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인? 내 작업이 어딘지 모르게 한국적인 구석이 있다는 평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스스로는 ‘너무 각 잡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약간 풀어지는 지점을 이야기하는 것인가?’라고 생각했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치밀해지는 순간 탁 내려놓는 것이다. 일본 건축에서 별거 아닌데도 끝까지 쪼개어 가면서 작업하는 걸 볼 때 약간 답답한 느낌을 받는다. 중국 건축에서는 한 수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의아할 때가 있다. 그럴 땐 내게서 양면성을 느낀다. 그게 바로 ‘한국적인’ 지점인가 생각했었다.
공공이라는 구호 공공성, 공공(이 발주하는) 건축, 공공건축가제도, 이 세 가지를 분리해볼 필요가 있다. 많은 경우에 공공건축이라고 하면 공공이 발주하는 건물이다. 그런데 겪어보니까 공공이 발주하더라도 발주처의 관리 편이를 중요시하거나, 시장님의 치적 쌓기로 수렴되는 경우도 많으므로 반드시 공공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민간 건축물 같은 경우에도 건축가는 항상 공공성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런 부분은 분명히 공공의 본질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공공이 발주하는 건축과 공공성을 갖는 건축은 구분되어야 할 것 같다.
기술의 한계 건축설계가 전문직인 이유는 오랜 훈련을 통해 불편하거나 낭비하는 공간 없이 합리적인 평면을 계획하고, 그것을 구축하는 데 있어서 안전하고 효율적인 기술을 선택해 건물이 무너지지 않고 잘 쓰이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적정한 공사비 내에서 건물을 만들 수 있는 기술, 노하우는 건축가로서 꼭 가져야 하는 실무적 능력이다. 의사를 예로 들어보자. 전문가로서 의사의 역할은, 굉장히 축소해서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병을 잘 치료하는 것이다. 그리고 병을 잘 고친다는 것에는 ‘기술’이 깔려있다. 여기에서 기술은 선도 기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 사람이 할 수 없는, 테크니션으로서 지식과 기술이 있고, 그로써 사회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건축가도 마찬가지다. 아주 간단한 레벨로 예를 들자면, 천정을 노출한 건물을 지을 때 보를 합리적으로 정리하는 것은 구조, 미학, 쓰임이 다 맞물린 문제다. 또, 석재를 얇게, 가늘게, 길게 쓸 때 어떻게 붙일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공중 부양하는, 매달린 건물을 설계하고 싶다면 어떤 방식으로, 어떤 구조를 써야 안전하고도 가뿐하게 처리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굉장한 장 스팬 건물인데 부재를 얇게, 디테일을 잘 구현했다면, 그것에 대해서 논하고 가치를 부여해야 할 것이다. 이런 기술적 해결 방법은 건축가가 고민해야 하는 문제고 잘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부분은 일단 소통에 장벽이 있어 이야기를 진전시키는 데에 한계가 있다. 언어로 말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것에 가치 부여가 되지 않지만, 이제는 그런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또 이런 논의를 바탕으로 과다한 공사비를 들이지 않으면서, 건축적인 표현을 하기 위한 트레이닝을 해야한다. 기술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뉘앙스를 만들어내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고, 책무라고 생각한다.
디아는 사무소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우리를 직접 찾아온 민간 프로젝트가 주를 이룬다. 리노베이션에서 주택이 되고, 주택이 소규모 근린생활시설이 되고, 그러다가 간혹 독수리학교 같은 규모 있는 작업도 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작업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지금도 여전히 주택과 근생 프로젝트를 계속 하고 있다.
모든 것의 균형 “건축 철학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내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사로 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을 규정하는 순간 건축물의 결과를 예단하게 된다. 세상에는 수많은 단어가 있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 하고 있는 것을 한 단어로 이야기하는 것은 비평가에게도 쉽지 않은 과제고 건축가 스스로는 더더욱 하기 어려운 일이다. “어떤 건물을 지향하냐”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그걸 스스로 담론화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찾아가는 일을 하기 때문에 결과를 먼저 내밀기보다 태도를 계속 이야기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형용사, ‘how’로 대답하고 싶다. 즉 “어떤 것을 하고 싶은가요?” “어떤 성격의 것을 하고 싶은가요?”로 질문을 바꾸어 건축 설계하는 방법이나 태도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말하고 싶다.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생각할 때 아직 기성은 아닌데 그렇다고 해서 젊다고 하기엔 미안한 나이가 됐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젊은 건축가’이고 싶다. ‘젊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의미한다. 어설프지만 신선하고, 새롭고, 기성 세대가 생각하지 못하는 뭔가를 해줄 것 같은 기대감을 갖게 한다. 그래서 이 단어에 기대고 싶고, 건축가로서 그런 태도를 유지하고 싶다.
‘중간점검’은 2010년 전후 무렵 젊은 건축가로 호명되어 지금까지 꾸준히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중진 건축가의 심층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건축가로서의 깊이와 여유가 묻어나는 한편 여전히 치열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그때와 지금, 다가올 미래를 묻습니다. 그리고 건축가 개인의 관심사를 확장하여 건축계에 산재한 이슈를 함께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