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외의 모든 것, 아니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소홀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회의감은, 사사롭다고 스쳐버린 것들이 품은 우주와 고유성에 놀라고 집착하는 것으로 전이된다. 한 젊은 과학기자는 ‘관계와 관계맺음’을 물음으로 생명의 존재 원인과 생태의 연결고리를 다양한 분야를 둘러 질문한다. 그것도 이제는 멸종된 편지의 형식으로. 우리나라에서 과학 전문기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또 그는 한때는 철학이었으나 지금은 과학으로 전문화된 분야의 눈으로 어떤 질문을 던질까. 이러한 물음으로 『과학동아』의 윤신영 편집장을 만났다.
한창 주목 받는 신인작가도, 수년 만에 신작을 낸 베스트셀러 작가도 아닌, 다른 시대·토양·문화를 가진 이방인의 주목받지 못한 글을 몇 년에 걸쳐 우리말로 옮기는 문학총서 편집자가 있다. 하나의 책을 완성하기 위해 그녀는 도서관과 헌책방을 다니며 저자의 삶을 공부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후 역자, 디자이너, 마케터, 독자의 사이를 가늠하며 텍스트에 담긴 생각과 시간의 한계를 넓혔다 좁히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워크룸 프레스의 문학편집자 김뉘연을 만나 그녀가 지금 우리에게 ‘제안’하고자 하는 문학 속 잠재된 실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심보선 시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이야기가 청중을 향한 것인지, 그냥 혼잣말인지 구분이 어려워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최근 ‘대화’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절, 단어, 문장, 문단 사이에 짧지 않은 침묵과 골똘한 눈이 하는 이야기는 막스 피카르트의 “말은 침묵으로부터 그리고 침묵의 충만함으로부터 나온다”는 명제를 증명하는 것 같았다. 그런 그와 ‘대화’에 관해 좀 더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1
최태윤 작가는 도시 시스템의 경계를 거대 담론이 아닌 일상의 소소한 물건에서 출발해 자신만의 지형도를 만들어 공유한다. 그의 활동범위는 매우 넓고 한순간도 머리와 손과 몸을 놀리지 못해서, 끊임없이 읽고, 드로잉하고, 만나고, 이야기하고, 태깅하고, 거리에서 몸으로 부딪친다. 작업의 범주와 분야가 매우 광범위해 이야기가 한눈에 잡히진 않지만, 공공예술의 전방에서 그를 어렵지 않게 곧잘 마주치게 되는 것은, 그가 동시대 도시에서의 인간 삶에 매우 근본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전시장에 갈 땐 으레 다음의 경험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이전에 느끼지 못한 더한 자극을 받거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탄과 함께 영감을 얻거나. 작가 구민자의 작업은 공교롭게도 위와 같은 기대를 충족시켜주진 않는다. 하지만 그 평범해 보이는 상황이나 덤덤한 행위를 따라가다 보면 방관자였던 관람자는 어느새 작업 속 작가의 자리에 앉아 작가가 만들어놓은 세상 안에서 문답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것이 좋은 예술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즉각적인 자극에 수없이 노출되어 무감한 이들에게 필요한 예술가는 서두름 없이 나와 내 주변 사이를 오가며 끊임없이 질문과 대답하기를 유도하는 이가 아닐까.
미팅룸 미팅룸meetingroom.co.kr은 큐레이팅과 아카이브에 관한 정보검색에 초점을 맞춘 온라인 큐레이토리얼 리서치 플랫폼이자, 황정인, 홍이지, 지가은 현직 큐레이터 3인이 모여 활동하는 콜렉티브 Curatorial Collective이다. 지난 3월 문을 열어 큐레이팅, 아카이브, 기록학, 작품보존수복에 관한 정보를 다루고 있으며, 담당 에디터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처음 지인이 내게 이 책을 건넸을 땐 ‘요즘에도 이렇게 선동적인 제목을 쓰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표지의 광장을 가득 메운 시위대1를 보곤 평소 이와 관련한 예술이론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차여서 반가웠고, 목차를 메운 작가와 필자들에서 저자의 집중력이 보였다. 온갖 사회문제에 촉을 들이대는 예술을 연구해온 이의 뜨거운 가슴을 상상하며, 시린 겨울 끝자락에 『마지막 혁명은 없다: 1980년 이후, 그 정치적 상상력의 예술』2의 저자 이솔을 만났다.
나의 상상력과 너의 지적 호기심이 만날 때세계적인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은 전시를 통해 자신의 내면 세계를 담는다고 했던가. 홍보라, 현시원 두 사람이 기획해온 전시를 보면 그들이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대상이 얼마나 다양한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직접 보고 경험하면서, 그리고 지적이고 창의적인 공동체를 존중하며 만들어가는 이들의 전시는 최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들에게 큐레이팅이라는 것이 어떤 기쁨의 원천이 되는지 들어보았다.
예술가는 왜 도시로 나왔을까?도시의 삶과 시스템을 무너뜨리기 보다는 구축하기를 제안하는 예술가들이 있다. 도시공간이 하나의 정치, 경제논리의 수단으로 이해되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지는 Listen to the City의 박은선, 그리고 미술관, 갤러리에서 회자되는 ‘공공’의 의미를 미술 밖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본 Work on Work의 박재용, 장혜진 기획자. 예술이라는 이름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지위와 수직적인 형태를 전복시키며 예술과 삶의 경계를 허무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