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하는 건축가들을 만나며 이 세대를 지칭하는 다른 수식어, ‘젊은(젊음)’을 되새긴다. 이 표현을 향한 여러 갈래의 의문, 해석, 비평, 비판이 다양한 지면을 통해 지속되었으므로 굳이 다시 꺼낼 필요는 없을 것이나, 시즌마다 도돌이표처럼 자꾸만 되돌아오는 이 모호한 수식을 곱씹어보게 된다. 그리고 만남을 거듭할 때마다 그 의미는 미묘하게 변주된다.
약간 건축가 건축가로서 만들고 싶은 궁극의 건축, 그런 것은 없다. 다만 도전은 항상 좋아한다. 궁극적으로 생각해보면, 이 일을 하는 변하지 않는 이유 단 하나가 남들이 안 해본 것, 아직 세상이 보지 못한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다. 조각이건, 굉장히 독특한 디테일이건, 희한한 형태이건, 벽돌 붙이는 방법이건 간에 역사상 없었던 것을 만드는 게 언제나 좋다.
적당히 괜찮은 플랫폼 요즘에는 괜찮은 사무소가 점점 많아지는 것 같지만, 사실, 건축가들이 가장 못 하는 것이 적당히 행복하고 지속 가능한 ‘회사’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안정적인 사무실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싶다. 그것이 더 큰 도전이다. 설계 잘 된 건물을 몇 개 짓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고, 이 업계에 더 필요한 일인 것 같다.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이라는 신조어가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지금, 많은 젊은 건축가가 웹사이트 제작보다 인스타그램 계정 운영을 우선한다. 다른 소셜미디어에 비해 특히 인스타그램은 이미지로 소통하며 정체성을 구축해 가는 곳으로, 좋은(예쁜) 공간과 장면, 특별한 순간을 끊임없이 소비하는 장이다. 인스타그램의 소통 방식과 특성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지와 상관없이, 공간을 소비하고 누리는 데에 관심이 많은 젊은 세대에게 자신의 작업을 어필하기 원하는 건축가라면 적극 활용해야 할 소셜미디어가 되었다.
사무소의 지속 가능성 사무소효자동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특별히 따로 생각해보진 않았다. 다만 지금(2022년 3월)부터 3년 9개월 후에는 은퇴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때면 만 56세다. 선배 세대 중 건실하게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곳은 서너 곳 정도다. 지금 시대는 그들의 시대보다 더 빠르게 변하고 있으니 얼마 전 내가 사무소 조직을 개편했던 시점으로부터 5년 후 정도에는 내게 타임 리미트가 한 번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규모와 매출이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선을 넘어선다면 그 고비를 넘기고 ‘회사’가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미련없이 탁탁 접어서 상자 속에 넣으려고 한다. 나는 조만간 우리 모두 그런 사회적인 요구를 마주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건축가의 일이란 보통 작업 결과인 건축물을 지칭한다. 건축가에게 “당신은 어떤 건축가입니까?”라는 질문을 건넬 때에는 그가 어떤 작업을 했는지, 건축가로서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건축계 이슈에 어떠한 입장인지에 먼저 관심을 두게 된다. 건축가의 일은 이러한 개별성을 지니는 것인 한편, 업무 자체만 떼어놓고 봤을 때는 절차에 의해 수행해야 하는 과제가 명확하고, 전문적인 분업이 필수이며, 실현 과정에서는 더 확장된 영역의 사람들과 협업하는 일이다.
과연 세대를 나눌 수 있을까? 김건호(설계회사) 귀국한 뒤 우연히 한국 건축가 1세대, 2세대와 관련된 프로젝트에 많이 참여했다. 그때 관심있게 봤던 자료나 작업 내용을 떠올리면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건축가의 처지가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또 최근에 1950~60년대 건축가, 1960~70년대 건축가가 재조명되며 그 분들이 했던 이야기나 지은 건물들을 접하게 됐는데, 들여다보면 주어진 제약과 상황 안에서 시대적 요구와 개인의 창작 욕구, 이 두 가지 생각을 오가며 갈등하고 분투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동시대 선진국의 건축을 국내에 하루 빨리 이식해야 하는 와중에 건축가로서 하고 싶은 작업은 따로 있지만 국가에선 못하게 막았다.
첫 독립, OMR 조성학 대학 졸업하자마자 뭐든 해보자고 마음 먹고 우리 둘과 바이아키텍쳐의 이병엽 소장까지 함께 창업해 무작정 일을 하나 받았었다. 그런데 실무 경험이 없다 보니까 너무 막막했고, 결국에는 그 일이 잘 안 됐다. 6개월 정도 지나서야 건축사사무소에 들어가 일을 배워야겠구나, 깨달았다. 그때 팀 이름은 OMR이었다.
독립, 젊을 때 몸으로 부딪치자 최영준 대학생 시설, 월간지 『C3 코리아』 국내 건축가 시리즈를 통해 서혜림, 김인철, 김영준 같은 건축가들을 접했고, 건축가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일하는 직업임을 느꼈다. 졸업 후 책에서 만났던 선생님을 찾아갔고, 김영준도시건축에서 실무를 했다. 그곳에서 건축주를 대하는 법, 건축가로서 해야 할 일 등의 기술을 습득하고 수련했다. 거기에는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
건축하는 법 강현석 유학 기간 중과 졸업 이후에 헤르조그 & 드 뫼롱(Herzog & de Meuron)에서 3년 넘게 실무를 했다. 학교에서는 상황과 맥락을 보고, 읽고, 생각하는 방식을 배웠고, 사무실에서는 구체적인 생각들을 건축 어휘를 사용해 완결된 물리적인 문장으로 치환하는 법을 배웠다. 자크(Jacques)와 피에르(Pierre)는 항상 부연 설명 없이도 즉각적으로 발현하는 반-재현적인 건축을 강조했는데, 프로젝트의 초기 단계에서 두 사람의 생각이 무수한 시행착오와 부산물들을 거쳐 하나의 구축물로 귀결되는 과정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 때의 과정들을 떠올리면서 설계한다. 물론 당시 함께 일했던 소중한 동료들과 여행에서의 경험들은 현재까지도 큰 자산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