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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건축 설계공모, 기획에도 설계도가 필요하다

이정인

연간 1000건이 넘는 공공 설계공모가 시행된다. 공모에 참여하는 건축가의 수가 늘고 있고, 경쟁률도 치열해지며 사회적 관심 역시 과거보다 높아졌다. 그만큼 더 나은 공공 건축물이 탄생할 것이라는 기대도 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이 이에 쉽게 부응하지는 않는 듯하다. 표절 논란에 휩싸여 당선이 취소되는 사례가 있는가 하면, 완공 이후 지속적으로 ‘흉물’이라는 비판을 듣는 건물도 적지 않다. 이들을 개별 사례의 문제로 보기 이전에, 왜 이런 일이 계속해서 발생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공모 과정 자체에 구조적 허점이 있다는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공 설계공모가 시작되는 지점, 설계 이전의 설계인 기획 단계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울시청사에서 서리풀 보이는 수장고까지, 설계공모는 변화했을까?

2013년 동아일보와 SPACE가 여러 건축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한국 현대건축 태작 30선’에서 서울시 신청사가 1위에 올랐다. 이를 두고 조한 홍익대 교수는 “서울시 신청사는 ‘최악의 건물’이 아니라 ‘최악의 과정’이다. 서울시 신청사의 근본적인 문제는 청사가 만들어진 과정에 있다”1고 하였다.  서울시는 1차 아이디어 공모전과  2차 턴키 입찰 방식 두 단계로 공모를 진행했다. 그런데 이 과정을 거쳐 당선된 안이 시청사로는 부적합하다는 비판이 생기자 5명의 건축가를 초청하여 다시 공모전을 열었다. 거기서 선정한 유걸 건축가의 설계안을 이전 공모전의 당선자인 설계사와 건설사가 짓도록 하였는데, 이는 건축가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실제 건물에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그 결과 이 건물은 최악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 최악의 건축물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 것이다.

같은 해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이 제정되었다. 이는 공공 건축을 발주하는 준칙과 절차를 규정하는데, 고시금액 2.3억 이상의 공공 건축물은 설계공모를 우선으로 적용하도록 했다. 건축서비스산업을 활성화하고, 공공건축의 품격을 향상시키기 위해서였다. 이 법을 준비하기 시작한 시점은 2011년으로, 조한 교수가 지적한 서울시 신청사 문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당시 공공건축 발주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공모 방식 적용 대상을 고시금액 1억 이상인 건축물로 확대 적용하며 공공 설계공모 건수는 더욱 늘어났다. 설계공모는 여러 아이디어를 심사하여 선정하는 형식이므로, 단순한 가격 경쟁보다 설계물의 질을 더 중시하여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처럼 보인다. 또 서울시청사 사례처럼 공모를 개최하더라도 부실한 제도가 절차에 혼란을 일으키지는 않으리라는 기대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공공건축 설계공모에서 여전히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고 그 원인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특히 공모 기획 단계에서부터 생기는 문제가 결과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공모 초기 과정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공공건축물의 발주처가 공공기관인 만큼, 공모 기획 역시 담당자나 기관장이 책임져야 하는 영역이다. 건축가는 공공기관이 제시한 설계 지침을 바탕으로 사업을 이해하고, 그에 알맞은 방향으로 설계를 구상한다. 따라서 공공기관은 사업 추진 명분과 건축물이 수행해야 할 역할을 사전에 설정해야 한다. 이것이 기획 단계가 중요한 이유다. 최근 진행된 공공 설계공모의 지침서와 참여 건축가의 발표를 들여다보며 이러한 문제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살펴 보자.

‘왜’가 빠진 지침서 ─ 서리풀 보이는 수장고

공공건축 설계공모의 기획 단계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는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는 상세히 안내하면서도, 정작 ‘왜’ 이 건물을 지어야 하는지는 모호하거나 생략된다는 점이다. 서리풀 보이는 수장고 공모는 이러한 기획 부족이 어떤 양상으로 드러나는지 잘 보이는 사례다.

이 건물은 국군정보사령부가 자리를 옮기며 생긴 유휴부지에 기부채납 형식으로 조성되는 시설이다. 지침서는 이 공간을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관람이 가능한 새로운 문화공간”, “세계적인 건축가와 함께 만드는 혁신적 랜드마크”라고 묘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수사는 설계자에게 구체적인 방향을 제공하지 않는다. 예컨대 ‘서울시 문화 자원과의 연계’라는 지침에는 무엇이 문화 자원인지에 대한 정의가 없고, ‘땅의 가치를 대중에게 돌려준다’는 표현도 경제적 가치인지, 생태 자원인지, 역사적 의미인지 불분명하다. ‘왜’라는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어떻게’의 항목만 늘어놓은 지침은 참여 건축가에게 막연한 과제를 넘기는 셈이다.

공모 발표장에서 건축가들의 발표는 이러한 기획의 공백을 채우려는 방식으로 엇갈렸다. 국내 건축가들은 프로젝트의 공공적 의미를 재구성하려 애쓰고, 해외 건축가들은 지침서를 표면적으로 해석하는 데 그쳤다. 유현준 건축가는 서리풀에서의 군복무 경험을 바탕으로, 서리풀에 자연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며 ‘나무를 위한 아파트’를 제안했다. 조민석 건축가는 도시와 자연의 연결 수단으로서, 임재용 건축가는 산책할 수 있는 장소로서 수장고의 모습을 제시했다. 이들은 자신의 설계안이 왜 필요한지 설득하기 위해 윤리적 맥락을 강조했다. 이들의 윤리적 가치 앞에 건물의 형태나 구축 방법은 디자인의 수단으로 바뀌었다.

해외 건축가들은 주제를 직서적으로 해석하여 ‘서랍’이나 ‘보석함’과 같은 도식적인 해법을 제시했다. 3XN와 MVRDV는 ‘열림’이라는 개념을 시각적 형상에만 집중하여, 정작 이것이 수장고의 실질적 기능이나 프로그램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일례로 3XN이 제안한 안은 ‘서랍형’ 외관을 가졌지만 실제 이용자가 그 안을 내려다볼 수 없었고, 이는 심사위원 지적에서도 드러났다. 그들이 프로젝트를 충분히 깊게 이해했다고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맥락이 빠진 ‘랜드마크’화 ─ 노들 글로벌 예술섬

다른 설계공모에서도 유사한 양상이 반복된다. 2024년 5월에 진행된 ‘노들 글로벌 예술섬’ 공모에서는 기획의 미흡함이 보였을 뿐 아니라 당선작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었다. 서울시는 2023년 2월 「도시·건축 디자인 혁신」을 발표하며, 예술성과 상징성을 갖춘 도시 랜드마크를 조성하고 노들섬을 ‘새로운 아이콘’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같은 해 실시된 서울서베이에 따르면, 서울시민이 인식하는 대표 랜드마크는 한강(48.3%), 광화문광장(36.1%), 그리고 고궁(32.3%)이었다. 모두 오랜 역사를 거치며 생활 속에 자연스레 자리잡은 장소다. 게다가 노들섬은 2015년부터 서울시가 주도한 공공 프로젝트로 계획되어 2019년 복합 문화공간으로 개장해 운영 중이다. 노들섬을 랜드마크로 조성해야 할 이유를 분석하지 않은 채 기존 계획을 뒤엎으려 한 점은 공모 참가자들에게 혼란을 초래했다.

또 헤더윅 스튜디오의 당선작 ‘소리풍경(Soundscape)’에는 같은 건축가가 설계한 뉴욕의 인공섬 ‘리틀아일랜드(Little Island)’나 상하이의 쇼핑몰 ‘1000 트리즈(1000 Trees)’와 형태가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왔다.2 게다가 기존 3,000억 원으로 편성된 노들섬 사업비와 달리 토머스 헤더윅 건축가는 예상 건축 비용으로 1조 5000억원을 제시하였다. 공공 건축 공모에서 ‘새로움’, 또는 ‘글로벌’이라는 단어가 결국 해외 유명 건축가의 전작 오마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지, 또 그것이 실현 가능한지 의문이 든다.

명분이 부족한 목적과 대지 ─ 이건희 기증관

더 최근에 있었던 이건희 기증관 설계공모에서는 내용물 없는 상징이 문제였다. 문체부가 기증작에 대한 세심한 평가와 연구없이 기증관을 세우겠다는 결정을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3 문체부는 2021년 고 이건희 회장의 유족이 국립 기관과 지방 박물관에 총 2만 3천여 점의 예술품을 기증한 것을 바탕으로, 기증관 건립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 중 국가지정문화재는 약 60여 점에 불과하고, 나머지 작품은 목록도 제대로 공개되지 않은 상태였다. 어떤 작품을, 어떤 기준으로 선별해 전시할지에 대한 기본적 검토 없이 물리적 공간 조성만이 우선되었다. 분산 기증된 소장품을 다시 한 데 모은다는 발상은 기증의 의미를 무력화한다는 문제도 있다. 기증품을 모아야 할 이유 없이, ‘기념해야 한다’는 선언만 남았다.

입지 선정 역시 설득력이 부족한 대목이다. 지침서는 열린송현녹지광장 부지 중 일부를 이건희 기증관으로 활용하고, 나머지는 송현문화공원과 주차장으로 조성하겠다고 말하며, 이곳이 “오랜 기간 공공의 접근이 제한되었던 단절된 대지”였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미 녹지광장 조성을 통해 단절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된 상태이며, 현재는 시민에게 개방된 공간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단절을 이야기함은 이해하기 어렵다. 오히려 단절을 회복한 공간에 다시 건축물을 채우는 행위는 이 맥락을 역행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해석을 배제하는 상징 추구 ─ 세종로 공원 및 국가상징 조형물

반대로 기획의 과잉에서 비롯한 문제를 보이는 설계공모 사례도 있다. 세종로 공원 및 국가상징 조형물이다. 서울시는 공모 지침서에서 이 공원을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분들을 기억하고, 감사를 표현하는 공간으로 조성하고자”한다고 밝혔다. 목적 자체는 분명해 보이나, 그 분명함이 설계자의 해석과 제안의 여지를 차단해버렸다. 구체적인 메시지를 강하게 설정한 나머지, 창의적 개입이 들어설 공간이 사라졌다. 기획자는 설계자에게 자신의 상징을 그대로 구현하도록 요구한 것이다.

건축은 고정된 기념비를 만드는 것보다는, 장소와 시대정신, 시민 감각을 재해석하는 작업이어야 한다. 세종로와 광화문은 이미 역사적 사건과 기억이 축적된 장소로, 그 위에 또다른 기념을 붙이려면 그 맥락을 섬세하게 해석해야 했다. 그러나 공모는 ‘호국보훈’이라는 단일한 메시지만을 내세운 채, 광화문 광장의 공공성이나 도시 맥락을 외면했다. 이 과정에서 설계자는 창의성을 발휘하기보다 해석을 피하는 전략을 택하게 될 수밖에 없다. 공공건축이 정치적 상징의 전달 장치로만 남는 순간, 공간은 살아 있는 기억이 아닌 명령형으로 입력된 메시지를 반복하는 사물이 된다.

공공건축, 이제는 설계 이전의 설계부터

지금까지 살펴본 사례에서 반복된 문제는, 결국 공공 공간을 기획하는 관점과 태도의 일관성 부족과도 관련있다. 공공 건축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으므로, 단순한 경제적 합리성을 넘어 장기적 관점에서의 사유가 필요하다. 일회적 상징물이 아닌 일상을 지탱하는 기반으로 자리잡을 때 공공건축물이 본연의 가치를 다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건축가는 어떤 조건 아래에서 창의성과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을까? 설계공모는 모든 문제에 통용되는 해법보다는, 각 공간이 가진 맥락에 대한 문제를 해석하고, 이에 적합한 ‘특수해’를 찾기 위한 과정이다. 공모 지침 수립 시 기획 의도와 건축가의 해석 가능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지침서가 과도하게 많은 제한을 둔다면, 설계자는 단순한 구현자가 된다. 반대로 기획이 지나치게 느슨해지면, 건축가는 프로젝트의 당위성부터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결국 건축의 자유는 건축의 자율성이 보장된 구조 속에서 성립되며, 이를 위해서 기획 단계부터 전문성을 발휘한 설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편, 지금의 설계공모 제도는 여전히 ‘공공 건축의 품격을 높인다’는 이상을 표방하고 있지만, 그 품격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품격은 외형의 화려함이 아니라 공간이 품은 사회적 질문과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기획의 수준에서 비로소 드러난다. 따라서 사회적 목적과 공간적 해석이 설득력 있게 맞물리는 공모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다시 2013년 서울시 신청사 논란으로 돌아가 보자. “오세훈 시장은 입만 열면 서울시의 랜드마크를 주장했다”4는 조한 교수의 말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과연 우리는 그때보다 나아졌는가? 공공건축은 이제 더 이상 홍보물도, 과시 수단도 되어서는 안 된다. 필요한 것은 기획의 철학과 실행 구조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기반이다. 우리 사회가 지속 가능하고 설득력 있는 공공 건축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제 ‘건축’ 이전의 기획이 더 치밀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정인

고려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건축사사무소에서 인턴을 하고 있으며, 대학원 진학 준비 중이다.

공공건축 설계공모, 기획에도 설계도가 필요하다

분량5,939자 / 12분

발행일2026년 3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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