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숙희 오늘의 주제는 산업자산의 활용이다. 부천아트벙커 B39가 공공에서 산업자산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보여준다면 코스모40은 민간에서 산업자산을 다루는 방식을 말한다. 앞으로 산업자산은 더 많아질 테다. 용도 폐기, 도심 확장으로 인한 이전 등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건축물의 노령화 시대를 맞이하며 앞으로 이들을 어떻게 대할지를 고민하는 시간이니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해달라.
건축 행위의 목표가 지식 생산이라면 건축적 지식이 가장 순수하게 전달될 수 있는 통로는 아이디어가 건물로부터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전시 속의 건축적 상황이 아닐까? 1980년 처음 개최된 베니스건축비엔날레에서 <스트라다 노비시마(Strada Novissima)>라는 거대한 설치 작업에 포함된 건축가 중 한 명인 레온 크리어는 “내가 건물을 짓지 않는 이유는 내가 건축가이기 때문” 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자신이 건물을 짓지 않는 것이 저항적이고 대안적인 선택임을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건축 이론을 책과 전시라는 대안적 매체를 통해 실현하는 것을 선호했다. 답사를 통해 얻는 지식과 전시를 통해 얻는 지식은 동일한 영역 속에 존재하며 표현 수단이 다를 뿐이라고 가정한다면, 건축가의 의도가 최대한 간섭받지 않고 존중되며 외부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전시 공간 속에서 건축가의 작업은 더 온전히 구현될 수 있다. 물론 건물의 배경이 되는 지형과 주변 환경의 맥락 속에 품길 때 느낄 수 있는 신체적 또는 현상적 경험은 있다. 그러나 답사를 통해 기억되는 경험이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며 감상적인 반면, 책이나 그림, 설치 등 전시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지식은 한결 집중된 주제 의식과 더불어 시대와 사회적 관념 속에서 편집된 명료하고 생산적인 지식일 수 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이 최근 건축 전시의 수와 규모가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으며, 이를 통한 건축의 지적 세력이 무서운 속도로 확장되고 있는 것 같다. 건물보다 전시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면서 누가 다음, 어느 비엔날레의 큐레이터로 선정될 것인가에 대한 루머와 추측들이 건축계의 뉴스거리가 된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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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부검: 여의도 1968 – 2018〉은 현실과 상상, 소설과 역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지극히 익숙하면서도 낯선, 다양한 주체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들의 기억은 ‘여의도’라는 거대한 시대적 실험으로 엮여 있으나, 이야기를 주도하거나 이야기에 끌려가는 자 없이 평행선을 그리며 진행된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의도는 실체적 장소라기보다 은유적인 허상으로 존재한다. 때로 면적의 비교 단위로 호명되는 여의도의 거대함, 광활한 평평함, 그리고 구석이 존재하지 않는 어색함은 곧 실현될 유토피아로서 여의도의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유지시킨다. 아스팔트 광장에 모여 기도하고 노래하고 농성했던 수백 만의 기억과, 매년 가을 여의도 하늘 위에 펼쳐지는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모이는 군중들, 그리고 봄마다 벚꽃 아래 윤중제를 걷는 시민들에게 여의도는 지금도 가까운 유토피아다. 여의도에서 우리는 이상적인 미래를 꿈꾸고, 그 꿈의 예언적 개념으로서의 운명은 국가 정체성의 견고함과 맞물려 있다. 사회적이며 미학적인 실험 대상으로서 여의도는 여전히 한국 아방가르드 건축의 성지다.
형식 따위에는 관심도 없을 법한 뻔뻔한 표정으로 갈색 나팔바지와 깃 넓은 빨간 셔츠를 풀어헤쳐 입던 여느 때와 달리 얌전하게 차려 입은 정장 옷깃 위에 큰 꽃을 달고 단상에 올라 누군가 대신 써둔 듯한 개회사를 열심히 읽고 있는 김수근의 모습은, 그가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KECC,이하 기공)의 2대 사장이던 1968년 10월 ‘고속도로건설기술심포지움’이라는 공식 행사를 기록한 사진 속에 담겨 있다. 아직 30대 후반이던 젊은 김수근이 기공의 사장으로 부임한 것은 1968년 4월이었으나, 그는 이미 1966년부터 기공 내에 설립된 도시계획부에 자신과 함께 일했던 윤승중 이하 젊은 건축가들을 모두 불러모았고, 사실상 설립부터 기공의 최고 책임자 역할을 담당했다. 김수근 팀과 기공의 어색한 공생은 1969년 그가 인간환경연구소를 만들며 독립할 때까지 3년 동안 지속됐고, 그 숨 가빴던 3년간 김수근 팀이 만들어낸 다수의 설계도와 보고서들은 한국 현대건축의 초기에 활동을 시작한 젊은 건축가들의 야심 찬 실험들이었다.
파빌리온 프로젝트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이다. 건축이 특정 공공장소를 매력적인 곳으로 각인시켜 목적하는 상징성을 극대화하거나, 작은 공간의 효율성을 극대화해 기능성을 충분히 충족시켜줄 거라는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반증한다. 다양한 성격의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진행한 건축가들이 모여 파빌리온의 건축적, 문화적, 더 나아가 정치적 가능성을 이야기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