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설계공모: 의성성냥공장
이정희, 이훈길, 정귀원
분량19,931자 / 40분 / 도판 8개
발행일2026년 3월 13일
유형좌담
‘유휴공간 문화재생사업’의 시작
이정희 우선 이 사업이 공공사업일 수밖에 없는 이유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약 15~20년 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유휴공간 문화재생사업’을 진행했었다. 버려져 있는 산업시설을 활용하고자 하는 요구가 많다는 것을 파악하고 진행했던 일종의 시범 사업이었다. 대표적으로 포천, 인천의 대형 산업시설들을 재생하는 사업들을 했고, 해당 사업의 필요성이 충분하다는 판단 하에 2010년쯤부터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이라는 이름의 정규 사업으로 전환됐다. 사업비 비율 5대 5의 지역 매칭 공모 방식의 중앙 사업이었다. 그런데, 산업시설만 대상으로 하기에는 물가나 규모 면에서 지자체가 사업을 진행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문화체육관광부는 ‘유휴공간 문화재생사업’으로 사업명을 바꾸고, 버려진 학교, 창고 등을 포함해 사업 대상을 확장하되, 처음의 취지대로 기능을 잃은 공간 즉, 유휴공간에 지금의 도시에 필요한 용도를 부여하고자 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박물관 혹은 미술관을 짓기에는 명확한 특성이 없는 지역의 유휴 공간들이 다수 참여했다. 그중 하나가 의성에 위치한 성냥공장이었다. 원래 이름은 성광성냥공장이는데, 추진단이 합류한 후 의성의 지역 사업임을 부각시키기 위해 의성성냥공장으로 개명했다.
경상비가 만든 생각할 시간
이정희 하드웨어의 중점 사업이긴 하지만, 다른 사업과는 달리 전체 사업비의 최대 20%까지 경상 비용을 책정할 수 있었다는 점이 독특했다. 그래서 본 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추진단을 구성할 수 있었다. 정책에 경상비라는 항목을 넣었다는 것은 그만큼 하드웨어에 치중돼 있던 기존 공공건축의 조성 과정과 달리 미리 고민하고, 공부하라는 의미다. 성냥공장을 어떻게 활용할 지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은 상황에 의성에서 이 성냥공장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알아볼 시간이 필요했다.
의성성냥공장을 문화공간으로 변모시키면서도 어떻게 하면 기존의 정체성을 계속 가져갈 수 있을까? 성냥 공장의 가치와 정체성을 찾는데 공간에 남아 있던 흔적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것들을 아카이브했고 그렇게 모은 자료를 가지고 어떻게 공간을 운영할지, 공간을 운영할 주체는 누가 될지,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할지를 함께 고민했다. 그렇게 우리는 일반적으로 예술만을 강조하는 미술관이나 박물관과는 달리 의성만의 지역문화를 담는 새로운 의성형 문화 시설을 만들자고 결정했다. 동시에 성냥공장이 의성의 관광 거점 역할도 했으면 한다는 지자체의 요청도 반영해야 했다.
의성 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마늘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마늘은 여러 지방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고, 남해 등 다른 지역의 마늘도 충분히 유명하다. 그러다 보니 마늘이라는 정체성을 갖기 위해 의성시가 쏟아붓는 돈은 상상을 초월한다. 의성처럼 많은 지역의 도시 이미지가 사과, 복숭아, 마늘 등과 같은 농산물인데, 이를 유지하려면 지속적으로 많은 돈을 투자해야하기 때문에 많은 지역은 농산물로 대표되는 도시이미지를 바꾸고 싶어 한다.

성냥공장 이야기
이정희 의성에서 유일하게 근대 유산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성냥공장이 해왔던 역할은 주목할만 했다. 이 이야기가 성냥공장을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의성에서 성냥공장이 돌아가자 2주에 한 번 혹은 4주에 한 번 지급되는 월급이 등장했고, 이 월급은 기존과는 다른 지역의 소규모 경제활동이 일어나게 해주었다. 월급날에 외상으로 달아뒀던 비용들을 갚기도 하고, 이웃들에게 한 턱 내며 잔치가 열렸다. 그렇게 주변의 서비스 공간들이 활성화됐다. 고아원에 기부를 한다거나, 여성 일자리가 창출되거나, 직원들의 자녀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의 순환활동이 일어났다. 전성기에는 이 성냥공장에서 200명까지도 일을 했다. 거의 모든 주민들이 성냥공장에서 직원으로 일을 하든 아르바이트를 하든 어떤 방식으로든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의성성냥공장의 특성은 우리가 조사한 바로, 의성성냥공정은 전 공정이 기계로 남아 있는 국내 유일한 성냥공장이라는 것이다. 케이크에 포장에 들어가는 성냥이 우리나라에서 제작되고 있는 유일한 성냥이다. 더 작은 크기의 성냥이 생산되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수요가 없어 더이상 생산되지 않는다. 이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끊고, 남아 있는 흡연자들은 라이터를 선호하고, 더 이상 온돌을 사용하지 않게 되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성냥은 케이크 초에 불을 붙일 때나 사용되는 것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의성성냥공장은 성냥 사업이 망해가는 시점에 전공정 기계를 도입했다. 망해가는 공장의 기계들을 사들이고, 사업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면서 성냥 시장을 점점 흡수하며, 일종의 M&A를 한 것이다.
이러한 의성성냥공장만의 이야기를 잘 녹인 복합문화공간을 만들기 위해 공장이라는 이미지를 끌고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장은 원래 생산을 하는 곳이니 무언가를 생산하는 공간을 유지해야겠다고 싶었다. 그래서 문화시설에서 문화를 생산하고 공급한다는 개념을 떠올렸다.

인구 소멸 지역의 고민
이정희 공간만 재생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공간을 잘 조성해봤자 그 효과는 1년을 넘기기 어렵다. 많은 지역에서 인구 소멸이 가속화되고 있는데, 의성도 그러한 인구소멸 지역 중 하나다. 인구 소멸 지역에서의 사업에서는 공간보다 이 공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를 주로 살펴야 한다. 볼 것이 공간 뿐이라면 옆 동네에서 새로운 공간 조성했을 때 사람들이 다 그쪽으로 빠져나갈 거다. 그래서 어떤 좋은 공간을 만들 것일까 뿐 아니라 거점 시설로서 어떤 플랫폼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와 같은 운영적인 측면을 함께 고민해야 했다.
또한 운영을 하는 데 있어서 지역 주민들이 지역 관광지의 경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이 중요했다. 보통 관광지가 조성되면 타지 사람들이 돈을 쓰고 지역 사람들이 돈을 번다고 생각하지만, 지역 주민의 입장은 또 다르다. 관광지에는 생각보다 지역 주민들은 참여 주체가 되지 못한다. 우리는 이 생산 과정을 지역과 연계하고자 했다.
인구 소멸 지역 중 하나인 의성에는 지역 소멸에 대응하는 중앙의 많은 정책 사업들이 흘러들어오고 있다. 의성만이 아닌 여러 소규모 도시들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역에서 창업을 하면 혜택을 주는 청년 유입 정책 등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류의 지원 사업들이 진행 중이다. 그렇게 지역에서 청년들이 새롭게 창업한 부츠 회사를 비롯해, 디자인 회사, 지역의 빵집 등의 거점 공간(편집숍)으로서 패키지 상품을 만들어 이 제품들이 외부인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했다. 또 창업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로컬디자인센터로서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성냥공장의 옛 근로자이기도 한 지역 주민들의 소일거리로서 일거리를 창출하고자 했다. 이런 식으로 생산과 공급이 병행되는 의성의 새로운 문화를 지닌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사업추진단의 기초 기능
이정희 의성성냥공장 문화재생사업추진단(이하 추진단)은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지역은 앞서 언급했던 경상 비용을 활용해 사업을 위한 민간 거버넌스를 꾸릴 수 있다. 의성성냥공장 문화재생사업은 공공사업이기 때문에 당연히 행정이 모든 예산을 관리한다. 추진단은 이 예산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행정과 함께 논의하며 풀어나가고 있다.
내가 그 추진단의 총괄을 맡고 있고, 또 공간을 바꾸는 사업이기 때문에 마스터 아키텍트(MA)가 필요했다. MA는 향후에 설계자를 선정하기 이전 단계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을 행정과 소통하며 풀어가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팀원이 필요했다. 아카이브 작업 그리고 방향성을 잡기 위한 현황 조사 등 팀원들이 해야 할 일이 굉장히 많았다. 앞서 말한 것들은 모두 면밀한 현황 조사를 바탕으로 기획됐다. 어떤 프로그램을 할지, 어떤 협업을 할지, 어떤 시설들을 넣을지 결정하기 위해 가능한 현황조사를 모두 진행했기 때문에 자료가 아주 방대했다. 단순히 한 컴퓨터에 보관해둘 수 없을 정도라 웹사이트를 만들어 박물관이나 미술관처럼 위계를 만들어 분류해 두었고, 웹사이트에 공개할 수 없는 자료의 경우 나스에 보관하고 있다. 이렇게 아카이브 자료를 관리하는 것도 추진단의 업무 중 하나였다.
사업추진단은 1차 조성 공간의 활용 주체이기도 하다. 약 3,000평에 달하는 전체 사업지를 한꺼번에 건드릴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의 변화가 너무 없었고, ‘사업한다고 한 지가 언젠데 왜 아직도 안바뀌냐?’는 민원이 들어오기도 했다. 그래서 주민들과 민간이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1차 조성공간을 분리했다. 실제로 당시 성냥공장 내 모서리부라는 부서가 있었다.

모서리부, 시범 운영과 교육
이정희 모서리부가 사용하던 공장 외곽의 두 건물을 우선적으로 공사에 들어갔다. 작년 말에 완공됐고, 올해부터 추진단이 이곳에 활용 주체로서 들어가 적극적으로 주민들이나 외부와 협업하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곳에서 프로그램이나 미팅을 하다 보면, 지나가던 할머니들이 물 한 잔 마시러 들르시기도 하고, 철이 되면 사과나 복숭아를 가져다 주시곤 한다. 가을철에는 사무실에 과일이 넘치고, 보릿고개인 2월 쯤에는 간식거리가 떨어져서 직접 가게에 들러 과자를 사와야 한다. 이정도로 추진단은 지역 주민들의 삶속 깊이 들어가 운영되고 있다.
모서리부에서는 협력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성냥공장이라는 인프라를 가지고 의성에서 창업은 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여전히 고민중인 청년들을 위한 교육을 진행하고 실제로 제품을 만드는 것까지 지원하는 것이다.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맥주나 스카프 등의 제품을 기획하고 실제로 제작했다. 주변 굿즈 회사에서 만든 마늘 관련 상품을 홍보물로 활용하기도 한다. 1차 조성공간에서의 이런 활동은 전체 공간이 완성됐을 때 일어날 프로그램에 대한 일종의 시범 사업이다. 작은 공간이지만 디자인 센터로서 주변 협력 사업체들과 논의하며 물건을 만들고 팔아보고, 마켓도 진행하고, 주민 대상 프로그램도 운영해보면서 향후 성냥공장 전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지를 예습하고 있다. 주민들로 하여금 문화 공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 지를 보여주는 미리보기가 된다고 본다.
나중에는 문화공간에서 영화도 상영하고, 공연도 할 것이다. 나아가 주변 곳곳에 있는 빈집을 활용해 마을 호텔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욕심도 있다. 다만, ‘공공에서 호텔을 만들라고 돈을 주는 건가?’ 하는 등의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천천히 확장해가는 중이다.

지역 문화의 공간 만들기
이정희 이전에는 문화시설이라고 하면 미술관, 전시장, 공연장 등으로 분류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요즘에는 중앙행정조차도 문화공간이라고 하면 각 지역마다 가진 특유의 문화를 드러내는 복합공간을 떠올린다. 이를 드러내는 매체는 전시, 공연, 예술 등 다양할 수 있다. 의성만의 문화를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농업 기반의 의성에 성냥공장이 생겼을 때, 이 근대산업이 어떤 불꽃을 피웠는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새로운 방식으로 유지할 수 있을까에 집중했다. 근대 산업에서 시작된 소규모 경제활동, 이곳에서 생산하고 소비됐던 이 지역의 자급자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 도시에 주목한 거다.
또 요즘은 어느 지역에 적을 뒀느냐를 보는 주민등록번호 기준의 인구보다 생활인구가 중요하다. 좋은 정책으로 사람들을 모았더라도, 금방 또 다른 지역에서 사람을 끌어들이는 좋은 정책이 등장하곤 한다. 때문에 관광 및 의성 문화 예술 브랜딩 거점 시설로서 어떤 플랫폼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를 병행해서 고민하고 있다. 좋은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은 공간적으로 풀기에 한계가 있기에 기획단은 운영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춰 활동하고 있다. 물론 이런 내용을 다 담을 수 있는 하드웨어를 기대하고 있기에 공모도 진행하고 있다.
이런 200억 규모의 공공사업은 서울에서는 눈에 띄지도 않겠지만, 지역에서는 대표 사업이 될 수 있다. 이로 인해 발생되는 다른 사업들이 굉장히 많다. 예를 들어 문화공간으로 오는 도로가 없다면, 토목 공사부터 해야 되지 않나. 의성성냥공장 문화재생 사업도 처음에는 160억 규모로 시작했지만 벌써 200억을 넘었다. 지역의 대표 사업인 만큼 우리 추진단도 매일매일 현장에서 부딪히며 고민하고 있다.
시범 사업과 사전 테스트
이훈길 의성성냥공장 문화재생사업의 사업 계획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2022년부터 사업이 추진됐다. 의성성냥공장의 대지를 조사하고, 대지에 산재되어 있는 여러 법적인 문제들을 발견하고 해결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됐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건축 기획을 수립했고, 이를 바탕으로 공모를 운영해 2023년 말 아키텍톤 건축사사무소를 설계자로 선정했다. 지금 시점인 2024년 하반기에는 기본설계와 실시설계가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앞서 이정희 단장님이 발표에서 설명했던 운영 단계들이 함께 진행되고 있다.
이와 동시에 1차 공간 조성 리모델링 시범사업을 진행했다. 의성성냥공장 대지 경계에 모서리부와 사택 총 2채의 건물이 위치해 있는데, 이 두 건물을 대상으로 먼저 리모델링을 한 것이다. 전체 건물이 아닌 두 건물만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했던 이유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모두 다루는 문체부나 국토부 사업들의 특성상 사업의 결과가 보여지기 까지 굉장히 오랜 기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주민들을 포함한 외부에서 이런 사업들을 보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왜 아무 것도 안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자연스럽다. 우리도 모서리부와 사택의 리모델링을 하지 않았다면, 2024년인 지금까지 아무런 사업을 진행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질 수도 있었을 거다.
또 하나의 이유는 전체 리모델링 이전에 어떻게 리모델링을 해야 사업이 잘 진행될 수 있을지 실험을 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개념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어떤 부분을 살리고, 어떤 부분을 허물 것인지를 직접 경험하며 방향성을 결정하는 것이다. 또 추가적인 사업비의 집행률 등과 같은 행정적인 문제도 함께 해결해보자는 의도도 있었다. 그래서 리모델링을 마친 공간에서 추진단이 여러 가지 파일럿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
공공건축 사업에서의 기획
이훈길 공공건축 사업에서 공공건축 사업계획서가 건축기획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 먼저 이와 관련해 ‘공공건축 사업계획 사전검토’가 시행된 배경을 먼저 짚고 넘어가려 한다. 공무원들은 3년이 됐든 1년이 됐든 순환 근무를 하기 때문에, 전문적인 공무원이 부재한 상황이다. 그래서 사업 기획 시 획일화된 기획서들이 난무하고, 이로 인한 여러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사업 중간에 계속 설계가 변경되고, 그렇게 사업비가 늘어나거나 적어지며, 완공 이후 운영 단계에서도 문제가 발생하는 등의 일이 계속해서 발생해왔다. 이에 사업 기획 및 운영에 있어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하는 프로세스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됐고, ‘공공건축 사업계획 사전검토’를 법제화 하게 된 것이다.
건축 기획이란 건축 관련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기본방향을 설정하고, 여러 가지 사전 전략을 수립하는 행위다. 이를 사업 기획과 설계 기획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사업 기획에서는 사업의 기본적인 현황 분석부터 규모, 예산, 관리, 운영 계획 등 종합적인 측면을 살펴야 한다. 그래서 사업 기획의 주된 주체는 행정이 되며, MA의 역할 또한 사업 기획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설계 기획 단계에서 구체적인 건축물의 디자인 방향과 면적, 공사비가 산출된다. 설계 기획은 건축 교수, 건축사 등의 민간 전문가가 수행한다.

‘건축 기획’의 산만한 정의
이훈길 건축 기획이라는 용어가 헷갈리는 이유 중 하나가 건축 기획 업무가 제도상에서 다양한 용어로 정의되어 있다는 점이다. 건축공간연구원의 ‘건축기획 업무범위 및 대가기준 개선방안’ 연구를 보면 여러 법, 시행령 아래 건축 구상, 건축 설계, 예산 수립까지 모두 건축 기획의 업무 범위인 것처럼 규정되어 있다. 그중에서 건축 설계만 살펴 보면, ‘사업 계획 사전 검토’ 항목이 있고 ‘기획 업무’ 항목이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기획업무는 「건축사법」에 원래 있던 항목이다. 이후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에 의해 (공공기관과 공공건축지원센터가 주체인) 건축기획업무를 위한 ‘사업 계획 사전 검토’ 항목이 새로 생겼다. 그러니까 기획 업무와 사업 계획 사전 검토는 전혀 다른 업무인데, 아직도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의 건축기획업무 수행지침(안)은 많은 업무를 포괄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건축 기획을 사업 기획과 설계 기획으로 구분해보면 아주 일부만이 설계 기획 업무에 포함된다. 대부분이 사업 기획의 영역이다. 과연 사업 계획 사전 검토를 의뢰받은 민간 건축가가 이 업무를 다 수행할 수 있을까? 게다가 (해당 법안에는) 건축 기획 업무에 대한 비용 산정 기준도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예를 들어, 「건축사법」에 따라 (의성성냥공장 문화재생사업에서) 중간 단계의 기획 업무를 한다고 계산하면 약 2천만 원 이상을 지급받을 수 있다. 그런데, 행정이 (사업 계획 사전 검토 업무에) 이정도의 비용을 줄 것인지, 이전에 그만한 비용을 마련은 하고 있는지 질문이 남는다.
건축공간연구원의 연구는 정액 요율 방식이 아닌 실비정산 가산방식을 사용해 대가기준을 산정해야 한다고 결론을 맺고 있기도 하다. 때문에 우선 사업 계획 사전 검토를 2천 만 원 이하의 수의계약으로 진행할 것인지, 다른 방식으로 진행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또 이런 기준이 있다는 것, 그리고 비용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지자체 측에) 인지시키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제안 공모 방식 채택
이훈길 건축 기획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꼭지가 발주 방식 즉, 공모 방식의 결정이다. 제안 공모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리모델링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무소가 어딘지를 가장 잘 결정할 수 있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주민의 의견 등 여러 가지 변수로 인해 중간중간 설계가 변경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제안 공모는 공모안을 약식으로 제출한다. 공모안은 사무소가 해당 사업을 잘 할 수 있는지의 역량을 판단하기 위한 근거로, 이후 공모안은 변경 될 수 있음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안 공모 방식으로 결정한 후 세 가지 큰 방향성을 결정했다. 필수적인 공정이 담겨 있던 1955년의 초기 공장 건축물을 남겼으면 한다는 것, 띄엄띄엄 분리되어 있었던 건물들을 하나의 내부공간으로 엮어 달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 대규모 실내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운영과 관리 측면에서도 더 용이했다. 세 번째는 기존 건물의 높은 층고를 활용하거나, 실내에 대공간을 만든다거나 하는 등 기존 공장 건물에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세 가지 방향성은 제안 공모 제안서에 담겼다.
의성성냥공장 문화재생사업을 위한 제안공모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건축 기획과 공모 운영을 통합해 발주했다는 것이다. 건축 기획과 공모 운영을 따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 방식이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업 일정을 포함해 의성성냥공장 문화재생사업의 특성상 건축 기획과 공모 운영을 함께 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건축 기획이 잘 마무리되었고, 공모에서 건축사사무소아키텍톤이 당선됐다. 건축 기획 단계에서 만들었던 배치도가 있었고, 공모에서는 건축가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제한할 것을 우려해 이 배치도를 공개하지 않았는데, 아키텍톤의 기획안을 보면 이 배치도와의 연계성이 보인다.
남은 과제들
이훈길 여전히 남겨진 과제들이 있다. 건축 설계 과정은 어느 부서가 담당할 것인가? 지금은 건축 설계 과정도 사업비 집행 부서가 담당하고 있다. 물론 건축 관련 부서에서도 한 명이 나와 협업하고 있고, 나도 MA로서 돕긴 하겠지만, 인허가를 포함해 설계와 관련된 여러 전문적인 일들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전문 부서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지자체는 이 지점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현재 의성성냥공장은 설계 담당 민간 전문가인 아키텍톤, 사업의 MA, 건축 부서, 사업비 집행 부서가 함께 소통하며 진행 하고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연차별로 사업비가 집행되는 구조기 때문에 많은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당해 년도에는 사업비를 집행하고, 다음해의 사업비를 득하기 위해 증명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러니 일이 틀어지면 공사 진행을 위한 사업비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유연하게 잘 대처해야 한다.
또, 리모델링 사업의 특성상 시공 과정에 건축가가 계속 관여해야 한다. 법적으로 설계의도 구현이라는 절차를 거치게 되어 있고, 이를 위한 비용도 잡혀 있긴 하다. 하지만, 건축 기획과 마찬가지로 이 비용 또한 실비 정산 가산 방식으로 잡혀 있는 경우는 드물고, 정액요율 방식으로 계산하는 경우가 많다. 정액요율 방식으로 산출된 비용으로 가능한 설계의도 구현 횟수를 계산해보면 몇 번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하면 건축가, 시공자, 감리자가 설계의 의도대로 건물을 지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공모 운영
정귀원 제대로랩의 정귀원이다. 의성성냥공장이 아주 성공적으로 진행된 공모라는 것과는 별개로 공모 과정은 사업마다 다양하다. 의성성냥공장 리모델링 제안공모에 대해서만 설명하면, 공모 과정은 다 이렇구나 하고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제대로랩에서 지금까지 진행했던 공모들을 다 정리해왔다.
지금의 노들섬을 조성하기 위한 공모를 시작으로 공모 운영을 계속 하고 있다. 대부분 서울시에서 발주한 공모를 운영했다. 다른 지자체나 기관에서 진행한 공모를 운영하기도 했는데, 이 때 기획적인 측면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공모라 하더라도, 때에 따라 공모를 많이 경험하지 못한 주무관이 담당을 한다거나, 서울시에서 공모를 주로 담당하는 미래공간기획관이 아닌 다른 부서에서 직접 공모 운영을 의뢰해 올 경우 우리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공모는 사전 기획, 공모 진행, 사후 관리 순으로 진행된다. 사전 기획 단계에서 운영위원회가 구성된다. 서울시 외 지역이나 기관의 건축직이 없는 부서에서 공모를 진행할 때는 우리에게 PA를 추천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기도 한다. 공공건축가나 민간 건축사가 건축 기획을 할 때 지원을 해주기도 하고, 이를 기반으로 사업계획서 사전 검토, 공공건축심의를 받는 것 까지가 사전 기획의 범위다.
다음으로 공모 진행 단계가 있는데, 운영위원 회의, 지침서 작성부터 심사까지의 메뉴얼에 따른 일련의 과정이 있다. 서울시에는 『설계 공모의 기술』이라는 서울시 공모 메뉴얼이 있다. 마실와이드가 만들었고, 리뉴얼은 제대로랩이 했다. 서울시가 아닌 지자체나 다른 기관의 공모는 ‘건축 설계공모 운영지침’이나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을 기본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침서를 작성한다고 표현했는데 공모 운영팀이 임의로 지침서를 작성하는 것은 아니고, 공모 운영팀이 초안을 작성하면 공모위원의 운영회의에서 피드백을 받으며 구체적인 지침을 결정하게 된다.
마지막 사후 관리 단계에서는 시상식이나 전시를 진행하거나 작품집 또는 보고서를 만들어 공모 운영 용역을 마무리한다. 이전에는 격식을 차려 시상식을 진행하곤 했는데, 서울시도 그렇고 요즘에는 시상식을 진행하는 추세는 아니다. 그래도 종종 다른 기관이나 지자체에서는 시상식을 요청하기도 한다. 또 당선안 선정 후 서울 도시건축비엔날레 등 시기가 잘 맞으면 전시를 진행한다.또, 발주처에서 앞서 설명한 일반적인 절차 밖의 다른 일을 요청해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운영위원들이 공모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지를 영상으로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특별했던 공모 사례들
구.동숭아트센터 리모델링 설계공모
정귀원 서울문화재단이 진행한 사업으로, 기획설계 용역보고서가 잘 선행돼 있었다. 지침서, 공사비 산출을 위한 각종 견적서가 첨부돼 있는 알찬 용역보고서였다. 그런데, 서울시의 자문으로 PA를 비롯한 운영위원회를 구성한 후 모든 내용이 바뀌는 상황을 보았다. 이때 아무리 좋은 선행 보고서가 있더라도 운영위원회에서 이를 반영하지 않는데 선행 보고서가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또한 기획설계 용역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던 건축가가 공모에 참여를 해도 되는가하는 문제도 있었다. 결국 참여를 했고, 당선되지는 않았지만 고민해볼 지점이 많았던 설계공모였다.
해남 오시아노 리조트호텔 조성 설계공모
정귀원 한국관광공사가 운영을 의뢰해왔던 공모다. 이때는 PA를 추천해달라고 해 노들섬 공모를 함께 했던 서현 교수님을 비롯해 몇 명을 추천했다. 발주처가 PA를 선정한 후 PA가 운영위원을 구성했다. 특이하게도 해당 사업에서는 기획설계 보고서 대신 개발 컨설팅 보고서가 있었다. 때문에 지침서에 참고할 만한 내용이 없었다. 모든 사항을 처음부터 결정하고, 지침서를 만들기 위해 PA를 중심으로 운영위원회의를 아주 많이 진행했다. 지역에서 공모를 운영할 경우 서울에서 할 때보다 비용이 많이 든다. 사전 답사나 현장 설명회가 있을 때마다 이동문제가 있고, 심사 장소를 확보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젊어서 의욕이 충만했던 공모 운영 초창기에는 호텔을 빌리기도 했고, 버스를 대절하기도 했는데, 그런 데에 대관료나 대절비가 아주 많이 든다. 현장 설명회 등을 할 수 있도록 장소를 공공에서 지원해주는 장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공모였다.
제주 소통협력공간 조성 설계공모
정귀원 제주시에서 진행한 공모로, 공간 조성·운영 사전조사, 공간 조성지침 연구가 정말 잘 돼 있었다. 또 운영 주체로 소통협력공간 센터장이 있었다. 지침서도 잘 작성돼 있어, 별도의 운영위원회 없이 공모를 진행할 수 있었다. 당시는 공모 운영 지침 내에 전문 기관이 심사위원을 추천할 수 있다는 항목이 없을 때였지만, 발주처의 요청으로 우리가 심사위원을 추천했다. 그런데, 공모의 특성상 공간 조성·운영 사전조사를 비롯한 여러 선행 연구가 잘 돼 있다 하더라도 심사위원이 누구인지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지 않나. 이때 운영과 관련된 사항이 잘 반영된 설계안보다 좋은 설계 자체를 선정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는 것을 목격했다. 운영위원을 비롯해 앞단에서 사전 조사, 선행 연구를 진행했던 사람들과 심사위원들이 서로 소통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관광공사 서울센터 증축 설계공모 / k-style hub 외관 및 동선 개선사업 설계공모
정귀원 ‘사전 검토’가 시행된 후 처음으로 운영했던 공모다. 설계공모에서 공사비를 산정하면, 이 산정 근거를 작성한 보고서를 기재부에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이 공모는 한국관광공사에 건축직이 없었기 때문에 홍보팀이 공모를 진행했다. 이 근거를 홍보팀 직원이 찾지 못해 공모운영주체인 우리가 이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2021년의 사업인데도 불구하고, 마땅한 근거가 없어 ‘2017 서울시 공사비 책정 가이드라인 마련(안)’을 기준으로 물가상승률 등을 반영해 공사비를 산정했다. 아직도 저 2017년의 공사비 책정 가이드라인을 사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더라. 이 공모를 운영하며 공사비 산정을 위한 기준이 잘 마련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직이 없는 기관이나 지자체에서는 과업지시서도 작성을 요청하곤 한다. 그러면 우리는 기존의 과업지시서를 참고해 초안을 만들고, PA에게 검토를 받는다. 그나마 한국관광공사 서울센터 증축 설계공모의 PA였던 안종환 소장님이 잘 검토해주었고, 과업지시서는 계약서와 다름 없는 것이기에 당선자가 선정된 후 당선자와 함께 과업지시서를 다시 한 번 수정했다.
의성성냥공장 공모 진행 과정
정귀원 마지막으로, 의성성냥공장 리모델링 제안공모 운영 과정을 설명해보려 한다. 의성군 안에서 자체적으로 공모를 진행할 수 있는데, 왜 서울에 있는 업체를 불러와서 공모를 진행해야 하냐는 이야기가 내부적으로 있었는데, 이정희 단장님이 설득해주셔서 일을 맡을 수 있었다.
이후 (건축사, 민간전문가(공공건축가 등)에게 건축기획 업무 수행을 의뢰할 수 있다는)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 제22조의2 제5항에 따라 건축사사무소 공작소의 김태곤 소장님께 기획 업무를 의뢰했다. 우리는 용역 보고서 등의 자료를 참고해 현장 답사를 하고 공모 준비 회의도 하며 건축 기획을 지원했다. 또 공공건축가와 추진단 단장님께서 발주처와 협의하며 지침서도 최종적으로 작성했고, 과업지시서도 한번 검토했다. 이때도 민간 전문가로 있었던 김태곤 소장님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2023년 5월 2일, 드디어 사업 사전 검토 신청을 한다. 사전검토를 위해 기입하는 것도 공공건축가분이 다 해주었고, 우리는 제공 자료 취합 정도의 지원을 했다. 그리고 한 달 만에 공공건축 사업계획 사전검토 의견을 회신 받았다. 6월 28일, 공공건축심의를 했다. 공공건축심의에서는 의견서에서 받은 내용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 심의를 받는다. 공공건축심의위원회와 건축기획 민간전문가, 발주처, 공모팀이 참여했다. 의성군이 이를 진행해주었다. 의성군에서 공공건축심의위원회까지 진행하고, 한 달 정도가 지난 후에 드디어 공모를 공고하게 됐다.
공모에 많은 건축가들이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업무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건축 관련 협회나 건축 전문지에 홍보를 한다. 이때쯤 정평진 대표님이 만든 스코어러가 등장해, 의성성냥공장 설계공모를 홍보하기 위해 스코어러에 유료로 배너를 걸었다. 유료지만 홍보를 할 수 있는 사이트가 생겨서 굉장히 편하고 좋았다. 물론 여타 건축 잡지사에도 자료를 보내 홍보를 부탁했다. 신문에도 공모 소식이 실린 건 의성군이 자체적으로 홍보를 열심히 하신 결과였다.
굉장히 먼 지역의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18개 팀이 참가 등록을 했다. 현장 설명회는 두 차례 진행했다. 좀 급하게 진행하는 바람에 현장 설명회에 대한 홍보가 되질 않아서, 대상지 추가 공개를 포함해 두 번에 걸쳐서 현장 설명회를 했다. 그렇게 18개 팀 중 11개의 공모안이 제출됐다.

의성성냥공장 공모 심사 과정
정귀원 서울도시건축센터 5층에서 기술 심사를 진행했다. 의성군에서 주무관님이 올라오셔서 참석했다. 기술 검토 체크리스트를 포함한 여러 서류(기술검토 결과 및 노트(참여팀별), 기술검토 종합의견)를 만들어 진행했다. 이건 당시 만들었던 기술검토 보고서인데, 1차 심사 전에 보고가 되고, 이 기술 검토에서 제기된 문제를 어떻게 할 건지 심사위원회에서 논의한다. 기술검토 보고서를 만든 후 1차 심사를 진행했다.
공모 공고 전에 발주처로부터 심사위원 후보 명단을 요청받았다. 예비 심사위원 없이 7인의 심사위원을 구성하기로 발주처와 협의했고, 그중 5인을 추천하기 위해 3배수 심사위원 후보 명단을 제출했다. 심사위원 후보를 추천할 때마다 우리가 추천을 해도 되는 근거가 있나 항상 고민된다. 건축 설계공모 운영지침 제12조(심사위원 선정 등) 제4항을 보면, ‘제17조 제4항에 따라 설계공모 관련 업무를 의뢰받은 전문기관’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고 쓰여 있다. 그런데, 우리가 과연 전문기관인가? 기관이 아니라 업체인데? 알아보니 이 문구가 수정 중이라고 하더라.
출신 학교가 겹치지 않도록 고려하고, 문화재위원 1인을 포함해 심사위원 7인을 구성했다. 심사위원에게 위촉동의서나 회피서 등을 받고, 공모 참고자료 등을 공유했다. 사전 검토를 위해 자료보안 서약서를 첨부해 제안서도 미리 공유했는데, 현장이 너무 멀리 있다보니 심사위원들이 현장 확인을 1차 심사 당일에 했고, 그러다 보니 시간이 빠듯했다. 또 제안서가 7건 이상이었기 때문에 2차 심사를 진행하게 됐다.
심사 자체는 1, 2차 모두 의성으로 내려가서 했다. 차로 프린트기도 실어 가야 하고, 지역에서 공모를 운영하는 건 여러모로 참 힘든 일이긴 하다. 심사위원들과 추진단장님, 공무팀이 모여 심사를 시작했다. 심사위원장은 호선으로 결정했고, 의결 심사 방식은 2차 심사 대상자 5개 안을 토론, 투표로 선정을 하자고 의결됐다. 기술검토 결과에 대해서는 중대 위반 사항이 없는 것으로 판단해 감점 처리는 하지 않고, 제안서 검토 시 참고하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심사 때는 이렇게 각종 서류를 받아야 하는데, 이 서류를 받는 것도 우리 업무 중 하나다.
그렇게 심사위원들이 함께 현장을 보고, 1차 심사를 진행했고, 2차 심사는 5개 안을 먼저 선정해서 각 팀마다 10분 발표, 10분 질의 답변 후 ‘끝장’ 토론을 거쳐 당선작을 뽑았다. 당선자는 아키텍톤이었다. 끝으로 의성성냥공장 리모델링 제안공모 결과보고서를 제출했다.
질의응답
외부 공모 관리를 요청한 이유
정귀원 이정희 단장님께 질문이 있다. 꼭 외부 공모 관리팀을 데려와서 공모를 진행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가 있나?
이정희 행정은 일당백으로 뛰는 분들이라 공모를 외부에 맡긴다는 상상을 해 본적이 없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공모는 늘 내부적으로 다 해결해왔는데, 이걸 왜 굳이 맡겨야 되는지 싶은 거다. 행정 입장에서는 이미 많은 보고서 안에 공모 운영을 위한 내용이 다 있다고 생각했고. 우리는 공모 운영이 건축 기획과 같이 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또 MA가 봤을 때, 기존의 보고서만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에, 추가로 건축기획 용역이 나갔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행정 부서에서 계속 건축 기획을 하지 않고 진행하려 해서 추진단이 건축기획과 공모를 함께 묶어버렸다.
추진단에서 담당 공무원을 붙잡아 놓고 매일 이야기해서 설득이 됐다고 판단해 서류를 제출했는데, 회계과에서 걸려버리는 등 내부적인 이슈가 너무 많아서 하나를 진행하는 데에도 진이 다 빠지곤 했다. 처음부터 전략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하나의 용역을 내기도 너무 힘든 상황이었다. 공공사업을 푸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업비다. 어떤 성격의 돈을 가지고 사업을 해야 하는지 말이다. 세분화하면 도리어 골치가 아프고, 큰 영역 안에서 이게 경상 비용인지, 시설 비용인지 등을 잘 구분해야 한다. 그러면 어떤 과업이 어디에 해당하는 지가 보인다. 어쨌든 의성성냥공장 사업에서는 내 의도가 관철돼 연구비로 공모를 풀어 나가긴 했다. 결과적으로 서로 만족도도 높았다. 나중에 행정 측에서도 편했다고 하더라.
실현 과정에서 MA의 역할
정귀원 이훈길 소장님께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좀 예민한 질문일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아까 디자인 컨트롤을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설계를 진행하고 공사까지 가는 과정에서 건축가들이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기도 한다. 설계의도구현 이야기를 했는데, 특히 그런 부분에 대해 MA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이훈길 그렇다. 실질적으로 사업 공사비나 설계의도구현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통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까 디자인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건축가가 설계해둔 디자인을 구현하기 위한 대안을 이야기해 줄 수는 있다는 거다. 공사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면, 공사비가 좀 적에 나올 수 있는, 다르게 풀 수 있는 대안들을 이야기해야 하는 게 맞다. 또 설계의도구현이나, 사업을 진행하며 발생하는 문제들, 서로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혹은 이해를 하지 못해 발생하는 문제들이 있을 수 있는데 이런 복합적인 것을 풀어나가는 것이 내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설계의도구현 자체만 보더라도, 아직도 설계의도구현이라는 것을 진행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지자체들도 있다보니, 지자체마다 시행되기도 하고 시행되지 않기도 한다. 그러면 이를 인지시키기 위해 이런 법적 근거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논의를 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공사를 하면서 만들 수 없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은 먼저 집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설득하며 풀어나가야 한다. 이런 부분이 잘못 풀리는 순간, 시공 기간이 확 늘어나고, 그러면 다 힘들어지기 때문에 디자인에 관여하는 것 보다도 그런 문제들을 잘 풀어나가도록 진행하는 게 내 역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기획 설계의 어려움
정귀원 김태곤 소장님에게 질문이 있다. 설계 기획, 사전 검토 등 공모를 운영하는 동안 건축사가 해야 하는 역할들을 다 해주셨다. 그런데, 아까 단장님이 이 사업 자체가 공간 자체보다 운영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다보니 공간의 성격이나 들어와야 하는 프로그램 들이 명확하게 나와 있지 않은 상태에서 기획 설계를 했어야 했다. 어려운 일이었을 것 같은데, 건축 기획을 하며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
김태곤 이전 지역특화형숙박시설 사업을 계기로 지금도 해남에서 또 다른 기획 설계를 진행하고 있고, 이를 비롯해 여러 지자체의 기획 설계를 진행해왔다. 사실 의성성냥공장 같은 경우는 사업 기획과 건축 기획 중 사업 기획 분야가 워낙 잘 돼 있었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없었다. 대부분 지자체의 사업 계획은 어떤 방식이냐면, 군수님이나 시장님의 ‘이게 필요해’라는 말 한마디가 사업 기획이 된다. 그걸 바탕으로 건축가가 사례를 분석하든 어떻게든 해서 구체적인 기획을 만들어야 하는 거다. 지금은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건축가 밖에 없으니, 건축가들이 그걸 하지 않으면 그 사업이 진행되지 않는다. 그래서 건축 기획과 사업 기획이 좀 명확히 구분될 필요가 있고, 각각에 대한 대가 기준도 마련돼야 한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의성성냥공장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고, 오히려 재미있게 기획 설계를 할 수 있었다. 건축가 입장에서는 정해져 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으면 힘들다. 물론 공모에 선정된 건축가가 더 많은 상상력을 가지고 접근하겠지만, 우리도 그 몇 달의 기간 동안 즐겁게 기획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아카이빙 계획
청중 A 이정희 단장 님께 질문이 있다. 포럼 전에 아카이브 웹사이트를 보고 왔는데, 연도별 계획 하에 단계적으로 아주 탄탄하게 사업을 수행해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업이 2026년까지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때까지 아카이브에 대한 장기적 계획 같은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정희 아카이브의 활용은 다양할 것 같다. 일단 물리적으로는 전시물로 활용할 수 있겠다. 예를 들면, 건물에 있는 기계나 무너져 가는 벽만 전시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관련된 인터뷰도 전시자료가 될 수 있다. 또, 3D 스캔의 목적 중에는 미술관의 미디어룸, 다크룸에 활용하는 것이 있었다. 3D 스캔한 RAW 데이터 부터 전시자료로 바꿔보면 어떨까하는 거다.
아카이브를 하며 나오는 모든 것이 전시에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라고 봤다. 그런데, 그런 콘텐츠의 양이 어느 정도 나와야 필요한 공간의 면적도 나오지 않나. 때문에 아카이브 작업을 먼저 진행했던 것인데,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공공사업은 대략적으로 사업비를 정한 후에 진행되는 역방향이다. 그러다보니 콘텐츠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갈 곳이 없다. 사업비에 따라 공간의 크기는 정해져 버리는 셈이다 보니. 그래서 위험도를 줄이기 위해 아카이브 자료는 모두 온라인에 넣어 둔 거다. 상설 전시로는 가기 어려울 것 같으니, 기획 전시로라도 풀어야겠다고 생각해 소장하고 있는 거고. 또 하나는, 주민 대상 프로그램이든 협력 프로그램이든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이 자료들이 인프라로 활용하기 위함이다. 의성성냥공장으로, 성냥으로 무언가를 해보자고 하면 사람들은 자꾸 향과 맛을 내려고 한다. 다들 성냥 맛을 어떻게 아는지 자꾸 성냥 맛이 나는 맥주라고. (웃음) 사실 성냥공장이 갖고 있는 아카이브가 굉장히 다양한데, 자꾸 성냥이라는 눈에 보이는 걸 가져와서 접근하더라. 그 관념을 깨기 위해 아카이브를 모두가 볼 수 있게 보관해둔 것도 있다.
결국 이 아카이브 자료들을 다 RAW 데이터까지 보관해둠으로써 내가 없더라도 혹은 우리 팀이 다른 팀으로 대체되더라도 계속 활용하라고 보관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심사위원단의 질적 구성
정평진 스코어러도 가끔 공모 운영을 할 때가 있다보니 앞서 발표에서 언급했던 심사위원을 추천하는 방식에 관련해 궁금한 점이 있다. 운영위원회가 추천해 구성된 심사위원단과 전문 기관이 추천해 구성된 심사위원단 간에 어떤 질적인 차이나 공정성 혹은 심사 결과 면에서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나? 개인적으로는 운영위원회에서 (심사위원을?) 추천하는 것이 그저 형식적 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절차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귀원 대표님이 경험한 바가 궁금하다.
정귀원 운영위원부터 잘 뽑아야한다. 그게 제일 중요하다. 예를 들어, 공모를 많이 접해보지 않았던 인물이 전문성을 이유로 참여하게 된 경우가 있다. 그들이 추천한 심사위원이 심사하는 걸 보면 약간 원활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좋은 운영위원이 있어야 좋은 심사위원을 추천받을 수 있다.
또 요즘은 우리가 추천하는 심사위원에는 한계가 있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는 심사위원은 겪어봤거나, 귀동냥으로 들어본 사람이 전부다. 언제나 투명하고, 심사를 잘 하는 사람들을 추천하려고 하긴 하지만, 경험에 따라 약간 피해가는 인물이 있기도 하고. 그런데, 오히려 그러다보니 늘 인력 구성이 비슷해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원고화 김보경 / 편집 김상호
이정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UCL 바틀렛에서 건축(이론 및 디자인)을 공부했고, 서울대학교와 연세대학교에서 겸임교수를 병행하고 있다. 현재 의성성냥공장 문화재생사업추진단 단장, 행안부의 생활권 보행환경 종합정비사업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옹진군 소야랑 조성사업 총괄, 경기도 업사이클 플라자 조성사업 자문 및 운영위원, 문화부의 유휴공간 재생사업, 꿈터 조성사업, 작은 미술관 조성사업 등의 심의 및 전담 컨설턴트, 서울시 공공미술심의위원을 역임했다.
이훈길
한양대학교 도시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양대학교 부동산융합대학원 겸임교수를 병행하고 있다. 해안건축, 희림건축, 공간건축 등에서 실무를 익혔으며, 의성성냥공장 문화재생사업 추진단 MA, 서울시 공공건축 심의위원, 강서구 도시계획 심의위원, 영천시 공공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도시를 걷다』, 『건축사진/스케치 기초부터 따라하기』, 『혼자 걷고 싶어서』가 있다.
정귀원
서울건축에서 설계 실무를 했고, 『공간』, 『건축인 포아』, 『건축리포트 와이드』에서 기자/편집자로 일했다. 2016년 제대로랩을 설립하고 우연한 기회에 서울시 설계공모 관리자로 참여하면서 최근까지 여러 기관의 공공건축 설계공모 관리 업무를 수행했다. 이밖에 도시/건축사업 백서 및 기록지 제작, 건축 단행본 출간, 전시 기획을 진행해오고 있으며, 정기간행물 『건축평단』의 복간을 앞두고 있다.
바람직한 설계공모: 의성성냥공장
분량19,931자 / 40분 / 도판 8개
발행일2026년 3월 13일
유형좌담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모든 텍스트는 발췌, 인용, 참조, 링크 등 모든 방식으로 자유롭게 활용 및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문의 출처 및 저자(필자) 정보는 반드시 밝혀 표기해야 합니다.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이미지의 복제, 전송, 배포 등 모든 경우의 재사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