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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전시, 왜, 누가

강림, 겜돌이, 냥꾼, 닥터페퍼, 쪠, 채운, 천하장사

잡담회는 두 번째 읽을거리로 23호 『건축, 전시, 큐레이팅』을 골랐다. 이 책은 2019년 1월 시작된 건축 큐레이팅 워크숍을 기록하고 확장하는 취지에서 기획되어 같은 해 8월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절판된 이후 건축신문 웹에 아카이브되었고, 계속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대부분이 설계 실무자인 잡담회 멤버들은 이 책을 통해 건축계의 여러 업역에 관한 이해를 넓히고, 건축 전시와 출판, 건축의 범위에 관해 대화했다.

건축, 전시, 큐레이팅

  • 일시: 2026년 4월 17일 금요일 오후 8:00 – 10:30
  • 장소: 셀스스터디룸 홍대점
  • 참석: 강림, 천하장사, 겜돌이, 채운, 닥터페퍼, 쪠, 냥꾼

차례

  1. 건축 전시, 왜, 누가
  2. 매체와 재현
  3. 온실로의 피난
  4. 부서지고 헤매기

재밌었던 건축 전시

강림: 『건축신문』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두 번째 시간이에요. 『건축, 전시, 큐레이팅』이라는 책 아래의 글들을 읽었습니다. 솔직히 ‘이 글을 읽고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가 걱정이 되기도 했어요. 첫 번째 키워드 ‘프리츠커상’보다는 ‘건축, 전시, 큐레이팅’이 저희와 더 가까울 것으로 생각했는데, 글들을 읽어보니 건축 전시에 관해서 이렇게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분들을 본 적이 없었을 것 같아요. 여러분들의 감상평을 미리 읽어보아도 심리적 거리감 혹은 “이것에 관하여 우리가 과연 이야기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많이 있는 듯했어요.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기 위해서, 다들 스스로에게 영향을 미쳤던 전시 혹은 재미있게 봤던 건축 전시에 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올해만 해도 재미있는 건축 전시가 많이 있었어요. 달마다 건축 전시가 열리는 때에 저희가 살고 있어요. 정다영의 글을 읽어보면 그렇지 않았던 시대도 있었던 것 같아요. 2010년대 후반 이후에는 매해 중요한 건축 전시들이 있었어요. 올해 초까지 〈힐튼서울 자서전〉이 있었어요. 그리고 베니스비엔날레 귀국전 〈두껍아 두껍아: 집의 시간〉도 있었고요. 〈2025 젊은건축가상〉도 있었네요.

천하장사: 송률과 크리스티안 슈바이처의 〈열두 집〉도 있었어요.

강림: 맞네요.

겜돌이: 최근에는 〈가구에게 일어난 일〉도 있었고요. 건축 사진전인 〈대화: 두 건축가의 운명적 만남〉도 있었어요.

강림: 맞아요. 생각해 보니 그런 소규모 건축 전시도 요즈음 정말 많은 것 같아요.

겜돌이: 저는 〈힐튼서울 자서전〉이 가장 최근에 본 전시여서 그런지 먼저 생각나요. 우선 전시 자체가 너무 재밌었어요. 건축 전시를 보러 간다고 하면 뭔가를 배우러 간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그런데 피크닉에 갔을 때에는, 일단 뭔가를 배우기에는 너무 양이 많았고요. (웃음) 아카이빙된 자료의 양이 너무 방대해서 뭔가를 배우고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이 오히려 들지 않았어요. ‘진짜 감상해야겠다’라는 생각에 재미있게 즐겼어요.

그리고 사람이 정말 많았어요. 사람이 엄청 많은데, 모두 열심히 전시를 보고 있는 거예요? 건축가 김종성의 10분짜리 인터뷰 영상도 있었는데, 다 같이 모여 앉아 그걸 보고 있었어요. 그런 풍경 자체가 신선했어요.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했고요. 다양한 매체가 있으니 이해하기에도 쉽고, 주제별로 집중적으로 잘 구성되어 있는 것 같았어요. 전시의 총체적인 감상이 ‘건축 전시를 봤다’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의 이야기를 읽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감동적인 전시였어요. 사실, 우는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어요. 저도 울컥했었고요. 눈물을 흘릴 뻔했는데, 뭔가 건축 전시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아직 스스로 허락할 수 없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꾹 참았어요. 건축 전시를 보고 그렇게 감동을 받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 경험 자체로도 큐레이팅이 가지고 있는 어떤 힘을 느꼈다고 생각해요. 힐튼 서울이 이제 삶을 다했잖아요? 철거되는 시점이었기에 그런 감동적인 전시 기획이 가능했던 것일 수도 있어요. 지금 작동하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건축물이었다면 이런 분위기의 전시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강림: 건축 전시가 최근에 흥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로 아카이브가 점점 생기기 시작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어요.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식민지였던 국가들이, 특히 아시아 국가들이 독립했어요. 한국처럼 ‘발전 국가 시기’를 맞이한 거예요. 본격적으로 콘크리트로 된 ‘모던’한 건물을 짓게 되었어요. 이제 그 건물들을 철거하거나 해체하거나 리노베이션해야 해요. 그런 상황에 처한 건축물들이 많으면 아카이브는 힘을 얻어요. 어떤 변곡점을 맞이하기 전에 그 건물을 실측하고, 조사하고, 도면을 수집하고, 새로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모아서 남기는 것이에요. 아카이브가 확보되다 보니 건축 전시가 더더욱 활발해지는 경향이 있어요. 〈힐튼서울 자서전〉이 바로 그런 맥락 아래에 있는 전시일 거예요.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홍콩의 엠플러스 뮤지엄에서 열린 몇몇 전시도 이러한 맥락 속에 있어요.

겜돌이: 그동안 보아 왔던 건축 전시를 생각해 보면, 과거의 특정 건물이나 특정 건축가에 대한 전시를 많이 보았던 것 같지는 않아요. 저는 주로 해외 건축가에 대한 전시를 봐왔어요. 〈미래긍정: 노먼 포스터, 포스터 + 파트너스〉나 〈헤더윅 스튜디오: 감성을 빚다〉 등이에요.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국내에서 몇 달 동안 내한 공연을 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런 전시들을 보면 정말 아무 생각이 안 들었어요. ‘아, 모형 멋있다. 전시하는 데에 돈 많이 들었겠다’ 정도였어요. 헤더윅이 만든 의자에 앉아서 빙글빙글 돌았던 게 기억에 남고요. 그 전시들이 저한테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 건물이 왜 이렇게 만들어져야만 하는지, 이 건축가는 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제게 계속 동의를 구하는 느낌이었어요. 제게는 와닿지 않았어요. 뭐라고 해야 할까요? 그냥 개인적인 견해들 같아서 공감이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힐튼서울 자서전〉은, 정다영 큐레이터의 말처럼, 그 전시 자체가 공동의 감각을 혹은 사유를 이끌어내는 토대로서 작동하는 것 같았어요. 사람마다 느끼는 ‘공동의 감각’이 다소 다를 수는 있겠지만요. 어쨌든 ‘이 사안에 대해서 한번 터놓고 이야기를 해보자. 이 사안에 대한 너의 생각은 어떠니?’라고 전시가 물어보는 것 같았어요.

강림: 겜돌이는 건축가 개인을 프로모션하는 전시와 공동의 지식 생산을 위한 전시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물론 그런 류의 구분이 항상 쉽지는 않지만요.

채운: 저도 〈힐튼서울 자서전〉이 좋았어요. 저는 제 회사의 후배와 같이 가서 봤어요. 전시 퀄리티가 너무 좋고, 힐튼 서울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 한다고 느꼈어요. 한편으로 저는 보는 내내 ‘이게 이렇게 중요한 건물인가? 왜 중요하지?’ 이런 의문을 품고서 전시를 봤어요. 너무 잘 조직한 전시인데, 힐튼 서울이 이렇게나 유명하고, 제가 알아야 하고, 힐튼 서울의 철거에서 제가 응당 무언가를 느껴야 하는지 고민이었어요. 의도된 엄청난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전시를 보았어서, 마냥 좋다고 생각하면서 보지는 않았고, 약간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봤어요. 생각해보면 그때는 나름 냉소적으로 보았던 것 같아요.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이라면 힐튼 서울에는 가본 적도 없을뿐더러 가까이 지나쳐본 적도 없어요. 언제 철거되는지도 몰랐어요. 그래서 의심하면서 봤어요.

이번에 『건축신문』에서 큐레이터의 생각을 읽어보니 그나마 이해가 갔던 부분이 있었어요. 단순히 한 건물이 좋아서 전시를 기획했다고 단정 지을 수 없을 것 같아요. 하나의 건물을 택하는 이유도 하나가 아닌 것 같아요. 역사적이고 품질 좋은 훌륭한 건물이니까 택한 것도 있겠지만, 한국 건축 역사에 이야기 하나를 더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글들을 읽고 나니 〈힐튼서울 자서전〉이 더 긍정적으로 다가왔어요.

그보다 2년 전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렸던 〈연결하는 집: 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은 수많은 건축가와 건축물들을 대상으로, 신선한 주택들이나 근작들을 소개하는 큰 전시였어요. 저는 그 전시가 너무 좋았어요. 여러 사례를 토대로 하나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오래 보았고, 의심 없이 편하게 봤어요. 그랬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힐튼서울 자서전〉이 더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 같네요. 이것 자체에도 어떤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강림: 저희는 건축 전시를 보게 된 지가 10여 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건축 전시의 흐름에 관해서는 잘 모를 수밖에 없어요. 그렇지만 아는 한에서 생각해보면, 힐튼 서울이 전시의 대상이 된 이유 중 하나는 전시 이전에 힐튼 서울에 관한 담론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힐튼 서울을 철거할 것인지에 관해서 길고 지난한 논의가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김종성, 황두진, 안창모 등 건축계의 많은 사람들이 힐튼 서울의 철거를 막기 위해서 노력했어요. 각 협회와 단체 차원에서 성명을 내는 등 이례적인 정치적 개입이 있었어요. 결론적으로는 철거되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요. 그럼에도 무의미했다고는 볼 수 없어요. 다소 불완전하기는 하나 아트리움을 보존하기로 했고, 힐튼 서울에 관한 책도 여러 권 나오는 등 성과가 있었어요. 분명한 성취가 있었던 것이죠. 이러한 담론적 맥락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힐튼 서울이 전시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고 여겨져요.

〈연결하는 집: 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은 정다영 큐레이터가 국립현대미술관을 나와서 CAC의 구성원으로 독립 큐레이터 활동을 시작하기 전, 마지막으로 큐레이팅한 전시였어요.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가 아카이브, 그러니까 모형이나 도면, 스케치 등 재현물(representation)들을 펼쳐내는 작업들이었다면 〈종이와 콘크리트: 한국 현대건축 운동 1987-1997〉은 재현물을 비롯한 여러 매체를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했던 전시였어요. 사실, 어차피 건물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 전시장 안에서는 불가능하므로, 체험을 매개하는 재현물을 사용하는 것이 건축 전시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을 수 있어요. ‘건물에 못 가니까 전시를 본다’처럼, 건축 전시가 건물에 비해 부차적인 것으로 자리하게 되는 점도 있고요. 그런데 〈연결하는 집: 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은 아예 재현물의 별자리라고 불러야 할 전시예요. 재현물의 양 자체가 실험적이었어요. 전시 동선이 특히 기억에 남는데, 전시장 내에 가벽을 세워서 미술관 전시장의 구조 자체를 변경해 버렸어요. 전시장에 들어가면 구조 그리드의 대각선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어요. 재현물을 쓰면서 재현물의 양적 실험을 도모하고 전시 경험 자체를 건축하는 전시예요. 그런 부분들도 굉장히 흥미로웠던 것으로 기억해요. 다른 분들은요?

닥터페퍼: 저는 두 가지 정도가 기억나요. 최근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갔었어요. 건축 전시를 보려고 간 것은 아니에요. 매우 많은 사람이 미술관에 있어서 놀랐어요. 오늘 모임 전에 쓴 글 중에 겜돌이의 글 제목처럼 ‘대전시의 시대’였어요. 2시간 뒤의 입장까지 대기줄이 있었어요. 〈데이미언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였는데, 결국 못 보고 다른 전시를 봤어요. 그중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성능경의 ‘위치’라는 작품이었어요. 미술 잡지를 몸의 어떤 위치에 맞게 들고 있는 사진이었어요. 그런데 그 잡지가 『공간』인 거예요? 그런데 작품 설명에는 『공간』이 건축 잡지라는 설명은 없었고, 미술 잡지로 소개되어 있었어요. 그 당시에는 『공간』이 건축 잡지로 인정받지 못했나, 아니면 미술 잡지로 어필했던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들이 들었어요. 또, 한편에는 아주 자그마하게 일본 건축가가 만든 동영상도 하나 있었어요. 영상 매체 전시죠. ‘이게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내에서 건축 분야의 입지인가?’ 싶었어요.

좋았던 건축 전시를 이야기해보자면, 저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기억에 남아요. 에드워드 리 셰프가 만든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어요. 건축 바깥의 사람들이 함께 건축에 관한 담론을 펼칠 수 있는 장이 현실화한 느낌이었어요. 건축 전시라고 하면, 건축가들이나 아니면 건축 비평가 혹은 업계 관계자들을 위한 것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건축과 무관한 제삼자가 건축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도 전시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신선했어요.

천하장사: 저는 〈힐튼서울 자서전〉이에요. 이전에 엄청 시끄러웠잖아요? 서명도 했었던 것 같아요. 전시는 너무 좋았지만, ‘참 화려하게 작별하는 건축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건물들도 많았을 텐데요. 그래도 저 정도면….

강림: 호상이다?

천하장사: (웃음) 아니…. 굉장히 화려한 장례식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도면이랑 모형도 많았지만 무엇보다도 영상들, 철거하는 영상이나 물이 있는 영상이나 재료를 뜯어내고 깨내는 영상들이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조명이나 문손잡이처럼 실제 호텔 안에서 썼던 것들을 전시해 두었는데, 수공예적이고 럭셔리하면서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채운 말에 공감했던 것이, ‘서울 애들은 좋았겠다’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크리스마스 때 힐튼 서울의 로비에서 기차 디오라마 돌아가는 것을 봤었더라면 저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을 것 같아요.

강림: 서울 애들 중에서도 많이 못 봤을걸요? 열차 디오라마 알고 있었어요?!

닥터페퍼: 저는 서울 사람인데, 처음 봤어요!

천하장사: (웃음) 그리고 호텔 시스템을 구축하는 설명서가 인상 깊었어요. 고객들에게 어떻게 서비스를 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어요. 마지막 층에 서울 힐튼이 왜 이렇게 한국 건축계에서 뜨거운 화젯거리였는지에 대한 책들이 있었잖아요?

강림: 피날레죠.

천하장사: 참 알찼어요. 최근에 베니스 비엔날레 2025 귀국전을 보았는데 거기서도 영상이 인상적이었어요. 한국관이 어떤 과정으로 지어졌고, 이번 비엔날레는 왜 이런 주제로 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어요.

쪠: 저는 건축 전시도 많이 봤지만, 전시보다도 서울국제건축영화제에서 보았던 알바루 시자와 카즈요 세지마에 관한 영화가 떠올랐어요. 대가들이 직접 다큐에 출연하여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주었어요. 그런 이야기들을 몇 시간 동안 몰입해서 들어본 것은 처음이었어요. 항상 유튜브에서 인터뷰하는 영상이나 작품을 설명하는 영상 정도만 짧게 보았거든요. 그 사람들의 생각이나 일생,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모형을 어떤 식으로 만드는지, 어떤 일상을 살고 있으며 그것이 설계에 어떻게 반영이 되는지는 몰랐어요. 예를 들어 세지마는 공사장을 매일 찾아갔다고 하더라고요. 세지마는 작고 왜소한 여자이지만 어떻게 그 공사 현장을 진두지휘할 수 있었는지 이야기해 주었어요. 저는 그때 한창 회사에 치여 살던 때였어요. ‘이제 건축이 재미없다’고 생각했고요.

강림: 건축 권태기, 건태기네요.

쪠: 네. (웃음) 그때 그 영화를 보고, ‘나도 잘 되어서 저렇게 좋은 설계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어요. 인상이 깊었던 영화제였어요.

강림: 저는 유럽 여행을 겜돌이랑 같이 갔었어요. 어느 나라였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데, 한 미술관에서 조그마한 전시가 있었어요. 현대 일본 건축가들의, 지역 공동체에 대한 미시적 실천을 모아둔 전시였어요. 그 전시 이름도, 미술관 이름도 기억이 안 나요. 인터뷰 영상도 있고, 도면도 있었는데, 모형이 없었어요. 모형이 있을 수가 없는 작업들이었어요. 예를 들어 동네 빵집의 창문을 고친다, 그러면 가서 실측을 하고 도면을 이만큼 그리고 발주를 넣고 제작해서 결론적으로 요만한 창문을 만드는 거예요. 아주 작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것들을 만들어주는 건축가들을 모은 전시였어요. 저는 그 전시를 한참 잊고 있었는데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 떠올랐어요. 어쩌면 그때 본 전시가 제 태도를 바꾸는 데에 영향을 많이 미치지 않았을까 싶어요.

건축 전시를 보는 이유

강림: 여러분이 건축 전시를 왜 보러 가는지도 궁금해요. 건축가들은 전시를 보러 가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자기 학교의 졸업 전시를 매년 보러 가는 것이 아마 기본일 테고요.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다른 학교의 졸업 전시도 보러 가고요. 혹은 데이미언 허스트 개인전이나 론 뮤윅의 개인전, 올라퍼 엘리아슨의 개인전처럼 이름 있는 미술관의 대형 전시도 웬만해서는 시간을 내어 보러 가는 것 같아요. 이런 전시들을 보러 가는 이유가 궁금해요. 예를 들어 〈힐튼서울 자서전〉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전시를 보기 전까지는 힐튼 서울에 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렇다면 저희는 왜 그 전시를 보고 싶다고 생각할까요?

겜돌이: 매우 속물적인 이유인데요, 그냥 대화에 끼고 싶어요. 핫하잖아요. 유명하고. 잘 짜인 전시라는 것은 이미 익히 들었어요. 저는 사실 〈힐튼서울 자서전〉에 늦게 간 편이에요. 거의 막바지에 갔으니까요. 전시 자체의 의미도 있겠지만, ‘나도 그 전시에 대한 대화에 끼고 싶다’라는 욕망이 있었죠. 대화가 재밌어 보였어요. 직접 가보지 않으면 듣기밖에 못 하잖아요? 그 전시에 대한 제 생각이 어떤지를 이야기해 보고 싶기 때문에 보러 갔어요. 물론 약간의 의무감은 있었어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한 것이지만, 단순히 콘텐츠가 재밌어 보이면 가는 것 같아요. 최근에 저는 얼리버드로 예매해 놓고도 가지 못한 전시가 여럿 있어요. 르 코르뷔지에와 김중업의 사진전도 집 바로 옆에서 했었는데 결국 가지 않았어요. 별로 가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이때가 아니면 못 본다!’ 싶은 콘텐츠가 있으면 가는 것 같아요.

채운: 건축물을 전제로 한 건축 전시로 한정하자면, 저는 설계자들이나 관계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해서 가는 것이 가장 커요.

강림: 작가들의 생각이 궁금한 거군요.

채운: 어디 한번 뭐라고 이야기하는지 들어봐야죠.

강림: …글로 남겨도 되는 이야기예요?

채운: (웃음) 그럼요. 어디 한번 들어보는 게 나쁜 것은 아니니까요. 건물과 전시, 두 가지 장르를 비교해보았을 때, 건물에서 경험하는 것으로는 알 수 없는 숨겨진 생각이나 우여곡절이 많잖아요? 건축가가 개입한 전시에 가면 그 건축가가 전시를 통하여 썰을 풀어주니까 재미있어서 가는 것 같아요. 〈젊은건축가상〉도 전시를 보면 그들이 왜 선정되었는지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잖아요? 그래서 건축 전시를 보러 가는 것 같아요.

천하장사: 미술 전시는 작품을 보고 싶어서 가요. 생각해 보니까 건축 전시는 그곳에 있는 전시품들이 작품도 아닌데 왜 보러 가는지 궁금해지네요. 하지만 생각해 보면, 책 같은 것들 아무리 집에 많아도 집에서는 절대로 읽지 않아요. 스마트폰 하느라 바쁘죠. 전시장에 저를 던져 놓아야 스마트폰을 하지 않고 집중해서 생각해 보는 것 같아요.

강림: 영화관 같은 거군요?

천하장사: 네, 그런 상황에 저를 던져 놓아야만 단 한 시간이라도 생각에 잠길 수 있게 되거든요.

강림: 미술관이라는 공간 자체가 주는 매력이 있어요. 속세와 단절된 듯한 공간이잖아요. 사회에서 그런 단절된 공간이 많은 것 같지 않아요. 과거에는 권위 있었던 공간들이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 의미나 기능을 잃어버린 것이 많은데, 미술관이 그 의미를 이어받은 것처럼 보일 때도 있어요. 루브르궁이 루브르박물관으로 바뀐 것처럼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의미가 더 공고해지는 느낌도 있고요. 요즘 국립중앙박물관이 잘 나간다면서요? 관람객 수 기준으로 대영박물관을 제쳤다고 들었어요. 사람들도 전시를 보러 가는 것을 감각이 자극되는 즐거운 여가로 인식하는 것 같아요.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주는 세상과 격리된 느낌, 자족적인 세계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전시를 보러 가는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요? 천하장사 말처럼, 평소에 너무 연결되어 있다 보니 그런 공간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

채운: 저는 미술관이 속세와 단절된, 동떨어진 공간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어요. 이 글들을 읽고 나서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평소에는 어떤 주제에 관하여 다 같이 모여서 이야기할 기회가 없는데, 전시가 열리면 어떤 주제에 관하여 이야기할 수 있어요. ‘너도 그 전시 봤어? 어떻게 생각해?’ 이런 식이죠. 특히 미술관에서 주관하는 전시들은 공중파 방송 같은 느낌이에요.

강림: 전시가 바로 그 순간에 공동의 담론장을 열어젖히는 거예요. 예를 들어 〈힐튼서울 자서전〉이 시작되면 힐튼 서울이 그 순간 공통의 담론이 되는 거죠. 누군가는 힐튼 서울에 대한 글을 쓰고, 전시를 리뷰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술자리에서 힐튼 서울에 갔었던 경험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겠죠. “이렇게 중요한 건물인지 몰랐다”라는 감상조차도 그 전시가 촉발한 담론의 일부로 작동해요. 그 순간적인 공통성, 찰나의 공동성 때문에 겜돌이가 아까 말했듯이 전시는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최소한 되도록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계의 구성원으로서 느끼는 책임감이죠.

저는 ‘다른 마을에서 온 편지’를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는데, 대학생뿐만 아니라 현업에 있는 사람들도 담론의 흐름을 알려 하고 담론에 참여하려고 하는 것이 한국 건축계의, 나아가 건축이라는 업 자체의 독특한 특성일 수도 있어요. 건축 바깥의 시선을 읽어보니, 계의 이런 문화는 긍정적인 것 같아요.

닥터페퍼: 저는 유희를 위해서 전시를 보러 가는 것이 커요. 다른 사람들이 말했듯 생각을 듣거나 생각하려고 가는 것 같아요. 건물이 무슨 말을 하고 있지는 않잖아요? 그냥 서 있는 것이죠. 그런데 건축 전시에는 말이 있어요. 저는 전시 속의 모든 말을 읽어보는 편이에요. 작품을 먼저 보고, 작품에 대한 설명까지 다 읽어요.

강림: 적극적인 관객이네요.

닥터페퍼: 네. 작품과 글을 함께 보고 생각해보는 것이 재미있어서 건축 전시에 가는 것 같아요.

건축 전시, 그들이 사는 세상

강림: 한편으로는, 건축 전시라고 하면 왠지 건축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 같고, 저희가 자주 하는 경험이기에 친근하게 느끼고 있었는데, 이렇게 건축 전시에 투신(?)하고 있는 분들의 글을 읽어보면서 건축 전시라는 영역이 얼마나 설계와 독립된 실천의 영역인지, 그리고 그들만의 세상, 그들만의 프로페션(profession)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충격을 받았어요. 마치 건축 출판이 그러하듯이요. 실제로 책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저희는 전혀 모르고, 또 편집자의 마음 역시 전혀 모르잖아요? 저희는 그저 책과 친근히, 가까이 있을 뿐이죠. 

『건축, 전시, 큐레이팅』에는 ‘건축’에 관한 글도 많지만, 동시에 ‘전시’에 관한 글도 많았어요. ‘큐레이터’, ‘큐레토리얼’, ‘큐레이터십’ 같은 전시 분야 용어지만 익숙한 단어도 많이 보이고요. 건축이라는 이름 아래에 함께 있지만, 동시에 저희와 접점이 거의 없는 독립된 영역에서 실천하시는 분들의 글을 읽었을 때에 받는 느낌도 궁금합니다.

닥터페퍼: 건축은 건축 바깥의 것, 그러니까 법규, 정책, 규제에 따라서 실천이 제한되는데, 건축 전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정다영 큐레이터의 글을 보면 건축 큐레이터들도 미술관이라는 보수적인 집단에 의해서 많은 제약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인지해본 적이 없었어요.

강림: 건축 전시는 건축보다 자유로운 것이라는 선입견이 깨졌네요.

닥터페퍼: 자유로운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당연히 미술관은 굉장히 보수적인 집단일 것이고, 건축 전시가 받는 제약도 다양하고 상당할 것 같아요. 이런 새로운 사실들을 알 수 있었어요.

강림: 특히나 국립현대미술관처럼 미술관 자체가 국가 기관일 경우, 본질적으로 다소 보수적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소장품 선택이나 전시 자체가 국가의 서사이자 행정이 될 테니까요.

쪠: 글을 읽으면서 이 키워드 아래에서 글을 쓴 모두가 너무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무지해서 하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회화나 조각의 경우 어느 정도 전시 큐레이팅의 방향성도 잡혀 있고 소장품을 선택해온 역사도 깊다 보니, 회화나 조각 전시는 큰 틀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건축 전시는 제가 봐도 방법이 너무 다양할 것 같아요. 그 와중에 또 뻔해진 전시 방법이 있고요. 어찌 보면 너무 광범위해요. 지나치게 실험적이면 사람들의 피부에 와닿지 않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건축 전시를 만드는 분들이 너무나도 힘든 영역에 있는 것 같아요. 무언가를 대상으로 큐레이팅을 해야 하고, 누군가의 생각이나 일생을 정리하고 몇십 년간 일어난 사건들을 모조리 파악해 나가면서 전시를 구성하는 것이 너무 지난할 것 같아요. 사실 내가 주체가 되는 게 아니라, 어떤 대상을 먼저 공부해야 하는 상황을 저희도 별로 즐기지 않잖아요? 그런데 그 대상들을 재미있게 만들어야 하고, 편집을 해야 하고, 보여주는 방법도 영상이 될 수도 있고 전시품이 될 수도 있고 파빌리온이 될 수도 있고…. 선택지가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정말 힘드시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닥터페퍼: 그리고 건축에 대한 애정이 정말 깊어야 할 수 있는 업인 것 같아요.

쪠: 맞아요. 정말로 애정 있게, 관심 있게 들여다본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닥터페퍼: 박정현이 글에 ‘큐레이터들이 가장 많은 자료를 보았을 것’이라고 썼는데, 어쩌면 큐레이터가 건축가보다 건축을 더 사랑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쪠: 제가 본 어떤 건축가는 큐레이터를 이용하기도 해요. 자기 생각을 자기가 정리할 수는 없으니까, 자신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좋은 언어로 대신 써줄 수 있는 큐레이터에게 위탁하고 그들이 써준 그 언어를 이용해서 스스로를 포장해요. 큐레이터가 자신을 파악해 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주고, 만족스러운 지위를 자신에게 주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굉장히 실망스러웠어요.

강림: 아까 겜돌이가 비슷한 결의 말을 했던 것 같아요. 건축 전시가 건축가 개인에 대한 홍보 수단, 프로모션 수단으로 쓰이는 것에 대하여 저희 모두가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리고 건축 전시 자체가 어려운 분야처럼 보인다는 인식도 공유하고 있는 듯해요.

-계속-


잡담회

잡담회는 건축의 이름 아래에서 생산되는 텍스트들을 성의 있게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눈 후,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를 텍스트로 재생산하는 독서모임이다. 아홉 명의 정규 구성원이 함께하고 있으며, 한 달에 한 번 정도, 한 권의 건축책을 읽고 와서 두 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나눈다. (비건축적인 의미로) 늘 매너리즘에 허덕이고 있기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주실 손님을 환대한다. 잡담회 아카이브: 블로그 / 인스타그램

건축 전시, 왜, 누가

분량12,832자 / 26분

발행일2026년 10월 26일

유형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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