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성의 공감대 지금은 건축가들 모두 각자의 미학이나 태도만 이야기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주제의식이 강하지 않다. 사회성과 공공성은 좀 다르다. 내가 이해하는 사회성은 ‘프라이빗’에서 ‘퍼블릭’으로 이어지는 선상에 있지만, 서로 중의적으로 겹쳐진다.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을 이야기할 때는 ‘공공성’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의 이야기일 것이다. 공공성은 사회성의 하위 영역으로 볼 수 있다. 내가 사회적 역할을 말할 때는 내가 하는 건축 자체가 주변과 어울린다거나 하는 작은 부분이다. 그걸 공공성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작업과 밀접하게 맞닿는 부분에서의 아주 작은 사회성이다. 그 정도 이야기는 의식적으로 하려고 한다.
아이코닉한 스테레오타입의 한국 건축은 없다고 생각한다. 일본 건축이 성립된 것은 건축이 학문적 바탕 위에 있기 때문이다. 서양 건축들도 마찬가지다. ‘스위스 박스’라는 특유성이 있고, 프랑스와 이탈리아 건축은 서로 구분되며, 독일은 또 다르다. 모두 구분할 수 있다. 그것을 ‘○○성’이라고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독일 건축가들은 다 독일 건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건축가가 일본 건축가처럼 건축을 하진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일본 건축가처럼 하기도 하고, 미국 건축가처럼 하기도 한다. ‘한국 건축가처럼 건축을 한다’는 개념은 없다. 그것이 바로 한국성에 대한 공감대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건축이라는 학문 일본에서 건축은 학문이다. 건축 일의 시기와 단계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학교에서 배운다. 건축가들 사이에서든 학생들 사이에서든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모르면 무시를 당하기도 하고, 그렇기에 알아야만 하는 것들을 찾아서 익힌다. 한국에서는 주로 ‘디자인’을 가르치는데, 가르치는 사람의 ‘취향’을 배우는 느낌이다. 그래서 건축을 배운다는 개념이 별로 없고, 학문으로 성립이 잘 안 되고, 그러다 보니 비평도 안 되고, 업계에서도 판단 기준이 없다. 신인들이 우후죽순 나왔다가 사라진다. 그저 유명해지는 것이 건축을 잘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데뷔작: R아틀리에, grsg바 일본 유학 시절 나는 개곡선이라는 개념에 관심이 있었다. 선 하나로 일필휘지하고 분절을 통해 하나의 평면을 완성하는 것, 그것이 당시 나의 핵심 키워드였다. 일본 건축도 다른 동양 건축들과 마찬가지로 조적조의 전통이 없고, 가구식 구조를 중심으로 한다. 가구식 구조에서는 구조체를 제외하면 전부 문이고, 벽은 없다. 그래서 일본에서 열린 건축 이야기가 많기도 했다.
리노베이션 사무소효자동은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많이 하는 편이다. 기업 프로젝트였던 LCDC, 띠어리, 현대카드 프로젝트도 다 리노베이션이었다. 리모델링을 하는 이유는 거의 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지 건물을 보존하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로서는 회사 운영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그래도 리노베이션 작업을 좋아한다. 새 건물을 짓는 것보다 훨씬 재밌고, 중요하게 생각하고, 웬만하면 거절 안 하고 다 한다.
사무소의 지속 가능성 사무소효자동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특별히 따로 생각해보진 않았다. 다만 지금(2022년 3월)부터 3년 9개월 후에는 은퇴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때면 만 56세다. 선배 세대 중 건실하게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곳은 서너 곳 정도다. 지금 시대는 그들의 시대보다 더 빠르게 변하고 있으니 얼마 전 내가 사무소 조직을 개편했던 시점으로부터 5년 후 정도에는 내게 타임 리미트가 한 번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규모와 매출이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선을 넘어선다면 그 고비를 넘기고 ‘회사’가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미련없이 탁탁 접어서 상자 속에 넣으려고 한다. 나는 조만간 우리 모두 그런 사회적인 요구를 마주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평면 구성과 어프로치 디자인 4년 전 『공간』 특집 기사에 내가 평소에 많이 고민해온 작업 주제들을 글과 작업으로 엮어서 실었다. ‘땅’, ‘입면’, ‘적층’ 등 모두 미학적 태도를 견지하는 이야기들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건축을 그 속에서 설명했는데, 중요했던 포인트는 서양 건축과 동양 건축의 차이다. 서양 건축은 단면적이다. 전통적으로 조적식 구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입면을 만들어낸다. 동양 건축은 가구식 구조라서 사실상 입면이라는 게 없다. 보와 기둥만 있으면 되고, 나머지는 모두 문과 창이다. 일본 건축에서도 입면을 중시하지 않는다. 유럽과 달리 창을 예쁘게 뚫는 데는 아무 관심이 없다. 나도 그렇다. 그래서 나는 내 건축을 ‘평면을 적층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각기 다른 형식의 평면을 적층할 뿐 (입면의) 디자인이나 비례는 만들지 않는다. 그것이 내겐 중요한 ‘방향’이다.
사무소효자동의 건축을 이야기할 때면 십중팔구 일본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유독 내 주변에서만, 하필 내가 갔던 건물에서만 그럴 수도 있다.) 오늘은 이야기를 좀더 진척시켜 보려고 하는데, 먼저 몇 개 작업을 소개한다. 읽고 찾아보면서 어디가, 무엇이 일본 건축을 떠올리게 하는지 독자 스스로 생각해보길 바란다. 일본적인 것도 있고, 전혀 그렇지 않은 것도 있고, 혼란스러운 것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반추해보면 어떨까 싶다.
‘중간점검’은 2010년 전후 무렵 젊은 건축가로 호명되어 지금까지 꾸준히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중진 건축가의 심층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건축가로서의 깊이와 여유가 묻어나는 한편 여전히 치열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그때와 지금, 다가올 미래를 묻습니다. 그리고 건축가 개인의 관심사를 확장하여 건축계에 산재한 이슈를 함께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