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듯이 걷기 좋은 도시는 기능적인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게 하고,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만나게 한다. 스스로 루트를 짤 수 없는 옆길 없는 길은 그래서 재미없다. 잘 가꾼 길이라고 해도 일직선의 길은 한두 번 걷고 나면 ‘이제 됐다’는 생각에 그 길로 걷기를 멈춘다. 아무리 유명 건축가와 조경가 그리고 예술가가 참여했다고 해도, 엄청난 재원이 투입되었다고 해도, 그 길에선 조미료의 냄새가 난다. 목적지를 향한 길은 풍미는 약하고 시각만 자극한다.
자신이 살던 땅에서 내몰린 신원 미상의 존재에 대한 전시 두 개가 8월 7일까지 동숭동 아르코미술관 1, 2관에서 열린다. 《홈리스의 도시》와 《New Shelters: 난민을 위한 건축적 제안들》이 그것이다. 이 전시에서는 여기 분명히 있음에도 투명한 존재로 여겨지거나, 경계 밖으로 밀려난 줄 알았지만 여전히 이곳에 봉인되어 있으며, 제도권과 무관해 보이나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하는 존재들의 아슬아슬한 삶을 조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