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끄러지는 공공성 공공건축과 공공성은 비슷하지만, 별개의 문제다. 공공건축 시스템 내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면 공공의 돈으로 공공을 위한 프로젝트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누구의 돈인지 모를 돈으로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를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느낀다. 또한, 지금 상황에서는 건축가가 너무 많은 희생을 하면서 일을 해야 한다. 일단 건축가와 발주처가 생각하는 좋은 공공공간이 너무 다르다. 건축가들은 공공에 개방된 공간을 설계하는데, 관에서는 안전 때문에 그렇게 하지 말자고 했다는 이야기는 너무 많다. 다음으로는 공공건축 작업에 책임 없이 한마디씩 얹는 플레이어들이 너무 많다. 심의를 말하는 게 아니다. 다양한 유관 부서의 요청이 잘 관리되어 전달되지 않고 산발적으로 내려오는데, 공모전을 통해 당선된 건축가가 그것을 다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이유로 굳이 공공 작업을 안 해도 된다면 그 고생을 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더 힘이 생겨서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전까지는 관심 없다.
건축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면목이 없는 상태다.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은 자의 반 타의 반이겠지만, 여러 상황상 부수고 짓는 것보다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다시 쓰는 것이 조금씩 일반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가가 올라 공사비가 너무 비싸졌기 때문에 더 유리해지기도 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정부 정책도 환경을 더 생각하는 방향으로 만들어 갈 것이니 앞으로 시장도 점점 그렇게 될 것이다. 개인 건축주들에게서도 예전보다 그런 경향 변화가 명백히 눈에 띈다. 긍정적인 변화라고 본다.
2010 vs 2020 제프리 킵니스(Jeffery Kipnis)1가 감독한 《A Constructive Madness》라는 다큐멘터리에서 피터 루이스(Peter Lewis)라는 거부가 프랭크 게리에게 주택을 의뢰한다. 게리가 10년 동안 설계를 했으나 너무 비싸서 결국 짓지 않는다. 그런데 그때 이것저것 시도해본 경험과 개발한 기술을 전부 몇 년 후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에 쏟아붓게 되었다. 구겐하임 빌바오는 우리가 알다시피 프랭크 게리의 커리어뿐 아니라 세계 건축의 테크놀로지 측면에서 굉장한 전환점이 된다.
데뷔작: 리빙 라이트 리빙 라이트(Living Light) / 자료 제공: 삶것 상암동 월드컵 공원에 10여 년간 유지되다가 2년 전 철거되었다. 강의 외에 다른 작업이 없던 시절이라 뉴욕과 서울을 비행기로 오가며 3년간 여기에만 몰두했다. 발주처는 서울시였고, 예산은 디자인, 제작, 설치, 운영을 포함해 약 1억 원 규모의 작업이었다. 파트너와 단둘이서 모든 과정을 직접 진행했다. 재미있었고, 지금까지도 관심 있는 분야와 맞닿아 있는 작업이다.
약간 건축가 건축가로서 만들고 싶은 궁극의 건축, 그런 것은 없다. 다만 도전은 항상 좋아한다. 궁극적으로 생각해보면, 이 일을 하는 변하지 않는 이유 단 하나가 남들이 안 해본 것, 아직 세상이 보지 못한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다. 조각이건, 굉장히 독특한 디테일이건, 희한한 형태이건, 벽돌 붙이는 방법이건 간에 역사상 없었던 것을 만드는 게 언제나 좋다.
적당히 괜찮은 플랫폼 요즘에는 괜찮은 사무소가 점점 많아지는 것 같지만, 사실, 건축가들이 가장 못 하는 것이 적당히 행복하고 지속 가능한 ‘회사’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안정적인 사무실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싶다. 그것이 더 큰 도전이다. 설계 잘 된 건물을 몇 개 짓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고, 이 업계에 더 필요한 일인 것 같다.
기술(art)과 이야기(story), 삶것에는 두 개의 스레드가 상시 작동한다. 삶것의 기술은 건축술(technology)이 아니라, 건축술을 구현하는 기술을 고안해내는 기술이다. 건축을 구상하는 방식으로서의 기술에 대한 원리적인 접근은 자연스럽게 프로젝트의 과정과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일반화시켜 말하면 ‘다이어그램적 사고’라고 할 수 있다. 프로젝트에서 어떤 결과(결론)를 만들어내는 다이어그램(기계)을 고안해 프로젝트(를 생각하는 머리) 안에 집어넣고 가동시키는 것이다. 직관과 통찰에서 나오는 이 다이어그램은 분석적인 기계가 아니라 생성적인 기계다. 일단 스위치가 켜지면 기계는 자율적(기계적)으로 돌아가고, 그것의 고안자는 기계가 움직이며 그려내는 경로를 추적, 관찰한다. 최종적으로 도달한 결과물이 마음에 들면 취하고, 그렇지 않으면 기계를 업그레이드하거나 다른 것으로 교체한다.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 기술은 삶것의 특기로 잘 알려진 컴퓨테이션이나 알고리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더 손에 잡히는) 조작 가능한 레고 블록식 모형, (더 통념적인) 그래픽 다이어그램, (더 직설적인) 프로젝트의 조건이 투사된 윤곽선, (더 개인적인) 영감을 받은 일상 속 이미지나 장면 등등 어디에든 들어 있다. 나열한 예시들이 뒤로 갈수록 기술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느낌이겠지만, 그것은 생각을 밖으로 꺼내 설명하기 위해 시각적으로 볼 수 있고, 떠올릴 수 있는 연상물로 표현하고, 대체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는 저마다 보이지 않는 기계가 돌아가고 있다.
‘중간점검’은 2010년 전후 무렵 젊은 건축가로 호명되어 지금까지 꾸준히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중진 건축가의 심층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건축가로서의 깊이와 여유가 묻어나는 한편 여전히 치열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그때와 지금, 다가올 미래를 묻습니다. 그리고 건축가 개인의 관심사를 확장하여 건축계에 산재한 이슈를 함께 이야기합니다.
전숙희 오늘의 주제는 산업자산의 활용이다. 부천아트벙커 B39가 공공에서 산업자산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보여준다면 코스모40은 민간에서 산업자산을 다루는 방식을 말한다. 앞으로 산업자산은 더 많아질 테다. 용도 폐기, 도심 확장으로 인한 이전 등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건축물의 노령화 시대를 맞이하며 앞으로 이들을 어떻게 대할지를 고민하는 시간이니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해달라.
건축을 잘 아는 건축주를 만난 건축가와 건축가의 속마음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건축주. 이들은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보다 쉽게 집을 지었을까, 아니 그 반대였을까? 지난 가을 남해에 완공한 ‘넷제로 에너지 하우스’ <소솔집> 의 건축주 정소익과 건축가 양수인의 긴 수다를 정리했다.