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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어지지 않을 계획들: 설계경기 기록의 목적

정평진

스코어러의 아카이브

설계경기 기록원이라는 이름은 야구의 경기기록원이라는 직업에서 착안했다. 미래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야구 경기 과정을 기록하고, 이를 바탕으로 코치를 한다고 하더라. 오래전부터 작성된 기록지를 보면 기록 항목들이 조금씩 달라진다. 어떤 걸 기록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기록을 어떻게 활용해서 경기력을 향상시킬 건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왔다는 거다. 그런 작업이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야구를 잘 모르지만, 여기서 이름을 따왔다.

처음 이 기획을 정부지원사업에 제출할 때 소셜벤처분야로 지원했다. 이 분야는 수익성을 좀 떨어져도 사회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선정이 될 수 있는 분야였고, 우리가 뛰어들려는 시장의 규모가 그렇게 크지도 않으니 수익을 많이 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지원사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끝까지 이 사업의 사회적 가치에 동의하지 않았다. 보통 소셜 벤처라고 하면 정말 사회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데, 그래 보이지 않으니까. 우리는 나름대로 건축사의 소득 통계를 가져와 다른 전문직에 비해 얼마나 열악하고 힘든지를 어필하려고 했으나 설득이 어려웠다. 내부적으로도 이게 가능한 사업이라는 걸 팀원에게 설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우리 법인의 정관 제53조(사회적 성과의 측정 및 보고 체계)의 요지가 수 많은 공모전이 있고 이 자료들이 사회적 지적 자원이고 창작물이니 이를 수집해서 재활용한다는 것이다. 업사이클링 제품의 구조와 비슷한 사회적 가치인 거다. 이것을 가지고 설득해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런 기록을 하고자 하는 것은 박인석의 『건축이 바꾼다』 속 “설계공모 의무화는 한국 건축의 최전선인 설계경쟁 시장 질서 구축에 나선 아방가르드”라는 표현에 일부 공감한 것이기도 하다. 실력에 의해 당선되고, 그런 이들에게 일이 주어져야 하지 않나. 또 김종성 선생님이 2019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젊고 실력 있는 건축가가 일을 맡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민간 건축에서도 분명히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공공건축 설계공모의 과정을 조금만 개선하면 이것이 충분히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야 말로 설계공모 제도의 취지나 설계공모 기록 콘텐츠화의 진정한 목적이지 않을까.

사족 같은 심사평

사업을 준비하던 시기에 현상공개 카페라는 한 네이버 카페를 알게 됐다. 2017년 개정된 규정에 따라 평가 사유서들이 공개되기 시작하며 함께 생긴 것으로, 공개된 자료를 공유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설계공모의 불투명성에 대한 혹은 심사평 없음에 대한) 문제의식은 훨씬 옛날부터 있었던 것 같다. 『건축문화』 1988년 10월호에 최창규라는 사람이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기고한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비록 낙선작일지라도 출품자들에겐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며 심사평이라도 있다면 연구자료인 것을 인천시는 그것을 반환하지 않고 두었다가 난로 불쏘시개로라도 쓰려는 것인가?” 이런 식의 글이 여러 건이 있었는데, 이 글의 이 문구에서 특히 강렬한 감정이 느껴졌다.

2017년부터 심사평이 공개되었으나, 읽을 수가 없는 심사평도 많았다. 공개하라는 취지는 좋았지만, 지금까지도 이것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설계 경기 기록원 서비스 초기만 하더라도 전국의 모든 공모전에 당선작과 입상작 심사평을 수집해서 디지털화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나하나 타이핑을 해서 말이다. 결과적으로는 불가능하기도 했고, 효용성이 없었다.

대부분의 유저들은 심사평 단계까지 들어가지 않더라. 신규 공고에 무엇이 나왔는지, 그리고 심사위원이 누구인지, 해당 심사위원이 참여한 공모에서 어떤 안이 당선됐는지까지를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각 단계에서 입상작과 그에 대한 심사평까지 접근하는 경우는 굉장히 적었다. 이를 수집하고 가공하기 위해 들이는 리소스에 비해 서비스 이용률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었기 때문에 데이터는 수집된 채 여전히 남아 있지만, 추가적인 수집은 하지 않고 현재 해당 페이지는 삭제한 상태다.

『설계경기 코멘터리』 출판

심사평 부분이 웹사이트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설계경기 코멘터리』라는 책을 만들게 됐다. 유저들이 대다수의 공모 심사평에 접근하지 않긴 하지만, 특정 공모의 경우에는 유독 관심을 많이 갖는다는 걸 발견했다. 그래서 작년 2~3분기에 있었던 500여 건의 공모전 중 조회수를 기준으로 추리고, 심사 과정이나 표결 과정 등도 분석해서 이야기 거리가 있을 만한 것들을 골라 7개를 선별했다. 각 공모의 당선작과 입상작 중 하나를 골라서 자료를 모으고, 각 공모에서 심사위원을 2명씩 섭외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책의 구성에서 특이한 점은 제안서와 인터뷰를 오며 가며 볼 수 있게 단 색인이다. 심사위원들이 제안서를 보면서 인터뷰를 했는데, 제안서 원본의 어느 페이지, 어느 부분을 보면서 답을 하는지 알 수 있도록 색인을 달았다. 반대로 제안서 원본에서도 인터뷰의 어느 부분에서 해당 페이지를 언급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후 이 색인을 얼마나 잘 사용하고 있냐는 독자 설문을 돌렸는데,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는 답이 3분의 1정도 됐다. 그리고 책이 다루는 7개의 공모 중 하나 정도는 어느 과정을 거쳐 당선안이 선정됐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좋은 심사가 무엇이냐는 이야기가 이번 포럼 시리즈 내내 나오고 있는 것 같은데, 이 인터뷰 뿐 아니라 다른 심사위원 인터뷰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기준이 있었다. ‘학습의 자세’를 가진 심사위원이 좋은 심사를 할 수 있다는 거다. ‘나는 전문가니까 다 알고, 판단할 수 있다’는 태도로 심사에 참여하는 것보다 다른 위원들의 의견 또는 그 작품에 대한 발표를 들으면서 자신이 미처 이해하지 못했거나 파악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학습해가는 과정이 있는 공모일 경우 당선안도 좋고, 심사 과정도 그 자체로서 좋은 콘텐츠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의혹들

조금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조달청에서 연간 공모전의 약 10% 정도인 100~150 건 정도를, 5억 원 이상의 설계공모는 더이상 조달청에 맡기지 못하게 규정이 바뀐 이후로는 100건이 안 되는 공모를 담당해왔다. 규정이 생기기 이전인 2019년 12월 31일에 나온 대한 경제 기사를 보면, 조달청 설계공모를 집계해보니, 122건의 설계공모에서 51개 회사가 당선됐는데, 이 중 상위 3개사가 122건의 전체 설계비 중 약 34%를 점유했다는 이야기다. 최근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는데, 5년간 전주에서 있었던 설계공모 33건 중 13건에 한 건축사사무소가 선정됐고, 설계비를 기준으로 보면 60%를 점유했다고 한다.

건축사협회 공정공모 추진위원회에서 제안을 받아 우리도 이와 비슷한 통계를 제작했다. 2023년 조달청에서 진행한 85개 공모전 중 당선이 많이 된 4개 업체를 골랐다. 이들은 건수를 기준으로 하면 약 40%를, 설계비 기준으로는 절반이 넘는 비율을 차지했다. 이는 상위 4개 업체들이 특정 금액 이상의 공모전에만 참여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 조달청 설계공모 85 건의 심사를 누가 했는지를 추적했다. 위촉 횟수가 네 번 이상인 사람이 28명으로, 85 건에 대한 전체 심사위원의 약 10%에 해당하는데, 실제로 이 사람들이 위촉된 횟수는 전체 설계공모의 4분의 1에 해당됐다. 반면 위촉 횟수가 단 1회인 사람들은 137명으로 전체의 절반 정도되지만, 심사에 참여한 것은 훨씬 적은 약 4분의 1에 불과했다. 심사위원을 위촉하는 데 있어서 쏠림 현상이 있다는 거다.

이러한 현상을 좀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 스코어러에 등록된 전체 공모 약 4천 건의 심사위원 위촉 횟수에 대한 통계를 냈다. 전체 심사위원 수가 약 6천 명이었다. 위촉 횟수가 28건 이상인 심사위원은 전체 심사위원 수의 1%, 위촉 횟수는 전체 위촉 횟수의 10%를 차지했다. 위촉 횟수를 13건 이상으로 계산하면 전체 심사위원의 5%에 해당하는데, 이들이 전체 위촉 수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었다. 위촉 횟수가 1건 뿐인 이들은 전체의 45%를 차지하지만, 위촉(참여) 수를 기준으로는 10%를 점유했다. 

이러한 쏠림 현상은 마치 인터넷 뉴스 포털에 달리는 댓글 수와 실제 댓글 작성자의 비율을 가지고 분석해 보면, 굉장히 소수의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댓글을 달고 있다는 사실과 닮아 있다. 이것을 자연스러운 상황으로 볼 수도, 관점에 따라서는 문제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바꿔 말하면, 심사에 많이 참여한 이들이 심사위원으로서의 자질이 충분하고 심사를 잘하기 때문에 많이 참여하는 것인지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설계공모판

지금의 공모판은 마치 들키지 않고 컨닝을 하라고 판을 깔아둔 시험을 연상케한다. 지금의 설계공모도 로비나 사전 접촉을 방치해두고 치러지는 시험이지 않은가. 걸리지 않고 교묘하게 로비를 할 수만 있다면 상관 없고, 그걸 못하면 떨어지고. 공모액의 2%까지 당선 대가를 요구하거나 더 많은 로비 금액을 제시한 업체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중대형 공모의 심사위원으로 선정되면 서로 축하 인사를 주고받는다는 실명이 거론되지 않은 기사들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내 생각엔 그렇기 때문에 공모의 쏠림 현상이 일어난다. 설계비 26억 원 규모의 옛 충남도청을 미술관으로 개보수하는 설계공모에는 단 3팀이 제출한 데 반해 설계비 3억 원 규모의 광탄도서관 설계공모에는 140팀이 응모하고, 74곳이 제출했다고 한다. 정말 많은 공모전이 열리는데도, 한 쪽으로만 참가팀가 몰린다는 것은 참여할 만한 공모전이 없다는 것을 방증한다. 심사위원 개개인의 양심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단초는 외부에 있지 않나 싶다. 설계공모에 조금 더 강력한 보안책이나 제안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AURI에서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유찰 공고 건수가 점차 늘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발주 기관들이 해결해야 할 큰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스코어러+’라는 서비스를 고안했다. 공고 후 참여 접수를 오프라인으로 받았던 것을 전용 홈페이지를 구축해 온라인으로도 할 수 있도록 하고, 심사 과정을 디지털로 전환하는 등 발주 기관이 효율성 있는 공모 운영 업무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 서비스는 발주 기관 공무원 입장에서 공모작 접수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기획한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검토해야 할 서류도 많아지고, 행정 업무가 늘어나니 오히려 디지털로 전환되는 것보다 잡음 없이 적당한 수의계약 업체가 참가하고 진행하는 것을 선호하더라. 만약 유찰이 될 것 같으면 소위 말하는 들러리 업체를 섭외하기도 해서라도 과정이 무난하게 지나가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서비스는 우리가 운영하는 공모전에서만 사용하고 있다.

역평가 장치

앞서 말한 무엇을 기록해야 하는가의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에 대한 평가 지표라고 생각한다. 이를 얼마나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학교에서 교수들의 강의 평가 설문지를 떠올렸다. 우리도 지원 사업을 위한 발표 후 평가위원에 대한 평가 설문지를 받기도 했다. 평가위원이 적절한 질문을 했는지,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지를 묻는 질문들이 있었다. 설계공모 심사위원을 평가할 경우 응모 업체가 해야 할지 아니면 다른 전문가가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어떤 방식이든 심사위원에 대한 평가 지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요소로는 특정 심사위원이 참여한 공모의 응모수나 제출률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요소들이 공개되어 있지 않다 보니 기록도 측정도, 평가 지표로도 활용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런 부분들이 앞으로 개선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원고화 김보경 / 편집 김상호


정평진

스코어러 공동대표. 설계경기 기록원 스코어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000: 공적 공중 공원’으로 <사회적 건축: 포스트코로나 젊은 건축가 공모>에서 대상을, 「거리에 대한 권리: 철거된 김수근의 르네상스 호텔과 공개공지, 그리고 이우환의 관계항」으로 『Landscape Architecture Korea』 창간 40주년 기념 비평상을 수상했다. 건축전문지 편집자로 일했으며 여러 매체에 도시와 건축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지어지지 않을 계획들: 설계경기 기록의 목적

분량5,736자 / 12분 / 도판 5개

발행일2026년 3월 13일

유형강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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