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함 30% 함량의 낀 세대 강승현(인로코) ‘앞세대’가 언제인지 누구인지 정의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대상을 좁혀 보면 일단 나의 선생님 세대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분들은 한국성이나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고, 우리나라 건축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짐이 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 건축가로서의 품위와 위상, 권위 등을 중시했고, 그게 태도에서도 드러났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런 한편, 건축을 지나치게 비즈니스로만 여긴 경우도 많았다. 일이 차고 넘쳤다던 1980~90년대에 그런 이들이 절대다수였기에 적절한 설계비 요율, 대가 기준을 만들 기회를 놓쳤다고 본다. 결국 건축가가 이 사회에서 받는 낮은 대우, 설계비 덤핑 같은 수십 년 묵은 문제는 사실 지나간 시기의 특별한 상황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각자 필요와 판단에 의한 선택이었겠지만 후배로서는 아쉬움이 크다.
실무, 함께 일하는 법을 배운 시간 이복기 졸업 작품 발표회 크리틱으로 만난 장영철 소장님과의 인연으로 와이즈 건축에 입사했다. 원클럽맨처럼 한 곳에서 오래 일하는 걸 꿈꿨기 때문에 와이즈 건축에서만 8년을 일했다. 그동안 포럼, 전시부터 주택, 근린생활시설, 박물관, 기업 사옥까지 다양한 규모의 프로젝트를 단계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실무 경험 중에서도 지금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장영철, 전숙희 소장님이 시공자 등 협업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가는지 곁에서 보고 배운 것이다. 프로젝트에서 결정을 내릴 때 그런 부분이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장 소장님은 아이디어를 키워나가는 것에 관심이 많고, 전 소장님은 매우 꼼꼼하게 풀어가는 분이다. 이처럼 두 소장님의 성향이나 관심사가 매우 다름에도 조화를 이루며 한 단계씩 일하는 법을 배웠다. 노말의 세 소장도 성향이 완전히 다르지만, 두 분에게 보고 배운 것을 토대로 서로 채워주고 맞춰가고 있다.
독립, 조금이라도 젊을 때 강우현 언젠가 건축사 자격증을 따면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해서 직접 디자인한 건물을 지어보는 게 막연한 희망 사항이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30대에는 개소하고 싶었다. 더 늦어지면 아무래도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칠 수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젊을 때 독립하고 싶었다. 그래서 강영진 소장이 먼저 건축사 면허를 취득한 뒤 계약된 일도, 제대로 된 사무실도 없이 개소했다.
사무소에 ‘서가’라는 이름을 단지 8년째다. 인테리어와 전시, 작은 공공시설물 디자인이 주된 일이던 3년의 시간을 보냈고, 집을 짓는 서가건축이 된 지는 6년 차의 사무소다. 8년이라는 시간을 지나며 구성원의 변화가 있었고, 현재는 박혜선, 오승현이 서가를 이끌고 있다. 신입사원으로 들어와 7년 차가 된 김유빈, 다른 사무실에서 실무경력을 쌓고 입사한 정상호, 오수진, 작년에 새내기로 입사한 박나영, 이민범, 한수지와 함께 작업 중이다.
초대 건축가들과의 인터뷰 가운데 ‘동 세대와의 공통분모’에 대해 이야기해준 다섯 팀의 말을 한데 모았다. 이들은 일과 삶을 같이 즐기고 싶어 하고, 소규모 예산의 현실 속에 씨름한다. 상황과 처지가 같기에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같은 세대 신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