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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지고 헤매기

강림, 겜돌이, 냥꾼, 닥터페퍼, 쪠, 채운, 천하장사

잡담회는 두 번째 읽을거리로 23호 『건축, 전시, 큐레이팅』을 골랐다. 이 책은 2019년 1월 시작된 건축 큐레이팅 워크숍을 기록하고 확장하는 취지에서 기획되어 같은 해 8월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절판된 이후 건축신문 웹에 아카이브되었고, 계속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대부분이 설계 실무자인 잡담회 멤버들은 이 책을 통해 건축계의 여러 업역에 관한 이해를 넓히고, 건축 전시와 출판, 건축의 범위에 관해 대화했다.

건축, 전시, 큐레이팅

  • 일시: 2026년 4월 17일 금요일 오후 8:00 – 10:30
  • 장소: 셀스스터디룸 홍대점
  • 참석: 강림, 천하장사, 겜돌이, 채운, 닥터페퍼, 쪠, 냥꾼

차례

  1. 건축 전시, 왜, 누가
  2. 매체와 재현
  3. 온실로의 피난
  4. 부서지고 헤매기

좋은 전시, 나쁜 전시

냥꾼: 김상호의 ‘연산, 편집, 전송되는 건축’을 읽고 했던 생각은, 건축이라는 것 자체가 아주 방대한 양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편집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일 것이라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더 삐딱하게 ‘편집도 결국 건축을 전시하는 것 아니야?’ 이런 식으로 생각했어요.

강림: 편집하면서 다르게 보이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왜 삐딱하게 보아야 하는 것일까요?

냥꾼: 건축 전시 자체가 어쩔 수 없이 건축을 편집하잖아요? 그 과정에서 건축을 원하는 대로 잘라서 원하는 모습으로 보여줄 수 있게 되잖아요. 실제 건축과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만들어서 다수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그것은 건축 전시인데 건축을 전시한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준 것이죠.

강림: 그런데 그건 모든 편집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지 않을까요? 저는 그런 왜곡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쪽에 가까운 것 같아요. 어차피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수는 없어요. 그 불가능성은 명백해요. 편집을 위한 대상을 선택하는 것 자체에 이미 누군가의 의도가 들어 있다고도 볼 수 있고요.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잘 편집해서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야죠. 

저희가 생산하는 도면도 마찬가지예요. 건물의 편집된 일부잖아요. 건물 자체가 가진 압도적인 타자성을 도면에 있는 그대로 담아낼 수는 없어요. 도면에 투사할 뿐이죠. 도면도 일종의 편집된 매체이고 저희는 편집자예요. 그런데 저희는 ‘도면을 그리는 일’을 분명 ‘건축’으로 보잖아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어요. 오히려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다른 무엇을 보여줄 수 있다는 데에 도면의 의미가 생겨난다고 봐요. 그렇다면 전시를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도면을 그리는 것과 전시를 만드는 일은 크게 다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닥터페퍼: 저도 강림과 비슷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편집자가 편집 의도를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냥꾼이 말한 것처럼 보기 싫은 현실을 숨기고 감추기 위해서 편집을 이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보여요. 반대로 좋은 편집 의도도 있을 거예요. 어떤 목적으로 이렇게 편집한 것인지를 밝히고, 그 의도와 결과에 대한 해석이 진행될 수 있다면 판단할 수 있잖아요. 관객을 오도하지 않으면서도 좋은 의도를 가지고 편집을 통하여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강림: 그런 부분들은 굉장히 정치적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건축가가 주최하는 건축 전시의 정치적 의도는 불순하죠. 그렇기 때문에 큐레이터가 요청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겜돌이: 떨칠 수 없는 생각이 있어요. 건축 큐레이팅 워크숍이 시작된 계기도, 건축 전시에 대한 담론이 부족하기 때문이었잖아요? 어떤 공통의 토대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였어요. 이전에 우리가 프리츠커상 키워드로 이야기를 나눴을 때에도 ‘한국 건축에 공통의 토대가 없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잖아요? 한국 건축에도, 한국 건축 전시에도 공통의 토대가 없다. 그러면 한국 건축계는 도대체 뭘 이야기해야 하는 것일까요? 무엇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최춘웅의 글은 건축과 건축 전시를 동등한 것처럼 이야기했잖아요. 저희도, 채운은 아닐 수도 있지만, 대체로 건축과 건축 전시를 동등한 것으로 보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드는 생각은, 건축계에서 마땅히 소개할 만한 이야기가 없으니까 건축 전시에서도 마땅히 소개할 만한 이야기가 없고, 반대로 건축 전시에서 뭔가 이야깃거리가 나와야 건축에서도 그 이야기를 표현하고 녹여 내는데, 한국 건축계에는 그런 것들이 총체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건축과 건축 전시가 맞물려 돌아가는 경우가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이 책은 2019년에 쓰인 것인데, 2026년 현재에 생각했을 때는 다양한 형식의, 구성의 전시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공통의 토대 없음을 인정하고, 의미를 생산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같이 만들어 가보자는 식의 시도가 오늘날 많이 나오고 있는 것 아닐까요?

강림: 건축 전시가 토대로 환원되려면 결국에는 건축 전시 비평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건축 전시의 좋고 나쁨에 대한 판단 자체를 거의 하지 않는 상황인 것 같아요. 그런 판단 없음이 반복되다 보면 전시라는 미명 아래에서 좋지 않은 전시도 너무나 많이 생산되어요. 좋지 않은 전시들이 ‘문화’의 탈을 쓰고 불순한 의도를 은폐하면서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생각을 심어주게 될 거예요. 오늘 저희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무엇이 좋은 전시이고 무엇이 좋지 않은 전시인지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장도 건축 전시와는 별개로 필요한 것 같아요.

두 번째로는, 지난 잡담회에서 했던 이야기와 비슷한 것인데, 한국 건축 전시의 토대가, 한국 건축의 토대가 없다는 겜돌이의 말이 제게는 여전히 이상해요. 토대가 없어서 자유롭게 무언가를 할 수가 있다고 겜돌이가 말했는데, 반대로 토대가 있으면 자유롭지 않은 것인가요? 토대가 있든 없든 저희는 언제나 자유로워요. 토대가 없어서 다양한 실험이 가능한 것이 아니에요.

겜돌이: 제가 그런 이야기를 했나요? 저는 토대 없음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건축 큐레이팅 워크숍이 열린 것이고, 건축계에서도 마찬가지로 토대 없음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 했어요. 그리고 이 두 가지 아쉬움이 함께 어떤 행위를 이룰 때 좋은 건축이, 좋은 건축 전시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현재에는 그런 전시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좋다고 생각했던 것이고요.

결론적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거예요. 지금은 건축 전시가 많고, 심지어 인기도 있어요. 〈힐튼서울 자서전〉만 해도 건축 전공자가 아닌 비전공자도 많이 와서 재미있게 즐기더라고요. 연희정음도 지나갈 때 보면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요.

강림: 지나가기까지 하셨으면서 왜 들어가지는 않으셨어요! (웃음)

겜돌이: 사람 많아서 안 갔어요. (웃음) 아무튼 바글바글했어요. 건축 전시가 인기가 많아지는 것이 단순히 볼거리가 많아서만은 아니기를 바라요. 저는 옳은 의도나 메시지가 전시 기획에서부터 포함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헤더윅이나 노먼 포스터 전시처럼 ‘모형 진짜 멋있다’는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들이 만들어지지 않는 전시가 많은 것이 답답하고 아쉬워요.

강림: 공동의 판을 만들지 못하는 전시인 거죠.

겜돌이: 맞아요. 멋있다는 말 말고는 남는 게 없는 그런 전시들이었다고 생각해요.

강림: 중요한 말씀인 것 같아요. 공통의 토대를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가 좋은 건축 전시의 보편적인 기준 중에 하나로 충분히 제시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노먼 포스터의 전시를 봤을 때와 〈힐튼서울 자서전〉을 봤을 때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어요. 전시에 담긴 생각의 깊이, 다양성, 강도가 분명 다를 거예요.

쪠: 큐레이터와 건축가 사이에 하나의 분과 영역이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지금은 건축가도 큐레이터도 일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건축가의 경우를 보면, 설계도 해야 하고 전시품도 준비해야 하고 설명하는 글도 써야 해요. 큐레이터와 건축가 사이에서 둘을 매개해주는 역할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

강림: 전시를 큐레이터가 혼자 만드는 것은 아니에요. 다양한 전문가들이 있어요. 시노그래픽 디자이너도 있고, 아키비스트도 있고, 리서처도 있어요. 하나의 전시 내에서도 각각 분야가, 각각의 프로페션이 모이는 거예요. 건축 전시의 절대적인 파이 자체가 크지 않았을 때는 (원래 파이가 크지 않은 시장에서는 한 사람이 과로하잖아요?) 재능 있는 한 사람이 과로하게 되는 게 아닐까요? 그렇게 봤을 때는 이전에 열렸던 전시들 중에서도, 큐레이터를 쓰고 싶었어도 큐레이토리얼십을 가진 사람이 없었던 전시도 있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4.3 그룹 전시 때에는 건축 큐레이터를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상황, 혹은 큐레이터라는 직종 자체가 있었는지 모르는 상황이지 않았을까요? 요즈음은 건축 전시 시장의 파이가 커지면서, 건축 전시가 필요로 하는 직종들이 서서히 분화되고 있는 것 같아요. 아카이브들도 생겼고요. 목천건축아카이브나 정림건축문화재단처럼 특정 집단이나 재단에 소속된 아키비스트, 리서처가 있는 상황이에요. 물론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인지, 지속될 현상인지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겠죠. 그럼에도 이런 작은 노력이 쌓이다 보면 큐레이터 한 명이 제 발로 뛰어다니면서 아카이빙도 하고 연구도 하고 큐레이팅도 하고 홍보도 하는 상황들을 조금씩 피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큐레이팅이라는 고고한 세계

강림: 저는 글들을 읽으며 큐레이터 분들이 참 멋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하이퍼스팬드럴의 에반게리온론(?)이 떠오르더라고요. 하이퍼스팬드럴의 전재우가 에반게리온이 왜 재밌는지를 설명하면서 건축도 에반게리온처럼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에반게리온은 사실 엄청나게 복잡한 세계관을 갖고 있어요. 그런데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그 세계관을 설명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아요. 등장인물들은 자기들끼리, 관객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대화해요. 네 번째 사도의 침공이라느니 제1종 경계 태세 발령이라느니. 그런데 그게 멋있어 보인다는 거예요. ‘저들이 공유하는 어마어마한 깊이의 세계관이 있구나!’라는 것을 관객들이 자기도 모르는 새 직관적으로 알게 되는 거예요. 지난번 잡담회에서 곰이 〈흑백요리사〉를 본 뒤부터 요리사라는 직업이 멋있어 보인다고 이야기했잖아요. 그것과 비슷한 것이죠.

큐레이터도 얼핏 생각해 보면 대중친화적인 직업일 수도 있잖아요? ‘건축가와 대중을 매개해주는 직업’이라고 누군가는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정다영, 배형민, 최춘웅의 글을 읽다 보면, 대중에 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어요. 자기들끼리, 자신들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멋있어요. 저분들이 공유하고 있는 깊은 세계관 자체에 매력을 느끼게 되어요. 에반게리온이죠. 그래서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참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했어요.

겜돌이: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김동신이 ‘다른 마을에서 온 편지’의 첫 문장 “그래픽 디자이너는 외로운 사람의 직업인 것일까?”가 기억나네요. 그 문장을 읽고 깊이 생각해 보았는데, 건축가는 별로 외로운 직업이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문득 큐레이터는 어쩌면 외로운 직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근에 어떤 유튜브 영상에서 민음사의 김민경 편집자가 말하기를, 편집자는 자기가 맡은 책을 그 누구보다 더 반복해서 많이 읽고, 그 누구보다 그 책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어쩌면 작가보다 더. 그러나 편집자는 결코 온전한 독자가 될 수는 없다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듣고, 편집자란 어떻게 보면 아주 외로운 일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자신만의 글을 생산하는 작가도 아니고, 그 글을 온전히 소비하는 대중도 아니고, 그 사이의 어떤 직업인 것이죠.

큐레이터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건물을 짓는 건축가도 아니고, 건물을 온전히 누리는 어떤 관객도 되지 못한 채, 작가와 대중 사이에서 건축을 소개하는 연결고리가 되는 직업인 큐레이터는 제게 외로운 직업처럼 보여요. 그리고 오늘 다시금 생각해보니, 건축 전시 기획이라는 것이 아주 힘든 일인 것 같아요. 물론 힘들다는 말이 꼭 ‘안타깝다’는 뉘앙스는 전혀 아니에요. 큐레이터들이 하는 그 일 자체에 대한 존경에 가까워요. 그런 존경이, 존중이 갑자기 생긴 것 같아요.

강림: 그런 응답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큐레이터들도 기쁘지 않을까요? 건축가들처럼 특정 클라이언트를 위하여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추상적인 반응을 기대하면서 일하는 것이 큐레이터인 것 같아요. 클라이언트 잡은 아주 구체적인 실감이 있어요. 누구한테 도움이 되는 것인지가 분명해요. 그런 실감이 강점이 되기도 하고 약점이 되기도 해요. 반면 전시를 보는 사람, 전시를 평가하는 사람은 늘 추상적이에요. 겜돌이가 이야기하는 외로움은 그런 추상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요? 사실 큐레이터도 만나는 사람의 수는 많을 것 같은데, 자신이 기획한 전시가 누구에게 어떻게 보여질지를 구체적으로 실감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외로움이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냥꾼처럼 “건축 전시는 건축이 아닌데?”라고 말하면서 배타적으로 나오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 외로움이 두 배가 되는 것이죠! (웃음)

냥꾼: 그쵸…!

채운: 강림과 닥터페퍼의 이야기에 대해서 생각해 보니까, 큐레이팅 자체가 지금 있는 현상을 재료로 하여, 그 현상에 목적성이나 의도를 가미해서 근거 있는 편집을 하는 업 같아요. 건축을 하는 사람들도 피드백이나 비평을 바라듯 큐레이터들도 전시에 대한 피드백이나 비평을 바랄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건축과 건축 전시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이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를 더 잘 보이게 해주는, 담론을 더 잘 보이게 해주는 『건축신문』과 같은 콘텐츠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런 콘텐츠에 반응을 보이는 것도 중요한 것 같고요.

강림: 큐레이터, 큐레이팅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되는 단어는 라틴어 큐라레(curare)예요. 뮤지엄이라는 단어는 뮤즈의 집, 무세이온에서 유래했어요. 뮤즈라는 여신이 있잖아요? 뮤즈의 신전은 방대한 양의 서적과 예술품을 보관하는 곳이었어요. 그곳에 쌓여 있던 것들을 주기적으로 사람들한테 보여주는 것, 그러니까 원래 있던 집(habitus) 바깥(ex-)으로 전시품들이 나오는 것이 전시(exhibition)의 어원이에요. 그리고 그 전시품들을 돌보는 일이 바로 큐라레, 큐라레 하는 사람이 큐레이터가 된 거예요. 그래서 큐레이터는 쉽게 말해 돌보는 사람, ‘돌보미’라는 뜻이 있는 단어예요. 물론 큐레이터는 일이자 업이지만, 그 묘한 멋이 직업명의 어원에도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후담: 부서지고, 응원하고

강림: 슬슬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간이네요. 이 글들에 관한 총체적인 감상이 또 있다면 공유하기로 해요.

냥꾼: 저는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든 생각인데, 제가 너무 삐딱했던 것 같아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건축 전시가 그 자체로 아주 멋있는 일인 것 같아요. 그리고 생각해 보니까 건축과 건축 전시가 동등하든 말든 저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삼국지가 생각났어요. 삼국지는 어떻게 보면 역사를 편집해서 하나의 신화를 만들어낸 것이잖아요? 저는 삼국지가 아니었다면 유비, 관우, 장비가 누구였는지도 몰랐을 것 같아요. 다만 삼국지라는 ‘서사’가 있음으로써 역사를 더 관심 있게 볼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건축 전시와 건축의 관계가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건축 전시가 가진 서사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서사가 있어야 다양한 생각이 생산되기에, 서사가 있어야 건축이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오늘 삐딱했던 저 자신을 반성하며 마무리합니다.

천하장사: 분명 건축 전시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오히려 제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건축이라는 개념에 커다란 흔들림이 있었던 것 같아요. 떠오르는 이미지를 설명해보자면, 건축이라는 것을 규정해주는 세포 벽 같은 것이 제 마음속에 있었는데 그게 오늘 녹아내리고 흐물흐물해졌어요. 건축이 내가 생각했던 그런 것으로 정의되지 않는다면, 건축과 미술은 무엇이 어떻게 다르고, 건축과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창작은 또 어떻게 구분되는 것인지, 스스로 다소 혼란스러운 상황이에요. 세포 벽을 스스로 다시 지어내어야 하는 숙제를 받게 된 것 같아요.

쪠: 제 생각을 그 말씀에 조금 얹어보자면….

강림: 받고 하나 더!

쪠: 네, 하나 더! (웃음) 저희는 저희대로 건축을 열심히 할 테니, 큐레이터들도 힘을 내면 좋겠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더더욱 직업적 의지와, 직업 윤리와 함께 다양한 방식의 큐레이팅을 해 주면 정말 좋겠어요. 건축가는 자기 것만 봐요. 저희도 자기 것을 가장 열심히 보잖아요. 저희가 남들의 것을 보지 못할 때, 다른 사람을 챙길 여유가 없을 때, 큐레이터들이 넓고 다양하게 여러 사람의 작업을 봐주고, 발견한 것들을 또 새로운 방식으로 큐레이팅 해준다면 여태껏 본 적 없던 어떤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어요.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저의 영역은 아니지만, 응원을 전하고 싶어요.

강림: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죠.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건축 전시를 보는 것! 이번 글들을 읽으면서 약간의 책임감이 생기시지 않았나요? ‘이제는 정말 보러 다녀야겠다’는 책임감이.

쪠: 맞아요. 그런 책임감이 생기게 된 것 같아요.

닥터페퍼: 저는 그동안 건축 전시를 보면서 큐레이터의 이름을 챙겨본 적은 없었어요. 편집자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작품이 있고 그 작품들이 무엇인지만을 보았지, 누가 이것들을 큐레이팅했는지, 편집했는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어요. 이 글들을 읽고 나니까 편집자에 대해서, 큐레이터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이 어떤 것을 즐기는 재미있는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잖아요? 이번 글들을 통해 그 앎을 조금이라도 넓혔던 것 같아요. 새로 보이게 된 것들, 새로 즐기게 될 것들을 찾아서, 앞으로의 건축 전시를 열심히 다니겠습니다.

쪠: 강림의 이야기처럼, 건축 전시를 보는 것은 ‘전시를 건축하는 분들’의 작품을 보러 가는 것, 곧 답사를 가는 것이 될까요?

강림: 그야말로 답사예요. 그리고 전시를 가보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게, 그때가 아니면 영원히 못 봐요. 그때 거기뿐이에요.

겜돌이: 저는 일전에 천하장사가 한 말처럼, 책을 읽는 것은 매번 부서지는 일인 것 같다고 느껴요. 저는 이런 식으로 건축가들이 더 많이 부서져야 한다고 믿어요. 건축가가 다루는 영역이 넓어요. 그런데 대부분은 그 분야의 겉모습만을 흉내내는 거예요. 건축가는 어떤 분야의 흉내를 능수능란하게 낼 수 있어요. 그러나 진짜 본질을 가지고 그 일을 하지는 못해요.

강림: 그렇게 들으니 건축가가 굉장히 비열한 직업 같네요.

겜돌이: 겉모습을 흉내 내는 것은 잘 해요. 왜냐하면 겉모습을 흉내 낼 수 있는 다양한, 많은 도구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건축가가 훈련하는 논리적 사고, 시각화, 문제 해결 능력 등은 모든 분야에 대체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에요. 건축 전시도 많은 건축가가 자신이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일 거예요. 건축학도도 학교에 다니면서 몇 번 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런 글들을 읽잖아요? 저는 그러면 전시 못 해요. 내가 전시를 할 수 있다는 마음 자체가 생기지 않아요. 흉내 낼 수 없게 되고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이 글을 읽고 이번 모임을 하면서 저는 또 부서진 거예요. 또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든 거예요. 부서진 채로 그 부서지는 과정에서 떨어진 파편들을 헨젤과 그레텔처럼 주워 가면서 어딘가로 가고 있는 거예요. 언젠가는 어딘지 모를 곳에 도착하고, 이런 것이겠죠. 그래서 참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또 지금 제 앞에 있는, 강림이 이번 모임 진행에 참고하려고 가져왔다는 이 무수한 책들, 무거운 책들을 보니까 또 어렵네요. 이 책들을 모두 읽어도 하기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거잖아요. 큐레이터들은 어떻게 그 일을 하고 있을까요? 사실 건축 비평가를 비롯해 건축에 관련된 설계 바깥의 일을 하시는 분들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사실 건축계에서 건축가는 가장 쉬운 직업이 아닐까?’라고 생각해요. 건축가는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많아요. 스케치만 해두면 주변에서 도와줘요. 어떻게든 지을 수 있게 해줘요. 그래서 오히려 건축가는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강림: 너무 재미있는 의견인 것 같아요.

채운: 저, 오늘 생각이 너무 많아졌어요.

강림: 여기 부서진 사람이 한 명 더 있어요!

채운: 하고 싶었는데 못한 말도 많았고요. 저는 오늘 대화에서 큐레이터라는 직업, 큐레이팅이라는 행위에 커다란 매력을 느꼈어요. 큐레이팅이라는 것이 꼭 전시에 관계된 것만도 아닌 것 같아요. 여러 가지 큐레이팅의 형태가 있다고 봐요. 리서치라든지, 교육이라든지. 그 모든 행위가 결국 건축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어떤 의미를 전하고자 하는지 고민해보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해요. 건축을 좋아하고 건축 문화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저도 아주 고민이 되네요. 그 의미를 만들고 전달하는 것이, 오늘 나온 단어들로 말하자면 큐레이팅이고 편집이고 전시겠죠.

지금 건축사사무소를 다니고 있는 저의 모습, 제가 이 사무실에서 행하는 설계 행위는 결국 어떤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일까요? 만약 누군가가 지금 저의 모습을 나중에 큐레이션한다면, 혹은 저 스스로가 나중에 제 모습을 평가한다면, 오늘의 저는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보일까요? 혹은 어떤 의미를 갖고 싶은 것일까요?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었어요. 저는 오늘 이야기를 생각해보면서 고민이 더 많아질 것 같습니다. 부서졌어요, 그냥.

강림: 큐레이터들을 포함해서 건축 전시를 구성하는 이들이 하는 일은 말씀드렸듯이 독립적인 실천의 영역이다 보니 이 2시간 반짜리 모임에서는 충분히 논의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지금처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기껏해야 수박 겉을 정성스럽게 핥는 일 정도에 비유될 수 있겠죠.

어쩌면 저희가 『건축, 전시, 큐레이팅』이라는 책을 선정한 것도 이 책에 관해서 깊게 이야기하자는 취지였다기 보다는, 에반게리온 감상회와 비슷할 것 같아요. ‘에반게리온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는데, 기가 막힌다. 같이 1화만 함께 보자!’ 이런 것 아닐까요? (웃음) 이런 이야기를, 저희가 모르는 이야기를 일상적인 언어로 나누는 타자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에 저희가 조금 더 놀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와 같은 순간에, 그러나 전혀 다른 지점에서, 건축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전혀 다른 고민을 하고, 전혀 다른 언어를 쓰고, 저희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실천을 하고 있는 분들이 있고, 그분들도 이 ‘공동의 판’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더 놀라워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준비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야 그분들이 무언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을 때, 흥미로운 실천을 했을 때, 그 말이나 실천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고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논할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희가 건축 전시에 관한 화자가 되기는 쉽지 않겠죠. 저희에게는 건축 전시에 대한 프로페션이 없기 때문에. 그러나 적어도 성의 있는 청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건축이라는 이름 아래에 함께 있다면. 


잡담회

잡담회는 건축의 이름 아래에서 생산되는 텍스트들을 성의 있게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눈 후,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를 텍스트로 재생산하는 독서모임이다. 아홉 명의 정규 구성원이 함께하고 있으며, 한 달에 한 번 정도, 한 권의 건축책을 읽고 와서 두 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나눈다. (비건축적인 의미로) 늘 매너리즘에 허덕이고 있기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주실 손님을 환대한다. 잡담회 아카이브: 블로그 / 인스타그램

부서지고 헤매기

분량11,534자 / 23분

발행일2026년 10월 26일

유형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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