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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Neutral

백진선

제 내면에는 서로 다른 경험과 주제들이 공존하며 때로는 충돌합니다. 저는 극과 극을 오가며 중심을 찾고자 합니다. 이러한 태도를 중립(Neutral)이라 정의하며, 저와 저의 건축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극과 극 사이에서

인테리어-건축

저는 국내에서 실내 디자인을 전공했고, 대형 건축사사무소의 인테리어 파트에서 실무를 시작했습니다. 이때 의장에 한정되는 업무 범위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저는 창을 내고 싶고, 벽도 움직이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건축팀은 제 의견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이유를 알고 싶어도 충분한 설명을 들을 수 없었고, ‘변경할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결국 벽을 움직이고 싶다는 단순한 동기로 네덜란드 베를라헤 인스티튜트(Berlage Institute)로 건축 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인테리어와 건축 모두를 경험하고 나니 두 분야 사이의 간극이 크다고 느꼈습니다. 인테리어는 안에서 밖으로 확장되는 방식으로 디자인하지만, 건축은 밖에서 안으로 조직하는 방식으로 사고 과정을 바꿔야 했습니다. 이 방식이 익숙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이제는 온전히 건축적인 사고 방식으로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건물 안팎을 함께 다룰 수 있게 되어 그런 성격의 작업을 할 때 작업 만족도가 매우 높아졌습니다.

베를라헤 인스티튜트-티유 델프트

유학 시절에는 건축 교육의 극단을 보았습니다. 베를라헤 인스티튜트는 실험적이고 강도 높은 건축 교육을 통해서 스타키텍트(starchitect)를 양성하는 목표를 지향하는 학교인데, 제가 베를라헤에 지원한 해에 네덜란드 정책 변화로 티유 델프트(TU Delft, 델프트 공과대학교)와 통합되어 티유 델프트 베를라헤 연구소 소속이 되었습니다. 티유 델프트는 보편적으로 요구되는 수준 이상의 전문가를 길러내는 건축 대학입니다. (완전히 성격이 다르죠.) 그 덕분에 의도치 않게 서로 다른 두 교육 체계를 동시에 경험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 차이를 비교하며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와중에 베를라헤의 멤버들은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이었습니다. 학교 창립자인 헤르만 헤르츠버거, OMA의 창립자 중 한 명인 엘리아 젱겔리스, AMO의 수장인 레이니어 드 흐라프, 도그마(Dogma) 등 건축계의 전설들이 튜터를 맡았고, 당시 라이징 스타였던 하세가와 고, 발레리오 올지아티, 소일(SO-IL) 등의 특강이 진행됐습니다. 그 치열한 교육과정이 저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네덜란드-일본

저는 약 9년 동안 해외에서 생활했습니다. 네덜란드에 있을 때는 더치보다 더 더치같다(more than Dutch)는 말을 들었고, 일본에서는 일본인들로부터 ‘일본인보다 더 벽이 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백 소장은 거의 일본인이지”라는 말도 종종 듣습니다. 네덜란드에서 3년 간 공부와 실무를 한 뒤, 일본으로 옮겨 건축 실무를 본격적으로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저의 건축 스타일은 일본 스타일일까요? 흥미롭게도 최근 한 일본인 친구는 제 작업에서 ‘꽤 한국적인 스타일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저의 건축을 특정 국가의 스타일로 규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늘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후지모토 소우-겐고 쿠마

일본에서의 실무 경험도 극과 극이었습니다. 일본 건축사무소는 도제식 체계로, 사무소의 대표 건축가는 사장님이라기 보다 ‘선생님’의 의미가 크고, 소속 직원들은 그의 건축적인 결을 계승하는 일이 자연스럽습니다. 저는 후지모토 소우 사무소와 쿠마 겐고 사무소를 거쳤는데, 일본 건축의 계보 안에서 두 건축가의 거리는 매우 멉니다. 건축 언어 역시 상당히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자신을 ‘후지모토계’라고 해야 할지 ‘쿠마계’라고 해야 할지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제 작업에서 드러날 결을 꼭 찾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완전히 다른 환경과 조건, 경험과 상황을 거쳐오면서도 어느 한 쪽을 선택하기보다 그 사이에서 지내온 삶이 저의 중립적인 건축 성향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겉으로 보면 배경이나 건축관, 정체성이 뒤섞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바로 그 상태를 받아들이는 것에서 저만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중립 지향

확정성-비확정성

저의 중립적인 건축 성향은 베를라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저는 작업을 통해서 건축가로서 가져야 할 사회 비판적 사고의 방향과 정치적 태도를 정교하게 다듬었으며, 건축가가 공간적인 확정성과 비확정성에 관해 사용자에게 제시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무주 공간은 거장 건축가의 무책임한 마인드가 낳은 결과물’이라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MORE THAN LESS IS MORE” 라는 말을 내뱉고 졸업했습니다.

물질성-비물질성

건축은 물리적으로 세워지는 존재이기 때문에 물질로서의 영향을 피할 수 없습니다. 동시에 건축가는 커다란 벽으로 둘러싸인 건물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합니다. 따라서 저는 건축이 단순한 물질적 형태를 만드는 것을 넘어, 건물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의 행동과 경험과 같은 비물질적 작용을 만들어내는 장치로서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그사이 어딘가에 탈 포스트모더니즘의 단서가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렘 콜하스가 탈 포스트모더니즘을 지향한 대표적인 건축가라고 생각합니다. 렘 콜하스는 건축이 사용자의 활동을 제한할 수 없는 무질서한 현실을 건축에 반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건축에서 오픈 플랜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부작용, 예를 들면 사용자가 보이드 스페이스에 들어갔을 때 느끼는 혼란은 건축가에게 책임이 있다고 보고, 건축가의 계획 하에 건축적인 제안이 필요하다고 여겼습니다. 저는 건축의 확정성과 비확정성 사이에서, 건축가가 그 가운데 지점을 찾아 제안하고 그것을 돌아볼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베를라헤 프로젝트 1. “The Community and Business”, HUNCH / 자료 제공: ioo100
베를라헤 프로젝트 2. Taksim Square / 자료 제공: ioo100
베를라헤 프로젝트 3. Interim Space / 자료 제공: ioo100

커리어 여정

스튜디오 막스: 실험적이고도 아름다운

학업을 마치고 유럽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암스테르담의 유명 사무소에 지원했는데, 덜컥 합격했습니다. 그런데 출근한 지 2주만에 그만두었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비판적인 사고과정을 거치지 않은 디자인을 생산하고 장식적인 뭔가를 만들어낼 때 죄악처럼 느껴졌고 슬펐습니다. 그제야 당시 제가 지향했던 건축은 학교에서 배웠던 진취적인 건축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로테르담의 스튜디오 막스(STUDIO MAKS)를 찾아갔습니다. 스튜디오 막스는 일본 SANAA 출신의 여성 건축가 마리에케 쿰스(Marieke Kums)가 운영하는 건축사사무소입니다. 저는 ‘파르크 파이베르스뷔르흐’(Park Vijversburg)라는 네덜란드 공원 프로젝트에서 곡면 유리 세팅용 디테일을 셋업했고, 현장 설치를 담당했습니다. 네덜란드의 맥락 위에 일본 건축 특유의 아름다움을 이끌어오는 과정이 흥미로웠습니다. 이 작업을 하면서 아예 일본으로 가면 더 아름답고 신기한 것들을 다룰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고, 일본으로 가게 됩니다.

소우 후지모토: 상징적이고 컨셉추얼한

일본에 가서 소우 후지모토의 건축사사무소에서 스태프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서펜타인 파빌리온 팀에 들어가서 원시적이고 컨셉추얼한 작업을 주로 했습니다. (지금과는 디자인의 결이 다릅니다.) 그때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다가 프로젝트 리더를 맡아 소우 후지모토와 직접 디자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가 법규의 경계 끝까지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며 매우 도전적으로 디자인한다고 느꼈습니다. 불법은 아니지만, 미묘한 경계에 있는 실험적인 디자인 방법론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겐고 쿠마: 숨기고 드러내는 법

쿠마의 건축사사무소로 옮긴 뒤에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작업을 하게 됩니다. 여기에서는 ‘약한 건축’의 건축적 실천이라 볼 수 있는 분절된 파사드를 구현하기 위해 나무, 돌, 철 등 다양한 소재와 디테일을 다루었습니다. 여기서는 항상 삼각형, 예각의 활용이 중요했습니다. 소파 하나를 고르더라도 삼각 소파를 선택할 정도 였습니다. 이 사무소에서는 건축의 형식화와 디테일의 구현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말끔한 외형을 구현하기 위해 숨길 것, 드러낼 것 등을 현장 경험을 통해서 배울 수 있었고 특히 특수한 디테일을 푸는 일을 계속하다 보니 그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는 걸 느꼈습니다.

약한 건축?

사실 후지모토의 방식과 쿠마의 방식 중에 어느 한 쪽이 제가 선호하는 방식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건축을 찾아 가다보니 운이 좋게도 유명한 건축사사무소에서 일을 하게 됐던 것이고요. 당시 그들의 디자인에 대해서도 완전히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이를테면, 후지모토와 쿠마 둘 다 약한 건축이라는 키워드를 언급했지만, 방법론에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후지모토는 건물 자체의 아이코닉함을 강조하며 매스의 분절과 같은 방식으로 약한 건축을 표현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소프트 아키텍처라기보다 ‘인공 자연’을 드러내는 건축에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쿠마는 파사드 혹은 외피를 해체하는 방식으로 건축을 다룹니다. 저는 그 방식의 텍토닉적인 면은 인정하지만, 건축 타이폴로지의 관점에서 그것이 과연 진정한 의미의 ‘약한 건축’일까 하는 의문이 항상 있었습니다.

뉴트럴 건축!

이런 경험과 생각이 모여 저의 뉴트럴 건축을 이루는 데 중요한 바탕이 되었습니다. 후지모토 사무소에서 저는 아이코닉한 디자인을 할 수 있고, 그러한 건축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주변 컨텍스트를 고려한 건축가의 의도와 시나리오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일본에서는 건축 담론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건축가 개인의 작가성을 더욱 중시한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건 주변 컨텍스트를 고려한 합리적인 해법과 형식으로 드러나는 미적인 질을 동시에 추구하는 건축입니다. 극과 극을 오래도록 탐색한 결과 욕심쟁이 ‘ioo100’이 탄생합니다.

ioo100는 이제 시작

긴 실무 끝에 ioo100을 시작한지 만 1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로, ioo100의 색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아직 저의 색을 보여주는 많은 작업을 진행하지는 못했지만 두 차례 현상설계에 참가했습니다.

‘구름 마을’(The Cloud Town)은 한국에서 처음 공모전을 진행한 신당역 공영주차장 현상 설계 제출안입니다. 굉장히 이상하게 생긴 부지에, 황학시장, 중앙시장이 근처에 있어서 서울 도심의 지역성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곳이었고, 역 주변 공영주차장 환경 개선과 주차 대수 확보를 위해 진행된 프로젝트입니다. 높이 약 60m에 달하는 기계식 주차 타워를 세워야 하다 보니 매스 자체가 강력할 수 밖에 없었고, 상징성을 요구하는 기본 지침이 있었습니다. 저는 대로와 골목 사이의 단절, 높은 건물이 들어서면서 생길 시야 차단이 너무나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래서 상징성을 유지하면서도 고층 건물을 둘러싼 환경이 도시 풍경,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접근법을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매스를 분절하고 띄웠습니다. 더불어 기하학적인 보도 계획으로 복잡하던 대지의 형태에 재미와 규칙을 더해서 밝은 도시 환경을 구축하고자 했습니다.

‘Urban Magnet’은 서울시에서 회수된 금속 폐기물을 자원 재활용하기 위해 분류하는 시설입니다. 먼저 사이트 주변 단지를 전체적으로 답사하면서 혐오 시설을 모아둔 장소성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중랑천을 따라서 커다란 재생 단지가 조성돼 있는데, 새활용 센터와 하수도 박물관 등이 있지만, 사람들이 굳이 찾아올 이유가 없는 사이트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방문하게 만들려면 약간의 위트가 있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주변에 새로 생긴 건물들이 건축적으로 뭔가 웅장하고 대단하고 막 심각했거든요. 그렇게 해서 쓰레기 처리장에 대한 혐오감을 줄이고, 친근한 장소로 다가오길 바랐습니다. 그와 동시에 공간을 공정에 맞게 합리적으로 계획하고 싶었습니다. 금속을 끌어들이는 센터라는 개념으로 접근해, 자석이라는 직관적인 단어로 풀었습니다. 금속을 들여오고 나가는 곳을 자석 끝부분에 디자인했습니다. 보통 공장의 공정은 선형으로 진행되는데, 그것을 U자로 구부렸습니다. 이 작업의 시각적 특징과 개념을 보고 포스트모더니즘의 키치를 떠올리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건축적인 디테일은 오히려 키치하게 풀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두 가지 프로젝트를 돌아보면서 저는 도시 내에 필요한 인프라스트럭처, 그리고 미적 가치가 요구되지 않는 건물에 관심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런 건물들은 디자인을 신경쓰면 도리어 권위적인 인상을 풍기거나 진지해지는 경향이 있는 듯 합니다. 저는 그곳에 조금은 귀여운 요소가 들어가도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으로 저만의 답을 했습니다. 기존의 접근법과는 다른, 시각적으로 새로운 것이 끼어들어야 도시의 풍경이 다양해지고, 사람들에게 환영 받는 건물로 자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변에 작업을 보여줬을때, 제 작업이 ‘일반적이지 않다’ 혹은 ‘한국적이지 않다’, ‘이런 건 한국에 없다’는 반응을 종종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작업 안에서 후지모토도 보이고 쿠마도 보이고 어떤 부분은 상당히 네덜란드답다는 걸 찾아낼 때가 가장 재밌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저의 ‘뉴트럴한’ 건축적 태도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고 느낍니다.

저는 건축을 하는 행위가 나에 대해서 알아가는 시간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저의 자아를 찾아가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는 ‘ioo100’의 이름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가 누군가에게 명함을 드리면 항상 ‘이름을 어떻게 읽어야 하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사업자 등록상으로는 ‘아이오오일공공 건축사사무소’이지만, 읽는 방식은 여러분의 자유에 맡깁니다.

ioo100은 제 이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ioo100은 이진법의 수처럼 보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와 제가 빠른 변화 속에 살아가는 인터넷 세대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제가 어떤 공간을 제안하던 사용하는 사람 뜻대로 쓸 수 있는 공간적인 기능성과 잠재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저의 뉴트럴한, 중립적인 건축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마음대로 저를 불러주세요. 고맙습니다.

원고화 김주현 / 편집 심미선


ioo100

ioo100은 건축적 도식화를 통해 도시 흐름을 읽고, 기능의 논리를 존중하며 인프라와 일상 속에서 새로운 풍경을 조직한다. 숫자와 문자 사이의 인지 차이에서 비롯되는 유쾌한 오류처럼, ioo100은 진지함 속에 귀여운 위트를 더하는 중립적인 건축을 탐구한다. https://ioo100.ooo/

백진선은 한국에서 실내디자인을 공부하고 간삼건축에서 실무를 시작했다. ‘벽을 움직이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을 계기로 네덜란드로 건너가 델프트 공과대학 베를라헤 연구소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로테르담의 Studio MAKS에서 이시가미 준야와의 협업을 통해 네덜란드와 일본 건축의 경계를 체험했다. 일본 건축의 미적 구축 방식에 대한 관심으로 도쿄로 이주하여 Sou Fujimoto Architects와 Kengo Kuma & Associates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다수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2021년 귀국 후 ITM유이화 건축사사무소에서 한국 실무를 경험했고, 2024년 ioo100 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하여 국내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현재 국민대학교 건축학부에서 건축설계를 강의하고 있다.

중립-Neutral

분량7,612자 / 15분 / 도판 7장

발행일2026년 5월 13일

유형강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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