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공모 과열 전연재(마니) 경기침체로 민간 프로젝트가 줄다 보니 설계 공모 시장이 과열되고 있다. 최근 노원구 자전거센터 공모에 등록한 팀이 400팀이 넘었는데, 실제로 출품한 팀도 60여 팀에 달했다. 설계 공모 시장이 과열되면, 이것이 공정하게 치러진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생긴다. 60팀이 한 공모에 도전한다고 할 때, 각 팀은 최소 1천만 원 이상의 비용을 치르게 된다. 당선 팀 이외 나머지 59개의 사무소가 수천만 원의 손실을 보는 것이다. 사회적 비용이 크고, 이는 결국 열악한 근무 환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걱정스럽다.
일상건축사사무소는건축이 어렵지 않기를 바랍니다.건축의 어려운 담론을 떠나 개개인의 일상을 공유하고 그 일상을 건축에 담아내고자 합니다.
건축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면목이 없는 상태다.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은 자의 반 타의 반이겠지만, 여러 상황상 부수고 짓는 것보다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다시 쓰는 것이 조금씩 일반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가가 올라 공사비가 너무 비싸졌기 때문에 더 유리해지기도 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정부 정책도 환경을 더 생각하는 방향으로 만들어 갈 것이니 앞으로 시장도 점점 그렇게 될 것이다. 개인 건축주들에게서도 예전보다 그런 경향 변화가 명백히 눈에 띈다. 긍정적인 변화라고 본다.
데뷔작: 리빙 라이트 리빙 라이트(Living Light) / 자료 제공: 삶것 상암동 월드컵 공원에 10여 년간 유지되다가 2년 전 철거되었다. 강의 외에 다른 작업이 없던 시절이라 뉴욕과 서울을 비행기로 오가며 3년간 여기에만 몰두했다. 발주처는 서울시였고, 예산은 디자인, 제작, 설치, 운영을 포함해 약 1억 원 규모의 작업이었다. 파트너와 단둘이서 모든 과정을 직접 진행했다. 재미있었고, 지금까지도 관심 있는 분야와 맞닿아 있는 작업이다.
현실 세계의 건축 백상훈 김영준 도시건축(yo2)에서 8년 가까이 일한 것이 개소 전 주요 경력이다. 그전에 대학원에서는 구영민 교수님 밑에서 건축에서의 추상적 개념과 공간, 물성에 관해 공부했고, 현실 건축보다는 페이퍼 건축과 이론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았었다. 졸업 후에는 dmp 창립 시 멤버로 합류해 dmp 초기 주요작 IFEZ ARTS Center 및 노들섬 예술선터 등을 같이 했었다. dmp가 처음에는 50명 규모에 디자인을 추구하는 회사라고 생각해서 갔지만, 어느 순간부터 스케치 한 장에 담긴 의도를 추정해서 도면화하고 모형을 만드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사무소 규모가 커지면서 담론은 사라졌고 여느 대형 설계사와 비슷해지면서 설계가 시스템화 되어가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다. 그런 상황에 신물이 나서 영국으로 유학을 준비했고 바틀렛(UCL)에 입학하게 되었지만 개인 사정으로 그만 두었고, 일본에서 잠시 일할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내 위치가 너무 애매했다. 페이퍼 건축에 관한 공부를 한 데다가 대형 설계사 경험만 있다 보니 도면 한 장을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 그래서 국내 아틀리에의 작품과 도면을 찾아서 들여다봤고, 가장 눈에 들어왔던 게 김영준 도시건축의 작업들이었다. 그래서 그곳에 직접 일하고 싶다는 메일을 보내서 입사를 하게 됐다.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 설계! 이주한(피그건축) 결국 건물을 잘 만들어야 한다. 건물을 잘 만든다는 의미는 건물 내부 공간 조직을 잘해야 한다는 의미다. 형태도 물론 중요하고 경관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물 내부 공간의 구성, 배치, 프로그램은 결국 그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방식, 사회적인 여건을 반영한다. 밝은 다세대주택도 요즘 1~2인 가구의 임대 세대, 청년 주거 현실을 반영한다. 이처럼 동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공간을 만드는 게 건축이 하는 일이다. 그걸 잘하면 그게 민간이든 공공이든 상관없이 가장 큰 사회적인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소규모 신축 수요 증가 이주한(피그건축) 우리가 처음 개소한 2015년만 해도 젊은 건축가들이 많이 독립해 사무소를 열었다. 당시 경제 상황을 돌아보면, 그때부터 금리가 매우 낮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부동산에 돈이 많이 풀렸고, 민간 영역의 개인 건축주가 많이 생겼다. 우리도 이러한 시장 변화의 혜택을 받아 프로젝트를 여럿 했다. 작은 사무소, 젊은 건축가에게 차례가 올만큼 일이 넘쳤고, 덩달아 개인 건축주의 다세대주택 품질이 급격하게 올라갔다고 본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다. 정부 정책이나 사회 분위기가 부동산을 압박하다 보니 개인들이 쉽게 “건물 지어볼까?”하는 마음을 먹기 힘들어진 것 같다. 자연히 일 자체가 줄어든다는 느낌을 받는다.
독립, 젊을 때 몸으로 부딪치자 최영준 대학생 시설, 월간지 『C3 코리아』 국내 건축가 시리즈를 통해 서혜림, 김인철, 김영준 같은 건축가들을 접했고, 건축가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일하는 직업임을 느꼈다. 졸업 후 책에서 만났던 선생님을 찾아갔고, 김영준도시건축에서 실무를 했다. 그곳에서 건축주를 대하는 법, 건축가로서 해야 할 일 등의 기술을 습득하고 수련했다. 거기에는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
건축가로서의 매력 김경도 대학교 3학년 때 설계스튜디오 선생님이 허서구 교수님이었다. 졸업할 즈음 교수님께서 “취직했니? 갈 데 없으면 그냥 우리 사무실로 와라” 말씀하셨고, 그렇게 첫 사무소에 들어갔다. 거기에서 3년 4개월 정도 일했는데, 함께 일했던 김재경 한양대학교 교수가 유학 준비를 하며 내게도 유학을 떠나라고 계속 권했고, 나도 마음을 굳힌 뒤 유학 준비를 해서 스위스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ETH)으로 갔다. 어학연수 1년을 포함해 3년 정도 공부하다가 여러 사정으로 졸업하지 않고 2011년에 귀국한 뒤 바로 사무소를 시작하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독립 고영성 솔토건축에서 실무를 시작했고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대형설계사로 옮겼지만 큰 규모의 회사가 나와는 맞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프로젝트를 받아서 독립하게 됐다. 처음에는 인테리어부터 직접 시공까지 다양한 일을 했다. 현장에서 시공할 때 기능공 옆에 붙어 지내다 보니 사무실에 앉아있을 때보다 실무를 많이 익힐 수 있었다.
모든 공사가 끝난 뒤에야 건물을 만나는 편집자이기에 그 탄생의 순간을 알 길이 없다. 다만 상상할 뿐이다. 건축가와 클라이언트가 만나 어떤 인사로 대화를 시작할까, 클라이언트는 어떤 단어로 자신의 꿈을 설명할까. “요즘 사람들은 뭘 좋아하나요?” “요즘 거기가 유명하던데 그곳과 비슷하되 더욱 멋진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또는 사진을 빼곡하게 담아 놓은 폴더를 열어 보이며 “저는 이런, 이런 모습의 건물을 짓고 싶은데 어떨까요?”라고 운을 떼지 않을까. ‘건축은 시대의 거울’이라는 격언처럼 둘은 마주 앉아 먼저 사회를, 오늘의 트렌드를 논하리라.
공공일호 조재원 2000년 샘터사에 입사한 박은숙 경영이사가 ‘앞으로 건물을 손볼 일이 계속해서 생길 텐데 원형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료가 필요하다’라는 생각에 하나둘씩 모은 자료가 기존 건물에 대한 자료로 거의 유일했다. 그 속에는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받은 청사진 도면을 비롯해 임대인과의 계약, 그동안의 다양한 규모의 개보수 공사 발주서 등이 있었다. 우리는 자료 꾸러미 일체를 넘겨받아 연대기를 파악하고 공란을 추적하며 건물의 변천사를 정리해나갔다.
허서구 마포석유비축기지의 석유탱크에 들어서는 순간 높이도 높이거니와 넓은 면적, 소리의 울림, 철판을 뚫고 들어오는 빛줄기 등 이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공간감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이를 일컬어 ‘동굴’이라고 불렀다. 그 상태를 고스란히 인정하고 시작하겠다는 뜻이었다. 리모델링 설계에서는 기존 공간의 환경이 설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건축가가 어떤 기능을 설계할 때 본인의 경험 데이터를 벗어나기 힘들다. 그런데 ‘동굴’은 이미 그걸 뛰어넘어 존재하고 있으니까, 건축가가 그 환경을 극복해가는 과정이 디자인적으로 감성적으로 더욱 풍요로워질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믿은 것이다. 가로수길처럼 젊은이들 사이에 떠오르는 장소에 왜 리모델링이 활성화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지금 짓는 집들과는 다른 스케일감이나 좁고 높아서 느끼는 공간의 깊이감이 매력적이어서인 것 같다. 때로 묵은지가 필요한 요리가 있듯이 리모델링은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경제적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공일호 조재원 프로젝트에 착수하고 가장 크게 든 감정은 일종의 두려움이었다. ‘한국 근대건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김수근 선생의 작업을 고치는 역할을 맡았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바꿔야 할지 가구만 새로 넣는 식으로 최소한으로 손대야 할지 건축가로서 내 위치를 어디에 두느냐를 놓고 고민이 컸다. 결론은 ‘어떻게 계획할까’라는 질문보다 ‘어디에서 시작할까’라는 질문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질문의 방향을 바꾼 뒤로는 어렵지 않았다.
구산동도서관마을 최재원 연면적이 설계 계약 당시에는 1,876㎡이었는데1 준공 당시에는 2,550.25㎡로 늘었다. 건물끼리 연결하는 디자인 영향도 있지만 최초로 연면적을 산정할 때 발코니 면적을 누락한 탓이다. 그 값이 더해지면서 설계 업무량도 늘어났다. 현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측량 데이터가 있어야 건축가는 합리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이와 같은 운영적인 측면은 보완이 필요하다.
플레이스원 김찬중 최대 용적률, 최소 공사기간, 최소비용 이 세 가지는 흔히 클라이언트가 건축가를 압박해오는 대표적인 이슈다. 이중 최소 공사기간과 최소비용은 민간시장에서 클라이언트가 리모델링을 선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신축하면 토목 및 골조 공사기간만 셈해도 수개월이다.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10~12개월이 소요되는 신축 프로젝트를 리모델링한다고 가정하면 최소 6개월 가량을 단축시킬 수 있다. 기간이 짧아지면 비용도 줄어든다. 우리가 다른 산업군의 제작 기술에 관심을 키우는 것도, 공법도 습식보다 건식을 선호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주한프랑스대사관 조민석 준공 당시 사진에서 대사 집무동 지붕을 보면 젊은 김중업 선생이 구조적으로 상당히 과감한 시도를 했음을 엿볼 수 있다. 콘크리트 면을 4.5m 간격의 기둥 4개가 들어 올린 형식에 모서리는 버선코의 맵시처럼 산뜻하게 하늘로 솟은 모습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현재는 네 처마의 가장자리 라인을 따라 기둥 총 8개가 추가됐고, 모서리는 곡선의 흔적이 사라져 평면적인 삼각형으로 접어 놓은 듯한 모양새에 가까웠다.1 원형의 우아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1층 필로티는 기존 PC 패널과 비슷한 형태의 것으로 막아 실내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대사 집무동을 전면 재보수 및 복원하는 계획을 세웠다.
공공일호 조재원 ‘스페이스에서 플랫폼으로의 전환’이라고 소개한 것처럼 한 회사의 사옥을 플랫폼으로 바꾸는 일이었다. 샘터사옥의 역사적·건축적 맥락을 이어가며 동시에 플랫폼으로서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고민했다.
공공일호 조재원 2017년 6월 17일 샘터사 김성구 대표의 인터뷰 글로 ‘샘터사옥이 그 가치를 존중해 줄 매수자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요지의 기사가 보도됐다. 평소 미래세대를 위한 실험 공간에 관심이 있던 클라이언트는 기사를 읽고 ‘이를 기회로 삼아 가치 있는 건물에 혁신적인 테넌트를 더해 공간을 새롭게 바꾸는 프로젝트를 해보자’고 생각했다고 한다.
2012년. 아름지기에서 주최하는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 공모전에 참여했다. 이도은과 임현진이 함께한 첫 번째 작업이었고, 우리는 ‘겹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