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물 없는 자본주의 기독의 신학에서 시간은 인간이 소유할 수 없다. 그래서 시간은 신의 선물이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서유럽의 역사에서 소유할 수 없는 시간을 소유하여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돈을 받는 고리대금업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당연히 이들은 신학적 입장에서 배척 받았다. 그들은 유대인이었다. 민족의 삶을 영위할 영토가 없이 떠돌며, 항상 쫓겨날 각오를 하고 살았던 그들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시간이라는 황금이었다. 일정한 돈을 빌려주고 시간에 따라 이자를 받는 일은 건물이나 땅을 소유하는 것보다 비교적 안전한 일이었다. 서유럽의 기독교인들에게 유대인의 그런 행태는 신의 선물을 모독하는 것으로 비춰졌다. 서유럽의 유대인 박해는 이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유대인에 대한 악감정과 인종주의적 편견, 그리고 기독교 신학에 대한 입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결국 아우슈비츠의 비극은 히틀러의 광기만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모든 서유럽인들의 공모였다. 그러나 이미 서유럽의 금융업을 장악한 유대인들에게 양차세계대전은 새로운 국면을 준비하고 있었다. 세계자본주의를 금융자본주의로 재편하는 일이었다. 나는 지금 남한의 사회구성체를 ‘신자유주의 식민지 부동산자본주의’로 규정한다. 양차세계대전을 기회로 성장한 금융자본주의는 이제 전세계에서 현물없는 자본주의를 팽창시키고 있다.
학제간 대화는 쉽지 않다. 문화예술인과 경제학자의 대화는 특히 그렇다. 문과와 이과라는 생리적 이질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회적인 지식 권력의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학언어로 무장하고 정책수립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경제학의 위상과 산업경제 지표에서 미비한 입지를 차지하는 (순수) 문화예술인들의 경제위상이 그 불균형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대화의 난망함을 줄여보려는 노력에서 학제간 대화는 결국 어느 한쪽의 지식 패러다임에 무게중심을 두고 진행되기 마련이다. 문화예술과 경제 간의 대화는 따라서 십중팔구 미술시장, 작품(상품)가, 문화마케팅의 성과, 옥션시장 현황, 창작노동, 불공정 거래와 계약 등에 대한 자본주의 경제체제 프레임 안을 맴돌곤 한다. 대화가 좀 진일보하면, 피상적인 자본주의 비판, 현실경제 현장의 부정부패 토로를 거쳐 반자본주의에 의기투합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다음 옵션이다. 본 대화는 문화와 경제 간의 불편한 동거나 학제간 비대칭성을 넘어서서, 자본의 문화와 삶, 인간적 경제라는 공동과제를 풀고싶은 사람들이 시작하는 대화의 도입부이다.1
편의점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지배적인 양태나 전반적인 추이를 보여주는 ‘소우주’다. 25,000여 개가 성업 중이며 인구 2,000명 당 한 개 꼴이다. 당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작은 점포 역할에서 금융, 치안 등 공적 영역으로 영토 확장 중이다. 또한 일상의 중심이자 사회 부조리함의 단면이기도 하다. 최근 『편의점 사회학』을 출간한 사회학자 전상인을 인터뷰하고, 편의점이 주 무대인 김경묵 감독의 신작 영화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를 소개한다. 한국 사회에서 편의점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결핍되어 더 간절한 우리 건축의 공통체 공통체……. 참 아름답고, 늘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그것이 아름다운 이유는 진정한 ‘살이/존재’의 틀이기 때문이고, 간절히 바라는 이유는 우리 건축 현실에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통체’라는 말은 내게 몇 가지를 즉각 떠올리게 한다. ‘공통 지반Common Ground’이라는 제목으로 열렸던, 우리 건축 내부의 비난이 가장 드셌던, 김병윤이 한국관 전시 지휘를 맡았던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 전시회(2012), 그리고 슬라보예 지젝이 조직한 국제 심포지엄1의 이름이자 그로써 유럽 지식인들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코뮤니즘’ 문화현상(2009), 마지막으로 얼마 전 우리말 번역본으로 출간된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공통체』(2014) 등이 그것이다.
누가 둘러앉는가? 왜 마을인가? 사실 문화인류학에서는 공간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여기서 공간은 집 그리고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타나며 ‘공간적 감각’은 인문학에서 핵심적 기능을 담당한다. 요즘은 ‘공간’이라는 개념보다 ‘장소성(placeness)’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어떤 곳으로든 이동할 수 있는 사람이 0.1 퍼센트였던 과거에는 어떻게, 어디에 집을 지어야 좋은지가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기억하는 장소에 집을 짓고 싶다는 생각으로 발전했다. 근대 초기에 아무데나 깃발을 꽂고 집을 지었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