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기상관측소 K의 하루
복도훈
5,096자 / 10분
오피니언
파국 서사와 비평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
K가 종말기상관측소에 근무한 지도 어느덧 8년이 되었다. 종말기상관측소는 위기, 재난, 파국, 종말, 묵시와 같은 가족유사성을 지닌 어휘들이 한국사회의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자주 출현하기 시작한 정세적인 종합국면을 면밀히 탐구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처리하기 위해 설립된 민간자치단체다. 재난을 통제하기보다는 조장하는 정부와 재난으로 막대한 이윤을 남기는 기업의 지원은 일절 받지 않는다. 종말기상관측소에 구비된 디지털 휴대장비와 시설은 따라서 대단히 낙후될 수밖에 없겠다. 그래도 낡은 풍향계는 상서롭지 않게 불어오는 비바람, 낙뢰와 태풍을 품고 있는 구름의 종류를 기록하고 있다. 기상관측소이긴 하지만 미진微震을 일찌감치 눈치채는 설치류齧齒類 등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지진계도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태 직후에 구비했다. 최근 1~2년 사이에는 바다에서 전해오는 조난신호가 심상치 않아 모스부호 해독 기구를 마련해 사용하고 있다. 업무량이 증가했지만 뜻을 함께하는 동료도 한둘씩 늘었다. 풍향계와 지진계, 모스부호 해독 기구에는 공통 업무가 하나 있다. 그것은 물론 하늘과 땅, 바다에서 전해져오는 파국과 묵시의 전조와 예감, 징후를 포착하고 그와 관련된 기록일지를 작성하는 것이다. K는 때때로 그 기록일지를 위기crisis와 어원을 공유하는 비평criticism으로 부른다. 요즘 들어 신뢰성이 급격히 추락하는 어휘이긴 하지만 딱히 대안이 있을 리도 만무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