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구성원이라는 감각 김현종(ATELIER KHJ) 건축가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다. 건축가 또한 사회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지만, 건축가에게 더 많은 사회적 역할과 태도를 요구하는 것에는 공감하지 않는다. ‘건축가로서 다른 분야의 사람들보다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는가?’라고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면 아닌 것 같다. 공공 프로젝트로 사회가 기대하는 건축가로서의 역할을 해낼 수도 있겠지만, 공공 프로젝트는 현상설계공모를 통해 당선되어야만 작업할 수 있기에 그 기회가 한정적이다. 나와 내가 이끄는 ATELIER KHJ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도시 전반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문화적 경험을 우리의 시각으로 전달하려고 한다. 그 경험의 형태는 건축이나 공간, 가구, 전시 등이 될 것이고, 사람들에게 우리의 시각을 전달하는 것으로 사회적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지 생각한다.
돌돌돌 얼마 전 트위터에서 떠내려오는 이미지들 사이로 성당 앞에 걸린 “모든 돌은 천국에 갑니다”라는 문장을 보았다. 모든 돌이 천국에 간다니 천국이 있기는 한 지 내가 천국에서 기다릴 수 있을지 돌에게도 영혼이 있는지 죽음도 있는지 모든 돌이 착한지 신은 이름 없는 돌을 무엇이라 부를지 천국에도 중력이 여전해서 돌이 언제나처럼 가장 아래에 자리 잡을 것인지 신중히 따져봐야 할 문제들이 산적하지만 여기는 건축신문이니 세부적인 논의는 잠시 미뤄 놓겠다. 나는 이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모든 돌,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것들에 나름의 생기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것들이 주고받는 생기 사이로 공명하고 싶다는 소망, 이 모두의 영원한 안녕을 바라는 불가능한 사랑의 마음, 그리고 세상에서 비인간적인 건 인간밖에 없다는 인간화 된 자연에의 각성 말이다.
일상건축사사무소는건축이 어렵지 않기를 바랍니다.건축의 어려운 담론을 떠나 개개인의 일상을 공유하고 그 일상을 건축에 담아내고자 합니다.
라이프건축은 황수용과 한지영이 2016년 서울 부암동에서 시작한 작은 건축가 그룹이다. 우리는 라이프를 시작하기 이전에도 다수의 공모전을 함께 작업했고 좋은 결과를 얻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그 신뢰라는 것이 두 사람이 같은 방법론과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굉장히 다르다. 쉽게 설명하자면, 황수용은 도시나 사이트의 경관, 주변과의 관계에서 건축 설계를 시작하고, 한지영은 내부의 프로그램이나 동선, 사람이 건축 공간에서 경험하는 감각으로부터 설계를 시작한다. 어느 쪽에서 시작하든지 다양한 지점에 대해 서로를 설득하고 인정하며 결국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 나간다.
ATELIER KHJ는 이제 막 5년을 넘겼다. 아직 호기심이 많고 여러모로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우당탕거리는 과정 속에 크고 작은 일들을 진행했다. 일의 규모와 상관없이 무엇이든 쉽게 생각하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런 마음가짐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미끄러지는 공공성 공공건축과 공공성은 비슷하지만, 별개의 문제다. 공공건축 시스템 내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면 공공의 돈으로 공공을 위한 프로젝트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누구의 돈인지 모를 돈으로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를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느낀다. 또한, 지금 상황에서는 건축가가 너무 많은 희생을 하면서 일을 해야 한다. 일단 건축가와 발주처가 생각하는 좋은 공공공간이 너무 다르다. 건축가들은 공공에 개방된 공간을 설계하는데, 관에서는 안전 때문에 그렇게 하지 말자고 했다는 이야기는 너무 많다. 다음으로는 공공건축 작업에 책임 없이 한마디씩 얹는 플레이어들이 너무 많다. 심의를 말하는 게 아니다. 다양한 유관 부서의 요청이 잘 관리되어 전달되지 않고 산발적으로 내려오는데, 공모전을 통해 당선된 건축가가 그것을 다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이유로 굳이 공공 작업을 안 해도 된다면 그 고생을 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더 힘이 생겨서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전까지는 관심 없다.
주체적인 건축가로 서기 전진홍 계획된 독립은 아니었다. 당시를 되돌아보면, 재직 중이었던 공간그룹의 법정관리 사태는 내게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전 세계를 누비며 다국적 회사로 운영되는 모델이 잘 작동될 수도 있지만, 건축가가 거대 자본의 흐름에 기대어 사무소를 운영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적 모델이 필요하지 않을까 스스로 많이 묻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와 더불어 OMA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 세대로, 클라이언트가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개인의 관심사를 연구하고 생각을 발전 시켜 나아가는 능동적인 건축가의 모습을 그렸던 것 같다. 이렇게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건축가로서 내적 논리를 탄탄하게 갖추어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공사 현장의 포크레인을 좋아했다. 길을 걷다가도 공사 현장이 나타나면 발걸음을 멈추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포크레인의 모습을 몇 시간이고 서서 구경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내가 나고 자란 인천의 동네에서는 목재공장들도 쉽게 볼 수 있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공장 앞에 쌓인 자투리 나무 조각들을 주워와 이것저것 만들곤 했다. 건축가가 되지 않았다면 목수가 되었을 것이다.
2009~2019 접점 학부 시절 읽은 커트 행크스의 『재미있는 디자인 여행』이라는 책에는 인상적인 다이어그램이 있었다. 작은 사물부터 건축에 이르는 다양한 스케일의 영역이 겹쳐져 있는 스케치였다. 명쾌함과 모호함이 공존하는 그의 아날로그 스케치는 건축과 디자인에 관한 대화를 시작할 때 사용할 수 있을 효과적인 도구처럼 보였다. 이것을 조금 더 정교하게 그려볼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 새로운 디지털 프로그램을 배울 때마다 재차 새롭게 그려보곤 했다.
미술관에서 열리는 건축 전시가 역사적으로 아주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건축이 미술의 관점에서 예술의 한 부문으로 규정되는 데 그치지 않고, 잠재적으로 미술을 재규정할 수 있는 이질적인 힘으로 언뜻언뜻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것은 건축이 미술에 대해 적극적인 공세를 펼친 결과라기보다, 오히려 그런 분과 간 경계가 느슨하게 유동하면서 미술과 건축의 여러 행위자들이 각자 자신이 처한 위치를 인식하고 대처 방안을 모색하는 가운데 일어난 변화다. 그래서 관객 입장에서는 건축 전시가 보여주려고 했던 내용보다 그것이 의도치 않게 노출하는 전시의 맥락이 좀더 흥미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건축 행위의 목표가 지식 생산이라면 건축적 지식이 가장 순수하게 전달될 수 있는 통로는 아이디어가 건물로부터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전시 속의 건축적 상황이 아닐까? 1980년 처음 개최된 베니스건축비엔날레에서 <스트라다 노비시마(Strada Novissima)>라는 거대한 설치 작업에 포함된 건축가 중 한 명인 레온 크리어는 “내가 건물을 짓지 않는 이유는 내가 건축가이기 때문” 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자신이 건물을 짓지 않는 것이 저항적이고 대안적인 선택임을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건축 이론을 책과 전시라는 대안적 매체를 통해 실현하는 것을 선호했다. 답사를 통해 얻는 지식과 전시를 통해 얻는 지식은 동일한 영역 속에 존재하며 표현 수단이 다를 뿐이라고 가정한다면, 건축가의 의도가 최대한 간섭받지 않고 존중되며 외부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전시 공간 속에서 건축가의 작업은 더 온전히 구현될 수 있다. 물론 건물의 배경이 되는 지형과 주변 환경의 맥락 속에 품길 때 느낄 수 있는 신체적 또는 현상적 경험은 있다. 그러나 답사를 통해 기억되는 경험이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며 감상적인 반면, 책이나 그림, 설치 등 전시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지식은 한결 집중된 주제 의식과 더불어 시대와 사회적 관념 속에서 편집된 명료하고 생산적인 지식일 수 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이 최근 건축 전시의 수와 규모가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으며, 이를 통한 건축의 지적 세력이 무서운 속도로 확장되고 있는 것 같다. 건물보다 전시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면서 누가 다음, 어느 비엔날레의 큐레이터로 선정될 것인가에 대한 루머와 추측들이 건축계의 뉴스거리가 된 것이 사실이다.
전봉희는 2013년부터 발행되기 시작한 목천건축아카이브의 구술집 시리즈 서문을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전 세대의 건축가를 갖게 되었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대단히 압축적인 표현이다. 30대에서 80대까지 세대별 건축가가 모두 있다는 이 간단한 사실에서 많은 것을 추출해낼 수 있다. 현대 건축 초기의 주요 인물 가운데 박길룡(1898~1943 )은 45세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박동진(1899~1980 ), 이천승(1910~1992 ), 장기인(1916~2006 ) 등은 모두 80세 이상 생존했다. 그러나 말년의 그들이 건축가로서 당대 담론에 끼친 영향은 거의 없었다. 박동진은 1950년대에, 이천승은 1960년대 이후 담론의 장에서 목소리를 확보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들은 한 세대로 불리기 힘들 만큼 대단히 예외적인 소수였다. 공교롭게도 나상진, 김중업, 김수근은 비교적 이른 나이인 50, 66, 55세에 타계했다. 그동안 한국에는 나이 든 건축가가 없었다. 2010년대 들어서 70~80대가 된 일군의 1930년대생 건축가들이 처음이다. 이들은 해방 후 한국의 대학에서 현대 건축을 공부하고 1960년대 이후 독립해 자신의 사무실을 일구었으며, 설계 현장에서는 멀어졌더라도 현재까지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는 세대다. 국가의 경제 성장과 개인의 생애 주기가 일치한 세대이기도 하다. (이전의 양식 건축 등과 구분되는 ) ‘현대 건축’ , (몇몇 개인이 아니라 집단으로 불리는 ) ‘세대’ 등의 의미를 따진다면 이들이 어쩌면 온전한 한국 현대 건축 1세대다. 드디어 한국에서 현대 건축이 늙기 시작한 것이다. 이 늙음은 정확히 젊음과 공명한다. 2010년대 젊은 건축가 현상은 이전과 비교하면 무척 낯선 것이다. 해방 이후 한국 건축사는 젊은 건축가들의 연대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사당 현상설계에 당선되었을 때 김수근은 20대 후반이었고,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에서 초대형 국가 프로젝트를 도맡아 진행했을 때도 아직 30대였다. 김중업은 42세에 주한 프랑스대사관을 설계했다. 이희태가 국립극장 설계를 맡았을 때도 45세에 불과했다. 김기웅이 독립기념관, 김석철이 예술의전당 현상설계에서 당선되었을 때도 채 40이 되지 않았다.1 1980년대 말 새로운 기치를 내건 건축가 모임, 4.3그룹은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30~40대 건축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 모두 지금이라면 젊은건축가상 응모 대상자들이다. 그러나 1960년대에도 1990년대에도 저들을 두고 젊은 건축가라고 부르는 일은 드물었다. 모두가 젊을 때 젊음은 젊음으로 호출되지 않았다. 젊음은 나이 듦을 배경으로 할 때만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현대 건축이 나이 든 2010년대 그리 젊지 않은 40대 건축가는 젊음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한국에서 건축 전시가 이토록 빈번한 때가 언제 있었을까.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건축 전시를 보는 것도 흔한 일이 되었다. 2014년 겨울에는 서울에서만 크고 작은 건축 전시가 15개나 열리기도 했다. 2014년은 베니스건축비엔날레에서 한국관이 황금사자상을 받은 해다. 2017년에는 제1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개막하고 UIA서울세계건축대회가 열렸고, 그해 가을 한국을 대표하는 국공립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은 대형 건축 전시를 열었다. 2018년에는 서울도시건축센터가 문을 열었고, 올해에는 구 국세청 별관 부지에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이 개관했다. 이러한 행사에 대한 피로도가 쌓일 때쯤 건축 전시에 대한 비평적 검토가 제기되었다. 이제 전시를 만드는 것을 넘어서 결과에 대한 냉정한 분석을 요청하고 있다. 실제 건물을 가지고 올 수 없는 건축 전시는 왜 하는가? 무엇 때문에 건축 전시는 이토록 설명적인가? 건축 전시는 아카이브 전시 이상을 넘어설 수 없을까? 모형과 도면, 사진 외에 보여줄 수 있는 전시 매체는 무엇일까? 등 여러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글은 이러한 질문들의 출발점을 생각하고, 대답하기 위해 들어가는 여러 입구에 대한 이야기다.
전 세계가 전시의 시대에 돌입했다. 21세기 전후를 기점으로 관광 시장이 폭발적으로 팽창하면서 대형 박물관과 미술관의 관객 수가 급성장했다. 대영박물관, 미국의 스미스소니언과 메트로폴리탄뮤지엄, 대만의 고궁박물관과 같이 역사, 유물, 과학 박물관이 관광객의 주 방문지이지만 테이트, MoMA, 퐁피두센터와 같은 근현대 미술관도 매년 400만 명 전후의 관람객 수를 유치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립현대미술관이 서울관 개관과 서울시립미술관의 지속적인 확장으로 백만 명 이상의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관객 동원력을 보여주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동시대 미술 전시가 글로벌 현상으로 확장되면서 비엔날레의 촉진제가 되었고 현재 200개 이상의 비엔날레가 전 세계에서 개최되고 있다. 건축은 확장된 전시 시장 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시의 붐을 함께 탔다. 이탈리아 국립21세기미술관(MAXXI )이 탄생하고, 프랑스 국립건축박물관이 재정비되고, 미국 현대 건축의 탄생지 시카고에서 건축비엔날레가 출범한 것은 건축 전시의 성장을 알리는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지방 정부들이 앞다투어 비엔날레를 창설했고,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와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등에서 건축이 일정한 역할을 해왔다. 시행착오와 기복도 물론 있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디자인 박람회로 바뀌었지만, 서울시가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를 창설했다. 건축 설계 시장이 축소되고 있는 상황에서 건축 문화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건축 문화 시장의 규모는 아주 작지만,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맥락에서 한국 건축에 대한 인식과 담론의 향방, 건축 아카이브와 컬렉션의 지속성이 달려 있는 중요한 시장이다.
건축큐레이팅워크숍을 시작하며 2019년 1월 정림건축문화재단에서 건축큐레이팅워크숍(이하 CAW )이 첫 문 을 열었다. 미술과는 다른 건축을 위한 큐레이팅 방법론을 고민해보고자 만들어진 이 자리는 6회 강의로 구성한 정기 워크숍을 거쳐 올해 여름 ‘도시 큐레이팅’ 을 주제로 한 후속 프로그램으로 이어졌다. 건축 분야 기획자들이 주로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건축가와 타 분 야 실무자들까지 모여 풍성한 논의를 나눴다. 그 시간을 기록으로 남기고, 함께 탐색했던 내용을 확장해보고자 이 책을 준비하게 되었다.
전시의 설정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은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수근 (1931 – 1986)이 2대 사장으로 몸담았던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의 흔적을 찾는 것에서 출발했다. 김수근은 1966년에 창간된 한국 최초의 문화예술지 『공간』을 만든 건축사무소 공간의 대표로 알려져 있으나 그의 기공 재임시절(1965 – 1969)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가 공간 소속의 건축가 중심으로 꾸린 도시계획부는 기공 안에서도 몹시 예외적인 조직이었다. 기공은 ‘한국종합기술’이라는 이름으로 현존하지만 현재의 기공에 당시 기록은 전무하다. 특히 건축 사업은 기공 역사에서 매우 주변적인 프로젝트이기도 했거니와, 이제는 한국의 원로 건축가가 된 당시 도시계획부 소속 건축가들 역시 오늘날의 기공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는 않다.
“그들은 건축이 아니라 미술관이나 갤러리 같은 예술 세계의 전시나 공간 구성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 신세대 건축가들을 저 혼자 ‘파빌리온 계열’이라고 부릅니다.”1
‘젊은건축가상의 유효기간’에 관한 원고를 청탁받고는 젊은 건축가에 대한 관심이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젊은건축가상 또한 10년이 넘었는데 왜 새삼스레 또 젊은 건축가일까 생각했다. 아마도 그 출발점에서 그들 세대와 지금의 현상에 대한 의심, 그리고 전환적 모색을 기대하는 것 같다. 유효기간이라는 말 자체가 모종의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젊은 건축가라는 계층이 상품화되고 지나치게 소모적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던 참이다. 이 상을 밖에서 바라보며 응원하는 한 명의 건축인으로, 그리고 젊은건축가상 단행본의 필자와 에디터로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냉정과 열정을 오가며 생각을 적어보려 한다.
미술관에서 건축전시를 보는 일이 이제는 생경한 일이 아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건축 전문 학예사를 통해 꾸준히 건축전시를 선보이고 있고, 꼭 건축전시가 아니어도 이미 건축 혹은 어반 이슈를 다루는 전시들을 최근 3,4년 동안 급증했다. 이번 좌담에서는 근간의 건축·도시 리뷰를 통해, 전시로서의 건축이 문화예술계와 일반 관객에게 소비되는 양상을 살핀다. 또한 담론을 일으키는 새로운 매체로서 그 가능성을 이야기 나눴다.
이번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의 한국관 큐레이터는 김성홍 예술감독을 비롯해 5명의 공동 큐레이터로 구성됐다. 이들은 수평적 구조 속에서 《용적률 게임: 창의성을 촉발하는 제약》(이하 ‘용적률 게임’)이라는 전시 타이틀을 통해 한국 건축의 주요 생성 원리를 탐구했다. 총감독 알레한드로 아라베나가 ‘전선에서 알리다(Reporting from the Front)’란 주제를 제시함으로써 건축가의 사회적 실천을 보고자 했다면, ‘용적률 게임’은 시장원리에 충실한 한국 건축의 단면을 드러낸다. 한국관 공동 큐레이터들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현장 인터뷰를 통해 들어봤다.1
《협력적 주거 공동체》 전시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두 달간 열렸다. 2만 명의 관람객을 맞은 이 전시는 순백의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9개의 제안을 담았다. 한번은 생각해봄 직한 현실적인 제안부터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제안까지 그 스펙트럼도 다양했다. 하지만 주거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을 바라는 사람에게는 완성도가 부족했고 상징적 작업으로써도 충분히 아름답지 못했다. 이 전시를 통해 큐레이팅 팀과 참여 건축가들은 무엇을 하려 했고, 무엇을 얻었을까? 이 시대의 주거 공간에 대한 강력한 주장은 어느 정도의 설득력을 가졌을까? 전시를 마무리하고 참여건축가와 큐레이터가 라운드어바웃에 모여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나눴다.1
건축 전시가 성황을 이루고 있다. 건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증가하면서 건축 문화 시장도 급격히 커지고 있다. «한반도 오감도», «매스스터디스 건축하기 전/후», «Our of the Ordinary» 전을 기획한 배형민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건축 전시에서 주제보다 선결되어야 하는 문제들로 큐레이팅 조직, 방법론, 그리고 태도를 다음의 명제와 함께 공론화하고자 한다. “전시의 시대는 방황의 시대이며, 탐색의 시대다.”
건축 저널리즘은 생기를 잃을 것이고, 건축 저널리스트는 곧 역사의 뒤편으로 퇴장할 것으로 전망되어 왔다. 이러한 격랑 속에서 『와이드AR』, 『공간』, 『다큐멘텀』 등 국내의 건축 저널은 자신만의 차별성을 유지하며 거센 바람에 맞서고 있다. 해외발 건축 프로젝트 소개 웹사이트의 붐 속에서도 종이 잡지의 생명력을 잃지 않고,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고군분투하는 이들 매체의 편집장을 초대해 현재 건축 저널의 상황과 고민, 그리고 한국 건축을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지난 한해를 돌아봤다.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한국관은 원래 남북 공동전시가 플랜 A였다. 하지만 지금 전시 중인 《한반도 오감도Crow’s Eye View: The Korean Peninsula》는 만일을 대비한 플랜 B이다. 이상의 <오감도烏瞰圖>에서 착안한 이 전시는 건축가, 사진가, 컬렉터, 화가, 디자이너, 비디오 작가 등 다양한 작업을 통해 지난 100년의 한국 건축을 조망했다. 특히 분단 이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각자의 길을 걷고 있는 남북의 건축과 도시의 공통점을 건축가의 상상력으로 탐구하여 “훌륭하게 이상하다wonderfully bizarre”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최근 많은 미술관이 건축과 디자인 전시를 가진다. 관해서 강조하는 융복합의 유행과 어느 정도 맞물려 있기도 하지만, 최근의 지식생산 체계 변화와 삶의 조건들이 변화하는 것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요 미술관 큐레이터들과 건축 전시 성황의 이유와 앞으로의 전망을 이야기 나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독일건축박물관(DAM Deutsches Architektur Museum)의 외형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9세기 빌라와 비슷하다. 반면 내부는 ‘집 속의 집’과 격자를 기본으로 한 담백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독일 건축가 O.M. 웅거스Oswald Mathias Ungers가 설계한 이 건물은 1984년 일반에 공개된 이후 건축전문박물관이자 건축 자료 보관소로 역할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건축과 사회의 매개자로 건축 자료 아카이빙, 새로운 건축가 소개, 다양한 분야가 섞이는 만남의 장소meeting place로서 수집과 전시, 출판 활동도 겸한다. 국내에서도 건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늘고 개발 열풍 이후 새로운 도시와 건축의 생각을 담아낼 건축박물관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건축계 내부에서는 한국 건축의 공동 규범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이에 동시대 건축에 대한 관심을 갖고 전시, 출판, 컨퍼런스 등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독일건축박물관의 피터 슈말Peter Schmal 관장을 이메일 인터뷰했다.
건물 대신 분위기가 공간을 만들고, 이야기 할 수 있게 궁리하는 건축가를 만났다. 건축가 최장원의 진지한 고민과 다양한 시도들은 우리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는 공간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그가 던지는 질문들은 공간 사용자의 내면과 공간을 매칭시켜 사용자가 건축가이자 디자이너가 되는 순간을 발견하게 한다. 질문생산자로서 건축가 최장원이 던지는 질문들을 곱씹으며 건축의 경계를, 건축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면 한다.
어느덧 한국 건축계도 ‘아카이브’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이어온 지 10여 년이 흘렀다. 학자들을 중심으로 아카이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 지금은 담론보다는 실질적인 사업을 토대로 건축 아카이브의 초석을 다지고 있는 단계이다. 단번에 그 성과를 낼 수 없는 아카이브 사업의 속성상 현재 주요 추진 기관은 건축도시공간연구소, 목천김정식문화재단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 등으로 각자의 성격과 정책 방향 아래 일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필자는 국립현대미술관 건축 아카이브 사업을 맡은 실무자의 일원이자, 최근 기획한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2013.2.28~9.22)1 전의 학예연구사로서 미술관이라는 제도권의 건축 아카이브가 갖는 성격과 의미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 글에서는 건축 아카이브의 구축 과정을 간략히 언급한 뒤, 특히 아카이브를 활용하는 한 방법인 전시 기획 안에서 아카이브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주목할 것이다. 여기서 한국의 건축 아카이브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미술관의 건축 아카이브를 촉발시킨 ‘고故 정기용 콜렉션’과 전시를 중심으로 아카이브라는 거대한 심연을 들여다보는 작은 실마리를 공유하고자 한다.
균열된 토대 위에서의 건축 건축전시는 이미 지어진 건축물을 가져올 수도 없고 이를 그대로 재현할 수도 없다. 베니스비엔날레 조직위원장인 파올로 바라타 Paolo Baratta가 2008년에 지적했듯, 오로지 도면과 모형, 그리고 다양한 표현방식으로 건축의 프로세스와 개념을 전달할 뿐이다. 작품을 통해 작가의 세계관을 드러내고 이를 세상에 직접적으로 던져내는 비엔날레 미술전과 달리, 비엔날레 건축전은 언제나 건축에 대한 아이디어, 건물을 짓는 행위, 실제 건물에 대해 간접적인 이야기를 할 뿐이다. 그렇다면 일종의 재현일 뿐인 전시가 우리에게 왜 필요할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의 한국관이 시작부터 심각한 비판을 받고 있다. 한 국가관이 명확한 메시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대형 건축 설계 사무소의 홍보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김일현 교수가 논란이 시작될 때 보내온 것이다.
지난 봄, 문화역서울 284에서 《오래된 미래》라는 시간의 축 위에 공간을 펼친 《건축한계선》 전시가 열렸다. 전시는 수많은 경계와 한계를 규정하는 건축의 많은 부분들을 뒤돌아보며 재성찰하고자 기획되었다. 14명의 건축가와 3명의 작가가 남긴 일상의 경계와 한계를 넘나드는 기록을 남기기까지 전시 기획 과정을 돌아보았다.
서울지역 여덟 개 건축학교의 주최로 《대학건축연합전시회》가 열렸다. 각 학교는 1:1 사이즈의 주거 모형을 제작해 전시했고, 나아가 건축영역 밖과의 소통을 시도했다. 이번 전시의 기획단 (연세대 이동민, 이주영, 이지웅, 백정엽)과 전시에 참여했던 세 학교(홍익대, 연세대, 이화여대)를 인터뷰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