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끄러지는 공공성 공공건축과 공공성은 비슷하지만, 별개의 문제다. 공공건축 시스템 내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면 공공의 돈으로 공공을 위한 프로젝트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누구의 돈인지 모를 돈으로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를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느낀다. 또한, 지금 상황에서는 건축가가 너무 많은 희생을 하면서 일을 해야 한다. 일단 건축가와 발주처가 생각하는 좋은 공공공간이 너무 다르다. 건축가들은 공공에 개방된 공간을 설계하는데, 관에서는 안전 때문에 그렇게 하지 말자고 했다는 이야기는 너무 많다. 다음으로는 공공건축 작업에 책임 없이 한마디씩 얹는 플레이어들이 너무 많다. 심의를 말하는 게 아니다. 다양한 유관 부서의 요청이 잘 관리되어 전달되지 않고 산발적으로 내려오는데, 공모전을 통해 당선된 건축가가 그것을 다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이유로 굳이 공공 작업을 안 해도 된다면 그 고생을 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더 힘이 생겨서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전까지는 관심 없다.
“그들은 건축이 아니라 미술관이나 갤러리 같은 예술 세계의 전시나 공간 구성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 신세대 건축가들을 저 혼자 ‘파빌리온 계열’이라고 부릅니다.”1
‘젊은건축가상의 유효기간’에 관한 원고를 청탁받고는 젊은 건축가에 대한 관심이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젊은건축가상 또한 10년이 넘었는데 왜 새삼스레 또 젊은 건축가일까 생각했다. 아마도 그 출발점에서 그들 세대와 지금의 현상에 대한 의심, 그리고 전환적 모색을 기대하는 것 같다. 유효기간이라는 말 자체가 모종의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젊은 건축가라는 계층이 상품화되고 지나치게 소모적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던 참이다. 이 상을 밖에서 바라보며 응원하는 한 명의 건축인으로, 그리고 젊은건축가상 단행본의 필자와 에디터로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냉정과 열정을 오가며 생각을 적어보려 한다.
덜 익은 건축가 젊은건축가상은 독특한 상이다. 상은 업적이나 성과가 뚜렷한 사람이나 작품에 주는데, 젊은건축가상은 소위 잠재력을 가진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젊은 건축가 지원 프로그램으로 시작한 젊은건축가상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실은 2005년 신인건축상으로 시작해, 2008년 젊은건축가상으로 개편되어 2018년까지 13해가 되었다. 지난 10월 열린 10주년 전시를 통해 보인 수상자들의 이후 작업은 그들이 건축계에 잘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