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vs 건축: 안정경제로 가는 길
박인석
분량7,977자 / 16분 / 도판 1개
발행일2026년 4월 10일
유형오피니언
저성장 시대
경제성장률에 대한 비관적 전망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급기야 한국개발원(KDI)이 제로성장 시대가 임박했음을 예고하는 데 이르렀다. KDI는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을 2030년에 1%대 초반, 2040년에는 0% 내외로 낮게 예상하면서 2045년경부터는 역성장(마이너스 성장)까지도 일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1
경제성장률은 전년도 국내총생산(GDP)에 비해 금년도 GDP가 증가한 비율이다. 이때 GDP는 물가 변동 영향을 제거한 실질 GDP다. 따라서 경제성장률이 낮아진다는 것은 실질 GDP 증가량이 줄어드는 것을 말한다. 경제성장률이 0%라는 것은 실질 GDP가 전년도와 같다는 것이고 역성장은 전년보다 줄어든다는 것을 뜻한다.
GDP는 총소득이고2 국내 총소득 중 가장 비중이 큰 것이 임금, 즉 가계소득이다.3 따라서 GDP 정체가 곧바로 연상시키는 것이 가계소득 정체다. OECD 통계 중 ‘국가별 연평균 임금 추이’를 보면 일본과 이탈리아가 거의 증가하지 않은 채 정체한 사이 한국의 임금 수준이 이 두 나라를 추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은 1990년대 초 버블경제 붕괴 이후 여전히 저성장 내지 역성장을 겪고 있으며 이탈리아 역시 2000년 이후 저성장을 겪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다. 2000~2024년 한국의 연평균 실질 GDP 증가율(경제성장률)이 3.52%인데 비해 일본은 0.60%, 이탈리아는 0.38%로 매우 낮은 수준에 정체해 있다.

GDP가 늘어나지 않고 정체되면 가계소득과 가계지출도 정체된다. 따라서 GDP 정체, 즉 저성장은 민간 소비 정체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저성장으로 인해 기업 매출이 감소하고 폐업과 실업이 늘어날 것이라는 걱정이 가득하다. 일자리 부족과 소득-소비 감소가 더 악화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은 이제 우리의 삶이 도탄에 빠질 것이라는 공포심마저 자아낸다.
그러나 이런 걱정과 공포는 과장된 면이 없지 않다. 우선 실질 GDP는 물가 변동 영향을 제거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마이너스 성장이 아닌 한 저성장이라 해서 물가 상승으로 인해 실질 총소득이 줄어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저성장 상태에서는 땅값 상승도 정체한다. 땅값 상승은 영업활동에 의해 평균이윤율 이상으로 발생한 초과이윤이 지대(rent)로 흡수됨으로써 발생하는 것이다.4 저성장은 대부분의 영업활동에서 초과이윤 발생이 거의 없이 평균이윤율이 유지되는 상황이므로 땅값으로 흡수될 것이 없다. 물론 핫플레이스도 생기고 쇠퇴하는 곳도 생기면서 장소별로 땅값이 오르고 내리는 현상은 있겠지만, 전체적으로는 땅값 역시 정체하거나 하락하는 것이 저성장 사회의 일반적 모습이다.
피할 수 없는 사태를 두고 막연한 걱정과 공포심을 조장하는 일은 도움이 안 된다. 문제는 저성장 상황이 우리 사회에게 너무 낯설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경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생각과 이에 기초한 법제도는 모두 ‘성장’을 정상적인 것으로, 저성장이나 제로성장은 있어서는 안 될 일로 간주하며 이루어져 왔다. 그런데 이제 저성장, 제로성장이 피할 수 없는 일로 다가왔다. 우리 사회가 겪어보지도 못했고 생각도 안 해본 상황이 다가온 것이다. 불가피하게 겪게 될 일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벌어질 사태에 대해 조목조목 따져봐야 한다. 무엇보다도 ‘성장’, ‘저성장’에 대한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경제성장률 “0”, 즉 GDP가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은 기업의 영업이익, 가계소득(노동임금), 정부 세금 수입 등의 총합이 늘어나지 않음을 말한다. 물론 어떤 기업이 노동임금을 낮추어 이익을 늘이는 등의 사례가 있겠지만 나라 전체로 그 총합은 늘어나지 않는다. 여기서는 일단 모든 부문에 증감이 없는 상태를 가정하자. 기업의 영업이익도, 종업원들의 임금도 증가하지 않고, 땅값도 오르지 않는 상황이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저성장이면 행복할 수 없는가
기업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이 곧 기업의 영업이익이 없음, 즉 “0”이라는 뜻은 아니다.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일정 수준에서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매출액이 정체되어 있더라도 영업이익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가장 극단적인 경우, 즉 영업이익이 없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기업의 영업이익이 “0”이라면 무슨 문제가 생길까?5
사례 ①: 가장 간단한 사례라 할 수 있는 소규모 자영업, 즉 주인 1인과 종업원 1인이 일하는 치킨집 A의 영업이익이 0이라 하자. 이는 치킨집 A 1년 매출액에서 비용을 제하면 남는 게 없다는 얘기다. 이 ‘비용’에는 재료 구입비, 배달업체에 지불하는 수수료, 생산설비 감가상각 비용, 세금, 가게 임대료뿐 아니라 종업원의 임금이 포함된다. 문제는 주인의 임금이다. 일반적인 회계나 공식 통계에서는 치킨집 주인의 임금은 비용에 포함하지 않은 채 영업이익을 계산한다. 그리고 그 영업이익이 주인의 임금 수준으로 기대하는 금액에 못 미치면 “사실상 손해”, 혹은 “인건비도 안 나온다”라고 얘기한다.
이는 영업이익이 ‘주인이 치킨집을 열기 위해 투자한 금액을 치킨집을 열지 않고 그냥 은행에 맡겨두었다면 받았을 이자(a)’와 ‘주인이 치킨집에서 일하지 않고 다른 일을 했다면, 가령 회사에 다녔다면 받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금액(b)’의 합에 못 미친다는 뜻이다. a와 b의 합은 주인이 직접 치킨집을 운영해서 벌 수 있다고 기대한 금액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를 주인의 임금이라 간주하고 비용에 포함하여(소위 ‘기회비용’이다) 영업이익을 계산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렇게 계산한다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치킨집 A의 영업이익이 “0”이라고 하면 ‘불행한 일’로 들리지만, 이를 “치킨집 A의 영업활동으로 주인과 종업원 1인의 소득이 보장되었다”는 ‘다행한 일’로 말할 수도 있다.
사례 ②: 좀 더 큰 기업을 보자. 직원이 300명인 B 회사 1년 영업이익이 “0”이라 하자. 매출액에서 비용을 제하면 남는 게 없다는 얘기지만 이 “비용”에는 직원들과 사장의 임금이 모두 포함된다.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이라 해도 개인사업자인 치킨집과는 달리 회사법인은 대표이사 등 경영자의 임금을 비용에 계상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영업이익 0의 의미가 더 확실하다. B 회사의 이익은 없지만 이 회사의 영업활동을 통해서 300명의 직원과 경영자의 소득이 보장되고 있는 것이다.
사례 ③: 좀 더 복잡한 사례는 주식회사의 경우다. 가령 임직원이 10,000명이고 다수 주주로 이루어진 대기업 C 주식회사의 영업이익이 0이라 치자. 이 경우 역시 임직원들(경영자를 포함한)의 임금이 비용에 포함되므로 회사의 영업이익이 0이라 해도 10,000명 임직원의 소득은 보장된다. 그런데 이때 문제는 주주들에게 배당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재의 세법에서는 주주에 대한 배당금은 비용으로 처리할 수 없다. 배당금을 고려하지 않고 계산된 영업이익에 세금이 부과되고 세금 공제 후 남은 이익의 일부를 배당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영업이익이 0이라면 배당액도 0일 수밖에 없다.
이는 기업 경영의 목적을 ‘보다 많은 이윤, 즉 초과이윤을 획득하는 것’으로 전제하고 이를 향한 경쟁과 투자를 권유하는 성장 시대 패러다임에 따른 법제도로 인한 것이다. 저성장-안정경제 시대에는 이 역시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 기업의 경영은 ‘종사자들과 투자자들의 적정 소득을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주주 배당금을 금리 수준으로 계산하여 비용에 산입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물론 기업 경영이 잘돼서 영업이익이 크게 발생한다면 비용 처리하고도 남는 금액을 이익 배당금으로 추가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이러한 계산 방식이라면, ‘C 주식회사의 영업이익이 0’이라는 ‘불행한’ 뉴스는 ‘C 주식회사의 영업활동으로 10,000명의 임직원들과 수많은 주주들이 적정 소득을 올렸다’는 ‘행복한’ 뉴스로 바뀔 수 있다.
저성장 시대가 겨냥해야 할 것은 바로 이 ‘행복한’ 뉴스다. ‘소득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은 ‘소득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소득이 그대로라는 얘기다. ‘소득이 안정적으로 유지된다’고 할 수 있다. 소득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만큼 소비수준도 유지된다. 1인 자영업부터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여기에 종사하고 투자하는 사람들이 적정한 소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이를 소비하는 생활을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 아닌가?
물론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복잡한 경제 현실을 너무 단순화한 것 아닌가?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성장 노력을 하는 속에서 우리나라만 제로성장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가? 제로성장이 곧바로 역성장으로 이어질 것 아닌가?
성장 노력을 중지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기업이든 정부든 성장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KDI의 제로성장 예측은 기업과 정부가 성장 노력을 멈춘 상황에서의 예측이 아니다. 노력해도 제로성장이 될 것 같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제로성장은 안된다. 더 노력하자”는 말만 반복할 것인가? 성장을 위한 노력은 계속하더라도 제로성장이 불가피하게 예측되는 상황에 대비하고, 성장을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온 사고방식을 재고하고, 성장 없이도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가꾸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바야흐로 ‘성장’의 시대는 저물었다. 이제 착실한, 안정적인 경제활동이 필요한 시대다. 저성장-제로성장이라는 용어도 (성장을 정상으로 전제한 용어라는 점에서) 과거의 것이다. 이보다는 ‘안정경제’라고 해야 한다. 기업은 영업활동을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적정이윤을, 가계는 일정 수준의 의식주와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적정 수준의 안정적 소득을 거두는 경제, 그리하여 적정 수준의 생산과 소비가 순환하는 경제. 우리 사회가 목표로 삼아야 할 경제다.
안정경제와 내수산업, 그리고 건축산업
안정경제는 필연적으로 내수 중심 경제체제를 요청한다. ① 내수산업의 생산물(서비스산업이라면 생산된 서비스)은 이 땅에서 생산되고 이 땅에서 소비된다. 즉, 내수산업은 이 땅에서 일자리를 제공하여 노동자들이 소득을 올리도록 하고, 노동자들은 그 소득으로 내수산업의 생산물, 서비스를 구입-소비한다. 산업 생산물, 서비스를 매개로 생산-소득-소비가 순환하므로 내수산업이 발달할수록 국민 소비생활의 양적-질적 수준이 높아진다.
② 내수산업 중에는 산업의 확대, 혹은 시장경쟁이 국민 삶의 질 수준 향상에 직결되는 것들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서비스산업 중 교육, 의료보건, 돌봄 등 사회서비스다. 사회서비스산업이 양적 질적으로 성장하면 이들 산업 분야의 일자리가 늘어날 뿐 아니라 이를 소비하는 국민의 삶이 좋아진다. 사회서비스산업이 생산하는 부가가치량이 늘어난다는 것은 이 땅의 국민들이 소비하는 사회서비스 수준이 양적 질적으로 높아진다는 것이고, 이는 곧 국민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진다.
이에 비해 수출 의존도가 높은 산업은 그만큼 외생 변수에 취약하며 국민 삶의 질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물론 수출산업도 일자리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가계소득을 지불한다. 그러나 수출산업 생산물은 국내에서 소비되지 않는다. 생산물의 질적 수준이 아무리 높다 해도 이를 소비하고 삶의 질을 누리는 이는 우리 국민이 아니다. 수출산업의 성과는 가계소득으로, 즉 화폐(교환가치)로 주어질 뿐이다.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그 화폐로 내수용 생산물을 다시 구매해야 한다. 산업 생산물과 소비가 분리되어 있다. 산업의 확대, 혹은 시장경쟁 노력이 생산물의 품질은 높일지언정 국민 삶의 질과는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그 화폐량이(즉 그것으로 구매될 삶의 질이) 누구에게 얼마나 공평하게 배분될지는 별개의 문제다.)
건축산업은 사회서비스산업의 속성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우선, 건축은 땅에 고정되어 생산되므로 이 땅에서 생산되고 이 땅에서 소비될 수밖에 없다. 전형적인 내수산업이다. 산업별 ‘내수시장 대비 수입 비중’과 ‘산출 대비 수출 비중’을 보면6 전체 산업의 수입 비중이 17.15%(2023년 기준)이고 수출 비중이 17.28%이다. 반도체산업의 경우 수입 비중이 74.81%, 수출 비중이 86.16%에 이른다. 이에 비해 건설업은 0.00%, 0.05%다. 서비스산업(5.73%, 6.63%)보다도 훨씬 낮다. 건축산업의 산업 활동은 모두 국내에서 생산되고 소비된다는 얘기다. 그렇다 보니 건축산업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만큼이나 내수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2023년 기준으로 국내 내수시장 전체에서 건축산업이 차지하는 시장 규모가 3.93%(건설업 5.9%에 2023년 건설업 전체 기성액 중 건축 비중 66.7% 적용)7다. 한국의 유력 산업으로 꼽히는 전자산업(반도체, 컴퓨터, 통신-영상장비제조업), 자동차산업, 기타운송장비산업(조선, 철도, 항공기), 전기장비산업(일차전지, 이차전지)의 내수시장 비중이 각각 3.7%, 3.2%, 0.7%, 2.6%이다. 이와 비교하면 건축산업이 내수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GDP 대비 내수 비중(가계최종소비지출 비중)이 낮다. 이는 내수 비중이 큰 산업의 육성이 국가 산업 전략으로서 갖는 중요성을 더욱 크게 한다. 1996~2015년 기간에 한국의 내수 비중 평균은 41개국(OECD 회원 35개국, BRICs 6개국) 중 27위다. 2000년 전후 10년(1996~2005년) 평균 70.1%에서 2010년 전후 10년(2006~2015년) 평균 56.0%로 하락했다.8 2023년 49.9%에 머물고 있다. 2015년 이후 줄곧 40%대에서 증가하지 못하는 상태이니 국가별 순위 역시 이후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내수산업으로서 건축산업이 갖는 둘째 특징은 건축생산과정과 생산 결과물의 질적 향상이 곧장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시민들의 삶터인 주택과 시민들의 경제활동 공간인 상점, 사무소 등 건축물의 질이 향상된다는 것은 곧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뜻한다.
건축산업이 갖는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모든 생산활동이 특정한 장소에서 일회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건축산업뿐 아니라 모든 서비스산업이 갖는 특징이기도 하다. 동일한 생산품을 반복 생산하는 제조업과는 달리 모든 생산물과 서비스가 매번 다르다. 예컨대 음식업에서는 비록 동일한 메뉴 몇 가지를 반복 생산하지만, 이를 매번 다른 사람의 주문에 따라 생산하고 식탁에 차려주는 ‘매번 다른’ 서비스 과정이 수행된다. 교육서비스나 사회복지서비스는 더더욱 그렇다.
건축생산 역시 매번 특정한 땅에 매번 다른 형태로 생산된다. 따라서 생산 주체와 소비 주체는 특정한 ‘지역’에 집중될 수 없다. 여러 지역-장소에서 분산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생산의 분산은 그 산업이 생산하는 가치와 생산과정 중에 발생하는 소득이 여러 지역과 많은 사람들에게 분배되는 효과를 낳는다. 생산과정 자체가 가치와 소득의 분배를 야기하는 ‘분배력을 갖는 산업’이라는 얘기다.
이러한 ‘분배력’은 저성장 시대 산업으로서 더욱 소중한 덕목이 된다. 어느 시대에나 성장의 과실을 ‘분배’하는 일이 중요했지만 GDP가 정체하고 가계소득이 정체하는 저성장 시대에는 분배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 성장 시대에는 소득 양극화가 심해지더라도 ‘전체 파이가 커지면 하위계층에도 돌아가는 것이 조금이나마 많아진다’는 소위 ‘낙수효과’에 대한 믿음으로 어느 정도 무마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로성장 시대는 파이가 커지지 않는다. 분배 불균형이나 양극화가 심해진다는 것은 곧 하위계층의 몫 절대량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불균형을 견뎌낼 사회는 없다. 저성장 시대에 사회 안정을 위해서는 분배를 강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산업구조 자체를 ‘분배력’을 갖는 산업 중심으로 개혁하고 재편해나가야 한다.
건축산업은 이러한 특성들을 모두 갖춘 산업이다. 저성장 시대가 요청하는 덕목을 고루 갖춘, 제로성장 시대를 맞이할 한국 사회가 가장 중요하게 가꾸고 살펴야 할 ‘전략산업’인 것이다.
박인석
현재 명지대학교 건축학부 명예교수. 도시와 건축 및 주택 정책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대안적인 정책을 제안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국가 건축정책위원회 5기 위원과 6기 위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건축 생산 역사』(전 3권), 『건축이 바꾼다』, 『아파트 한국 사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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