미료의 냄새가 난다. 목적지를 향한 길은 풍미는 약하고 시각만 자극한다.
자신이 살던 땅에서 내몰린 신원 미상의 존재에 대한 전시 두 개가 8월 7일까지 동숭동 아르코미술관 1, 2관에서 열린다. 《홈리스의 도시》와 《New Shelters: 난민을 위한 건축적 제안들》이 그것이다. 이 전시에서는 여기 분명히 있음에도 투명한 존재로 여겨지거나, 경계 밖으로 밀려난 줄 알았지만 여전히 이곳에 봉인되어 있으며, 제도권과 무관해 보이나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하는 존재들의 아슬아슬한 삶을 조명한다.
올봄은 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화사한 햇살도 노란 개나리도 멈칫거리며 뒷걸음칠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황폐한 사막이거나 짙푸른 바닷속 같은 세상에 과연 봄다운 봄이 찾아올 수 있을까? 가늠하기 어려웠다. 진실과 정의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이곳에서, 절절한 애원마저도 매몰차게 내처 버리는 차갑고 시린 이곳에서 봄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소위 ‘마감’이라는 걸 할 때면 생각이 많아진다. 이번엔 꽤 진지한 편이다. 그동안 무엇을 공들여 일구고 가꾸었는지를 생각했으니 말이다. 이웃과의 진정한 관계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세운다고 하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지, 한국 건축의 건강한 생태계를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삶의 기쁨과 고통에 당당하게 대면했는지 등을 자문해 보았다. 2011년부터 이 일을 시작했으니 어느덧 5년이라는 시간을 보냈기 때문일 거다. 잘한 일보다 못한 일을 주로 생각하는 편이라, 무엇 하나 제대로 한 것 없 당장 닥친 일을 겨우겨우 해내며 살아온 듯하다. 앞으로의 5년 동안에는 어떤 공통 이슈를 만들어내야 할까, 고민이 앞선다.
테이크아웃드로잉 한남점에서 석 달 동안 지낸 적이 있다. 4년 전 봄과 여름 사이의 일이다. 카페 2층의 삼 분의 일 정도에 천막을 이용해 노마드오피스를 꾸몄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상업공간이나 공공공간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새로운 형태의 사회공간을 만들려고 이곳저곳을 찾아다녔다. 이질적인 공간이 어느 일상의 공간에 침투했을 때 새로운 문화적 삶의 지형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창작자를 인터뷰하는 곳이자 사무실이자 누구나 반기는 환대의 공간이 콘셉트였다. 카페 손님들도 함께 앉을 수 있고 서로 섞여 이야기 나눠도 어색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절반은 닫혀있고, 절반은 열려있어 쉽게 경계를 넘을 수 있고 일단 들어오면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요즘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불려다니거나 불러 모으는 일이 잦아지고 작게 쪼개진 일들의 동시 진행이 하나의 이유다. 마감을 어기는 일이 잦고, 갈팡질팡하다 중요한 순간을 놓친다. 일이 틀어지면 조마조마해서 심장은 쪼그라들고 사정없이 바늘에 찔린 듯 아찔해지는 것은 보너스다. 그래서 새해 계획은 탄탄한 기획서를 쓰고, 그것을 바탕으로 착착 일을 진행하는 것이다. 잘 짜여 있어 누구도 쉽게 반박할 수 없고, 결과가 명확해 관계자들의 순전한 동의를 얻어낼 수 있는. 해서 지난해 사업들을 잘 정리하고, 2월 안으로 올해 기획안을 완성해 3월부터는 사업들을 계획대로 진행하려고 거듭 다짐을 했다. 물론 이렇게 하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연초부터 전시와 출판 일의 방향이 바뀌고, 2월이 되어서도 포럼(프로젝트원, 토요집담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좌충우돌 사건사고가 연속되면서, 단단한 기획안은 온데간데 없어져 버렸다. 더구나 지난해부터 공들인 코-워킹 공간 프로젝트의 진척이 더뎌 아직 기획안을 붙들고 씨름 중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1년 전에 재단의 사무실을 안국동에서 서촌의 통의동으로 옮기면서, 36제곱미터(약 11평) 크기의 공용공간인 ‘라운드어바웃’을 만들었다. 한 켠에 서가를 두어 평상시에는 동네 공부방이었다가, 매주 같은 시간에는 강연이나 공연이 열리고, 1층에 있으니 누구라도 지나다가 차 한잔 마시는 곳이면 더할 나위 없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큰 뜻을 갖고 시작했다기보다 동시대 건축가들의 말벗이 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막상 문을 열고 나니 찾아오는 사람이 예상보다 많아 어떤 날은 온종일 손님을 맞기도 했다. 처음에는 피상적 낙관론이나 위로의 말을 나눴고, 시간이 지날수록 진지한 고민거리가 하나둘씩 탁자 위로 올라왔다. 건축가 스스로 자신 작업의 본질을 돌아보게 하는 자리, 홍보가 아니라 발언하는 전시 기획, 도발적 문제제기의 미디어 센터, 젊은 건축가들의 베이스캠프 등의 주문이 그것이다.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는 작은 사랑방이 공통의 이슈를 고민하다보니 정치-사회적 공간으로 변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었고, 이곳에서 나누는 이슈는 건축에만 국한되진 않았다.
건축 저널들이 서로 비슷할 때가 있었다. 건축에 대한 내용과 접근 방식에 큰 차이가 없었다. 그달에 주목하는 건축가도 같고 사진과 간단한 소개까지 비슷해, “제호를 가리면 어느 매체인지 분간하기 어렵다”는 자조 섞인 말이 돌 정도였다. 건축가를 만나고, 사진을 찍고, 비평을 받아 매달 마감을 하지만, 동어반복 속에서 본질에는 접근을 못 할 때였다. 그 시절 작은 위안이자 가능성은 몇몇 독립 저널들에 있었다. 소수의 인원이 모여 한두 개의 주제를 깊게 파고 있는 그들은 단순한 정보 전달자의 입장 보다는, 주관적인 관점을 드러내며 생각이 같은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다. 언어, 이미지 그리고 편집 디자인으로도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중적인 매체도 아니고 논란의 소지가 있는 기획도 있었지만, 그 ‘다름’으로 인해 충성도 높은 독자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젊은 건축가’는 은밀한 포식자다. 올해로 22회를 맞이하는 ‘김수근건축상’에서도 그랬다. 최-페레이라건축(최성희·로랑 페레이라)의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이 최종 수상을 했고 프리뷰상에는 네임리스건축(나은중·유소래)의 <동화고 삼각학교>, EMA건축(이은경)의 <만리동 예술인협동조합 주택>, 스튜디오아키홀릭(정영한)의 <6×6 주택>, 유경건축(권경은·지정우)과 ANM(김희준)의 <파주 청석교회>, OBRA건축(Pablo Castro·Jennifer Lee)의 <삼하 유치원> 총 다섯 팀이 올라왔다. 1970년대 생 건축가가 대부분이다. 2010년 21회에는 조병수건축연구소(조병수)의 <땅집>이 선정됐으니 22회를 맞은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가상은 중간의 ‘한 세대’를 빼놓고 가는 느낌이다. 60년대 생이 바로 그 세대로 5년 전 공간사와 네이버에서 진행한 ‘한국건축을 대표하는 12인’ 중 10명을 차지하며 기염을 토할 때와 비교하면 아찔한 속도감까지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젊은건축가상’에 의해 더욱 견고해지고 있는 ‘젊은 건축가’라 불리는 70년대 생 건축가들을 본격적으로 주목할 때를 맞은 것일까?
이타미 준 선생과 장충동 근처에서 지인 몇 분과 점심을 먹은 적이 있다. 한정식집으로 기억한다. 선생은 조용히 식사하는 편이었고 꼭 필요한 부분에서만 말문을 열었다. 인터뷰 자리는 아니었기에, 선생의 과묵함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땅에서 얻은 거친 재료로 추상의 세계 -그것도 세련된 모더니스트로서- 를 추구하는 선생다웠다. 선생은 지역과 전통의 문맥에서 자신의 감각을 총동원해 설계하는 건축가이기에 더 깊고 넓은 의미를 가진 말들을 전할 것으로 생각했다. 오랜 시간 거센 바람을 헤치고 온 건축가와 잠시의 ‘언어적 소통’은 언제나 미적지근하니까. 또 한 번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사당동에 있던 <각인의 탑>에서의 저녁 자리에 있었던 적이 있다. 단순하면서도 강한, 원시적이면서도 미래적인 그 공간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내게 오롯이 각인되어 있다. 선생의 후기 작업인 <제주 프로젝트>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논리적이기보다는 감정선을 건드리는 강렬함과 원숙함을 느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으니, 그곳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의 오랜 희망은 이루어진 셈이다. 전시는 ‘소재의 탐색’, ‘원시성의 추구’, ‘매개의 건축’, ‘바람의 조형’과 같은 키워드를 통해 40여 년에 걸친 그의 작업을 되짚어보며 여러 겹의 문제를 던지고 있다. 아쉽게도 선생은 이미 세상을 떠났기에 남겨진 자료와 기억을 되짚어 이 지면을 구성했다.
올해 한국 건축계는 ‘없음’이라는 이슈가 지배했다. 학문적 제도적으로 겪고 있는 한국 건축의 정체성 혼란과 거울의 자리를 비워둔 채 사냥감 몰이에 급급한 현재 건축계 모습이 그 이유다. 지금이라도 한국 건축은 주체성을 갖고 공동의 규범을 만들어야 한다.
Q. 건축가를 ‘기획자’라고 말씀하신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사회 문제를 건축가 스스로 제기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이번 공모전에서 건축주를 직접 만나서 인터뷰하게 한 목적은 무엇인가요? 공모전 주제 선정의 구체적인 의도가 궁금합니다.
김정임 서로 아키텍츠 건축가 유걸 아이아크 대표건축가 신승현 아이아크 건축가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박성태 정림건축문화재단
남북한 건축가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해본 경험은 없다. 서울을 방문한 북한의 건축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미비하다. 그래도 최근 북한을 알려는 노력은 가시화되고 있다. 특히 새로운 세대를 중심으로 북한 도시민의 삶을 휴머니즘 관점에서 보려는 입장이 대세를 이룬다. 지난 5월 29일에 열린 학술대회, <평양, ‘도시’로 읽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참여했던 사회학자, 교통전문가, 건축가 등이 모여 이런 관심의 내부를 다시금 들여다보는 자리를 가졌다.1
주택협동조합이 새로운 주거공간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거론되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퇴보 이후의 삶에 대한 새로운 전망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망을 회복하여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고자 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주택협동조합에 대한 기초적이면서도 반드시 짚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신철영, 기노채, 전은호, 김란수 씨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공간』지가 공간건축의 지원 중단으로 폐간 위기에 몰렸다고 한다. 진위 여부를 떠나 건축과 디자인 전문지의 상황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어려운 경제ㆍ사회 여건에서 건축과 디자인 콘텐츠는 앞으로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가?’란 의문을 갖게 된다. 전문지와 신문에서 건축과 디자인 콘텐츠를 만드는 김광철 『그래픽』 발행인 겸 편집장, 이은주 「중앙일보」 기자, 정귀원 『와이드AR』 편집장, 구본준 「한겨레신문」 기자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2012 정림학생건축상 주제인, ‘5년 후 문을 여는 중저가 부티크 호텔’은 심사위원과 멘토 회의를 거쳐 선정되었다. 특히 현실적이고 상업적이라는 호텔의 건축 외적인 면과 주거로서 재미있는 주제라는 의견이 맞물렸다. 다음은 2011년 7월 5일 민성진 심사위원, 최영덕 멘토, 박성태 사무국장의 회의 내용이다. 이를 통해 공모전에 대한 입체적인 접근과 이해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먼저 뜬금없이 이상론에 입각한 비판부터 해보겠습니다. 우리 시대 건축은 점점 아방가르드 정신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건축은 더 이상 미래지향적이거나 신경증을 앓지도 않는 미지근하게 순응하고 타협하는 한통속, 즉 뜨겁거나 차갑지 않은 ‘중탕’이 되어 왔습니다. 어찌보면 오늘날의 한국 건축이 우리의 본질적인 정신과 삶에서 떨어지기 시작한 지는 꽤 오래되어 비판의 근거도 희미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건축이 삶에 대한 총체적인 질문을 던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시대를 분별하거나 가늠한 건축적 (건축가적)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요. 그저 부분적으로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우리 건축이 동시대성마저도 고민하지 못하고 마치 ‘5년 전’의 건축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었다는 평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