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범성과 반서사성, 그리고 뒤집기
양혜규 × 김진주
12,016자 / 25분 / 도판 3장
인터뷰
양혜규는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조각을 전공했고, 지금은 서울과 베를린을 주요 거주지로 삼아 작업 활동을 하며, 미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여러 국경을 넘나드는 그의 삶은 이렇다: 하루는 서울작업실에서 선후배 동료 작가들과 미술 팟캐스트를 준비하고, 다른 날은 스웨덴 말뫼에 있는 학교에 출근한다. 2주간의 학교 업무일정이 끝나면 다시 여러 명의 어시스턴트가 일하는 베를린 작업실로 귀가한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초기작 <무명 학생 작가의 흔적>(2001)과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선보인 <살림>(2009), 그리고 최근에는 <향신월香辛月>(2013) 등을 소장할 만큼 양혜규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 주류 현대 미술계의 인정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를 ‘비판적 생각을 하고 감각이 예민한 젊은 작가’ 이상으로 미술계에 각인시킨 전시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당시 같은 30대였던 기획자 김현진과 만들어낸 《사동 30번지》(2006)라 할 수 있다. 미술관이나 화랑 등의 제도화된 공간에서 벗어난, 작가 외할머니의 인천 옛집에서 가졌던 《사동 30번지》는 이른바 ‘자가-조직적self- organized’이라고 번역되는 형식이 두드러진 전시이자 작업 그 자체이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양혜규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한국 행사(2005) 조직위의 현지 사무실에서 일하기도 하는 등 ‘작업만’ 하지는 않는다. 인터뷰는 2월 8일 서울 연건동의 양혜규 작업실에서 진행했고 이 글을 정리하는 필자 김진주는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코디네이터로 일하며 그를 처음 대면했다. 당시 작가 양혜규에게서 받은 첫인상은 개념적으로도 맥락적으로도 대규모의 작업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힘이 있으면서, 손이 많이 가는 살림살이의 역할과 기능을 중히 여기고 이에 헌신하고자 노력한다는 점이었다.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응결: 양혜규》를 하나의 기점으로 양혜규는 이후 ‘세계적 한국 작가’의 타이틀을 얻고 그에 걸맞게 활동해왔다. 한국 미술계도 이런 작가의 활약을 반기는 듯 이듬해 아트선재센터에서는 작가의 첫 기관 개인 초대전 《셋을 위한 목소리》(2010)를 열었고, 삼성미술관 리움은 올해 또 다른 개인전 《코끼리를 쏘다 象 코끼리를 생각하다》를 개최했다 (2015년 2월 10일~5월 10일). 현재 작가는 샤르자 비엔날레 12에서도 신작 <불투명 바람>을 전시 중이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