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건축의 벽을 허물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근 몇 년 동안 건축 관련 행사와 건축전시가 급증한 것이 이를 반증하며, 내년 2017년에는 UIA 세계총회가 서울에서 열린다. 하지만 한국에는 아직 건축에 대한 개념과 역사를 제대로 전달할 박물관이 전무한 게 사실이다. 박철수 교수는 불과 1990년대에 독립을 이룬 에스토니아가 국가 재건을 위해 추진한 중요한 일 중 하나가 건축박물관이었음을 2009년에 이어 2016년 «건축신문»을 통해 다시 한 번 중요한 논의로 가져왔다. 「건축기본법」에서 박물관 설립과 관련해 ‘해야 한다’가 아닌 ‘할 수 있다’로 모호하게 표현한 것에서도 보듯이, 정부는 책임을 무기한 미루거나 건축문화에 대한 부족한 이해를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의 근대는 기회주의 그 자체였고, 한국의 건축도 자립적인 근현대 역사를 만들지 못했다. 오늘날 건축계에서 한국적 가치를 만드는 것은 아직 힘에 부쳐 보인다. 오히려 우리 건축은 문화적 이종교배를 통해 잡종강세를 이루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한국 고유의 소질과 문화는 충분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그리고 우리에게 모던이 무엇인지 자문해야 한다. 박길룡 선생은 건축에서도 한국적 가치 발굴에 비평의 역할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한다.
건축은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만든다. 설계하거나 시공하는 사람들만의 ‘건축’은 없다. 그러나 우리 건축계는 상대를 밀어내고 경계하여,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섞이거나 융합하지 못하고 있다. ‘통섭’은 단단한 중심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변방을 의식하고 스스로 오랑캐가 되는 것을 뜻한다. 오랑캐로 사는 즐거움, 그것을 찾아가보자.
건축은 그 시대의 문화를 반영하면서 동시에 모든 것과 연관된다. 건축물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이해하기 위해 사회제도와 건축물의 상관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이해가 필요하다. 자신이 사는 시대를 긴장시키는 건축가를 기대하기 위해서 이를 위한 노력과 실현가능한 제안들이 자유롭게 발현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건축계는 이런 논의의 장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새로 창간하는 <<건축신문>>에 이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