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서 열리는 건축 전시가 역사적으로 아주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건축이 미술의 관점에서 예술의 한 부문으로 규정되는 데 그치지 않고, 잠재적으로 미술을 재규정할 수 있는 이질적인 힘으로 언뜻언뜻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것은 건축이 미술에 대해 적극적인 공세를 펼친 결과라기보다, 오히려 그런 분과 간 경계가 느슨하게 유동하면서 미술과 건축의 여러 행위자들이 각자 자신이 처한 위치를 인식하고 대처 방안을 모색하는 가운데 일어난 변화다. 그래서 관객 입장에서는 건축 전시가 보여주려고 했던 내용보다 그것이 의도치 않게 노출하는 전시의 맥락이 좀더 흥미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