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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이주, 건축

전중섭

이주-장소

저는 건축을 전공했지만, 인테리어 스튜디오에서 먼저 일을 시작했고, 2년 정도 일한 이후 건축사사무소로 이직했습니다. 인테리어 스튜디오에서 일했던 경험을 가지고 건축 실무를 하며 사사건건의 일들을 구상했고, 여러 생각들이 겹쳐 인테리어 디자인이긴 하나, 이동가능한 사물로 모든 공간요소를 구현해 내는 방식을 취해왔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작업의 방향을 이끌어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인테리어 스튜디오에서 설계 시공했던 중계동의 CCS라는 한 카페가 있었는데, 완공 후 1년도 안 돼서 철거됐어요. 건물이 통임대됐기 때문입니다. 철거 후 클라이언트가 저에게 한 말씀이 있었어요. “디자이너님, 죄송해요. 제가 이 스툴 12개밖에 못 챙겼어요.” 그 ‘스툴 12개’가 계속 마음에 남아있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6번 정도 이사를 했습니다. 이주도 철거와 유사한 양상을 띱니다. 4-5년 주기로 계속 이사하다 보니까 집에 대한 이미지가 희미했고, 향수(鄕愁)가 잘 안 느껴졌어요. 그런데 CCS 카페의 스툴처럼, 본가에 몰딩으로 장식된 옛날 장롱이 있습니다. 이사를 할 때마다 이 장롱이 계속 우리 가족을 따라다녔어요. 그래서 ‘집’을 떠올리면, 저는 장롱 앞에 누워 계시던 부모님이 떠오르는 거예요. 그래서 저에게는 스툴 12개와 장롱이라는 사물이 공간의 이미지가 됐습니다.

이처럼 임대 공간이 필연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소멸의 순간이 있는데, 과연 건축물에, 혹은 특정 공간에 장소성이 부여되는 것이 맞느냐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경험을 돌아보면 장소성이 사물에 있어야 하는 게 아닐지 질문하게 된 것입니다.

그즈음에 재즈 음악을 즐겨 들으면서 공연을 보러 다녔어요. 공연장이 허름해도 악기 몇 대와 방음판 몇 개만 있으면 그곳이 스튜디오가 되고 무대로 변신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잘 만들어진 악기처럼 잘 만든 사물이 공간 안에 제자리를 잡을 때, 장소의 인상과 의미를 결정짓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금씩 품게 되었습니다.

이동을 위한 사물-가구

처음에는 금관악기처럼 들고 다닐 수 있는 이동형 가구를 만들었어요. 인테리어 스튜디오에서 했던 (철거 후 폐기가 숙명인) 고정형 인테리어에 지친 상태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악기처럼 잘 구현된 가구를 만들고, 그것들을 한두 개 놓음으로써 장소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움직였습니다.

‘밑미홈’(meet me home) 2층에 있는 식당 테이블은 예산이 매우 적었습니다. 그래서 가게에 들어온 손님에게 이곳이 식당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리게 하려면, 당연히 식탁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게 ‘못생긴 감자’ 같은 단순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면, 사람들이 이 장소를 인지하기 쉬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설령 나중에 가게가 이주하더라도 “그 못생긴 감자 테이블이 있던 식당 어디로 옮겼던데”와 같이 장소 이미지가 그대로 옮겨갈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프로젝트의 벽부장이나 선반 등을 디자인할 땐, 벽에 부착하되 떼기 쉬운 방법, 못을 덜 박고 설치할 방법을 궁리하여 프레임을 설치하고 얹는 방식을 고안했습니다.

사사건건 초기 클라이언트는 예산이 적고 사업이 불확실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일단 사무실로 쓰다가 나중에 확장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언제 이 공간이 없어질지도 몰랐습니다. 이제 막 시작하는 분들이니까 더더욱 가구를 가져갈 수 있게 만들자라는 생각을 키웠습니다.

작업을 거듭하면서 큰 사물을 구성하는 방식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사물 여러 개를 이어 붙여 지름 2-3미터짜리 테이블을 만드는 방식으로 큰 가구 또한 가져갈 수 있게 하자, 어렵더라도 그 가능성을 계속 열어두자고 생각했습니다. 좀 더 무겁고 큰 ‘카페 바’, ‘주방’, 긴 디제잉 테이블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했습니다.

카페 바는 4가지 구성 요소로 이루어졌습니다. 제 집에 테이블 상판, 책장, 키보드 서랍장이 따로 분리되는 책상이 있는데, 이걸 살펴보면 해체하여 다른 곳으로 가져가 재조립하기 좋은 방식입니다. 이 방식을 ‘카페 바’에도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상판을 별도로 만들고 나머지 요소도 다 따로 만들기 시작하면서 버려지는 공간을 최소화했습니다. 싱크대 하부 공간처럼 활용하기 어려운 공간은, 저도 그렇지만 시공자나 사용자나 거기에 모든 오차를 집어넣는 습성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쓰다보면 너무 지저분해지고, 불쾌합니다. 그래서 꼭 가려야 할 부분만 가리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형상을 섬세하게 다듬을 수 있게 됐어요. 그러다보니 하나로 합쳤을 때 단일한 형태를 완벽하게 유지하지 않아도 되고, 각 기능에 맞는 형상으로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사실 카페 바의 클라이언트는 CCS 카페의 주인이었어요. 여기에 그때 그 스툴을 꼭 다시 사용하자고 해서 바 단 한쪽이 높아졌는데, 그러면서 배관 배열을 해결하기도 했어요. 일을 마치고 나서 클라이언트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스툴을 시작으로 카페 바까지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커피집이 완성된 것 같습니다. 이제 이주 명령 떨어져도 그대로 커피집을 유지할 수 있어요. 아무도 이 공간을 잊지 않을 겁니다.”

벽-천장-바닥

이렇게 가구의 단위를 분할하고 가볍게 만들어 이주할 수 있는 형식을 여러 번 만들어 보고 나니 좀 과감해지기 시작했어요. 이제 가구를 넘어서서 방이나 실을 구획하는 벽, 천장, 바닥은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질문하면서 몇 가지를 시도했습니다. 샵 아모멘토 반포에는 창고와 피팅 룸이 필요했습니다. 한쪽은 창고로, 다른 쪽은 피팅 룸으로 만들었어요. 가구로 방을 만든, 조그마한 포드 같은 개념으로 만들었습니다. 근데 이 정도 규모가 되니까 밖으로 들고 갈 수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앞의 카페 바를 구성했던 방식으로 돌아갔습니다.

샵 아모멘토 신세계 강남점은 샵 가운데에 피팅 룸을 두었습니다. 이게 일반적이지는 않아요. 피팅 룸은 대체로 가장 구석에, 석고 가벽으로 만들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피팅 룸은 옷을 구매하려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하고, 또 그들과 밀접하게 접촉하는 실입니다. 그러니까 이걸 중앙으로 옮겨 놓자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피팅 룸만 덩그러니 놓을 것이 아니라 이 샵에서 중요한 요소가 이 실을 둘러싸도록 만들어야겠다는 의도로, 선반 기능을 할 수 있는 캐비닛 등을 끼워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을 하나씩 분리할 수 있게 설계해야 했어요. 모든 요소가 붙어있는 채로, 통째로 들고 갈 수는 없으니까요. 열리고, 닫히고, 탈착되는 경첩 디테일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정말 어려웠던 게 천장이었습니다. 무조건 흰 벽으로 마감해야 할 만큼 지저분한 현장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천장은 공간의 위계질서를 정할 때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 주요 요소를 단순히 가려버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보통 천장 마감 안에 건축이 감당하지 못한 전선, 배관 같은 것을 숨겨놓곤 합니다. 그런 것을 내가 다 감당할 수 있는가를 고민했고, 우선 조명이라도 손대보자는 생각으로 천장에 매달 조명을 어떻게 사물화할 것인가 궁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샵 아모멘토 율곡점은 천장 조명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 했습니다. 아주 오래된 건물인 데다 노출 천장인데, 이 공간을 정리하기 위해 어떤 조명을 어떤 방식으로 추가해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천장에 하나의 규칙을 만들자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천장에 궤도를 그리면서 조명을 배치했고, 점점이 위치한 조명을 선으로, 타원 모양으로 이었습니다. 전선으로 연결하는 방식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시선을 빼앗을 힘은 기하학에서 나온다고 믿었습니다.

조명을 사물화하는 과정을 여러 번 거치며 스터디해보니 결국 전선을 어떤 식으로 노출하느냐가 제일 중요했습니다. 놀이공원의 범퍼카를 보면 천장에 불꽃이 튀거든요. 자세히 살펴보면 범퍼카에서 나온 안테나가 천장에 닿아있어요. 이 안테나는 플러스 극이고, 바닥에 닿은 판은 마이너스 극이라 전류가 위에서 아래로 흐르면서 범퍼카가 전력을 공급받아 움직이는 구조예요. 이런 개념을 토대로 전선을 어떤 부산물이 아니라 디자인과 사물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것 또한 가지고 갈 수 있는 형식으로 실험을 지속했어요.

그런데 결국 건축 차원에서 설비를 정리하지 않으면 아무리 조명이나 전선을 가지고 노력해도 편안한 공간을 만들어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바닥에 그런 것을 수용할 수 있는 사물로 채우면 어떨까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이사 간 집의 벽에 붙은 주방 시설이 싫으면 어떡하지? 그걸 다른 곳으로 옮기면 배관을 빼서 이어야 하고, 그러면 바닥 단을 올려야 되는데, 이건 돈 낭비다’ 이런 생각들을 연달아 하게 되면서 가변적인, 점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떠올렸습니다.

제 스튜디오 바닥에 장롱을 짜고 있습니다. 바닥에 배관, 전선이 퍼져나가는 칸도 있고 나머지 캐비닛이 다 수납장입니다. 가장 많은 접촉이 이루어지는 부분이 바닥이라고 생각하니까, 처음에 이야기했던 본가의 장롱이 바닥에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들고 다닐 수 있는 크기로 쪼개놓았으니, 이사를 하더라도 바닥 모양에 맞게 잘 조합하면 됩니다.

architecture as infrastructure: 알도 반 아이크, 리나 보 바르디, 장 프루베

이런 작업을 지속하면서 건축에 대한 이해도 점차 변했습니다. 벽, 천장, 바닥 등 건축이라 배운 모든 요소를 사물의 층위로 끌어내려 풀어낼 수 있게 됐는데, 그렇다면 내가 ‘건축’에서 중점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게 무엇일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또, 학교에서 사람, 사용자의 경험이나 감상을 중점으로 두고 설계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지난 4년간의 작업을 통해 굳이 건물에 그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을까를 질문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관심 있게 본 건축가가 알도 반 아이크, 리나 보 바르디, 장 프루베였습니다.

알도 반 아이크의 대표작은 암스테르담 고아원(The Amsterdam Orphanage)으로, 프랙탈 같은 반복적인 구조로 평면을 만드는데, 이 안에 관계가 녹아있다고 생각한 거죠. 겉으로 보기엔 이런 방법론이 과연 인본주의적인가 하는 의문이 들지만, 건축가는 그 바탕을 만드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공간을 너무 개인화하거나 감상에 치우치지도 않았습니다. 리나 보 바르디는 스테이지라는 말을 씁니다. 그의 가구를 보면서, 모임의 장을 만드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커다란 탁자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장 프루베는 현실적인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는 데 집중한 사람이었어요. 2차 세계 대전 이후 주택을 빠르게 대량 공급해야 했던 시기에 적합한 구조를 계속 발전시킨 건축가예요. 대표적인 작업인 조립식 주택(Maison Démontable)은 두세 명이 이틀 만에 짓는 집입니다. 이런 작업을 토대로 발전시킨 장 프루베만의 구조가 있습니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이 세 명 다 가구를 잘 만들어요. 작업을 들여다보면 가구의 힘을 아는 것만 같고요. 이들을 보면서 사람과의 접점을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은 사물 차원에서, 시대적인 문제나 현실적인 제약을 구조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건물 차원에서 고민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집, 이주, 건축: 시대 변화 속에서 건축가의 역할

건축에서 개인의 요구 사항, 취향 같은 부분을 사물로 변환하고 난 다음, 건물은 시대적, 사회적, 도시적 맥락 속에서 어떤 목적을 향해야 한다는 생각을 구체화하면서 이것이 실현된 예가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제가 밀고 나가도 되는 아이디어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죠. 그래서 역사에서 찾아보니 독특하게도 구조주의 건축가 헤르만 헤르츠버거와 김현옥 전 서울시장, 이 두 사람이 이 지점에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알도 반 아이크가 구조주의를 시작하는 사람이었다면 헤르만 헤르츠버거는 그 개념을 많이 실현한 사람입니다. 그는, 건축은 삶을 지탱하는 지지체 정도면 되고 그곳을 채워 넣는 것은 개인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서포트(support)와 인필(infill) 개념으로 건축을 설명했어요. 제가 발전시켜 온 생각과 유사한 면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다음으로 이 아이디어가 어떻게 실현될 수 있나, 혹은 실현됐는가의 질문으로 넘어갔을 때, 비슷한 일이 이미 한국에서 있었더라고요. 회현 시민아파트를 지을 때, ‘골조 분양’, 즉 라멘 구조만 지어놓은 다음에 주택을 분양했습니다. 그래서 내부 벽돌은 분양받은 사람들이 직접 시공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얻을 수 있는 장점은 공기 단축이었죠. (물론 문제가 많기는 했지만) 그렇게 주택난을 해결했습니다. 회현 시민아파트 사례를 보면서 ‘지금 내가 구상하는 게 현대적으로 잘 처리된 골조 분양인가?’를 다시 물으면, 시대가 많이 다르긴 하죠. 그때는 주택이 부족하니까 빠르게 지어야 하는 상황이었고, 지금은 다른 이유로 이주를 계속하는 사회가 되었잖아요? 집을 사는 것에 대한 회의감도 있고요. 그러므로 사물들이 집의 의미를 품고, 사람들은 그것을 계속 옮기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거죠.

이제는 집이라는 감각이 내가 짊어지고 다니는 가구에 더 많이 귀속되어 있다고 느끼고,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부동산이 되어버린 주택을 더 이상 내 집, 내 공간, 내 장소로 여기지 않아도 괜찮다는, 자유를 얻은 셈이에요. 그래서 더 나은 주택을 설계하는 일에 집착하기보다, 건축물로 무대를 세우고, 집이라는 장소성을 품는 가구를 꾸준히 만들고, 사람들이 이주하기 좋은 환경을 사방에 구축해 두는 방향으로 건축을 해나가려 합니다. 고맙습니다.

원고화 김주현 / 편집 심미선


사사건건

전중섭은 단국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와 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후 사사건건 건축사사무소를 설립했다. 4t, 아이헤이트먼데이, 샵아모멘토 등 여러 프로젝트에서 정형적인 인테리어 디자인에서 벗어난 가구 위주의 설계를 통해 공간 전반적인 요구조건을 벽, 전장 등의 고정형 요소 없이 풀어내는 방식으로 작업을 해오고 있으며, 이로 인해 얻어지는 건축 요소의 간결화, 공동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https://saasaakunkun.com/

집, 이주, 건축

분량6,854자 / 14분 / 도판 5장

발행일2026년 5월 13일

유형강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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