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큐레이팅이란 정다영 CAW 1기 프로그램이 오늘 ‘참고문헌 읽기’ 발표와 함께 끝났다. 지금 종합토론 시간은 전체 발표자분들을 모두 모시고 이번 워크숍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각자 ‘건축 큐레이팅’ 을 무엇으로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1기 워크숍이 끝난 지금 다시 한번 나누고 싶은 이슈가 있다면 무엇인지 듣고 싶다.
건축의 큐레이팅은 미술과 다르다. 건축이 온전히 예술로 수행되거나 연구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무엇이 다르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모아본 적이 없다. 건축 큐레이팅에 대해 건축계가 공유할 만한 공동의 연속성, 규율성, 전문성이 쌓이지 못한 채로 소모되고 휘발되기를 반복하고 있다. 건축의 기획(큐레이팅)을 실무로 삼고 씨름하는 사람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 쏟아지는 수요에 휩쓸려 온 것이 아닌가 진단한다. 미술이 아닌 건축에서 ‘큐레이팅’ 은 무엇을 하고자 하는 행위일까. 건축에서 큐레이팅은 단지 전시를 만들고 올리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획’ 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 건축 큐레이팅은 건물을 짓는 일을 넘어선 건축의 다양한 실천적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작업이다. 건축계 내부에서 큐레이팅이라는 활동은 한국에서는 이제 막 진지한 논의를 얻는 시점에 놓여 있다. 이번 건축큐레이팅워크숍(이하 CAW)은 비평의 무대이자 작가와 대중을 매개하는 장소로서 전시, 자료를 발굴하고 그것을 축적하는 행위로서 아카이빙, 건축을 둘러싼 다양한 시각 매체를 읽고 그것을 배치하는 에디토리얼까지 큐레이팅을 둘러싼 내외부의 이야기들을 펼쳐보는 시간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논의들은 2010년 이후 한국 건축의 시간과 현장들을 엮는 키워드가 될 수 있다. 건축 큐레이팅은 앞으로 한국 건축을 둘러싼 여러 난제를 검토하고 도전해 볼 수 있는 영역이 될 것이다.
서브토피아의 예언가, 이안 네언 서브토피아(subtopia). 경기도에서 이십 년을 넘게 살아온 내가 이곳의 경계를 넘나들 때마다 읊조리는 말이다. 누군가는 서브토피아에 합류하기 위해 꿈꾸고, 누군가는 서브토피아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분투한다. 교외(suburb)와 유토피아(utopia)를 합성한 이 단어는 대도시 주변의 교외 확장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본격화된 인구 분산 정책으로, 영국에서는 50년 전부터 한 건축 평론가에 의해 일찍이 거론된 말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전쟁의 폭격으로부터 도시를 재건하고, 새로운 삶의 환경을 구축하는데 분주했다. 1950년대 중반 영국 전역으로 퍼져나가던 전원도시 건설로부터 무분별한 확장을 감지한 이는 건축 평론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이안 네언(Ian Nairn)이다. 그는 교외에서의 도시 재건이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사람들에게 알린 시대의 이단아였다. 무엇보다도 그가 염려한 것은 전쟁의 폐허 이후 고의로 방치된 교외 지역이다. 밀집된 도시와 텅 빈 시골, 그 사이를 조율하고자 시도된 새로운 전원도시에서 서브토피아의 세계를 본 것이다.
미술관에서 건축전시를 보는 일이 이제는 생경한 일이 아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건축 전문 학예사를 통해 꾸준히 건축전시를 선보이고 있고, 꼭 건축전시가 아니어도 이미 건축 혹은 어반 이슈를 다루는 전시들을 최근 3,4년 동안 급증했다. 이번 좌담에서는 근간의 건축·도시 리뷰를 통해, 전시로서의 건축이 문화예술계와 일반 관객에게 소비되는 양상을 살핀다. 또한 담론을 일으키는 새로운 매체로서 그 가능성을 이야기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