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공모전 기획 단계에서 기후변화와 생태위기를 다루기로 정한 순간, 덜컥 겁이 났다. 나는 이 거대한 이슈를 마주할 때마다 무력감을 느꼈다. 분리수거를 착실히 한다든가 에어컨을 높은 온도로 약하게 트는 소소한 실천과 별개로 ‘나 혼자 아무리 노력한들…’을 읊조리며 이 문제를 논하는 테이블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건축계에서 이 사안에 침묵하고 있는 이유도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건축 행위가 자원을 극도로 소모하는 일이자 생태계 파괴를 수반하는 일이므로 환경 문제를 입 밖으로 꺼내면 생업이 곤란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러니 애써 한쪽 눈을 감는 것이다. 더군다나 건축학과에서 쓰는 환경이라는 개념은 주로 ‘친환경’을 연상케 하거나 기술적 측면으로 다뤄지기에 자칫하면 참가자들이 과제를 해석하는 폭이 좁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비인간을 고려하는 건축이라니! 아찔했다. 공모전 담당자 입장에서 여러 고민에 휩싸였다.
등장하는 건축가들을 만나며 이 세대를 지칭하는 다른 수식어, ‘젊은(젊음)’을 되새긴다. 이 표현을 향한 여러 갈래의 의문, 해석, 비평, 비판이 다양한 지면을 통해 지속되었으므로 굳이 다시 꺼낼 필요는 없을 것이나, 시즌마다 도돌이표처럼 자꾸만 되돌아오는 이 모호한 수식을 곱씹어보게 된다. 그리고 만남을 거듭할 때마다 그 의미는 미묘하게 변주된다.
학생건축공모전 과제는 대개 건축 설계 결과물(도면)을 중심으로, 이를 부연하는 텍스트나 그래픽을 포함하며, 간혹 모형을 요구한다. 그러나 ‘취향거처, 다름의 여행’은 과제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었다. 참가자 모두에게 주어진 1차 과제로, 스테이에 머무는 사람(페르소나)과 장소(여행지) 설정, 스테이 설계, 여정 시나리오 작성, 여행자 피드백(SNS 게시글) 작성 등을 부여함으로써 기획부터 건축 설계까지 풀어내야 했고, 현장 심사 대상자는 (모형을 포함하여) 브로셔 제작, 1일 숙박 가격 설정, 한 문장의 카피와 같이 셀링, 마케팅 영역의 추가 과제를 수행해야 했다. 즉, 과정 자체가 지랩이 일컫는 ‘토탈 디자인’을 적용한 스테이 프로젝트 프로세스와, 스테이폴리오에서 스테이 운영 전략을 세우는 과정과 유사하다. 따라서 다른 공모전과 비교했을 때 과제에서 드러난 차이가 곧 스테이 프로젝트의 차별점이라 볼 수 있다.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이라는 신조어가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지금, 많은 젊은 건축가가 웹사이트 제작보다 인스타그램 계정 운영을 우선한다. 다른 소셜미디어에 비해 특히 인스타그램은 이미지로 소통하며 정체성을 구축해 가는 곳으로, 좋은(예쁜) 공간과 장면, 특별한 순간을 끊임없이 소비하는 장이다. 인스타그램의 소통 방식과 특성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지와 상관없이, 공간을 소비하고 누리는 데에 관심이 많은 젊은 세대에게 자신의 작업을 어필하기 원하는 건축가라면 적극 활용해야 할 소셜미디어가 되었다.
건축가는 건축으로 말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통해 당시의 조건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건물의 계획부터 준공에 이르는 순간까지 책임진다. 여기에는 정해진 자본과 인력이 투입되며, 그 과정은 건물 규모와 상관없이 늘 밀도가 높다. 그렇게 땅 위에 선 결과물은 관계자 모두의 한 시절을 담아낸다. 그러다 보니 건축가는 수백 년의 세월을 견뎌낸 건축사 속 건축물처럼 자신의 작업에 불멸의 생을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절대 우세종인 아파트만 해도 완공 후 30년이면 사망 선고를 받기 위해 줄을 선다. 그래서인지 건물 수명에 대한 우리 인식은 30년을 기준으로 형성되어 있다.
건축가의 일이란 보통 작업 결과인 건축물을 지칭한다. 건축가에게 “당신은 어떤 건축가입니까?”라는 질문을 건넬 때에는 그가 어떤 작업을 했는지, 건축가로서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건축계 이슈에 어떠한 입장인지에 먼저 관심을 두게 된다. 건축가의 일은 이러한 개별성을 지니는 것인 한편, 업무 자체만 떼어놓고 봤을 때는 절차에 의해 수행해야 하는 과제가 명확하고, 전문적인 분업이 필수이며, 실현 과정에서는 더 확장된 영역의 사람들과 협업하는 일이다.
기반은 같되 다른 결을 가진 우리의 건축 공부가 보여주듯, 최소의 건축공간에서부터 공동체의 플랫폼인 도시공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관심사를 서로 상보적으로 공유하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건축에 기초하지만 건축설계에 함몰되지 않는, 실무와 연구, 교육과 사회봉사 전반에 기여할 수 있는 폭넓은 건축 직능을 갖추고자 노력 중이다. 작은 협소주택에서부터 갤러리, 근린생활시설, 물류창고, 공동주택, 업무시설, 리모델링 등 용도와 규모에 구애받지 않고, 건축설계 작업과 도시재생 뉴딜사업, 마스터플랜까지 다양한 연구와 건축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요앞건축은 건축의 이상과 실제 사이 접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고민한다. 일상에서 발견한 장면을 건축에 투영하기도 하고, 건축적 상상을 다른 영역으로 확장하기도 한다. 작업 과정에서의 자유로운 상상은 그대로 실제가 되기도 하고, 건축의 한계 덕분에 아이러니하게 새로운 단락에 이르기도 한다. 경계에서의 실험과 새로운 시도는 통제된 결과 너머의 지점에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고정되지 않은 열린 결말의 시나리오는 작업의 즐거움이다.
아이디알(IDR)은 2014년 마흔이라는 늦은 나이에 부부 건축가 전보림과 이승환이 개소한 건축설계사무소다. 아이디어(idea), 아이디얼(ideal) 같은 단어가 연상되는 알파벳 조합을 찾아 만든 이름이다. 당시 5년간의 런던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터라 프로젝트는커녕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같은 것도 없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도전한 첫 설계공모가 천만다행으로 당선으로 이어져 공공건축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그렇게 매곡도서관(142쪽 참고)이 지어졌다. 첫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생긴 자신감은 이어지는 공모전 낙선 덕에 깊은 회의감으로 바뀌었다. 운영이 위태로울 지경에 이르던 차에 다행히 학교 다목적강당 설계공모에서 당선되었고, 교육청과 씨름하며 두 학교의 강당을 완성하고 나서야 그럭저럭 앞으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인식(awareness) 건축의 인생은 어느 한때의 문제보다 크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업을 지속하면서 ‘무엇을’ 고민할지보다 ‘어떻게’ 고민할지가 중요해지고, 고민도 조금 선명해진다. 일상은 느리고, 일반적으로 잘 인식되지 않는다. 인간은 기억(과거)과 상상 혹은 기대(미래)로 현재를 산다. 지금, 이곳을 인식할 수 있는 공간적 장치가 필요하다.
여느 때보다 유난히 관찰자 입장에서 전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인터뷰 자리가 끝나갈 때쯤 인터뷰이로부터 역질문을 하나 받았다. “어떻게 하다 기자가 됐어요?” 간혹 듣는 질문이었지만, 진지하게 대답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순간은 처음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기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여러 가지 이유 중에 손에 꼽는 것이 젊은 건축가를 만나는 일이었다. 신인 발굴이야말로 매체와 기자의 할 일이라고 생각했고, 때마침 『공간』의 젊은 건축가 연재를 비롯해 이들에 대한 관심과 소비가 두드러지던 시기였다. 그리고 사회에 첫발을 딛는 내 입장에서 앞으로 함께 걸어갈 동료들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건축계의 젊음이란 당시 졸업반이던 나와는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의 시차가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처럼 산보를 좋아한다. 걷는 것을 통해서 마을을 느낀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건축을 시작한다. 책상 위에 모형을 두고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도시 전체를 한눈에 바라보는 시점이 아닌, 그 안에서 걸으며 마을을 알아가는 시점에서부터 건축을 생각한다.
경희대학교와 AA스쿨을 졸업하고, 8년간 포스터+파트너스 (런던)에서 어소시에이트로 근무하며 세계 여러 곳의 다양한 프로젝트와 현상설계를 맡았다. 2014년 서울로 돌아와 스키마(skimA)1를 열었다. 사무소 개소와 함께 고려대학교 건축학과에서 구조디자인과 건축설계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구조디자인 수업을 통해서 학생들과 함께 다양한 구조 시스템과 재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