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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한국과 독일 그리고 일본 한국과 독일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두 나라의 현대사를 아는 사람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에 의해 나라가 분할되면서 수십 년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가 첨예하게 대결했던 분단국가이자 냉전의 최전선이었다는 (정치적)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두 나라가 분단된 이유는 다르다. 독일은 전범국가였기에 분단이 처벌의 의미를 가졌지만, 한국의 경우 일본제국주의의 명백한 피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후 미국(자본주의)과 소련(사회주의)의 대결구도 속에 억울하게 분단된 경우였다.
들어가며 1967년 서울시는 한강 개발의 일환인 윤중제 건설(1968년 2월 준공)로 확보한 여의도 부지의 개발계획을 김수근에게 위임했다. 남산 국회의사당 현상설계(1959) 당선으로 건축계에 데뷔한 이래 김수근은 자유센터(1963), 부여박물관(1967) 등 전후 한국의 대표적 상징물들을 설계하며 ‘국가 건축가’로 부상하고 있었다. 정계와의 긴밀한 인맥을 바탕으로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설립을 주도하고 종로3가 재개발 프로젝트(1967) 같은 대규모 도시계획을 이끌어온 그가 여의도 개발계획을 맡게 된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미래의 부검: 여의도 1968 – 2018〉은 현실과 상상, 소설과 역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지극히 익숙하면서도 낯선, 다양한 주체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들의 기억은 ‘여의도’라는 거대한 시대적 실험으로 엮여 있으나, 이야기를 주도하거나 이야기에 끌려가는 자 없이 평행선을 그리며 진행된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의도는 실체적 장소라기보다 은유적인 허상으로 존재한다. 때로 면적의 비교 단위로 호명되는 여의도의 거대함, 광활한 평평함, 그리고 구석이 존재하지 않는 어색함은 곧 실현될 유토피아로서 여의도의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유지시킨다. 아스팔트 광장에 모여 기도하고 노래하고 농성했던 수백 만의 기억과, 매년 가을 여의도 하늘 위에 펼쳐지는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모이는 군중들, 그리고 봄마다 벚꽃 아래 윤중제를 걷는 시민들에게 여의도는 지금도 가까운 유토피아다. 여의도에서 우리는 이상적인 미래를 꿈꾸고, 그 꿈의 예언적 개념으로서의 운명은 국가 정체성의 견고함과 맞물려 있다. 사회적이며 미학적인 실험 대상으로서 여의도는 여전히 한국 아방가르드 건축의 성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