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으로부터 강승현(인로코) 건축의 ‘사회적 역할’은 전문성에 대한 얘기일 수도 있겠다. 단독주택이라도, 심지어 상업 공간이라 하더라도 거리에 등장하므로 어떻게든 노출되고 누군가가 경험하게 된다. 이를 고려하는 건축가가 수행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역할은 할 수 있는 최선의, 최고의 공간을 짓는 것이다. 공공 건축물 중에는 분명히 최근 작업임에도 구식을 답습한 경우가 왕왕 있는데 만약 건축가가 좋은 공간과 조형을 구현하려고 충분히 고민했다면 무엇이 어떻게 달랐을까 생각하게 된다. 무심하게 짓는 건물은 도면집부터 얄팍하다. 관 공사는 어떤 시공사가 입찰에 들어와서 일을 가져갈지 모르는데 건축가가 도면을 대충 내보내면 그 완성도를 책임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론적으로 건축가가 본업에서 수행하는 크고 작은 공정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게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첫걸음이라 본다.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 설계! 이주한(피그건축) 결국 건물을 잘 만들어야 한다. 건물을 잘 만든다는 의미는 건물 내부 공간 조직을 잘해야 한다는 의미다. 형태도 물론 중요하고 경관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물 내부 공간의 구성, 배치, 프로그램은 결국 그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방식, 사회적인 여건을 반영한다. 밝은 다세대주택도 요즘 1~2인 가구의 임대 세대, 청년 주거 현실을 반영한다. 이처럼 동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공간을 만드는 게 건축이 하는 일이다. 그걸 잘하면 그게 민간이든 공공이든 상관없이 가장 큰 사회적인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초대 건축가들과의 인터뷰 가운데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이야기한 아홉 팀의 말을 한데 모았다. 이들은 작은 시도가 제 역할을 다할 때, 충분히 더 좋은 사회가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동네 건축가 혹은 마을 건축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환경의 디테일을 개선한다. 또 대중에게 건축가의 작업을 가깝게 하기 위한 건축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건축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기반은 같되 다른 결을 가진 우리의 건축 공부가 보여주듯, 최소의 건축공간에서부터 공동체의 플랫폼인 도시공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관심사를 서로 상보적으로 공유하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건축에 기초하지만 건축설계에 함몰되지 않는, 실무와 연구, 교육과 사회봉사 전반에 기여할 수 있는 폭넓은 건축 직능을 갖추고자 노력 중이다. 작은 협소주택에서부터 갤러리, 근린생활시설, 물류창고, 공동주택, 업무시설, 리모델링 등 용도와 규모에 구애받지 않고, 건축설계 작업과 도시재생 뉴딜사업, 마스터플랜까지 다양한 연구와 건축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초대 건축가들과의 인터뷰 가운데 ‘현재 건축 교육’에 대해 이야기해준 여덟 팀의 말을 한데 모았다. 선배로서, 선생으로서 마주한 건축학과 학생들을 통해 한국 건축 교육을 진단한다. 건축학과의 5년제 커리큘럼이 보편화되면서 교육 환경은 나아졌지만 자율성은 떨어졌다. 실무자의 시각으로 학생들에게 필요한 건축 교육에 대해 이야기한다.
코어건축사사무소는 유종수, 김빈 등 젊은 건축가가 주축이 되어 서울에 설립되었다. 우리는 개인의 개성이 존중되는 다양한 건축가들이 모여 지식을 공유하며 건축을 고민하는 집단을 목표로 한다. 마스터 아키텍트에 의해 운영되는 기존 사무소가 갖는 한계에서 탈피하고, 현대 사회의 다양성을 존중하여 집단지성의 힘을 토대로 더 나은 환경을 만들고, 지속 가능한 건축 집단이 되기 위한 아틀리에의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1 서울의 한강 이북에서 태어나, 이내 남으로 도하한 뒤, 줄곧 한 동네에서만 지냈던지라 지방 도시에 대한 나의 인식은 지극히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그나마 간혹 접점이 생긴다면 최근 네이버에서 오픈한 ‘우리 동네’ 서비스를 통해 지역 축제와 맛집을 슬쩍 보는 정도에 불과하다. 내가 사는 도시를 벗어난 경험은 네덜란드 유학 시절에 몇 곱절은 많았다. 당시 네덜란드 신도시에 관한 책을 내겠다며 여기저기 쏘다닌 탓에 그 수만 따지면 서른 개의 도시를 다녔고, 그렇다 보니 남의 나라 형편이 더 친숙한 지경이다. 지방 도시에 대해 생각이 오르락내리락할 때 시소의 반대편에는 이러한 개인적 체험이 비교 대상으로 놓여있다.
도시와 불평등 19세기 후반 『진보와 빈곤』이라는 책을 발간하여 전 세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 그는 당시 고속 성장으로 세계적 대도시의 반열에 올라선 뉴욕의 한가운데서 끔찍한 가난을 목격하고는 충격을 받는다. 물질적 진보가 일어나면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것이 마땅할 텐데, 어째서 더러운 길거리는 비루한 인생들로 가득하고 지저분한 어린아이들이 노는 소리로 시끄러운가? 19세기 후반 대도시 뉴욕에는 극단적으로 갈라진 두 세상이 공존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무도회, 파티, 극장 관람, 연애질 등으로 매일 매일을 공휴일처럼 보내는 철도왕의 자식들이 무료한 나머지 마차를 끌고 나와 브루클린 거리를 질주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늙은 여인이 아침부터 밤까지 우중충한 분위기의 길가에 앉아서 사과와 사탕을 팔고, 젊은 여성 노동자는 카운터 뒤나 베틀 앞에 서서 온종일 일을 하고, 소녀들은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재봉틀 앞에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