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업 건축가 김중업은 한국을 대표하는 근·현대 건축가이다. 1922년 3월 평양에 태어나 일본 요코하마 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서 건축교육을 받고 설계 실무를 익혔다. 1941년 12월 졸업 후 국내에 들어와 서울대학교를 비롯하여 한양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강의를 하였다. 1952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유네스코 주최 제1회 세계 예술가 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한 것을 계기로 세계적인 거장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 한국인 최초로 르 코르뷔지에 건축연구소에서 실무적 일을 하며 건축가로서 역량을 키웠다. 서양의 현대건축을 직접 체험한 그는 1955년 12월 귀국하여 시대를 앞선 건축물들을 만들어 냈다.
1984년에 발행된 『김중업,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열화당)를 읽다 보면, 이 책은 그의 말대로 건축 작품집이라기보다는 ‘일그러진 자화상’이란 느낌이 든다. 거기에는 김중업의 주요 작품뿐만 아니라, 설계에 관한 에세이들, 일생에 잊을 수 없었던 사람들, 그리고 그를 기리는 다른 예술가들의 글들이 망라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한평생 자기 세계를 온전히 구현하기 위해 매진했던 한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더욱이 이 책이 출판되던 때에 그의 삶은 치명적인 상태에 놓여 있었다. 1983년부터 악화하기 시작한 건강은 1984년 <예술의 전당> 현상설계를 계기로 쓰러지면서 생명이 위독할 정도로 나빠졌다. 건축가는 이 책을 준비하면서 다가올 죽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전 생애를 바쳐 만든 지표상의 흔적들을 이 책을 통해 마지막으로 정리했을지도 모른다.
김중업의 건축을 ‘표현주의적이다’라고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김중업의 건축은 ‘표현주의이다’라고 하는 것은 틀리다. 같은 흐름에서 김중업의 건축을 모더니즘 건축이라고 하는 말도 틀린 말이다. 그의 건축이 모던하게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한다.
나는 어떤 이지적인 청년이 낭만적인 중년이 되거나, 궁극으로는 고전에 귀의하고 마는 과정을 자주 보았다. 그러나 김중업의 낭만성은 처음부터 소질素質(<필그림 홀>, 1956)이며, 중년의 생의生意(<서산부인과 병원>, 1965)를 세우며, 말년에 흥융興隆(<서울올림픽 평화의 문>, 1985)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