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임금님의 근사한 옷에 관한 고찰
안수인
분량7,278자 / 14분 / 도판 5장
발행일2026년 5월 13일
유형에세이
챕터1. 어느 무명씨의 고백
나에게 건축은 생업이다. 실제로도 그러하고 또 응당 그러해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5년제 대학 졸업과 아뜰리에 실무 경험. 더 이상 털어낼 것도 없이 한껏 가벼운 내 프로필은 정확히 건축사 자격증을 따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을 대변한다. 건축가는 다른 어떤 직능과 비교해 절대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야 하며, 그것으로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사실 이 양생 과정은 그저 건축가의 여러 필요조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니 건축 전공자로서 설계로 벌어먹고 사는 것은 중요한 의미이다. 약간은 오기로라도 말이다. 내 업이 실체 없는 일이 될 수는 없으므로 어떻게든 생업을 꾸려야 했지만, 스쳐 지나간 몇몇 예비 클라이언트들은 포트폴리오 하나 없는 익명의 사무실(안 아키텍트 시절)을 유령 회사로 치부하곤 했다. 내 사무소가 ‘실체 없는 건축회사’였다니! 자존심이 상한다. 결국 지어낸 하나가 필요함을 깨달은 것은 비루한 생존 본능이었다. 안 될 일도 되게 해서 어떻게든 하나를 꾸역꾸역 지어냈다. 첫 건물을 설계하고 나서야 사무소 이름을 대표자의 이름 석 자로 바꿨다.
마냥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한 번도 해본적은 없지만)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의 플레이어가 된 것처럼 계정을 키워갔다. 무지막지한 해시태그 뭉치를 달다 보니 사람들이 제법 유입되는 키워드가 보인다. 예를 들면 #협소주택, #마당있는집은 사람들에게 매우 잘 팔리는 키워드다. 내 사무실은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현장에서 찍은 사진과 자랑거리들을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 게시한다. 문득 이 계정은 독이 바짝 오른 복어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를 짓고 소셜미디어에 전시하고 나니, 그것을 보고 또 다른 일이 하나 들어왔다. 그러자 어떻게든 지어냈던 첫 작업을 숨기고 싶어졌다. ‘초기 작업을 주절주절 늘어놓지 말고, 잘 숨기라’는, 지인의 진심 어린 조언을 들었다. ‘최선의 것을 추리고 정제하여 쇼윈도에 전시하라’는 말씀. 좋다! 완벽히 동의한다! 하지만 이상을 따라간 곳에서 나의 모든 포트폴리오는 증발하고, 매 순간 최신 프로젝트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어디까지 어떻게 숨길 수 있을까.
나는 도자기 장인도 아닌데, 왜 기껏 만든 도자기를 깨부수어야 하나. 내다 팔면 먹고살 수 있는데 여전히 고민이 된다. 가장 숨기고 싶은 프로젝트는 여태 각종 이력서에 수상 이력 한 줄을 채우고 있다. 고작 이런 얄팍한 몇 개의 프로젝트만 가지고 건축가랍시고 내세우기에는 아직 이르다. 뒷문으로만 몰래 드나들고 있었는데, 아뿔싸, 사무실 앞문을 누군가가 열어젖혔다. 이제 ‘등장’하란다. 큰일이다. 일단 밀린 빨래와 쓰레기는 옷장 안에 숨기고 페브리즈를 뿌린다. 아니, 잠깐, 이게 아닌가? 남은 도자기를 마저 깨야 하나, 아니면 깨진 도자기를 이어 붙여야 하나?
챕터2. 벌거벗은 임금님의 실체
어떤 프로젝트는 설계자의 의도와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땅 위에 세워졌다. 그 과정에서 지난한 회유와 협박으로 쌓아 올린 건축가의 노력은 무색해진다.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차마 깰 수 없는 도자기에 정성껏 이름을 지어준다. 이러한 어긋남은 일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떠들 때 오롯이 참담해진다. 내 고군분투를 전지적 시점에서 내려본다면, 그저 그런 젊은 건축가의 흔한 고민(물론 결코 입 밖으로 잘 꺼내지 않는)일지도 모른다. 모든 등장은 미숙하다. 그러니 모든 프로젝트의 이름을 잠시 리셋하고, 계약서에 썼던 첫 이름에서 시작하여 복기해 본다.
① 면목동 프로젝트: 일그러진 평면과 팔겠다는 욕심
동네에 빠삭한 시공사는 몇 개의 토지를 묶어 다가구주택을 지으려 했다. 하지만 주변 토지 매입에 실패했고, 남겨진 땅만으로는 도무지 수익이 나지 않았다. 그 해결책으로 떠올린 것은 ‘좋은 외피 디자인’이었다. 나는 건물의 수익성을 근거로 다양한 공간 단위로 조합하자고 설득했다. 충분한 대화가 오갔고, 일조사선에 잘린 틈을 덜어내 단위마다 각각의 외부공간을 두었다. 다양한 삶의 유형은 가변성 있는 가구로 구획했다. 시공사는 수긍했고, 그들이 원하는 수익성과 쾌적한 거주 공간이 잠시 공존했다. 하지만 착공 후 테라스가 실내로 편입되었다. 가벼운 벽체는 굳건하게 막혔으며, 오픈 슬라브는 임대 면적에 보태어졌다. 건축주가 시공사이니 그것으로 끝이었다. 건물은 곧 팔렸고, 나는 이 프로젝트로 ‘우리 동네 좋은 집 찾기’ 공모전에서 동상을 받았다.

② 상계동 프로젝트: 뭉개진 디테일과 증발한 시공자
일곱 식구의 한집살이는 조금 더 본질적인 ‘협소’주택이 된다. 구성원의 버블을 한데 모아 정북일조의 함수 안에 밀어 넣고, 여행가방에 넣는 파우치처럼 분류하고 압축하여 빈틈없이 차곡차곡 채워 담는다. 이런 부류의 설계는 가구 스케일과 견줄 법하다.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할 수 없다. 이 현장을 오간 횟수를 세보니 자그마치 70번이었다. 하나의 디테일을 구현하는 데 평균적으로 다섯 번 이상의 협의를 거쳤으나, 그 협의를 구현하기로 한 날마다 시공자는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임의의 날, 임의의 디테일이 시공되었고, 그것을 수습하는데 다시 다섯 번의 협의를 더 했다. 하지만 결국 수습되지 않았다. 높이와 너비가 서로 다른 계단, 서로 다른 재료의 경계에 등장한 실리콘, 외부로 노출된 배관은 의도된 것이 아니다.

③ 멕시코 프로젝트: 재료 복불복 게임과 롱디 커플
한참을 고심해 베이지색 석재를 골랐다. 그리고 몇 달 뒤, 짙은 붉은색과 밝은 주황색 석재가 격자로 붙어있는 엄청난 사진을 받았다. 체스판이 따로 없다! 당장 작업을 중단시키고 비행기표를 끊었다. 이 밖에도 시커먼 유리를 현장에 들여와 ‘이것이 디폴트’라 주장하는 사건이 있었으며, 삼단 폴딩 유리가 한 면에 겹치는 순간 검은 벽체로 탈바꿈하는 희극을 보았다. 갈색으로 도장한 원형 계단이 검은색 페인트를 든 작업자의 손길에 의해 목재로 탈바꿈 되는 마법 같은 순간도 있었는데, 그 꼴을 보고 기겁한 나의 호통으로 바로 원상복구 되었다. 같은 단지에 한국인이 산다. 그 집은 한국에서 모든 재료를 공수해 와서 시공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한국 집인가 멕시코 집인가. 나는 한국인이고 멕시코의 재료와 방식을 사용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한국 집인가 멕시코 집인가. 준공 사진을 찍은 뒤 챗GPT한테 물어봤다. “멕시코 집이요!”

④ 양재동 프로젝트: 낭만과 채찍
면목동에서의 완패 후 완전히 정신이 나간 나는 칼로 케이크를 난도질해서 건축주에게 들고 갔다. 이렇게 쪼개면 최대 다수가 케이크를 맛볼 수 있답니다! (물론 계획안을 작성하기 전에 벌어진 일이다.) 건축주는 나에게 채찍을 휘두르며 이 임대공간은 ‘내가 들어가서 살고 싶을 지경’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제야 나는 내가 얼마나 멍청한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건축주는 자신이 상상하는 공간 이미지를 나에게 보여줬다. 펜트하우스와 글라스하우스의 낭만 가득한 장면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건축물이 최대로 몸집을 부풀리지 않고 내어주는 배려와, 건축주가 꿈꾸는 이미지 속 낭만도 도시의 다양한 욕망 중 하나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리하여 도로의 모퉁이에 위치한 대지에 카페, 레스토랑, 사무실, 원룸, 투룸, 펜트하우스까지, 이 도시의 모든 기능을 받아들였다. 다양한 기능과 공간 사이에서 보다 사려 깊고, 보다 낭만적인 완벽한 결구를 꿈꾸면서 말이다.

⑤ 포천시 프로젝트: 허용 오차범위와 당근
계획에서 틀어진 지붕이 시공에서 더 틀어졌다. 전자는 의도이고 후자는 오차다. RC와 철골 구조체를 합체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10cm 오차라니! 심장이 벌렁거리면서도, 모형의 지붕을 덮는 마지막 순간 찝찝하게 벌어진 1mm의 틈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관용의 마음으로 선홈통의 배수구 위치를 체크하는데 아뿔싸, 20cm가 넘게 틀어졌다. 재차 확인해 틀림없다는 확답을 들었는데 이것만큼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위 두 사건으로 나는 결국 디테일을 수정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사건들이 설계의 허용 오차범위 내에 안착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수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협의 의지를 충분히 가진 시공자에 의해서 구현되었다. 또 지붕 거터를 빼면 견적이 얼마나 빠지는지를 고민하던 시점에 ‘완성도는 지킬 것이다’라고 격려한 건축주에 의해서도 구현되었다.

챕터3.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도심지에 위치한 주거를 많이 설계했다. 웹사이트에 써 놓은 ‘도시의 일상에 대한 고민’이라는 자기소개는 사무실의 지향이라기보다는 현황이자 지금의 관심사이다. 도시에는 다양하고 복잡한 욕망이 응집해 있다. 어떤 건물은 그저 조건을 풀어낸 것만으로도 내 도리를 다했다 싶을 정도다. 그 조건은 대지의 콘텍스트나 이웃과의 관계, 도시 풍경, 일상 경험 등을 비롯하여 규제 해석, 기능의 관계, 사용자의 필요, 재료 선택, 예산 범위, 어떤 경우에는 화장실 배수구 위치까지도 포함한다. 나는 복잡한 도시의 맥락 안에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조금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좋은 건축’ 안에 수익성과 보편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1.5룸과 같은 ‘실체 있는 유령’과 싸워나간다. 한편으로는 나는 유독 건축가의 의도가 과잉되는 지점을 경계한다. 의도를 전면에 전시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스며들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도시 주거라는 일상적인 프로그램의 특징 때문일 수도 있지만, 사용자가 굳이 건축가를 의식할 필요는 없다고 여긴다. 오롯이 스며든 그 공간을 좋은 경험으로 기억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건축 설계의 정수가 통합에 있다면, 내가 모든 것을 통합하는 기준은 ‘가장 크리티컬한 지점’에서 찾는다. 그러니까 이건 내가 도심지 주거에서 설계를 시작하는 방식에 관한 얘기다. 이러한 설계 방식은 미술관이나 스테이를 시작하는 방식보다 분명히 패시브하다. 문제가 되는 지점을 찾아서 태생의 결핍을 채워주려 노력한다. 이로부터 건물의 구조를 세워가며 다른 복잡한 도시의 이야기들도 함께 정리한다. 면목동의 그 지점은 ‘도시의 쾌적한 주거 유닛’과 ‘임대료에 비례하는 방 개수’였으며, 양재동의 그 지점은 ‘임대용 주거 공간의 협소한 바닥면적’과 ‘저층부가 도시를 대하는 자세’였다. 하지만 면목동에 적용된 다소 소극적인 ‘덜어냄’은 건축주에게 증축할 수 있는 너른 땅에 대한 기회로 받아들여졌으니, 온전한 실패였다. 양재동에서는 낭만과 배려도 욕망의 일부분임을 인정하기로 한 후, 그것들이 관계하며 결구되는 방식을 연구했다. 재밌는 것은 두 프로젝트 모두 건물이 완공되기도 전에 모든 임대공간이 완판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변형되지 않은 면목동의 원안 또한 ‘도시의 수요’에 의해 완판되었을 거라 믿고 있다.
나는 종종 장치를 써서 어떤 문제를 해결한다. 상계동의 벽돌 영롱쌓기나, 멕시코의 계단 파티오, 포천시의 뒤틀린 처마같이 ‘의도된 장치들’ 말이다. 이것은 설계 전체를 관통하는 기준이라기보다는 부분적인 문제 해결 과정이며 다양한 건축 요소로써 구현된다. 이 장치들은 각각 ⑴ 디테일로 구축되었고, ⑵ 경험으로 재구성되었으며, ⑶ 형태로 표현되었다. ⑴ 상계동은 이웃과 이마를 바짝 맞대고 있어 적당한 프라이버시 확보가 필요했기에, 두께와 틈을 계산해 쌓은 벽돌 모자이크로 필터를 만들고 마주하는 각도를 달리하여 시선을 차단했다. ⑵ 멕시코는 거실과 침실의 구성이 뒤바뀌어있어 각 영역을 안내하는 제스처가 필요했으므로, 익숙하게 습득된 바로크 양식의 파티오를 재구성하여 공간의 관계를 정리했다. ⑶ 포천시는 갤러리로 들이닥치는 직사광을 피하되 자연의 풍경은 받아들이고자, 뻗어 나온 처마를 지붕 구조체와 함께 비틀어 창에 비친 깊숙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멕시코 2층 거실에 숨어서, 집에 처음 들어선 배달 기사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장치가 내 의도대로 구동할 때 건축가로서 희열을 느낀다.
나는 외적 요인에서 내적 요인으로, 큰 윤곽에서 세부 사항으로 설계를 정리해 나간다. 그리고 그 논리가 뻗어나간 관성대로 마지막 디테일을 풀어낸다. 예를 들면 포천시의 박공지붕에 설치된 조명은 평면 축과 어긋난 지붕의 형태적 논리에 순응하도록 풀어나간 것이다. 기능을 기준으로 조명의 단위를 정하고 조합의 간격을 바꿔가며 10개가 넘는 경우의 수를 만든 뒤 가장 만족스러운 것을 골랐다. 여기서 다시 조명의 종류와 색상을 바꿔 대입해 보다 보면 100개가 넘는 경우의 수가 생긴다. 흡사 잡초를 뽑는 농부의 일이다. 이것은 설계의 논리에 부합하는 완결을 위한 작업이며, 임의의 디테일이 덧대어지지 않도록 변수를 줄여나가는 작업이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쌓아 올린 상계동의 벽돌과는 다른 디테일이다. ‘멕시코에서 샘플보다 터무니없이 시뻘건 석재가 들어와 마주하는 모든 색상을 다시 설정한 것’, ‘상계동에서 창호 코너에 프레임을 없애려 수많은 도면이 오갔으나 결국 거대한 기둥이 서게 된 것’과 같은 이야기이다. 당연하게도 플러스 몰딩은 마이너스 몰딩보다 쉽고 간편하며 저렴하다.
한동안 취미로 화실을 다녔다. 나 혼자 마음껏 재료를 사고, 마음대로 표현하고, 마음에 들 때까지 수정해 보기 위해서였다. 건축은 모두의 뜻이 한데 모여야 한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깨달음 당했을’ 즈음이었다. 내 생각이 건축주의 목적이나 시공사의 이윤과 정확히 반대 방향을 향해 힘을 쓴다면 건축은 성립할 수 없다. 이것은 벡터다. 모두의 힘이 얼추 비슷한 방향으로 작용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 벡터의 각도를 줄이기 위해 대화를 한다. 계획 초반 건축주에게 ‘마인드맵’ 숙제를 내주는 것도 대화이고, 심심하면 현장 사무실 문을 열어젖히는 것도 대화이며, 조금 넓게 보면 도면을 명확히 그리는 것도 대화이다. 대화의 양이 반드시 설계와 시공의 퀄리티에 비례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상호 간의 오해를 줄여 같은 지점을 향하게 하는 도구임은 확실하다. 가능하면 쉬운 대화를 하고자 하며, 듣는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논리로 설명하고자 한다. 물론 개발업자에게 수익성을 근거로 단위 유닛을 설득한 실패 사례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가의 논리를 현장 작업자에게 늘어놓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계속 모두에게 말을 건넬 예정이다.
그래서 말인데, 바보들아! 여전히 벌거벗은 임금님의 근사한 옷이 보이는가?
안수인건축
안수인은 중앙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아르키움에서 공간의 열림을 화두로 다양한 작업을 경험했다. 2019년 안수인 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한 후, 서울을 기반으로 도시의 일상을 고민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복잡한 도시맥락 안에서 문제의식을 갖고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장소와 공간, 구조와 재료에 대한 고찰을 바탕으로 구축하며, 쉽게 대화하되 깊게 고민하는 집을 세운다. 현재 서울시의 공공건축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용인시의 공공건축가는 연임에 실패했다. ‘등장하는 건축가들7’을 진행하는 동안, 대표작의 본명은 비밀로 부치기로 했다. 쉿. https://www.an-architect.kr/
벌거벗은 임금님의 근사한 옷에 관한 고찰
분량7,278자 / 14분 / 도판 5장
발행일2026년 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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