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날씨 기록은 서술형이다. 맑음, 흐림, 비, 눈과 같은 명사형이 아니라, 큰 바람의 상태를 측정하기 위해 ‘나무가 꺾였다’, ‘나무가 뽑혔다’, ‘지붕 기와가 날아간’ 상황을 살핀다. 아마도 가장 큰 바람은 ‘나무가 꺾이고 집이 허물어질’ 정도의 강도인 듯하다. 그리고 이런 대풍의 횟수는 2회였다고 표시된다. 우연히 발견한 이 통계표는 2009년에 인왕산을 바라보며 절반쯤 허물어진 옥인 아파트에 모인 옥인 콜렉티브가 살피려고 노력해온 ‘상태’와 겹친다. 지나간 혹은 다가올 큰 바람의 상태는 어떠한가? 강도와 횟수는? 지낼만한 것인가? 버틸만한 것인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의 일상은 한고비를 지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 위기의 문이 열리기 바쁘다. 차라리 게임오버를 선언하는 것이 덜 피곤할 것 같다. 하지만 고독과 불안함 밖으로 나와 다양한 사람들과 연대하며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예술가와 디자이너를 포함한 비정규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왔다. 예술과 삶을 분리하고 구분 짓는 일은 더는 불필요해 보인다. 동시대 삶과 예술에 내려진 재앙과 재난을 바라보던 냉소적 무기력함은 그들의 유쾌한 행진을 통해서 거두고, 생기를 가진 협업과 연대를 찾는 과정에 함께 할 것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