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재난은 불가분의 관계다. 재난이 건축을 부르고, 건축이 재난을 부른다. 건축과 재난은 출발점을 공유한다. 둘 다 폭력(적)이다. 건축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폭력이며, 재난은 건축(과 인간)에 대한 폭력이다. 또한 재난은, 건축도 다르지 않은데, 근본적으로 인간의 한계 지점에서 출현한다. 그리고 한계의 출처는 예측과 대비와 ‘인간적인 것’이다. 예측과 대비는 이미 발생해왔던 것에 기반을 두면서, 안전과 경제성 간의 타협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어떤 구조물도 경제적 이유로 최악을 상정하지 않는다). 건축과 재난은 또한 윤리의 한계와 맞물린다. 한국의 재난은 모조리 사리사욕과 부정부패가 씨앗이다. 그래서 재난은 윤리를 추궁한다. 게다가 일상을, 지금여기를 단절시켜 삶을 전면적으로 문제화한다. 크로노스가 중단되고 아이온이 열린다. 아이온은 삶 바깥에서 도래하는 시간, 곧 하늘의 시간이다. 삶의 기분을 전적으로 다른 차원으로 옮긴다.
결핍되어 더 간절한 우리 건축의 공통체 공통체……. 참 아름답고, 늘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그것이 아름다운 이유는 진정한 ‘살이/존재’의 틀이기 때문이고, 간절히 바라는 이유는 우리 건축 현실에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통체’라는 말은 내게 몇 가지를 즉각 떠올리게 한다. ‘공통 지반Common Ground’이라는 제목으로 열렸던, 우리 건축 내부의 비난이 가장 드셌던, 김병윤이 한국관 전시 지휘를 맡았던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 전시회(2012), 그리고 슬라보예 지젝이 조직한 국제 심포지엄1의 이름이자 그로써 유럽 지식인들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코뮤니즘’ 문화현상(2009), 마지막으로 얼마 전 우리말 번역본으로 출간된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공통체』(2014) 등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