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교육, 본질을 강화해야 김종서(제로리미츠) 한동안 모교에서 강의를 하다가 지금은 쉬고 있다. 강의를 시작할 때 굉장히 큰 기대가 있었는데, 수업을 거듭할수록 5년제 인증 시스템에 단점이 분명히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과연 학교를 5년 다니는 것이 4년제 졸업 후 실무를 1년 더 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소장 입장에서 졸업생이 우리 회사 신입사원으로 온다는 가정을 했을 때, 수업 내용에 빈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보다는 시스템이 먼저인 분위기고, 학생도 시스템에 충족하는 걸 최우선으로 여기므로 가르치는 데에 한계가 있다. 설계 수업에서 계획안의 본질적인 의미와 가치에 대한 것들을 강조해도 그런 게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학생들이 너무나 어려워했다. 한편으론 시각적인 아웃풋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물론 과제 결과물이 이미지로 만들어지고, 그것으로 평가받는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 내에 공간적인 가치나 시퀀스까지 고민하고 완성도를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건축의 본질은 변하는 게 아니므로, 결국 실무를 하다 보면 그 문제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고, 현장에서 건축적 가치를 리마인드하는 별도의 교육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학교 교육에 아쉬움이 많다.
높아진 기준 조세연(노말) 클라이언트의 보는 눈이 높아졌다. 특히 소셜미디어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건축이나 인테리어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이 더 많아지기도 했고 정보에 접근하기가 더 쉬워졌다. 인스타그램처럼 이미지 위주로 소통하는 플랫폼이 가장 많이 쓰이는 매체가 됐기 때문에 상업공간을 설계할 경우에는 인스타그래머블한 장소, 한 샷을 만들어내기 위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기획이라는 영역 조세연(노말) 요즘 많은 사람이 스테이나 카페 등에서 색다른 공간을 경험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그에 맞추어 하드웨어를 잘 설계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경험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총괄적으로 기획하고 전체적인 조화와 균형을 맞춤으로써 경험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는 만가타 프로젝트에서 건축 설계와 함께 이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우리의 설계 의도에 부합하는지를 고민했고 클라이언트에게 제안했다. 실내 온도 기준부터 사물을 어떻게 둘 것인지, 음악은 어떤 장르의 곡을 틀 것인지, 손님을 어떻게 안내해 드리는지까지 공간 운영에 관한 세세한 설정을 아울렀다. 이런 내용은 건축적인 고려 사항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공간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고, 소프트웨어이며, 우리가 생각하는 기획이다. 건축가가 이 영역까지 다룰 수 있어야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공간이 완성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기획에 참여하려고 노력한다.
일을 놓고 찾은 길 최윤영 희림건축에 신입으로 입사해서 10년 정도, 권이철 소장은 해안건축에서 신입사원으로 시작해 15년을 있었다. 둘 다 기본적으로 주거본부에서 대규모 아파트 설계를 했고, 나는 주로 규모검토, 기획설계, 현상설계를 했다. 실무 10년 동안 현장이나 프로젝트 준공을 거의 경험하지 못했고, 소규모 건축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기 때문에 ‘내 사무소’ 혹은 ‘우리 사무소’ 오픈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서 회사 생활을 이어가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는데, 하루 2~3시간 쪽잠 자는 생활을 이어가다가 결국 건강에 문제가 생겨 갑작스럽게 퇴사하게 되었다. 퇴사 후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궁리하다 어린 시절 꿈을 다시 꺼내 보기로 마음먹고 취미미술학원에 등록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덕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도 점차 치유되었고, 좋은 기회를 얻어 전시까지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다 한 아트페어로부터 외부 공간을 같이 기획해 보자는 연락을 받았다. (그쪽에서도 내 커리어를 신기하게 본 것 같다.) 조금씩 일을 진행하던 차에 자금난으로 행사가 취소되면서 그 안을 실현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일을 계기로 건축과 미술 중간 어디쯤에 우리가 몰랐던 시장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라크랩(LACLAB)이라는 스튜디오를 개설해 공공미술, 전시기획, 연구 프로젝트, 기획설계, 법규검토 등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2년 정도 열심히 일을 찾고, 작은 프로젝트들을 시도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권 소장도 드디어 독립을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