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탈 디자인으로서의 건축 전연재(마니) 나는 건축이 건물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폰트부터 시작해 그래픽, 가구, 인테리어, 건축, 도시, 조경까지 쭉 이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각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일도 많고, 브랜딩, 공간·전시·문화기획, 연출 또한 건축가가 아우를 수 있는 영역이다.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하고 있는데, 건축가 또한 전문 분야를 넘어 전방위적인 활동이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사회에 대한 이해가 깊고, 공간과 디자인이라는 구축의 기술을 갖췄고, 사람들과 넓은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획이라는 영역 조세연(노말) 요즘 많은 사람이 스테이나 카페 등에서 색다른 공간을 경험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그에 맞추어 하드웨어를 잘 설계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경험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총괄적으로 기획하고 전체적인 조화와 균형을 맞춤으로써 경험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는 만가타 프로젝트에서 건축 설계와 함께 이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우리의 설계 의도에 부합하는지를 고민했고 클라이언트에게 제안했다. 실내 온도 기준부터 사물을 어떻게 둘 것인지, 음악은 어떤 장르의 곡을 틀 것인지, 손님을 어떻게 안내해 드리는지까지 공간 운영에 관한 세세한 설정을 아울렀다. 이런 내용은 건축적인 고려 사항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공간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고, 소프트웨어이며, 우리가 생각하는 기획이다. 건축가가 이 영역까지 다룰 수 있어야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공간이 완성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기획에 참여하려고 노력한다.
진지함 30% 함량의 낀 세대 강승현(인로코) ‘앞세대’가 언제인지 누구인지 정의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대상을 좁혀 보면 일단 나의 선생님 세대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분들은 한국성이나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고, 우리나라 건축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짐이 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 건축가로서의 품위와 위상, 권위 등을 중시했고, 그게 태도에서도 드러났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런 한편, 건축을 지나치게 비즈니스로만 여긴 경우도 많았다. 일이 차고 넘쳤다던 1980~90년대에 그런 이들이 절대다수였기에 적절한 설계비 요율, 대가 기준을 만들 기회를 놓쳤다고 본다. 결국 건축가가 이 사회에서 받는 낮은 대우, 설계비 덤핑 같은 수십 년 묵은 문제는 사실 지나간 시기의 특별한 상황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각자 필요와 판단에 의한 선택이었겠지만 후배로서는 아쉬움이 크다.
초대 건축가들과의 인터뷰 가운데 ‘이 시대 건축(가)이 개척해야 할 역할’에 대해 이야기해준 다섯 팀의 말을 한데 모았다. 건축 기획 단계부터 도시계획, 신기술의 접목까지 건축이 개척할 수 있는 분야의 가능성을 고민한다. 이들은 건축의 업역을 넓히는 동시에 순수한 건축의 발전을 위해 건축가가 해야 할 일 또한 잊지 않는다. 건축의 새로운 시도와 탄탄한 기초,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건축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