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에서 대학원 과정을 처음 시작할 때가 떠오른다. 당시에는 임시 학장이었던 마크 위글리(Mark Wigley) 교수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뉴욕이 높은 밀도를 가진 도시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또 수많은 사람들과 스쳐 지나가는 장소라고 했다. 이 스쳐 지나감이 단순히 지나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서로에게 작은 흔적을 남기며 수많은 흔적이 쌓이게 되는 것이 뉴욕에서의 특별한 경험이라고 강조했다. 한편으로는 뉴욕에서 유일하게 독립된 캠퍼스를 가지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밀집된 환경에서 비좁은 공간과 환경에서 수업을 들어야만 하는 학생들의 불만을 원천차단하고 오히려 거기서 장점을 찾아내기를 바라는 계산된 이야기였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흔적이라는 불완전 정보도 때론 굉장히 큰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점과 많은 중요한 연구와 활동이 이런 작은 흔적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동주택은 도시에서 필연적인 건물이자 필수적인 생활 공간이며, 분야와 계층을 가로질러 모두의 관심과 역할이 한데 쏠리는 사회의 공통 기반입니다. 마치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어서 누군가는 만들고,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사고팔면서, 커다란 환경이 계속 응축,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진지한 논의 테이블에서 점점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만큼 이전의 논의들이 이제는 보편적 수준에 다다랐다는 반증일 수도 있고, 시장과 자본의 논리가 주거의 조건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정림건축문화재단은 우리 공동주택의 현재 상황과 가까운 미래의 모습을 오랜만에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렸습니다. 2023년에 진행한 <공동주택연구> 포럼에서는 ‘공동주택의 흐름과 공동체성에 대하여’라는 주제 아래 공동주택을 크기에 따라 아파트, 공유주택, 다세대다가구로 구분해서 살펴봤습니다. 이 책은 그 논의의 기록입니다.1.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의 60% 이상이 아파트입니다. 전국에 지어진 아파트는 사회적 경제적 관점에서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며 매일매일 이야기되는 주택의 형태입니다. 규모가 점점 더 커지면서 그 폐쇄성에 따른 문제점도 커졌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새로운 제안과 시도에 대해 함께 이야기했습니다.2. 10여 년 전 셰어하우스라는 새로운 주거 형태가 국내에 등장했습니다. 치솟기 시작한 1인 주거와 때마침 시작된 공유경제 등의 새로운 사회적 도구들과 맞물려 붐업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셰어하우스는 무브먼트 차원에서 비즈니스 차원으로 포지션을 옮겼고, 최근에는 코리빙하우스라는 네이밍으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새로운 실험적 유형이 기업화된 사업 모델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무엇이 달려졌는지, 무엇이 그 변화를 가능하게 이끌었는지 이야기했습니다.3. 다세대 다가구 주택은 많은 건축가들이 다양한 건축적 아이디어를 시도해온 공동주택 영역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주택의 ‘공동성’과 공용공간에 대한 세심한 연구와 설계를 볼 수 있는 사례가 아직 많지 않습니다. 소규모 민간 주택이라는 이 영역에서 우리는 어떤 공동의 집을 원하고 있는지, 불특정 거주자 그룹 안에서 공용공간은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했습니다.
파빌리온 프로젝트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이다. 건축이 특정 공공장소를 매력적인 곳으로 각인시켜 목적하는 상징성을 극대화하거나, 작은 공간의 효율성을 극대화해 기능성을 충분히 충족시켜줄 거라는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반증한다. 다양한 성격의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진행한 건축가들이 모여 파빌리온의 건축적, 문화적, 더 나아가 정치적 가능성을 이야기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