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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 건설사업 관리, 설계의도구현

박인석

감리는 건축물 시공 단계에서 용역으로 수행되는 업무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에서는 공공이 계약에 의해 조달하는 대상을 물품, 공사, 용역 세 가지로 구분한다. 감리는 ‘공사’ 계약으로 진행되는 시공 단계에서 별도의 ‘용역’ 계약으로 공사와 함께 진행되는 용역 업무다. 이처럼 시공 단계에서 별도의 용역 계약으로 진행되는 다른 업무로 ‘건설사업관리’와 ‘설계의도구현’을 꼽을 수 있다. (현행 건설기술진흥법에서는 건설사업관리와 감리를 통합하여 건설사업관리라고 통칭하고 있지만, 이 글에서는 서술의 필요상 ‘건설사업관리’를 감리 이외의 업무로 한정하여 사용한다.) 감리, 건설사업관리, 설계의도구현 모두 시공 단계에서 진행되는 업무이므로 각각의 역할과 업무 간 관계에 대해 분명한 이해와 구분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감리는 오래전부터 강력한 제도로서 자리잡아왔지만, 건설사업관리와 설계의도구현은 실행 수준이 미미한 상태이거나 제도화 자체가 최근의 일이다. 건축 관계자조차 종종 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감리 업무와 구분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감리와 건설사업관리

앞에서 여러 차례 언급했듯이, 2013년 건설기술관리법이 건설기술진흥법으로 전부개정(2013.5)되면서 책임감리가 건설사업관리에 통합됐다. 건설산업 발전을 위해 건설사업관리(CM: Construction Management) 선진화가 긴요하다는 것이 통합의 명분이었다. 그러나 책임감리는 이미 공공의 검사-확인 업무를 통째로 떠안은 채 용역비 덩치가 압도적으로 커진 상태였다. 이를 프로젝트 기획-관리 기능이 핵심인 CM과 통합하는 것이 각각의 업무 발전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적절성이 의심되는 조치였다.

실제로 통합 이후 대부분 건축공사에서 ‘시공 단계 건설사업관리’라는 이름으로 책임감리 업무만 발주되고 있다. 본연의 CM이라 할 수 있는 시공 전 단계(설계 전 단계, 기본설계 단계, 실시설계 단계, 구매조달 단계) 업무는 용역 범위에 포함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업계에서는 아예 ‘건설사업관리 = 책임감리’로 통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감리 업무에 밀려 CM 본연의 기능과 역할이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자, 감리와 통합되기 이전보다 오히려 CM 기능이 약화하고 있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CM 분야 전문가들은 PCM(Project Management + Construction Management 혹은 Project Control Management)이라는 새로운 제도의 도입 필요성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CM 중에서 일정, 비용, 성과관리 등 사전 기획 및 프로젝트 관리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업무를 따로 제도화하자는 것이다. 관련 업체들의 업무 영역과 명칭도 혼란스러워졌다. 건축설계사무소나 감리전문회사 홈페이지 사업 영역 소개란에는 PCM(Project Construction Management), PM(Project Managements), 건설사업관리(Construction Management), 감리(Construction Supervision) 등의 용어가 뒤섞여 있다.

PCM이라는 용어가 강조하는 ‘일정, 비용, 성과 관리 등 사전 기획 및 프로젝트 관리’는 원래 CM의 업무로서 이해되고 있던 것이다. 현재 건설기술진흥법에서도 건설사업관리 업무를 기획, 타당성 조사, 분석, 설계, 조달, 계약, 시공관리, 감리, 평가 또는 사후관리 등 프로젝트 전체 과정으로 규정하고 있다. 건설기술진흥법 하위 법령으로서 건설사업관리 업무 내용을 고시한 ‘건설공사 사업관리방식 검토기준 및 업무수행지침’에서는 건설사업관리를 [설계 전 단계 – 기본설계 단계 – 실시설계 단계 – 구매조달 단계 – 시공 단계 – 시공 후 단계]로 구분하여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즉, 현행법에서는 건설사업관리를 시공 단계뿐 아니라 프로젝트 기획 단계에서부터 시공 이후까지 전체 과정을 포함하는 업무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일정, 비용, 성과 관리 등이 포함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사정을 고려한다면 PCM 제도화 주장은 CM, 즉 건설사업관리가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감리업무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대응한 비판적 전략으로 이해된다. 즉, 제도화가 안 된 게 아니라 제도가 도입 취지대로 운용되지 못하고 감리업무로 운용되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2013년 법 개정 시 CM과 책임감리를 건설사업관리로 통합한 취지가 정말로 ‘CM 선진화’였는가도 의문이다. 건설기술진흥법 제39조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특정 용도 건축물에 대해 ‘건설사업관리’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여기에 시공 전 단계 CM을 포함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CM 선진화나 활성화를 위한 다른 규정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건설기술진흥법은 ‘시공 단계 건설사업관리’ 즉 책임감리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운용되었다. 모든 건축물에 ‘시공 단계 건설사업관리계획’ 수립을 의무화(제39조의2 신설)한 2018년 개정 법률이 이를 잘 보여준다. 더욱 가관인 것은 여기에 달린 “이하 시공단계 건설사업관리계획을 건설사업관리계획이라고 한다”는 약칭 설명이다. 아예 ‘건설사업관리계획’이라고 하면 ‘시공 단계 건설사업관리계획’, 즉 ‘책임감리 계획’으로 알아들으라는 얘기다.

감리-건설사업관리 제도 정상화의 요건

말만 건설사업관리지 실제로는 책임감리 용역으로 통용되고 있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소위 ‘감리제도 정상화’가 주요한 정책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앞 장에서 상세히 밝혔듯이 책임감리 용역비가 지나치게 커져서 감리 예산 책정을 두고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가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있는 지경이다. 감리 용역 입찰을 둘러싼 비리 의혹도 끊이지 않는다. 정작 서둘러야 할 CM 선진화는 감리에 눌려 답보 상태다. 무엇보다도 감리 비대화에도 불구하고 부실 공사와 건설 안전사고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현재의 감리-건설사업관리 제도는 정상이 아니다. 이를 바로잡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우선돼야 할 일은, 감리에 떠넘긴 검사-확인 기능을 지방정부 등 공적 주체의 업무로 정상화시키는 일이다. 감리 용역에 검사-확인을 맡기는 한 모든 건축공사에 감리 용역을 의무화할 수밖에 없다. 부실공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감리 업무의 비중이 높아지고 용역비가 높아지는 일이 반복되기 십상이다. 바로 이것이 한국의 건축공사 감리제도가 밟아온 경로다. 이런 상태에서 감리-CM 기능을 정상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검사-확인 업무가 공공의 업무로 분리된다면, 감리는 발주자(건축주)가 공사의 품질관리를 위해, 그리고 공공이 시행하는 검사-확인 절차를 무사히 통과하기 위해, 스스로 그 필요성을 인식하고 선택적으로 발주하는 용역 업무가 될 것이다. 감리나 건설사업관리를 모든 건축공사에 의무화할 이유도 없어진다. 감리나 CM은 더 이상 ‘감시-감독자’가 아니라 건축주-시공업체와 함께 건축공사의 품질과 효율을 높이기 위해 ‘협력하는 전문가’의 업무가 될 것이다. 감리 인력이나 비용도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될 것이고, 감리를 CM과 통합하는 일도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건설사업관리 본연의 업무를 따지기 전에, CM-감리 통합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건축공사의 감독-검사-확인 업무 전체 체계 안에서 공공이 수행해야 할 책임과 민간 용역인 CM과 감리가 담당할 수 있는 역할을 구분하는 일부터 다시 살펴야 한다. 일각에서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는 PCM 제도 역시 이러한 틀 속에서 논의해야 한다.

감리와 설계의도구현

‘설계의도구현’은 2013년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이 제정되면서 처음 등장한 용어다. 이 법은 “공공기관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건축물 등의 공사를 발주하는 경우 설계자의 설계의도가 구현되도록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해당 건축물 등의 설계자를 건축 과정에 참여시켜야 한다”(제22조 1항)고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건축물”은 설계비 추정가격이 1억원 이상인 건축물이다. 이어서 “건축물 등의 설계자는 설계의도가 구현될 수 있도록 건축주, 시공자, 감리자 등에게 설계의 취지 및 건축물의 유지, 관리에 필요한 사항을 제안할 수 있다”(제22조 2항)고 규정한다. 즉, 해당 건축물 설계자가 자신의 설계의도를 구현하기 위해 시공 과정에 참여해 건축주, 시공자, 감리자와 협력할 것을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공 건축공사에서조차 설계의도구현 용역을 발주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토록 많은 인력과 비용을 투입하는 감리를 두고 설계의도구현 용역을 따로 해야 하는가?” “설계자 아닌 제3자 감리용역으로도 ‘설계대로 시공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데 큰 문제 없지 않은가?” 설계의도구현 제도에 대한 가장 큰 반대 논리이자 제약 요인이다.

1) 설계의도구현 제도 정착 방해 요인 1 – 검사-확인 기능을 포함한 감리용역

이들 반대 논리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첫째 문제는, 공공의 검사-확인 기능을 감리용역에 떠안긴 것이다. 그리고는 감리용역을 의무화한 것이다. 모든 건축공사가 감리용역을 의무적으로 발주해야 하는 상황에서 설계의도구현 용역 추가는 부담이 될 만하다. 어차피 발주하는 감리용역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싶은 것이다. 얼마 전까지 건축계를 분란에 몰아넣었던 “감리를 설계자가 아닌 제3자가 해야 한다”는 주장과 이를 반영한 건축법 개정(제25조 제2항 신설, 2016.2)도 이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감리를 설계자가 맡는다는 것은 곧 설계자가 검사-확인까지 하는 것이므로 이는 이해 충돌에 해당한다는 논리가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다.

이 모든 사태의 해결 열쇠는 검사-확인 기능을 감리용역에서 분리하여 공공영역 업무로 정상화하는 데에 있다. 감리용역이 의무에서 벗어나 선택적 서비스 업무가 될 때, 감리 인력도 비용도 적정한 수준이 될 때, 그때에야 비로소 발전적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다. ‘설계대로 시공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을 설계자와 제3자 중 누구에게 맡기는 것이 적절한가를 비로소 따져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용역이 감리여야 하는가 설계의도구현이어야 하는가 역시 마찬가지다.

되짚어보면, ‘설계의도구현’ 자체가 ‘감리가 장악한 시공 과정’이라는 현실 속에서 고육지책으로 나온 것이었다. 1960년대부터 건축물에 대한 공사감리는 건축사가 수행하는 업무였다. 제3자 건축사가 맡는 경우도 종종 있긴 했지만 ‘공사감리는 그 건축물을 설계한 건축사의 업무’라는 게 상식이었다. 초기의 ‘건축사 업무 보수 기준’은 아예 설계와 공사감리를 구분하지도 않은 통합 요율 기준이었다.

그러나 건설기술관리법 제정(1987)으로 검사-확인 기능을 갖는 감리를 제도화하여 감리전문회사가 수행하도록 하고, 주택 감리 제도 도입(1994), 다중이용건축물 공사감리에 건설기술관리법 준용(1995) 등의 조치가 이어지면서 중대규모 건축물 대부분은 설계자가 공사감리를 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바뀌어 갔다. “검사-확인 기능을 갖는 감리 업무는 이해 충돌 문제 때문에 설계자나 시공자가 아닌 제3자가 맡아야 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그러자 건축계에서는 ‘디자인 감리’, ‘설계자 감리’ 등의 용어로 ‘제3자에 의한 감리’와 ‘설계자에 의한 감리’를 구분하면서 설계자의 시공 과정 참여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늘어났다. 이러한 주장이 2013년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 제정에 ‘설계의도구현’이라는 사뭇 낯선 이름으로 반영된 것이다.

문제 해결은 문제를 일으킨 원인을 치료하는 데서 시작하는 법이다. 모든 문제는 ‘검사-확인 기능을 갖는 감리’에서 시작한 것이니, 이를 정상화하는 일, 즉 검사-확인 기능을 감리용역에서 분리하여 공공영역 업무로 복원하는 것에서 문제 해결을 시작해야 한다.

2) 설계의도구현 제도 정착 방해 요인 2 – 토목 중심의 건설관리 업무 절차와 기준

둘째 문제는, 건설사업관리 용역 시장의 대부분을 건축공사가 차지하고 있는데(건축공사 기성액이 토목공사의 4배가 넘으니 당연한 일이다) 정작 업무 수행 절차와 기준은 토목공사 중심으로 짜여 있다는 것이다. 토목공사 관점에서는 ‘설계대로 시공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은 제3자 감리용역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설계의도구현 용역을 추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 만도 하다. ‘설계’를 엔지니어링 업무로만 간주하는 토목 분야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이 문제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건축공사와 토목공사에서 설계와 시공의 관계를 보는 관점 차이를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 1963년 제정 당시 건축사법에서는 공사감리를 “공사가 설계도서대로 실시되는 여부를 건축사가 확인하는 행위”로 정의했지만, 건축사들은 이를 “공사가 설계한 (의도)대로 실시되는 여부를 확인하는 행위”라고 이해한다. 이 말은 건축사가 의도하는 것 중에서 설계도서로 담지 못하는 것이 있음을 뜻한다. 건축 설계도서에 시공에 필요한 모든 재료와 물품들의 치수와 특성을 일일이 표기할 수는 없다. 동일한 재료, 예컨대 동일한 ‘적벽돌’이라도, 그 색상과 질감은 제품마다 차이가 있다. 시공 현장에서는 조달되는 재료의 미묘한 차이와 시공 여건의 변수 속에서 재료 채택과 설계 내용에 미세한 변경-조정이 필요한 상황이 계속된다. 그때마다 설계자의 판단이 필요하다. 어떤 부분은 변경-조정이 무방하지만, 어떤 부분은 시공이 쉽지 않더라도 원안대로 시공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 변경-조정에 따라 건축의 형태와 공간의 분위기와 느낌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건축과 토목이 갈린다. 토목에서는 시공 결과물이 애초에 목표로 한 기능과 내구성을 제대로 갖추느냐가 중요하다. 형태와 공간의 분위기나 느낌의 차이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설계자의 의도’는 기능과 구조 안전성 등에 국한되고, 이는 전문가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설계자의 시공 과정 참여 필요성을 주장하는 건축사들에게 토목 관계자들이 종종 “설계도서에 충분히 표기해놓으면 될 일이다. 제3자가 감리해도 문제 될 게 없다”고 반박하곤 한다. 그렇다고 해서 토목설계가 (건축설계와 달리) 시공에 필요한 모든 것을 설계도서에 충분히 표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 정도의 불충분함은 문제가 되지 않을 뿐이다.

1984년 제정된 ‘건설공사 시공감리 규정’은 건축과 토목의 이러한 차이를 무시한 것이다. 대통령령으로 시작한 이 규정을 법률로 진전시켜 제정된 ‘건설기술관리법’의 책임감리 규정, 그리고 이를 전부 개정한 현재의 ‘건설기술진흥법’의 건설사업관리 규정 역시 마찬가지다. 현행 건설기술진흥법에 의한 건설사업관리는 건축공사와 토목공사 모두에게 동일한 절차와 기준을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 근거하여 건설사업관리 업무의 세부적인 수행지침까지를 규정한 ‘건설공사 사업관리방식 검토기준 및 업무수행지침’ 같은 하위 법령들도 마찬가지다. 건설사업관리 업무 중 순수 CM 업무이건 책임감리 업무이건 건축공사와 토목공사의 질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토목공사를 기준으로 한 업무 절차와 기준을 규정하고 있다.1

실제 업계에서는 건축공사 건설사업관리와 토목공사 건설사업관리를 담당하는 업체나 팀이 완벽하게 구분되어 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건설사업관리 업체 중 매출액 상위 업체는 모두 건축공사 건설사업관리 업체가 차지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건축공사 관련 용역 업무만을 수행하고 있다. 건설업 총매출액 중 건축공사 매출액이 토목공사의 4배가 넘는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설계의도구현과 CA(Construction Administration)

토목공사 중심으로 만들어진 법령에서 간과하고 있는 건축공사의 특성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시공 과정 중 설계자의 역할’이다. 토목공사에서는 관례적으로 시공 과정에 설계자가 별다른 관여를 하지 않고 시공자와 감리자에게 시공 업무 일체를 맡겨온 것이 통례다. 앞에서 말했듯이 토목 분야에서는 ‘설계’를 엔지니어링 업무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건축공사에서는 시공 과정에서 설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미국에서는 건축사의 설계 용역에 시공관찰(Construction Observation)이 필수적인 업무의 하나로 포함되어 있으며, 이와 별도로 건축주가 설계자와 공사 행정(CA: Construction Administration) 용역을 계약하여 시공 과정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보통이다. 미국 건축사협회(AIA)는 건축사 자격을 준비하는 인턴에 대한 교육용 교재 ‘신진 건축인 실무 길잡이’(Emerging Professional’s Companion)에서 시공관찰과 CA의 업무항목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2

Construction Observation 업무 항목업무 내용
Observing Construction건축주가 시공 진행 상황을 확인할 수 있도록 정기적인 보고서 작성
Clarifying Construction Documents설계 내용과 의도를 구체화하고 시공자에게 설명, 필요시 추가 지침 제공
Managing and Reviewing Submittals시공자의 시공도면 및 자재 승인 요청서 검토-승인
Performing a Payment Application Site Review기성 요청액 대비 시공 진행도의 적합성 확인
Preparing a Certificate of Substantial Completion with Amended Punch List준공 점검 준비
Evaluating Project Closeout in Preparation for Final Completion준공 확인

Construction Administration 업무 항목업무 내용
Understanding Procedures of the Change Process설계-시공계약과 달라지는 모든 변경 행위에 대해 시공자/건축주에게 자문
Questionable Stored Materials건축주에게 손해를 끼치는 초과 구매 자재에 대한 조치
Tracking the RFI Process On-Site시공자의 질의에 응답, 설계 의도 설명 및 추가 지침 제공
Impartial Determination of Substantial Completion실질적 준공/미준공 항목, 펀치리스트에 대해 시공자-건축주 사이에서 객관적 결정/판단/중재
Negative Results from Late Wind Tunnel Test이미 시공중인 건물의 풍동실험 결과 기시공 부분의 보강이 필요하다는 구조기술사 판단이 있는 경우 등 설계변경 업무 판단과 진행
Saved by a Scope Change?건축주가 요청하는 설계 변경에 대한 판단/자문
Solutions for a One-Inch Code Violation위법 시공에 대한 책임 소재 판단과 건축허가를 위한 보완 방안 마련-자문
Processing an Unacceptable Substitution Request / Forced Substitution of Skylights건축주/시공자의 대체 자재/비품 사용 요청에 대한 판단/자문
Certification of Nonconforming Work설계와 달리 시공된 부분에 대한 판단/자문
Design Not Suitable for Use사용 편의를 위한 설계개선 요구에 대한 처리

다른 나라들도 설계자가 시공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영국의 ‘왕립건축가협회 업무계획’(RIBA Plan of Work)에서는 건축가의 업무를 타당성조사(Strategic definition)부터 건축물 준공/인도 단계(Handover)에 걸쳐 7단계로 구분하는데, 이 중 6단계(시공)와 7단계(준공/인도)에서 이루어지는 계약 관리(Contract Administration) 역할을 건축가의 기본 서비스에 포함하고 있다. 이에 따른 비용이 전체 보수의 25~30%를 차지하는 것이 보통이다.

독일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건축 및 엔지니어링 서비스 요율 규정인 HOAI (Honorarordnung für Architekten und Ingenieure)에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HOAI는 건축 프로젝트의 업무를 총 9단계, 즉 1-4단계(계획-중간설계, 허가도서 준비), 5단계(실시설계), 6-7단계(입찰 및 계약 지원), 8단계(현장 감독), 9단계(건물관리 지원 및 문서화)로 구분한다. 이 중 1단계부터 8단계 또는 9단계까지의 전체 업무를 한 명의 건축사(사무소)에게 단일 계약으로 위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HOAI에서는 현장 감독(8단계)의 보수 비율이 약 32%로 실시설계(5단계, 약 25%)보다도 높게 책정되어 있을 정도로 설계자의 시공 현장에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고 전문적인 업무로 인식되고 있다.

프랑스 역시 건축사의 공사 이행 감독(Direction de l’exécution des Travaux, DET) 업무가 설계 계약에 포함되어 포괄적인 서비스로 제공되는 것이 보통이다. 공공계약 일반행정조건 (CCAG Travaux: Cahier des Clauses Administratives Générales applicables aux marchés de travaux)과 건축사 표준계약 양식 (Contrat d’architecte type)에 이에 관한 세부 업무 목록을 명시하고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 건축기준법은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을 건축할 경우 공사감리를 의무화하고, 건축사 자격을 가진 공사감리자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 건축법 공사감리와 비슷한 규정이지만, 한국과 달리 건축사가 설계 계약 시 설계와 공사감리를 포괄하는 단일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보통이다. 공사감리 업무는 설계자가 자신의 의도대로 건축물이 시공되는지 확인하는 필수적인 업무로 간주되고 있다. 물론 일본은 건축공사 검사-확인 업무를 지방정부 건축주사 등 공적 주체가 전담하고 있으므로 한국과 달리 공사감리에는 검사-확인 업무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결국 모든 나라에서 건축 설계자가 시공행정, 계약행정, 공사감리 등의 이름으로 시공 과정에 깊숙이 참여하고 있다는 얘기다. 설계자와 감리자 분리(제3자 감리)를 원칙으로 하고 있는 한국하고는 전혀 딴판이다. 왜 그럴까? 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시공 과정에서 검사(inspection) 업무를 공공이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실시공과 불법 시공을 막는 검사 업무가 공공영역에서 확고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와는 다른 가치, 즉 건축물이 원래의 설계 의도대로 건축되도록 하는 일, 이를 통해 건축물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의 사례는, 우리나라에서 설계자의 시공 과정 참여 제도를 정상화하는 일 역시 검사-확인 업무를 감리에서 분리하여 공공이 직접 수행하도록 하는, 검사-확인 업무의 정상화와 함께 진행되어야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임을 시사한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비정상적인 감리 제도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설계의도구현 업무를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감리자에게 독점적으로 맡겨지다시피 한 시공 과정 중 검사-확인 기능을 설계의도구현 업무를 수행하는 설계자가 교차 검증-견제하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나오는 현실이 이해될 만은 하지만, 검사-확인 기능을 민간 용역에 떠넘긴 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임을 생각한다면, 감리 만능에 빠진 부조리한 현실이 빚어낸 또 다른 부조리극이라 할 만하다.


박인석

현재 명지대학교 건축학부 명예교수. 도시와 건축 및 주택 정책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대안적인 정책을 제안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국가 건축정책위원회 5기 위원과 6기 위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건축 생산 역사』(전 3권), 『건축이 바꾼다』, 『아파트 한국 사회』 등이 있다.

감리, 건설사업 관리, 설계의도구현

분량11,339자 / 22분

발행일2026년 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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